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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베가 연대기와 인과관계를 버린 것은 삶을 무질서하게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선택과 배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어떤 기억을 중요하게 다루고 어떤 기억을 지워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자서전은 이미 한 인간을 특정한 서사 안에 배치한다. 어린 시절의 어떤 사건은 현재의 나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어떤 만남은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 되며, 나머지 수많은 날들은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밀려난다. 삶은 그렇게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자화상』은 바로 그 질서를 거부한다. 르베에게는 인생을 바꾼 사건과 별것 아닌 습관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위계가 없다. 폴 리쾨르가 말한 ‘서사적 정체성’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며 ‘나’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생각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르베의 작업은 그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에 작은 반론을 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죽음과 음식, 사랑과 여행,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체에 대한 감각은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설명하지 않고, 어떤 기억이 다음 기억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문장들은 저마다 하나의 작은 사실로 존재한다.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판단을 최대한 유보한 채, 삶을 구성했던 것들을 같은 높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때 『자화상』은 한 인간의 삶을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관습에 의문을 던진다. 실제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은 몇 번의 극적인 순간만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취향과 습관, 무심코 지나친 감각,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던 생각과 기억 역시 그 사람의 일부다. 르베는 바로 그 사소함을 집요하게 수집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는지, 여행을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어떤 기억을 잊었는지를 기록한다. 그중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사실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사소함이 결코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억에서 탈락했던 것들이 하나씩 불려 나온다. 그렇게 보면 『자화상』은 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중요함’이라는 기준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삶을 회고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기억은 다시 편집된다. 수많은 날 가운데 몇 장면만 선택되고, 선택된 장면에는 현재의 내가 알고 있는 의미가 덧씌워진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한 인물이 되고, 현재의 나는 그 과거를 해석하는 사람이 된다. 르베는 그 해석의 과정을 최대한 걷어낸다. 그에게 과거는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원인이 아니라, 그저 한때 존재했던 수많은 사실 중 하나로 남는다. 그러나 사실을 많이 모은다고 해서 한 사람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화상』에서는 자신에 관한 사실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모습이 선명해지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또렷해진다. 르베는 자신에 관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말하지만, 그 많은 문장은 하나의 완전한 인물상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까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사실과 삶의 진실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놓여 있다. 모든 문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실들의 총합이 곧 한 인간의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에도 현재의 시선이 개입한다. 같은 사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고,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순간도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말하는 순간에도 선택은 발생한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사건을 기록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이미 하나의 ‘나’가 만들어진다. 르베는 이 문제 앞에서 더 많은 사실을 끌어온다. 자신을 가능한 한 많은 문장 속에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도가 자기 자신의 불투명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수많은 조각을 모았는데도 전체의 모습은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쓴 문장이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남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초상 안에는 타인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친구와 연인, 가족과 낯선 사람, 우연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르베의 자화상에 함께 놓인다. 자신을 그리는 책인데 정작 혼자서 존재하는 ‘나’는 거의 없다. 인간은 본래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 상처를 받았을 때의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의 나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인 동시에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식에 스며든 하나의 기억이기도 하다. 자화상이라는 형식은 본질적으로 모순을 품는다. 자화상은 자신이 자신을 그리는 그림이지만, 자신을 완전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울 속 얼굴을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그 얼굴이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기억하는 나는 다르고,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와 당시의 내가 느꼈던 나 역시 다르다. 