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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특하게 희곡도 아니면서 그런 비슷한 구조로 편집되어 있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라는 문장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고 그 사람들이 한 말이 뒤에 따라붙는 방식이다. 물론 화자가 바뀌면 앞에 나오는 주어가 바뀐다. 그런데 중간중간 나는 생각한다라는 문장도 있어서 전부가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생각한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진짜 사람이 속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진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간혹 웃음이 나기도 한달까. 가족이긴 해도 다 말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는 법이다. 덴마크로 입양된 나는 간간히 한국에 와서 진짜 가족들을 만난다. 엄마와 언니들 때로는 아빠와 조카들까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통역사를 대동해서 가족들을 만난다.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화로 미뤄 보아 통역사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 한국 가정의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덴마크어와 영어는 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단어나 인사말 정도만 아는 듯 하다. 눈치로 때려 맞추는 것도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어를 조금 배우는 것 같기는 하나 전면적에 나서서 사용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마도 어색할까봐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아니 가족들이 알아듣지 못할까봐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이미 몇번 만난 상태에서 시작된 이 책의 이야기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어느 순간 그렇게 끝났다. 통역사와의 관계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디 영원한 것이 있으랴.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동일하다. 본문 속에서 등장하는 책 제목도 작가가 쓴 책과 동일하고 입양갔다 진짜 가족을 만나는 것도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담았다. 만나는 작가와 번역하는 작품의 제목 또한 현실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작품 분류에도 엄연히 소설로 되어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 설정은 성소수자로 설정이 되어 있는 나라는 주인공과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구분해 주는 기준일까. 가족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무음으로만 이해한다. 책에는 그래서 공간이 많다. 단순하게 마침표만 찍혀 있는 문장들. 그 문장들을 나는 통역사가 이야기가 해주기까지 기다린다. 남의 말을 전달한다는 것.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면적인 작업이라 생각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의 말을 말한 사람의 생각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2023년에 다른 통역사를 데리고 서울에 와서 가족들을 만났던 나. 조카들이 성장을 해서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한국어를 좀 배워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고도 그대로 다 말할 수 있었을까. 통역사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긴 했을까. 왠지 모르게 그 다음의 이야기가 계속 상상이 되어진다. 작가의 행보를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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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랑그바드는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2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이자 번역가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초국가적 입양 시스템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2006년 시집 <덴마크인 홀게르 씨를 찾아라>로 덴마크 문학상 보딜-외르겐 몽크 크리스텐센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그 여자는 화가 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입양 커뮤니티 안팎에서 활발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어왔다. 또한 김혜순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을 덴마크어로 공공 번역하는 등 문학적 가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신간 <나의 통역사>는 2024년 덴마크 몬타나 문학상과 프리즈마 문학상을 휩쓸며 북유럽 최고의 문학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은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저자와 그의 연인이자 한국계 덴마크인 통역사가 함께 한국의 친가족을 만나며 겪는 언어적 단절과 정서적 교감을 희곡 형식으로 담아낸 독창적인 책이다. 입양인이 겪는 근원적인 소외감과 핏줄로 얽힌 가족 간의 복잡한 미로를 통역이라는 렌즈를 통해 그려낸다. 희곡의 무대 위에 올려진 기호와 디아스포라의 언어 책의 원제인 'TOLK'는 덴마크어로 통역사를 뜻하지만, 그 활자의 생김새는 묘하게도 한글의 자음과 모음(ㅜ, ㅇ, ㄴ, ㅈ)을 연상시킨다. 덴마크 독자들에게는 명료한 의미의 단어지만, 한글을 아는 이들의 눈에는 파편화되어 해독할 수 없는 기호처럼 다가온다. 표지에서부터 시작된 시각적 은유는 모국어를 잃어버린 작가의 처지를 고스란히 체현한다. 반면 한국어판 제목인 <나의 통역사>는 이 건조한 원제에 '나의'라는 소유격을 더했다. 