| 책을 받아 본 순간 너무 예뻐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림책을 좋아하는데도 실상 소장하고 있는 책이 별로 없었는데 너무 좋다. 봄 햇살이 너무 좋아 평상에 앉아 그림을 본다. 침대에서 병상에서 안락의자에서 정원에서 책을 보는 통통하고 어여쁘고 어리고 귀엽고 늙고 병든 여자들의 책읽는 모습이 책 속엔 가득하다. 나른하게 섹시하게 진지하게 책 읽는다. 커다란 하얀 장미 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책읽는 주인이 미동도 하지 않아 심심한지 개는 발치에 졸고 있다. 의자는 편안해 보이고 풀냄새 꽃냄새가 은은할 것이다. 여자는 편안한 옷을 입고 책을 읽고 있다. 전등불 밑에선 그림을 보지 말 일이다. 햇살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도 정확한 조명이다. 그림을 천천히 보고 또 보았다. 흐뭇하다. 표지도 예쁘고 판형도 예쁘고 간지에 들어간 색도 예쁘다. 게다가 옮긴이 중 조이한이 있다. 옮기기만 하지 않고 중간 중간 글도 넣었다. 전에 조이한과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본 그림에 관한 책 중 최고의 미술교양서로 꼽을 만큼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인문서라 하기에도 대중서라 하기에도 부족할 뿐이다. 재미있지도 감동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책읽는 여자는 그저 모델일 뿐이다. 그 모델이 위험한 여자가 되었다는 혹은 될 가능성이 있다던가 하는 어떤 이야기도 들어있지 않다. 피상적으로 책읽는 이들이 빠질 위험에 관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여기선 예전 조이한은 없다. 이전의 책은 진중권의 감수였단 말인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다. 30대 여성이 가장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하니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제목 뽑기인가 싶을 정도다. 아 이렇게 예쁜 책이 이 모양이라니... 공짜로 받아 놓고 이렇게 쓰니 민망하기 그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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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낚였습니다
제목에 낚였습니다
마케팅 성공했습니다
그림은 괜찮습니다
내용은 엉망입니다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그러면 빌려보세요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제목과 따로노는 내용이고, 예쁘게 만들어
간지나는 제목으로 잘팔아보세 이외에 컨셉이 모호합니다
책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면서, 아무 얘기 없이 딴다리 긁습니다
끝까지 읽어봐도 안나옵니다.이런게 낚인겁니다
그림책으론 어떠냐구요? 이미 책장에 더 좋은 컬러 화보가 많거든요
낚였습니다 <- 이 말 너무 좋습니다
온라인 서점 구매자에게 간단하게 한마디하자면
구매하지 마세요.소장가치 없습니다.
끝 [인상깊은구절] 오직 책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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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담긴 독서하는 여자들의 그림은 몰두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다.
때로는 발가벗은 채로,때로는 누워서,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자세로 독서에 몰두하는 여자들.
과연 무엇이 그녀들을 그토록 몰두하게 만드는가,왜 위험하다는 말을 썼을 지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서양의 보수적 집단에선 독서를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심지어 칸트의 추종자였던 요한 아담 베르크는 몰취미하고 생각없는 독서의 결과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이고 모든 노력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며 삶에 싫증을 내는 것이고,때이른 죽음”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독서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과거엔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규범이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필사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독서가 가능했다고 한다.
책 읽는 여자가 실제로 위험하게 여겨진 것은 책을 읽을 때는 어떤 사람도 들어 올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획득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한편으론 고독한 사람들의 선택일지 모른다. 책을 손에 쥐고 있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책과 자신뿐이고, 생각이상으로 책 속엔 무한대의 세계가 존재한다.
오히려 그렇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고독하게 느끼기 때문에 책 읽는 사람들이 고독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책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책은 작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얻게 되는 희열이 있으며 자신의 상상력도 더불어 성장하게 한다.
엘케 하이덴라이히가 이야기 하는 <여자가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을 때 생기는 위험에 관해서>를 보면 책 읽는 여자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엘케는 남자가 책 읽는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지나치게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보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객관적이며 통찰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는 눈과 더불어 핵심을 보는 눈도 가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라고 말한 마리 폰 에브너 에센바흐의 말에서 섬세함과 사려 깊은 여성의 특성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문제와 여자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시각이 트이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라는 행위는 자의식을 더 강하게 해주고 자신감 또한 자라게 해주는 힘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에겐 때때로 책이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엘케의 말에 적극 동감하면서 책 읽는 일을 더 깊고 넓게 가질 계획을 생각해 본다.
독서하는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엘케는 이야기 한다.