르베의 자화상에 타인의 얼굴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 사람의 초상은 혼자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화상』의 파편적인 형식은 단순한 실험이나 문체적 기교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형식 자체로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삶에도 언제나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처럼 읽힌다. 우리는 지나간 사건들에 뒤늦게 이유를 붙이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많은 일이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간다. 삶은 언제나 이야기보다 먼저 존재하고, 이야기는 그것이 지나간 뒤에 만들어진다. 르베는 그 사후적인 질서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에는 성장도 없고, 극복도 없고, 완성도 없다. 어떤 사건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식의 결론도 없다. 한 사람은 그저 수많은 순간을 통과하며 존재한다.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기억, 애정과 무관심, 확신과 망설임을 함께 품은 채로. 결국 『자화상』이 그려내는 것은 완성된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을 이루는 수많은 조각과, 그 조각들을 아무리 모아도 완전히 채울 수 없는 빈자리다. 르베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사실을 늘어놓지만, 그 사실들이 하나의 정답으로 모이도록 만들지 않는다. 각각의 문장은 자신이었던 어느 한순간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순간에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굴은 다시 무수한 점으로 흩어진다. 그 점에서 『자화상』은 자신을 완성하는 책이 아니라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책이다.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면 지나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소함이 사라진다. 르베는 그 사라진 것들을 다시 불러낸다. 별것 아닌 취향과 오래된 습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순간까지 한 사람의 삶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실 앞에서 비로소 자화상의 의미가 달라진다. 자신을 닮은 얼굴을 만드는 것이 자화상이라면, 르베의 책은 끝내 하나의 얼굴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이루었던 순간들을 빠짐없이 바라보려는 시도가 자화상이라면, 이 책은 누구보다 집요한 초상이다. 인간은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되지 않으며, 하나의 얼굴로도 붙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수많은 기억과 관계와 습관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잠정적인 형상에 가깝다. 르베는 그 형상을 억지로 완성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문장을 통해 한 사람이었던 순간들을 하나씩 남겨놓는다. 완성된 얼굴 대신 흩어진 조각을, 삶의 의미 대신 삶의 흔적을. 그렇게 『자화상』은 한 인간을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그 인간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완성된 얼굴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그 얼굴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순간을 끝까지 지워버리지 않는 일이다. 한 사람의 얼굴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선명한 윤곽을 잃는다. 기억과 습관, 사랑과 무관심,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하루의 감각까지 서로 다른 크기의 점들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그렇게 점묘화처럼 흩어진 1,400여 개의 문장으로 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낸다. 한 문장만 떼어놓으면 사소하고 무심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그 점들이 한 페이지씩 쌓여갈수록 독자는 르베의 얼굴과 동시에 자신의 얼굴까지 그려보게 된다. 익숙한 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난 작품을 찾는 독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평범한 취향과 오래된 습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처럼 쉽게 서사가 되지 못했던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과 자서전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적인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르베의 방식은 낯설고 매혹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한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을, 수많은 문장으로 그려낸 책. 2015년 처음 한국에 소개된 뒤 절판되었던 이 책은 재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국내에 르베의 작품을 처음 소개했던 소설가 정영문이 문장을 새롭게 다듬었다. 오래된 책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반가운 것은, 그때의 문장들이 지금도 여전히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르베는 자신을 설명하려 수많은 점을 찍어놓았고, 독자는 그 점들을 이어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보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나면 그 얼굴은 르베의 것만으로 남지 않는다. 흩어진 점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삶이 하나의 초상으로 떠오르는 순간, 자화상은 비로소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은행잎 4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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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나는 ≪인생 사용법≫이 사는 법을 ≪자/살 사용법≫이 죽는 법을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의 첫 구절이다. 이 구절 뒤에는 앞서 던진 화두를 뒷받침할 이야기가 등장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뒤에 곧바로 등장한 문장들은 이랬다. ‘나는 해외에서 3년 3개월을 보냈다. 나는 내 왼쪽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는 배신을 즐기는 친구가 있다.’ 이야기가 나오리라 생각했던 예상을 뒤엎고 1인칭 화자인 자신의 생각과 경험들에 대한 문장이 책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에두아르 르베를 중심으로 한 문장들이라는 것 빼고는 앞뒤의 연관성이 없는 문장의 나열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질문하게끔 만들어낸다. 적잖이 당황한 첫 만남 이후, 그가 내놓은 파편들을 거치며 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연결성이 없는 문장들이 모여 에두아르 르베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 아닌가.