이는 통역사가 단순한 언어 변환기를 넘어,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생명줄이자 가장 내밀한 연인이라는 절대적인 의존성을 부각한다. 원제가 객관적인 언어의 장벽을 보여준다면, 한국어 제목은 그 장벽을 넘고자 하는 주관적인 애착을 드러내는 셈이다. 일반적인 에세이나 소설의 서술 방식을 탈피하여 작가는 자신과 통역사, 그리고 친가족들의 대화를 대본처럼 나열한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큰언니가 말한다"로 이어지는 건조한 문장들은 독자를 관찰자, 옵저버?의 위치로 끌어당긴다. 언어를 잃어버린 화자의 말이 한국어로 적혀 있다는 모순은 역설적으로 그가 감내해야 했던 문화적, 역사적 상실의 크기를 시각화한다. 서울의 삼계탕집, 통역을 경유하는 감정의 온도 책에 담긴 시간과 공간의 궤적은 이들의 여정이 지닌 팍팍함을 보여준다. 2018년 서울의 어느 삼계탕집에서 시작된 만남은 피자헛, 엔제리너스, 스타벅스, 호텔방 등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공간들을 부유한다. 혈연이라는 강렬한 끌림으로 마주 앉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통역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 식당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낮은 상 앞에 자리를 잡은 낯선 풍경 속에서 친어머니와 큰언니를 마주한 작가의 내면은 복잡하게 요동친다. 삼계탕을 먹었냐는 언니의 물음에 통역사를 거쳐 대답이 오가고, 출장 중이라 오지 못했다는 아버지의 부재를 두고 어머니가 거짓말하시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대목은 피붙이라는 환상을 걷어낸 리얼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서술은 감상주의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언어의 지연을 통해 가족 간에 흐르는 미세한 긴장과 서툰 애정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발화되지 못한 비밀과 고백이 된 텍스트 대화의 이면에는 번역을 거치지 못한 숱한 말과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아 있다. 작가는 끝없는 망설임 속에서 차마 한국의 혈육들에게 전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겉돈다. 연인이자 소통의 매개인 통역사와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둘째 언니와의 묘한 기류 속에서 통역사는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싫다면 먼저 레즈비언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보는 것은 어떠냐며 고백을 제안한다. 허나 화자는 섣불리 진실을 꺼내지 못한 채 언니들이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문장들을 속으로 삼켜버린다. 비록 가족들이 넌지시 이들의 특별한 유대를 눈치챘을지언정, 마주 앉은 식탁 위에서 성 정체성은 끝내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나의 통역사>가 출간됨으로써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내밀한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역설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떠나야 했던 모국, 디아스포라의 세계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향과 연인의 존재가 낱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문장 사이사이에 짙게 배어 있다. 발화되지 못한 채 삼켜진 비밀들은 활자화되는 순간 폭발력을 지닌 강렬한 고백으로 변모한다. 유가족 명단의 공백과 혈연의 환상 포착되는 서사의 뼈아픈 지점은 가족이라는 제도의 허상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한 달이나 지나서야 접하고, 조카의 휴대전화에 담긴 장례식 녹화 영상을 통해서만 그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도한다. 무엇보다 유가족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혈연이라는 견고한 믿음을 부순다. 조카가 이모인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묻는 장면은 서글픈 단절을 방증한다. 친가족조차 그녀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해 그녀를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오해하는 상황은 이들이 물리적으로는 마주 앉아 있으나 정서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독한 소외감 속에서 텍스트는 단지 입양인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고유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짚어낸다. 나아가 가족이라는 당위적인 굴레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을 조명하며, 소통이 불가능한 핏줄을 향해 그토록 끈질기게 손을 뻗는 행위의 의미를 독자에게 되묻는다. 침묵과 공백으로 쓰인 입양의 기록 작가는 애초에 덴마크어, 영어, 한국어라는 세 가지 언어로 이 글을 쓰려 했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두 개의 가족,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역사를 안고 있음에도 자신은 이중언어 사용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이 독보적인 문학적 기법을 탄생시켰다. 텍스트 곳곳에 자리 잡은 의도적인 여백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쉼표가 아니라, 입양이라는 사건이 개인의 삶에 남긴 커다란 공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국계 덴마크인 여자친구는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신뢰하는 입의 역할을 하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화자에게는 모국어의 상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때면 허공에 수영하는 시늉을 하거나, 몸짓으로 전복을 묘사하는 등 육체의 언어에 의존하며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푸른숲 신간 <나의 통역사>는 소설가 김혜진의 추천사처럼 잃어버린 언어의 자리를 디아스포라의 영토 안에서 채워나가는 서글프고 완강한 투쟁의 기록이다.