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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나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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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수필도, 그렇다고 자서전도 아닌 책. 문장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화상』. 작가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때로는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거나 오히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끝끝내 책은 제목 그대로 하나의 자화상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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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수필도, 그렇다고 자서전도 아닌 책. 문장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화상』. 작가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때로는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거나 오히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끝끝내 책은 제목 그대로 하나의 자화상을 완성해 간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혼자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문장을 읽는 독자 역시 자신의 기억과 취향, 생각을 하나씩 떠올리며 자신만의 자화상을 써 내려간다. 묘하면서도 깊이 있는 책이다.


간결하고 독특한 책을 찾는 것이 내 취미 중 하나다. 아주 얇은 철학서도 있고, 가끔은 심리학 책도 읽는다. 그리고 『자화상』처럼 어떤 장르로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책을 만나기도 한다.


『자화상』은 초콜릿을 부러뜨릴 때 나는 듯한 키보드 소리를 내며 직접 글을 쓰게 만드는 책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나는 무엇을 싫어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아니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내가 나라고 믿는 모습은 과연 진짜 나의 모습일까. 그렇게 책은 끝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읽다가 소름이 돋기도 했다.

p.58 나는 데자뷔의 착각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는 게 놀랍다.


맞다. 우리는 종종 데자뷔를 경험한다. 분명 처음 겪는 일인데도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때의 묘한 감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막상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대화의 소재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분명 느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 누군가가 그것을 문장으로 짚어 주었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있던 감각이 선명해진다. 바로 이런 공감이야말로 책을 읽는 이유이자,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p.120 나는 종종 뭔가를 잊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지만 그게 뭘까?

인간은 잊는다. 무엇을 잊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어떤 장면인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하나씩 잊기도 하고,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잊기도 한다. 분명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잊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정작 잊어버린 것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가?



p.10 나는 양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멍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엉뚱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네일아트를 받은 여성이 손톱 하나가 살짝 깨졌다는 이유로 온종일 신경을 쓰고 짜증을 낼 수 있다. 행군을 마친 군인은 발바닥에 잡힌 물집 때문에 다음 날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평소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손톱과 발바닥이 작은 손상 하나로 하루의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양말도 마찬가지다. 양말의 색깔이나 무늬, 촉감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정작 구멍이 나 있다면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부분이 문제가 생기는 순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잃거나 망가뜨리고 나서야 깨닫는지도 모른다.



『자화상』은 이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별것 아닌 문장 같지만 그 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 숨어 있다. 작가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하지만, 그 문장들은 어느 순간 독자의 삶으로 건너온다. 작가의 자화상을 읽다가 어느새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자화상 #에두아르르베 #자아성찰

YES마니아 : 로얄 s*******z 2026.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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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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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르베 #은행나무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말 그대로 작가의 자화상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거울을 두고 마주하는 그 자신을, 자신의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어떤 사건도 없고 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건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문장은 무덤하고 이 책의 모든 문장은 다음 문장에 의해 넘어가게 되고 그렇게 모든 문장이 그냥 넘어간다. 마치 삶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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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르베 #은행나무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말 그대로 작가의 자화상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거울을 두고 마주하는 그 자신을, 자신의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어떤 사건도 없고 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건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문장은 무덤하고 이 책의 모든 문장은 다음 문장에 의해 넘어가게 되고 그렇게 모든 문장이 그냥 넘어간다. 마치 삶처럼. 그가 시간을 넘기며 살았듯이 우리는 그의 문장을 넘기며 그를 본다.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또 다른 책인 『자살』을 읽었다. 그 책은 계속해서 '너'라고 칭하며 말하는데, 그것이 젊은 시절 자살한 친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다만 『자화상』을 읽다 보면 『자살』 속 어떤 '너'는 작가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힌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마치 추리소설처럼 『자화상』 속 등장하는 힌트를 통해 『자살』 속 '너'의 정체를 유추하고 있게 된다. 


『자화상』은 작가의 자기소개서이자 자살을 한 현시점에서는 유서로 읽히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도록 이 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p.42)


자화상은 흔히 그림을 떠올리게 되는데, 글로써 마주하는 자화상은 굉장히 흥미롭다.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고 그야말로 자화상이 맞다. 

“나는 파편을 쓴다.”(p.117)

이 책 속에서 나온 말이다. 정말로 그는 파편을 썼고, 이 책은 파편의 모음이다. 

그렇기에 다음 문장에 어떤 파편이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다. 삶과 기억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내 묘비에 “곧 봐요”라는 비문이 새겨졌으면 한다.”(p.90~91)

그의 묘비에 “곧 봐요”라는 비문이 새겨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자살』을 쓰고 죽은 것처럼 정말로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자살』이 일종의 유서였다면 그 비문은 그의 예언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i*******6 2026.09.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