그는 사진작가이자 조형 예술가로 활동했고 집필 활동을 하며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자/살≫이라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지 열흘이 지나 향년 42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었다. ≪자화상≫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본 책에서도 몇 차례의 자/살 시도와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그의 삶 대부분은 늘 죽음과 함께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집약한 이 책의 문장들은 삶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일까. 그가 맞이한 삶의 끝을 알고 있어서인지 모든 문장이 음울하고 어두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어느 정도 그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래서 어떤 기억이 그가 죽음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 것인지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좋아하던 직사각형 책상에 앉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정리하며 글을 써 내려갔던 그 시간들이 그의 어떤 상처들을 더욱 곪게 만든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재연되는 과거가 그에게 알 수 없는 우울함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기억 속에서 유영하기를 멈추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러 나갔다면 조금은 다른 결말을 가져왔을까. ‘나는 갑자기 죽고 싶지 않고 죽음이 천천히 오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했던 언젠가의 그의 문장처럼. #자화상 #에두아르르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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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르베의《자화상》은 끝없는 문장으로 작가 자신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자서전이 이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싶다. 짧은 한문장으로 모든 상태를 설명해서 변명의 여지도 미화도 없다. 적나라한 '자신'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자면 얼마나 많은 '괄호 열고, 괄호 닫고'가 있을지 상상이 안된다. 어느 페이지를 펴도 내모습 하나쯤은 적혀 있는 책, 그래서 차마 인덱스를 붙일 수 없는 책, 붙이지 못하는 책이다. 혹여나 전혀 내모습이 없더라도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지 생각하다보면 나를 좀 더 잘 알아가게 해주는 책이다.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공감하는 나를 보며, '나 참,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미 고칠 수도 없고 고칠 마음도 없기에...... 📌 출판사의 책소개 글귀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ㅡ ※ 《자화상》 ‘문장 자판기’ “나의 자화상을 만나면 멈추고 간직하세요.” ㅡ 완전 도장 쾅쾅 찍고 싶은!!! 이미 밑줄 긋고 내것인양 하고 싶다. 너무 많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책속의 문장 몇 개만 나열해본다. * 경쟁은 내게 아무런 동기가 되지 않는다. * 나는 뒤척이거나 코를 골거나 무겁게 숨을 쉬거나 담요를 잡아당기는 사람 옆에서는 잠을 잘 수 없다. * 나는 때로 못된 사람보다 상냥한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 더 불편하다. * 내 지능은 일정치 않다. * 고독은 내가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나는 내 인생을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가게 해줄, 즐거움을 위한 예술을 공부할 수도 있었을 때 실수로 내게 아무 소용도 없는 어려운 과목들을 공부했다. * 나는 내가 말한 것보다 사람들이 내게 말한 것을 더 잘 기억한다. *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 나는 시간이 많을 때보다 별로 없을 때 더 많은 일을 한다. * 나는 첫인상을 믿는다. 내 무의식은 의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 이렇게 얼마 안되는 문장들을 옮기면서도 난 부연설명이 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이 문장을 쓰는지. 남들의 시선따위는 관심도 없는 나인데, 나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너무너무 좋은 책이다. 강추강추!!!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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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은행잎 4기) 오직 작가 스스로 ‘나’에 대해 서술하는 문장들의 나열로만 이루어져 있다. 생소함은 잠시,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문장들에 공감하거나 반박하고 있는 독자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반쪽짜리 자화상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로 채워지는 걸까. 『자화상』은 날 자꾸 끄적이게 만들었다. “나는 고백할 게 없다.” ➡️ 고백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가? 💭 “나는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 많다. (•••) 한 번은 스테이플러 심을 훔쳤다.“ ➡️ 그렇지만 고해성사 같기도 이루어지지 않은 다짐 같기도 한데.. 💭 현실과 허구 사이 마구 넘나드는 생각과 고민들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치밀하게 구성된 완벽한 하나의 덩어리. 문장의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연결시켜 보면 모순된 내용들이 많다. 가진 환상을 계속 말하면서도 환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과학적 진리에 대해 마치 본인의 의견인 양 서술하기도 하고, 어느 문장에서는 갑자기 긴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마치 변명을 하듯. 그리고 계속해서 사진과 문학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문장들이 나온다. 이미지와 텍스트, 어느 것과도 결별할 수 없기에 작가는 텍스트로도 자화상을 그려낼 수 있었나 보다. 그의 얼굴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결국에 당도하는 나의 문장은 ’과연 나도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을까?‘였다. 나는 나 자신을 막힘없이 말해낼 수 있는가. 확신을 가지고 떳떳하게 서술해낼 수 있는가. 어떠한 문장도 경중 없이 문단 없이 내세울 수 있는가. 책을 덮고 나니 표지가 다시 보인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부분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자화상』과 함께 온 필사 노트의 표지에는 빼곡하게 적혀 있는 텍스트들. 이제는 내 얼굴의 면면을 적어내려볼 차례.