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푸른숲 #북유럽문학 #덴마크소설 #입양아이야기 #디아스포라문학 #에세이추천 #소설추천 #해외문학 #독서기록 #책리뷰 #신간도서 #베스트셀러 #문학평론 #서평단 #가족에세이 #정체성고민 #퀴어문학 #언어장벽 #소수자이야기 #현대문학 #희곡형식 #책스타그램 #독서모임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책추천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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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멀리 덴마크로 떠나야 했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다시 한국의 가족들을 만나는 이야기 한국말을 못 하는 주인공과 덴마크어를 모르는 가족들 사이에서 통역사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지만 사실 진짜 마음은 말로 다 전해지지 않을 때가 많았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소통하며 살고 있는건 큰 따뜻함이자 행복이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빛과 침묵 속에 담긴 진심이 더 클 때도 있다 주인공이 느꼈길🙏바래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애틋하면서도 용기 있는 주인공의 모습 말은 번역할 수 있어도 감정은 쉽게 옮겨지지 않고 같은 문장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결국 우리를 이어주는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 나이가 들수록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더 귀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prunsoo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푸른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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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TOLK는 통역사라는 의미도 있지만 해석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책 <나의 통역사 : TOLK>는 제목 그대로 덴마크에 어릴 적에 입양이 되어 한국어를 모르는 주인공이 연인이기도 한 통역인의 도움을 받아서 생물학적 가족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냥 평범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형식인 이 책은 주인공과 가족 그리고 통역사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그래서 좀 더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나 독립 영화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느낌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은 역시 “간접소통의 답답함” 이었다. 우리가 남들과 소통을 할 때는 꼭 언어를 통해서만 아니라 소통 당시 오고가는 눈빛이나 감정 그리고 손짓이나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으로 상대의 솔직한 내면을 읽어내곤 하는데 통역인이 그런 미묘한 뉘앙스까진 담아내지 못하는 걸 보고 상당히 답답했다. 주인공은 오죽했으랴? 이외에도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키워드들이 떠올랐다. “극복할 수 없는 문화적 장벽” 이나 “떨쳐낼 수 없는 감정 – 죄책감, 원망” 혹은 “소외감” 같은 것들. 인간이 성장할 때는 유전적 요소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 같은 것들도 그 사람을 구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덴마크에서 성장한 주인공이 “한국인인 가족들의 감성이나 느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친어머니가 굳이 주인공에게 김치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것이나 여러 가지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고 싶어 하는 것들이 그녀에게 애정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음식은 곧 사랑이다. 주인공이 외부의 눈으로 한국의 문화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는 약간 이상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한국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문화라 그런지 좀 개방성이나 솔직함의 면에서 주인공이 아쉬워하는 점을 많이 느꼈다. 타인의 시선이라든가 체면이 가족 사이의 관계보다 더 중요시되는 부분이 언급된다. 예를 들어서 언니들이 남편에게 아직 입양되었던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거나 주인공이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여성 통역인과 사귀고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주인공이 가족과의 거리감을 느끼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나 싶어서 좀 안타까웠다. 그런데 역시 이 책의 제목처럼 “통역사”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덴마크 문화 둘 다에 익숙해 보이는 통역사가 주인공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주 열띤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잘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주인공이 느끼는 소외감과 섭섭함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법이니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는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 한편에는 ‘왜 내가 버려져야만 했는가?’라는 원망과 미움이 고스란히 웅크리고 있었다. 한국의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 뒤로 상처받은 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평생 그녀가 안고 가면서 작품 등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딱 떠오른 문구는 바로 영화 제목이기도 한 “Lost in translation”이었다. 