그 이유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 책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필코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화가들이 책 읽는 여자를 그려 놓은 걸 본다. 화가들은 그녀들의 어떤 점에 이끌려 붓을 든 걸까. 아마도 책 읽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몰입의 에너지에 반한 것은 아닌지 혹은 책 읽는 여성들의 강한 내면의 힘을 화가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미 간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여자들은 분명 내면의 힘이 강한 존재들이며, 남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문제를 제시하며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가지는 위대한 여성들이다. [인상깊은구절] *여자의 독서가 승리의 행진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서는 자유로운 꿈’ - 장 폴 사르트르 *독서가 마술의 허리띠와 같은 수 있다는 느낌. 마술의 허리띠는 그것을 두른 사람에게 우아함을 주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책을 읽는 여자는 근거를 묻고,그리고 근거를 묻는 것은 단단하게 맞물린 세상의 규칙을 파괴한다. *“개성의 발전과 독서는 상호작용을 한다.” –게르트루트 레너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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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외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이 같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화가들이 오래 전부터 책 읽는 사람을 그리는 것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점일 것이다. –p47
오늘 날 독서는 우리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존재다. 순수문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용서적, 안내책자, 잡지, 홍보물까지.
그런데, <성경>이외의 독서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유럽에서 이야기다.) 독서가 백해무익한 것이며, 게으른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비난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여성의 독서는 불필요한 자아를 생성하게 함으로,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책은 과거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독서의 역사를 대가들의 그림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그림 속 여인들은 모두 책을 손에 쥐고 있다. 글은 제목만큼 자극적이지는 않다. 독서의 시작, 독서 방법의 변화, 독서하는 여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 글은 진중하다.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 이유는 독서를 인해 여자들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독서를 통해 꿈을 꾸고, 자아를 찾고, 혼자서도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양육 지식 습득으로 인해,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져, 아이를 낳아야 하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이유도 함께 싣고 있다. 물론, 전적으로 남성의 관점에서 그랬다는 것이고, 과거의 이야기다. (오늘날 위험한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역시 남녀를 불문하고 자의식이 강해 상대방이 끼어들 틈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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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별점이 낮아서 좀 의외다 싶었다. 딱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책인데. 번역서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안목이 뭐랄까... 기획력이 있다 싶었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책인데 의외로 별점이 낮다. 너무 전문적이거나 진지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그림당 1-2장의 설명을 곁들인다. A4로 치자면 1/3에서 반 장 정도의 분량? 헉! 이게 다야?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부담 없다. 2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고, 이동 시간이나 짬을 내 읽기에 부담 없는 책이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읽든 크게 지장받지 않는 구성이기도 하고. 물론 가끔 저 그림을 좀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을까 싶기도 하다.
중간중간에 역자들이 책읽기 역사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그 부분도 나름 재밌다.
솔직히 이 책은 독서를 하는 여성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소개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나름의 효용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가끔씩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이 책을 보면서 건진 그림들이 많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1859-1933)의 바로 이 그림. 작품의 제목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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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는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이 부제가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 20세기, 21세기에는 그림에 국한하지 않고 사진들도 소개하고 있다. 암튼... 여성들의 독서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는 것은 재밌다. 좀더 깊이 있는 책이 나온다면 재밌을 듯.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여전히 여성들은 책을 '읽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 언젠가는 [책 쓰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책이 조만간 출간되길 바란다.
[덧붙임] 3월 22일까지 덕수궁 미술관에서 있었던 한국 근대 미술 걸작전에도 보면 '근대 여성'들은 책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그림도 있지만 꼭 책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늘 책이 곁에 있다. 퍽 인상 깊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아히! 했다. 그만큼 큰 상징은 없겠구나.