#도서제공 #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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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은행잎4기#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자화상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그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내 문장을 찾고 있는 책. “나는 ~이다.” 이 빈칸에 어떤 말을 채울 수 있을까. 이 책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한 사람을 보여준다. 중심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작가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한 문장들이 하나씩 놓여 있다.
처음에는 이런 글의 형식이 어색했다. 앞뒤 문장이 연결되지 않고 단순히 나열되어 있어, 원인과 결과 또는 문제와 해결의 글 구조에 익숙한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킨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히려 그 낯선 형식이 이 책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데?’ 싶은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는 그렇지 않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독자인 내가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자주 하는 생각, 습관, 과거의 기억들까지 아주 작은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책 제목의 의미도 알 것 같았다.
공감되는 문장에는 자연스럽게 밑줄을 그었다. 밑줄을 그어둔 문장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필사를 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나만의 문장을 하나씩 이어 써보고 싶다. 아마 그렇게 문장이 쌓이고 나면, 언젠가는 나만의 자화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 책은 늦은 저녁, 밤에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하루의 끝에서 나를 잠시 돌아보는 시간. 책을 덮기 전에 딱 한두 문장만이라도 나를 정의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다. -나는 ~을 좋아한다/싫어한다. -나는 ~을 한다/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 이었다.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일은 거창한 자기계발이나 긴 기록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런 짧은 문장 하나를 써보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나를 다 쓰지 못한 사람이다. 앞으로 천천히, 나에 대한 문장을 하나씩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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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자화상을 처음 읽어봤을땐 이 책 내가 읽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던 책 이였어요 자화상을 아무 정보 없이 읽었습니다. “에두아르 르베”에 대해서 (그가 생각했던 것) 을 알 수 있었는데 이 정도 읽었으면 다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전혀 다른 문장들이 나와서 더 흥미 있게 읽었던 거 같아요 “자화상”을 다 읽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의 책 내용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던 책이었던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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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았다, 너〰️무 좋았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카드에 적힌 한 줄 설명을 빌리자면 이 책은 ‘인과관계와 감정이 배제된 1600여개의 파편화된 문장으로 한 인간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나는~다.‘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요. 책을 펼치고 너무 당황스러운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왜 자서전이 아니고, 자화상인지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를 담아낸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곧, 머릿속에서 그를 그려내는 일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를 이루는 문장을 통해 ‘나는 어떠한가’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저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어요. 🐢나는 6시 30분에 일어난다. 나는 7시 30분까지 출근한다. 나는 10시쯤 밥을 먹는다. 나는 3시쯤 밥을 먹는다. 나는 저녁 7시 30분쯤 퇴근한다. 나는 연차도, 반차도 없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서 운동을 한다. 제가 간략하게 써 본 저의 자화상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특별한 일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정해진 루틴은, 멘탈적으로 저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저 하루하루 규칙대로 살아가기에 저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화상에서의 그의 모습 또한 특별할 것 없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용기를 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고, 내 어린시절은 어땠는지, 내 사소한 습관은 뭐가 있는지를 그의 문장을 통해 공감과, 부정을 오가며 저만의 자화상을 그려내는데 첫 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해서 일종의 해방감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는 말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처럼 ‘나’를 놓치고 있었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서포터즈 은행잎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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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도서제공 『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나를 이루는 사소하고도 무거운 파편들, 여러 조각이 모여 완성되는 하나의 세계에 관하여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자화상』은 1,600여 개의 인과관계가 배제된, 독립적인 문장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각 문장은 조각나 있으며,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파편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실감하게 된다. 1,600여 개의 문장들은 모두 에두아르 르베를 향한다. 지극히 사소한 것부터 대단히 무거운 사실까지, 하나의 그를 이룬다. 그 파편들은 하나의 점이 되어 한 사람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이 동등하게 중요하고, 모든 것이 동등하게 사소하다.” 하나둘씩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여러 사실을 목격한다. ‘나는 읽고 있는 책의 냄새를 맡는다.’라는 사소한 르베의 습관부터 ‘나는 갑자기 죽고 싶지 않고 죽음이 천천히 오는 것을 보고 싶다.’라는 죽음을 마주하는 르베를 만난다. 이런 사소함과 중요함이 동시에 존재하며, 동등하게 나열된다. 아무런 맥락 없이 문장들이 나란히 있는데,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사소한 것을 생각하며 그것에 때로 묶여 있기도 한다. 그렇게 그 사실이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르베는 여러 문장의 나열로 이러한 삶의 본질을 가닿고자 한 것이 아닐까. 차분히 그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문장에 자신의 삶을 빗대어 본다. 동의로 이어지든, 반문으로 이어지든 그의 문장은 우리의 삶에 닿는다. 그의 삶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나의 삶을 비추는 거울 앞으로 선다. 나의 삶은 어떠할까, 나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여러 질문을 반복하며 동시에 나 자신이라는 자화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납작하게 존재하던 문장은 점점 입체적인 삶으로 변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문장으로 나만의 자화상을 완성할 수 있을까. 『자화상』을 통해 나의 삶이라는 문장을 한 번 써 내려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완성될 하나의 자화상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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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 나또한 나 자신을 이렇게 잘 알 수 있을까? 독자의 삶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 나는~ 으로 시작하는 짧고 긴 문장들은 단순한 화자 자신의 외형을 포함해 은밀한 취향과 굳은 사상까지 뒷받침 하기도 한다. 단순한 현실을 나타내는 딱딱한 내용들 그리고 예상과 추측을 상상하는 무르기도 한 내용들을 읽을때면 독자또한 상상하게 된다 내 과거는 어땠는지 또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비록 작가는 현재 생을 달리했지만 이렇게 자신을 나타내는 수많은 문장들이 여러 책을 통해 온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 눈과 마음속에 아직 살아있는게 아닐까. 읽는내내 나도 이렇게 자화상을 써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번지르르하고 멋진 문장이 아니라도 괜찮으니 나를 나타내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단 욕구가 샘솟는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문장들의 나열들이나 어렵지 않으니 흥미롭게 즐겨보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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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수많은 문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가는, 사소한 기억과 취향, 습관, 생각을 짧은 문장으로 끊임없이 나열하는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이 책에는 한 사람의 삶에서 으레 만들어지는 인과관계가 없다.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지, 그것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여주는 서사도 없다. 대신 수많은 파편적인 문장들이 별다른 위계 없이 나란히 놓인다. 심각한 고백 뒤에 별것 아닌 취향이 아무렇지 않게 따라붙기도 한다. 제목이 자서전이 아니라 자화상인 이유… 나도 이 책을 하나의 이미지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완전한 설명이라기보다 불완전한 재현에 가까운 이미지. 어쩌면 그것이 르베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나를 이루는 것은 중요한 사건들의 총합이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취향과 버릇, 기억조차 희미한 경험까지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수많은 사실들이 때로는 모순된 채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한다. 르베의 다른 작품이 자주 언급되는 걸 보고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작가였는데, 은행잎4기의 첫 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_ 🔖 식탁에서 얼음 또는 기포는 물을 덜 지루하게 하지만 나는 물의 지루함이 좋다. | p. 61 🔖 나는 행복할 때면 죽는 것이 두렵고, 불행할 때면 죽지 않는 것이 두렵다. | p. 62 🔖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가 거짓 없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번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 p. 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