즉,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사라지거나 왜곡된다는 것. 아무리 뛰어난 통역사가 도와준다 해도 언어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번역할 순 없다. 한마디로 살아온 문화나 가치관 그리고 감정 문제 등으로 번역은 종종 길을 잃는 것으로 보였다. 주인공과 통역사가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가족과의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봤을 땐 지금쯤은 주인공이 좀 더 가족들과의 감정적 거리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모든 가족에게는 비밀이 있다고.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면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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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이라는 주제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도서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두 달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인물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린 시절 낯선 나라로 보내진 한 여성이 성인이 되어 한국의 원가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은 오랜 시간이 지나 혈육과 다시 만나지만 곧바로 가족이 되지는 못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어서예요. 그래서 통역사의 도움 없이는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통역사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주인공의 연인이기도 합니다. 같은 여성을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원가족에게 밝힐 수 있을지 없을지, 그 고민이 이야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어요.
작품의 형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내가 말한다', '통역사가 말한다', '어머니가 말한다'처럼 인물의 이름 뒤에 대사가 붙는 극본 같은 구성으로 쓰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지문 다음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속마음이 이어지기도 해요. 특히 한국어 대사 상당 부분이 빈칸, 즉 '공백'으로 처리되어 있는 점이 이 소설만이 가지는 특징인데요. 작가는 애초에 덴마크어와 한국어, 영어를 모두 담아내려 했으나 한국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달 시도 끝에 공백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공백은 단순히 못 알아듣는 말을 가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입양인이 평생 접근하지 못했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상실감 자체를 표현하는 언어로 기능합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도 살펴보았어요.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2014년 덴마크에서 최초로 국가 간 입양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으로, 그 책의 정서가 분노에 가까웠다면 이번 도서 《나의 통역사》는 슬픔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삼계탕집에서 피자헛으로, 큰언니 집에서 부모님 댁으로 장소가 옮겨가는 사이 인물들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되었고요.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고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져서 여운이 오래 남았던 작품이기도 해요.
이 작품은 덴마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몬타나상과 북유럽 최고의 퀴어 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프리즈마 문학상을 함께 받았다고 해요. 심사위원단으로부터는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새롭게 갱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던 작품인데, 책의 구성 자체가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문자가 주는 차분함도 함께 담겨 있어서 작가님의 문장에 조금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지 말을 못 알아듣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닮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백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표현한 도서라 오히려 더 책 속의 인물들의 감정선에 매료되어 더욱더 집중하며 고민해 볼 수 있는 도서라 생각합니다. #나의통역사 #푸른숲 #리랑그바드 #북유럽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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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북유럽소설 《나의 통역사》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슬프고 아픈 역사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지금의 K-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전에 불명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아 수출국이라고 불리며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해외 입양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해외 입양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해외 입양 제도가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 이유였습니다. 