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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로서의 울음과 상실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대기
"징후로서의 울음과 상실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대기" 내용보기
"시는 고통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는 존재다. 시는 존재의 꽃이다." (산문, 〈꽃이 꽃인 줄을 모르듯이〉)허향숙의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를 읽는 일은, 한 인간의 영혼이 가장 참혹한 심연 속에서 어떻게 언어의 뼈대를 간신히 추스르고 일어나는가를 목격하는 고통스럽고도 고귀한 연대기이다. 그의 시 세계에서 ‘울음’은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나 슬픔의 피력에 그
"징후로서의 울음과 상실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대기" 내용보기

"시는 고통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는 존재다. 시는 존재의 꽃이다." (산문, 〈꽃이 꽃인 줄을 모르듯이〉)


허향숙의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를 읽는 일은, 한 인간의 영혼이 가장 참혹한 심연 속에서 어떻게 언어의 뼈대를 간신히 추스르고 일어나는가를 목격하는 고통스럽고도 고귀한 연대기이다. 그의 시 세계에서 ‘울음’은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나 슬픔의 피력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가 자신을 알리는 유일한 방식인 ‘진동’(〈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한다〉)의 다른 이름이며, 삶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도래하는 존재론적 징후이다.

시인이 겪은 상실은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다. 딸 ‘수야’를 잃은 마흔여섯의 그날 이후, 시인의 계절은 지상의 사계(四季)를 통째로 삼켜버린 ‘13월’(〈13월〉)에 멈춰 선다. 이 13월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도마 위 동태처럼 시간을 토막낼 수 있다면"(〈도마 위 동태처럼 시간을 토막낼 수 있다면〉)이라고 절규하며, 아이의 첫 호흡과 걸음마의 순간으로 망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김소월과 박용래의 뒤를 잇는 웅숭깊은 조율의 서정성이 빛을 발하는데, 그것은 슬픔에 매몰되는 서정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를 "할미꽃처럼 솜털로 둘러싸인 슬픔"(〈슬픔의 탄생〉)으로 치환해 내는 놀라운 주체적 변모이다.

특히 산문 〈잔혹 동화〉에서 보여주는 『뜨개질 할머니』의 서사는 시인의 내면을 관통하는 핵심적 은유다. 신(神)이 화가 나 우리를 올올이 ‘풀어버릴까’ 두려워 스스로를 단단한 매듭으로 묶었던 아홉 살 아이의 일기를 대면하며, 시인은 신의 부당한 판단(〈유다〉)에 분노하다가도 끝내 "날카로운 울음의 칼날에 내 안의 악마를 거꾸로 매달아 죽이는" 용서의 자리에 당도한다.

에필로그에 이르러 아흔아홉 마리의 파랑새를 그린 뒤 떠나보낸 새의 자리는, 타인의 슬픔을 향한 확장으로 이어진다. "아픔은 그의 것이 되었어요"라는 고백은, 시인이 자신의 사적인 통곡을 인류 보편의 위로로 구원해 내었음을 뜻한다. 허향숙의 시는 아귀 같은 세상의 침묵을 향해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진술〉)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오묘한 문늬로 바꾸어내는 영혼의 위대한 승리이다.

e*******6 2026.05.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