한국판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기획해도 재미 있겠다. 근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훑어볼 기회가 될 수 있을 듯. |
| 제목에 이끌려 첫장을 넘겼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똑똑한 법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이다. 그런데 여자라고??? 여성의 독서에 포커스를 맞춘 책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책 읽는 여자의 그림, 사진에 관한 해설서란 생각이 든다. 소개된 그림들은 하나같이 새롭고 신기했다. 유명한 그림 <책 읽는 소녀>외에는 대부분 처음 본 그림들이다. 하기야 여자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모나리자와 같이 초상화가 아니던가...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초상화든 풍경화든 추상화든 책이나 편지를 집어들고 있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진지한 독서, 쾌락을 위한 독서, 하녀의 독서, 연인의 독서... 독서의 종류도 꽤 많았다. 저자의 그림보는 눈은 매우 섬세하고 논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시선, 손가락, 옷차림, 배경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시선이 날카롭다. 그동안 전체적인 느낌 위주로 그림을 보았던지라, 저자의 친절한 해설은 그림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대체로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지만 나의 인상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같은 그림이 간혹 2번씩 등장하는 것에는 다소 의아스러웠다. 제목의 부제는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독서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독특한 테마를 중심으로 모아놓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 하고, 독서와 여성을 보는 관점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 책을 읽는 것이 비 도덕 적이며 위험한 행위로 지적되던 시대 가 있었다. 남녀 평등의 사상이 아니던 시대에, 책이 귀하던 시절 에 책을 읽는 그것도 여자가 책을 읽는 모습을 곱게 보지않고 마치 위험한 물건을 만지는 것으로 여기던 풍조가 있었으니 어찌 책읽는 여자가 위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보수적 대립자의 눈에는 무절제한 독서에서 도덕과 질서의 멈 출수 없는 몰락만을 보았던 것이다. 그 예로 스위스의 서적상 요한 게오르그 하인츠만은 과도하게 소설을 읽는 것을 프랑 스 혁명과 같은 극단적 행위로 이해 하려 했다고 하고 있고 , 또다른 일부 계몽주의자들도 도를 넘는 독서를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인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점차 은밀한 , 소리내지 않는 독서로 변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성들의 책읽기도 그와 같아서 ,1631년 렘브란트의 책을 일는 노 부인의 모습에서 신앙으로 구약 성서로 짐작되는 책을 조심스레 읽는 모습을 시작으로 ,네델란드의 화가 피터 얀 센스 엘링가가 1660년에 그린 여주인의 책을 몰래 훔쳐 보는 하녀의 모습에서 발칙함을 느끼게하고 그 이후에는 독서의 장소가 더욱 은밀한 장소인 침대로 바뀌어져 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그림들이 보여지고 있다. 이렇게 그림들을 통해서 애처로운 독서의 역사를 읽어 낼 수 있는 이책은 진리를 담은 그릇인 성경 등을 읽는 은총 받은 독서가들 부터 짧은 도피 행위의 일부로서 책들을 읽는 고독한 여자들의 모습까지 갖가지 다양한 포즈와 장소에서 책을 읽는 여셩 들의 모습을 그린 유명 화가들의 그림들과 함께 책읽는 여자의 위치를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의 박식한 미적 감각의 시각으로 13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책에 매혹된 여자들의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익었던 그림으로 쟝 오노레 프라고 나르의 그시대에 맞는 유행의 옷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나 , 쟝 에티엔 리오타르의 터키 복장으로 책을 읽는 모습에서 오스만 제국의 매력과 여자의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보여 주고 있어서 인상적 이다. 그리고 이책의 속 표지와 알베르트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 > 표지 그림으로 잘 알려진 그림인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의 암시적으로 그려진 간결한 형태의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 이 책의 겉 표지를 화려 하게 장식한 라몬 카사스 이카르보의 간이 침대에서 잠시 책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무희의 숨겨진 삶을 감지하는 듯한 멋진 그림도 소개 하여 주고 있어 좋았다. 그리고 에두 아르 마네의 독서 에서 어머니에게 책을 읽어 주는 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 하고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르의 여인 (지누부인)을 그린 강렬한 색체의 노란색 배경에서 삶이 끼치는 영향을 포착해서 그림에 담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 이그림과 비슷하게 그린 같은 모델로 그려진 고갱의 주점을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그림과는 전혀 느낌이 다른 그림을 그린 참 의미를 상상해 보기도 하는 그림 이었다 . 그외에도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그림에 있는 책들 3 권은 그라세 출판의 유명한 연속 출판물이라는 소개와, 앙리 마티스의 낭독 이라는 제목의 세자매를 그린 그림이 운명의 세 여신으로 연상되는 유희같은 그림이라는 것과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이즈를 읽고 있는 메릴린이라고 표시된 마릴린 몬로의 사진에서 혼란 스러운 독서법을 그려주고 있는점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역자 조이한 , 김정근의 자세한 해설의 글이 이책을 빛내주고 있으며 ,독서 금지라는 책에 있다는 말로 , "독서의 역사에서 여자는 종이에 적힌 단어의 그물 속으로 날아 들어온 작은 파리에 불과했다 , 그들은 구경꾼 이었다 " 라는 말로 이책을 대변할수 있는 말로 생각된다 |