1980년대까지 산업화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복지 체계로 해결되지 못한 아이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정부와 민간 입양기관이 해외 입양을 적극적으로 운영했던 제도적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양아들이 성장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많은 입양아들이 자신의 뿌리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가족을 찾기도 하지만 찾지 못하는 입양아들도 많습니다. 이 소설 《나의 통역사》는 북유럽의 덴마크로 입양된 입양아가 한국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찾고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덴마크로 입양되어 덴마크어로 말하고 영어도 조금 말할 수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한국 가족을 찾고 한국에서 몇 년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들과 대화가 되지 않아 통역사가 꼭 있어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덴마크어를 사용하는 아이와 가족 사이엔 가까워질 수 없는 장벽 하나가 바로 언어입니다. 그 벽을 넘는 것이 통역사입니다. 통역사가 없다면 대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가족에게 통역사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의 한국 가족은 부모님과 언니 세 명입니다. 언니들은 부모님과 근처에 살면서 결혼까지 했으며 조카도 있습니다. 셋째 언니는 조카와 함께 캐나다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끔 부모님과 언니들과 식당에서 만나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안부와 근황 이야기를 나누지만 미혼인 막내를 걱정하는 가족입니다. 《나의 통역사》는 소설이지만 르포의 형식처럼 보이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의 제목과 내용에 맞게 구성된 것이라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주인공 나와 한국 가족 사이엔 언제나 나의 통역사가 있습니다. 통역사가 말을 전달해 주는 과정을 글로 보여줍니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어머니가 말한다 등 연극 대본에서 볼 수 있는 배역의 대사처럼 보입니다. 이런 구성은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을 글로 너무나 잘 표현했고 독자들에게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전달라혀는 오력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내용도 없이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지만 그것이 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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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책을 뜯으면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기름종이로 감싼 표지는 색도 무늬도 거의 없었고, 펼쳐 보니 페이지마다 여백이 유난히 많았거든요. 활자 빼곡한 책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좀 허전할 정도였어요. 그 여백의 정체는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나의 통역사>는 생후 두 달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여성이, 성인이 되어 서울의 친생가족을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가 한국어를 못 하고, 가족은 덴마크어를 못 한다는 겁니다. 둘 사이를 잇는 사람이 통역사인데, 이 통역사가 실은 주인공의 동성 연인이에요.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묘한 긴장이 생깁니다.
소설은 대사와 짧은 지문만으로 흘러갑니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어머니가 말한다" 같은 표시 뒤에 대화가 이어지는 식이죠. 흥미로운 건 활자의 색입니다. 가족이 한국어로 건넨 원래의 말은 흐린 회색으로, 통역을 거쳐 주인공에게 도착한 말은 선명한 검정으로 인쇄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독자인 저는 읽을 수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알아듣지 못한 채 흘려보낸 말들이 페이지 위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면서도 통역 없이는 한마디도 주고받지 못하는 거리감이, 설명이 아니라 인쇄된 색으로 다가오더군요. 부모님 댁 거실 장면에서 오래 서성였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위해 일부러 미역국을 끓여두셨고, 낮은 상에는 김치와 두부와 생선이 놓여 있어요. 어머니가 "배고프니?" 하고 묻자 주인공은 그 말만큼은 통역 없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 맛있어요"라는 짧은 한국어에 어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요. 말이 닿지 못하는 자리를 음식과 표정이 대신 메우는 장면이라, 저도 상 앞에 슬며시 끼어 앉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긋남이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딸이 된장찌개와 콩나물국밥을 좋아한다고, 어릴 때 먹던 음식이라 그렇다고 하시는데, 정작 주인공은 어렸을 때 한국 음식이 아니라 빵과 감자 같은 덴마크 음식을 먹고 자랐다고 답해요. 어머니가 기억하는 딸과 실제로 자라온 딸이 이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이걸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어요. 어머니는 딸을 붙잡아둘 기억이 그것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같은 챕터에서 아버지가 어릴 적 손가락으로 사물을 짚어가며 이름을 가르쳐줬다고 회상하는 대목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은 '옥새풀'이라는 풀 이름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하는데, 통역사는 그런 풀은 처음 들어본다며 잘못 들은 것 같다고 해요. 그래도 주인공은 아버지가 국을 후루룩 들이켜는 동안 혼자 "옥새풀"이라고 되뇝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단어가 아버지와 이어진 몇 안 되는 끈이라서 놓지 못하는 거죠.
