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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던테너힐 #장편소설 #캐나다베스트셀러 #bbc드라마원작소설 #소리를듣는사람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를 듣게 된 고등학교 교사 클레어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냉장고나 환풍기 같은 기계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원을 끄고 집 안을 뒤져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두통과 코피까지 겪지만 남편과 딸, 의사와 동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클레어가 겪는 고통은 결국 소리 자체보다도 자신의 감각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데서 더 커집니다.
캐나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조던 태너힐 작가님은 실제로 캐나다 윈저 지역에서 일부 주민들만 들었다고 알려진 정체불명의 소음 ‘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희곡으로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두 차례 받은 작가답게 장면의 긴장감과 대화의 리듬이 생생합니다. 클레어가 소리를 찾아 집 안을 헤매거나, 자신과 같은 소리를 듣는 학생 카일을 만나는 장면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감각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클레어는 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엔진, 비행기, 진동 같은 여러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히 말해도 상대가 경험하지 못한 감각은 쉽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비슷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말이나 행동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사람을 조금씩 마모시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면 “그 정도가 그렇게 힘든 일이냐”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건 하나가 아니라 누적된 분위기와 반복되는 긴장인데, 그것을 말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제가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클레어가 자신과 같은 소리를 듣는 카일을 만났을 때 느낀 안도감이 이해되었습니다. 문제를 당장 해결한 것도 아니고 소리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아니지만, “나도 듣는다”는 한마디만으로 클레어는 투명인간에서 다시 존재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에서 따뜻한 연대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온라인 게시판과 지역 모임을 통해 서로를 찾아내고, 각자 나름의 설명을 만들어갑니다. 데이먼이 지역 공공장소에 포스터를 붙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장면은, 고립된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고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음모론을 단순히 어리석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조롱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현실에서 배제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의미와 소속감을 주는 이야기에 강하게 끌릴 수 있습니다. 공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확신과 결합하면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서늘했습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쾌하게 판정해주는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실을 어떻게 선택하고, 누구의 경험을 믿으며, 같은 설명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세계를 만들어가는지를 묻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정체불명의 소리가 아닙니다. 타인의 감각을 너무 쉽게 부정하는 사회와,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해 잘못된 확신에까지 매달리게 되는 인간의 외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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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조던 테너힐 (어느 날부터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마 독자 여러분은 길게 늘어선 뉴스 카메라 앞에서 발가벗고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이 담긴 인터넷 밈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적나라한 방종의 순간이 GIF로 영원히 박제되어 전 세계의 댓글이나 문자 메시지에 첨부되어 있는 것을. (9쪽)
이 책은 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이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 야간 수업을 하고 있으며 가족을 몹시 사랑하는 평범한 주부가 자신이 겪은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관해 책을 쓰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나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충실하게 사건을 되살리고자 했다. 여기 적힌 모든 말은 내가 직접 썼다. 대필 작가를 두지 않았다. 내가 그간 쌓아온 사소하거나 일시적인 악명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며, 나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쓴 것도 아니다. (11쪽)
주인공은 늘 상황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 책을 택했다며, 이 책을 쓴 이유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방편이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세쿼이아 크레센트 사건을 마치 자신들이 아는 양 떠벌리거나, 그날의 비극을 심야 토크쇼의 가벼운 웃음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작고 무해한 무언가가, 자신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 웅웅 거리는 낮은 소리는 어느 날 남편 폴과 나란히 누워, 폴은 태블릿으로 <뉴욕 타임스>를 읽고 자신은 『십이야』에 대한 학생들의 에세이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 고장 난 식기 건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장 난 지 꽤 돼서, 지금은 그저 씻은 그릇의 물 빠짐 용도로 사용하는 중이라 전기선도 진작에 끊어버렸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전기선을 그대로 꽂아둔 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아들에게 봐 달라고 했더니,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야말로 툭 쳤더니 소리가 멈췄다.
어쨌든 이렇게 소리라는 건 내게도 들리고 다른 이에게도 들리는 건데, 주인공 클레어에게 들리는 소리가 남편 폴이나 딸인 애슐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웅웅거리는 소리로 인해 클레어는 잠을 잘 수도 없고, 직장인 학교생활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 카일도 자기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딸 애슐리로 인해, 카일의 어머니가 알게 되면서, 스승과 제자는 부적절한 관계로 낙인찍혀 클레어는 학교에서 쫓겨나 직장을 잃게 된다.