| 활자 중독증? 지적 허영심?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어쨌든 책만 잡으면 그 속에 풍덩 뛰어들어 때론 우아하게 헤엄치기도 하고 때론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더 넓은 공간과 아름다운 색채가 있는 그림 속에서는 개헤엄도 치지 못 하는 걸 내 작은 그릇 탓으로 돌렸었다. 이제 보니 접근 방법이 틀렸던 걸까? 책장을 덮을 때까지 그림 속에 푹 빠져있었다. 시작은 도발적인 책 제목에 이끌렸다. 학창 시절, 갖은 구박을 받아가며 책을 읽어왔던 내 모습이 궁금했고 위험하게 여겼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떠올랐다. 겉표지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나른한 듯, 편안한 듯한 검은 옷의 여자가 책을 쥔 채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있다. 좋은 책은 읽으면서 멈추기를 많이 유도한다. 생각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표지 그림 또한 한참을 읽었다.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책 읽는 모습이 이렇게 다양하다. 복장도, 어떤 여자는 무도회에라도 가는 차림이고 어떤 여자는 벌거벗고 있다. 모두가 낯설지 않다. 병원 침대에 웅크리고 책 읽는 할머니의 모습, 마릴린 몬로가 율리시즈(그 어려운 책을!)를 읽는 모습, 엘레오노르 왕비의 묘비까지 모두가 아름답다. 내가 책 읽는 모습에 반했다는 남편의 말을 그저 미사여구로만 들었는데 어쩌면 정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남자들이나 어린 세대는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다. 뭐가 위험하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책을 들이대며 읽기를 권하는 이 시대에서 자란 사람들도. 혹은 책만 읽으면 뭐해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말하는 사람들도.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란 없다. 특히 손을 번쩍 쳐들 용기가 없는 여성들에게는 더더욱. 자의식을 키우고 생각을 키우는 것, 만류하는 사회속에서, 그것조차 얼마나 힘겨운 투쟁이었는지.. 그런저런 설명 부분이 들어가다보니 흐름이 끊기는 듯한 부분들이 많다. 사족같지만 그래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은 공감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클래식 음악의 배경설명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고 혼자서도 잘 놀게 되는, 그래서 비사회적이 되고 사람들을 밀어내게 될지도 모르는 책읽기를 가까운 사람들은 말렸는지도 모르겠다. 보바리 부인 같이 어리석은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그러나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뭐든 선무당이 사람 잡는 거니까. 가끔씩 그림들을 꺼내 볼 것 같다. 지금과 다르게 읽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읽는 여자의 그림들은 아름답고, 난 여전히 위험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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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여자에 대한 편견이 보인다.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독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막연한 추측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부제에 나타난 것처럼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내용의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그림이 가득한 책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책읽기가 가능했을까? 남자들이 없이 여자들만 그림의 주인공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녀들은 무엇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까? 책 읽는 여자와 화가,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녀들의 책읽는 모습의 그림은 관객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 책을 지나치게 읽는 여자들은 왜 위험한가? 등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림과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통해 답하고 있다.
책 읽기는 진리가 닮긴 성경읽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책을 통해 자신의 내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즐거움을 찾고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의 하나로 발전되었다. 한 폭의 그림과 여기에 곁드린 설명은 이러한 역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이 그림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역자들은 전체적인 독서의 역사를 중간중간에서 요약해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부분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책읽기는 여자들에게 더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문학쪽에서 본다면 여류작가들이 활동이 더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의 부모세대만 생각하여도 싶게 짐작이 간다. 여자의 의무는 가족들을 잘 돌보아주는 것이지 자신의 발전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읽는 여자가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 말미에 쓰여있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 읽는 여자의 생각은 전혀 딴 곳에 가 있고, 남편은 그곳으로 아내를 쫒아갈 수도 없다. 남편은 아내가 저쪽 안락의자에, 창가에, 소파에, 침대에, 기차간에 있는 것을 보지만, 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다. 그녀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고 있지만 남편이 옆에 있어 그런 것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인 당신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 자신의 세계가 분명한 사람은, 그 안에서 오래 지내는 이는, 위험이란 단어를 쉽사리 떠오르게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우리의 예상을 쉬이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음에 여행이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주듯 예측할 수 없는 이는 호기심과 함께 위험을 느끼게 하곤 한다. 그 연장선상이라 여겨진다. 이 책의 제목은- 책읽는 여인의 그림이 몇 페이지 간격으로 펼쳐지고 어떤 상황인지 때로는 사실이 때로은 예상이 덧붙여진다. 초입부, 저자의 말을 읽고 그의 집필 동기에 무한히 공감했으나 아쉽게도 전개는 그의 마음을 따라가진 못한 듯 하다. 특히, 역자의 해설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을 줬을지는 모르나 너무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혹, 이 책이 공저인가..란 생각마저 들었다. 평소 우리 소설책뒤에 한 웅큼씩 들어 있는 작품해설에 상당히 불만을 느끼는 나로선 (단편소설분량을 할애하곤 하는데, 정독해서 읽는 이는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런 면이 아쉽기도 하다. 허나, 숱하게 나오는 비슷비슷한 모양과 냄새의 책들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주제임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