이렇게 잘못 들은 채 간직해온 것이 뒤에 가서 훨씬 무거운 얼굴로 다시 나타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주인공은 평생 아버지를 북한 출신이라 믿어왔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돼요. 고향은 춘천이었고, "북쪽에 있다"는 말을 예전 통역자가 "북한"으로 옮긴 데서 비롯된 오해였습니다. 나는 말한다: 아버지를 알아온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당연히 아버지가 북한 출신이라고 믿어왔어. 나한테 그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아주 큰 부분이었거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근거가 통역의 틈에서 어긋나 있었고, 이제는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 되돌릴 수 없는 뒤늦음이 이 대목을 오래 곱씹게 만들었습니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통역사가 단순한 언어 전달자가 아니라는 게 분명해집니다. 피자헛에서 주인공이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넌지시 떠보려 하자, 연인이기도 한 통역사는 "그 말은 내가 통역하지 않을게"라고 멈춰 섭니다. 언니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서요. 소통의 다리였던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말 앞에서는 벽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테이블 위에서 주인공이 연인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개자 상대가 재빨리 손을 빼는 장면은, 긴 설명 하나 없이도 두 사람이 놓인 처지를 다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국, 커밍아웃은 두 사람이 헤어진 뒤에야 이루어집니다. 어머니가 "네 친구는 왜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자 주인공은 사실 사귀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답해요. 그토록 오래 못 했던 고백이 하필 과거형이 되어 나오는 데다, 어머니는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가장 힘겹게 꺼낸 진실마저 통역과 침묵의 틈으로 스며 사라지는 이 대목이, 이 책이 말하려던 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절망으로 끝나지는 않아요. 아버지 유해가 뿌려진 산에 작별인사를 하러 가고 싶다는 주인공에게 조카가 함께 가주겠다 하고, 어머니는 춘천에 아는 맛집이 있다며 같이 가고 싶어 하십니다. 간극이 완전히 메워지진 않지만, 상실을 계기로 오히려 가족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결말이었어요. 작가가 문을 닫지 않고 살짝 열어둔 셈이죠. 읽는 내내 곱씹게 된 건, 우리가 언어에 얼마나 큰 믿음을 걸고 사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말이 나를 설명하고 상대를 알게 해주리라 여기지만, 이 책은 그 믿음이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줘요. 오히려 통역되지 않은 침묵이, 발라낸 생선을 딸 접시에 놓아주는 손이 말보다 더 진실할 때가 있다는 것도요. 해외입양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다루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곁에 있으려 애써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자기 자리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관계 속에서 말이 자꾸 겉돌아 답답했던 기억,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지 않던가요. 그런 마음에 이 책은 꽤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여백 많은 얇은 책을 조금 만만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그 여백을 채우는 게 결국 읽는 사람의 몫이더군요.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 위에서, 마음은 오래 붙들려 있었습니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요즘입니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리는 저녁에,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 조용한 책을 천천히 넘겨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통역되지 않는 말과 침묵 사이에서,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가족과 사랑의 기록.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푸른숲 #북유럽문학 #몬타나상 #프리즈마문학상 #퀴어문학 #디아스포라 #해외입양 #입양문학 #덴마크소설 #번역문학 #서평 #독서기록 #책추천 #소설추천 #침묵의언어 #가족소설 #북리뷰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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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한다 가족끼리 좀더 솔직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서로 눈치 보면서 짐작만 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야. p.134 나는 말한다 한국 문화에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이 바로 그거야. 언제나 남자가 중심이잖아. 만약 집에 불이 나면 부모는 분명 딸보다 아들을 먼저 구할 거라고 확신해. 적어도이 나라에서는 그래. p.137 내 통역사가 말한다 나도 머리가 좀 지끈지끈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더 그런 같아. 행간에서 표현되는 것들 말이야. 나는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거? 내 통역사가 말한다 설명하기가 어려워. 번역될 수 없는 침묵 이라고나 할까. p.188~189 나는 말한다 그 책은 가족을 위해 쓴 게 아니야. 그랬다면 애초에 쓰지도 않았겠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입양인들을 위해 그 책을 썼어. 때로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누군가를 배반해야 하기도 해. p.200 먹먹하다고 해야할까.. 답답하다고 해야할까.. 82년생 김지영과 채식주의자를 읽고 느꼈던 그 답답함이 나의 통역사를 통해 삼진아웃이었다고나 할까..