넌 범죄자가 아니야 넌 변태가 아니야 넌 사악하지 않아 넌 이기적이지 않아 넌 미치지 않았어 넌 쌍년이 아니야 넌 나쁜 아내가 아니야 넌 네 어머니가 아니야 넌 거울에 비치는 저 지친 여자가 아니야 넌 인간 쓰레기가 아니야 넌 우주의 법칙에 따라 처벌받고 있는 게 아니야 -중략- 넌 카일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을 거야 넌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열린다는 그 모임에 가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112~113쪽)
망설임 끝에 클레어와 카일은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열린다는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연대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 모두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얼마나 왜곡되고 심지어 범죄 취급까지 당연시되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소리의 공명을 따라가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 그룹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수의 목소리는 그게 오롯이 진실이더라도, 늘 소외되어 수많은 세월을 거쳐야 아주 조금 그 작은 목소리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거기에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소수를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것은 틀린 게 되는 사회, 21세기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조너던 테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클레어의 생각을 빌어, 우리들의 보편적 편견과 기득권 세력들의 음모론. 무엇보다도 진실을 향한 클레어의 몸부림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치밀하게 엮었다. 오페라로 제작되어 오슬로,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에서 상연되었고,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영상으로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이 진실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워드와 조가 말하는 ‘황홀경의 상호 연결’을 향해. 하지만 어쩐지 이러한 쾌락과 탄트라적인 초월성의 측면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또는 적어도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소리’가 가능하게 하죠. 하워드가 대답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채웁니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249쪽)
혼자 사는 여성이 아니라면, 우리 여성들이 바로 이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두려워하며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완전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불을 끌 때 뒤에 있는 존재를 느끼는 횟수, 얼핏 곁눈질로 무언가 보여서 휙 돌아보면 빈방인 경우, 침대에 누워 계단의 발소리,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 밤중에 너무 또렷하게 울려 화들짝 깨어나게 만드는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보내는 시간들. 물론 그래서 나가보면 문 앞에는 아무도 없다. 차고 문은 언제나 닫혀 있다. 집 안과 계단에는 아무도 없고 옆방에 숨어 있는 사람도 없다. (301쪽)
조가 우리를 한 명씩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모두 여기 모였어요. 모두 앉았습니다. 우리는 매우 과열된 상태입니다만 그 강렬함을 주파수와 연결할 수 있어요. 아시겠죠? 모두가 집중해 주세요. 몸속에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모으세요. 다른 소음은 사라지게 하세요. ‘소리’를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세요. 여러분을 관통하도록 하세요. 여러분을 채우도록 하세요. (352쪽)
나는 구글에 검색했다. 슬픔으로 죽을 수도 있는가? 죽기를 바라면 죽을 수 있는가? 악몽으로 죽을 수 있는가? 우는 일은 칼로리를 소모하는가? 집에서 혼자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362쪽)
엄마만 빼고 빌어먹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고 있어. 심지어 엄마의 옛 패거리도. (372쪽)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몸의 반향으로부터, 그대가 자신을 탐구할 때, 사랑의 꿈이 다가왔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 보편적인 죽음의 축제로부터, 비에 씻긴 저녁 하늘을 맹렬한 불꽃으로 불붙이는 이 극심한 열병으로부터, 언젠가 사랑이 솟아오를 날이 올까? (379쪽)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인 작가의 글이라 남다르다. 허구의 힘을 빌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자연스레 드러내며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여름 밤을, 조던 테너힐이 잊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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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두 번째 책이지만 처음 번역된 책이다. BBC 드라마 원작소설이자 실제 발생했던 소음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책소개를 읽기 전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 지역에서 실제 발생했던 것을 몰랐다. 출판사와 문학상과 낯익은 작가들의 추천평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음모론, 컬트, 믿음, 광기 같은 단어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책을 받고 읽기 시작하면서 예상과 달라 초반에 고생했다. 내가 예상한 가독성도, 이야기의 시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고생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이 현실로 인한 갈등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이 갈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괜히 ‘나라면?’이란 상상을 하게 했다. 클레어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고 남편 폴과 딸 애슐리와 잘 살고 있었다. 이 삶이 깨어진 것은 어느 날 그녀에게만 들리기 시작한 어떤 소리 때문이다. 웅웅거리고 진동처럼 느껴지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들린다. 새벽에 집안에서 소리의 원인을 찾다가 집밖으로 나간다. 어디에서 울리는 소리일까? 다른 사람에게도 들릴까? 이른 새벽 전기가 끝어졌고 아내를 찾으러 나온 남편은 듣지 못한다. 이 소리가 24시간 그녀의 귀에 울리고, 코피까지 터진다. 두통이 극심하지만 소리는 크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는다. 다만 잠을 못 자는 불면증과 그녀를 지속적으로 마모시킨다. 의사들도 이 소리의 원인을 모르고, 단순한 스트레스 등으로 치부할 뿐이다. 혼자만 이런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을 때 나타난 학생 카일. 그도 그녀처럼 이 소리를 듣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발견한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여선생과 남학생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이 소리의 원인을 찾으려고 마을 근처를 돌아다닌다.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것을 주변에서 본다면 오해하기 충분하다. 그러다 늦은 밤 카일과 전화하는 것을 딸 얘슐리가 듣는다. 카일이 전화한 이유는 자신들 같은 사람들의 모임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딸이 카일에게 남긴 메시지를 카일의 엄마가 보면서 문제가 커진다. 클레어와 카일만 듣는다고 생각한 소리를 듣는 다른 사람들. 이 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한 대학 교수 출신 하워드. 여러 명이 모였을 때 하워드가 말한 인간의 가청 범위 밖의 소리 이야기. 나중에 이들이 모여 공명하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왠지 동양적이다. 소리가 공명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강렬한 감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런 그들을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클레어가 듣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녀의 가족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망상을 믿고 있다고 말할 때 그녀가 내놓은 반론은 굉장히 반기독교적이다. 이것을 소리를 듣는 사람 중 한 명의 음모론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해진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서로의 입장이 나누어진다. 분명한 것은 그녀와 몇 사람이 소리를 듣고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인 것도 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고 범위에서 제단하고 판단한다.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점점 심해지지만 그 바닥에는 가족애가 깔려 있다. 물론 이 가족애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읽으면서 수없이 나의 입장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클레어도 자신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남편이나 딸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을 짚은 부분과 그녀가 실제 경험한 것들이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딸 애슐리가 엄마에게 욕하면서 말하는 대목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조던테너힐 #장편소설 #캐나다베스트셀러 #bbc드라마원작소설 #소리를듣는사람들 #문학동네#리뷰어스클럽 #김산 #리뷰어스클럽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