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과거시절..네번째 딸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나..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덴마크에서 덴마크 사고방식으로 자라온 '나'는 나의 가족들을 찾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지만..통역사가 없이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통역사를 통해 주고받는 대화마저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희곡같은 대본을 보는듯한 서로의 대사로 이루어진 독특한이 형식이 오히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그 의미들을 완벽히 나타내주는것 같았다. 통역사가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의 공백..그 공백에서 느껴지는 소외감과 슬픔.. 떨어져 지낸 그 시간동안의 어색함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없어지지 않고..자신의 존재가 한국사회의 한 가족에게 완벽하게 오픈된 존재가 될수 없다는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내 핏줄의 비밀을 남편에게는 당당하게 오픈할수 없고..자신의 성정체성을 가족에게 오픈하는것도 쉽지 않고..하지만 가족에게 지워진 스스로를 당당히 채워나가기 위해 글을 쓰는 나.. 자전적 소설이기에 더 '나'의 감정이 온전히 와닿았던거 같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책을 읽고싶다. 그 책 역시 그녀가 덴마크로 입양되고 자신을 입양보낸 가족들을 만나 솔직한 심정들이 담겨있을꺼 같아서 그 책을 먼저 읽고 난 이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작가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서로 분명 이해할수 없는 모습들이 보이지만..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통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대화들역시 서로의 언어를 알아가며 직접 대화가 가능해지는게 행간의 공백들이 점점 짧아지는것 같아서.. '나'의 마음에 있던 거리감과 격차들도 덩달아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들었다. 이렇게 '나'는 온전히 한 가족이 되어가는게 아닐까..하는 희망이 보이는 책이라 좋았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꼭 읽어봐야겠다.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푸른숲 #최고의북유럽문학작품선정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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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물음표와 공백이 주는 침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비언어가 언어가 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비언어가 통역될 수 있을까. 덴마크에 입양된 딸이 친부모를 만나기위해 한국까지 오게된 먼 여정에는 그 시간의 공백만큼 통역되지 못하는 말들 속 침묵도 쌓여있었다. 그 침묵이 처음엔 답답했으나,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안다. 그 침묵 또한, 여백또한 자연스러움이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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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덴마크로 입양된 아이가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한국의 가족을 찾아 왔지만 정작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에는 통역사가 등장합니다. 나, 나의 통역사, 가족들.. 이렇게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 #나의통역사 를 읽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부모와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막내언니, 한국말을 못하는 이모가 신기한 조카들과 아무리 봐도 섞이지 못하는 듯한 주인공은 어찌보면 여자친구인 통역사를 통해서 한 번 걸러진 그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통역사는 주인공의 커밍아웃을 일부러 가족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무섭기 때문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이런 문화적 언어적 간극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리랑그바드 작가는 무조건적인 희망을 주지 않습니다. 극복을 실패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벽을 그대로 둡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침묵의 언어.... ‘디아스포라에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언어’라고 긴 글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너무 조용한 적막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이들은 말을 하고 있는데 저는 마치 수화로 느껴졌습니다. 왜일까요? 짤막한 대화들로 이어지는 행간의 침묵이 느껴져서 일까요? 설명이 없는 글은 그림처럼 대화가 박힙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섬처럼 느끼는 타인도 이 책속 디아스포라에 사는 우리를 위한 언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장들이 슴슴 하지만 묵직한 소음이 가득한 이 책,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_내 통역사가 말한다: 나도 머리가 좀 지끈지끈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 행간에서 표현되는 것들 말이야. 나는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거
내 통역사가 말한다: 설명하기가 어려워. 번역될 수 없는 침묵이라고나 할까._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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