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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좋은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의외의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신간 위주의 서점에서 얻기 힘든 것이다.
이 책은 무려 100년 전인 1909년,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킹이란 사람이 중국, 한국, 일본의 유기농법을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쓴 책이다. 이 당시에는 동양은 무지하고 야만적이고 몽매하다는 인식이 서양을 지배하고 있고, 잘 봐줘야 신비롭고 잠재력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 편견을 뚫고 4천년 동안 유지되어온 유기농법의 저력과 과학성을 관찰해낸 혜안이 돋보인다.
미국 농림부 공무원이 어떻게 동양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과정도 궁금하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의 한계가 보일수록, '더 많은 화학비료! 더 많은 농약! 더 많은 기계화! 더 대규모의 기업농!' 쪽으로 질주하는 것이 미국 농업의 특성 아니었나. 실제 역사도 그렇게 진행되기도 했고. 아마 지은이는 그런 풍토 안에서 한계를 느끼고 진짜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추측하자면, 주류 농림부 분위기에서 외로웠겠지?) 미국 공무원이지만 세계평화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의 자질이 살짝 엿보인다.
지은이의 생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미국)는 3세대에 걸쳐 땅을 황폐화시켜온 나라에서 왔지만, 이 나라는 3천년 동안 일구어왔는데도 여전히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면밀히 한중일의 농업을 관찰한 결과, 서구에서는 쓰레기로 처리되는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 재, 뻘흙, 잡초더미 등이 모두 땅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아내고 놀라워한다. 이렇게 4천년 동안 순환되어와서 땅은 땅대로 비옥하고 물은 물대로 맑을 수 있는 것이다. 배설물을 강과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은 물을 오염시키는 또다른 해악을 가져온다.
배설물이나 농업의 부산물들을 모두 퇴비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수로에 쌓인 뻘흙, 아궁이에 낀 그을음도 모두 땅으로 되돌려보낸다. 이 유기물들은 각각 물과 공기를 오염시켰을 것인데 오히려 땅을 비옥하게 하는데 쓰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정말 꼼꼼하게 닫힌 원을 만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지은이는 땅을 놀려두지 않는 2,3,4모작, 돌려짓기, 섞어짓기 등을 보며 그 생산성에 놀란다. 그러면서 '여기에 바로 미래가 있다!'고 단언한다.
중국에서는 질 좋은 땅의 1/6에이커에서 한 사람이 먹고살 만큼 충분한 소출이 나온다고 한다. 1/6에이커는 약 660제곱미터. 22m*30m 정도의 땅이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1년 내내 여름인 바이오스피어2에서 1인당 250제곱미터로 겨우겨우 먹고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럴 법하다.
(잠깐 계산해보면 남한 넓이 99000km2, 이중 1/3이 평야, 남한 인구 5천만 = 1인당 700제곱미터. 아무튼 이론상 자급자족은 가능하다.)
밑줄긋기-------------- 동양의 농부는 시간을 절약하는 데에는 최고다. 그는 처음과 끝,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남김없이 활용한다. 외국인들은 중국인이 언제나 느리고, 초조해하는 법 없이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는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으며 한번 기회가 오면 절대 이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강과 운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광둥성 같은 대도시나 세계에서 가장 긴 강 가운데 하나를 끼고 있는 한커우, 근대적 도시 상하이와 도쿄, 요코하마에서도 배설물을 낭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배설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으며,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배설물 투기의 유혹을 이들은 이겨낸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서글펐다. 이제는 동양의 대도시에서도 모두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어 배설물을 토계가 아닌 수계로 흘려보내고 있다.)
(저자는 한여름에도 파리를 거의 볼 수 없는 것에 신기해한다. 왜 그럴까 계속 궁금해하다가 여행 막바지에 답을 얻는다.)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요코하마발 증기선에서 이틀 동안 본 파리의 수가 여행 내내 본 파리의 수보다 더 많았다. 모든 배설물은 쓰임새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항상 잘 관리감독하기 때문에 파리의 부화장소 자체를 파괴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
요즘 구한말-일제 시대에 외부인의 눈으로 본 조선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특히 조선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했는데- 사실 중국 농업이 지은이 탐사 여행의 중심이고 그 다음이 일본 농업이다. 한국 농업은 그냥 곁다리로만 나온다. 일본 농업과 비슷한데 좀 덜 발전되어 있다, 정도.
중국은 고대부터 대규모 운하, 관개수로가 만들어져 왔고, 다양한 작물을 정교하게 돌려짓기, 섞어짓기하는 방법이 발전되었다. 일본은 비슷한 집약적 유기농법에, 기계의 도입과 농업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되어 좀 더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원예법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일본식의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도 이미 틀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은 대규모 운하도 없고 근대적 농업 연구도 없어서 사실 별 특성이 없네... (지은이는 한중일에 대해 기본적으로 매우 우호적이기 때문에 한국을 폄하하는 말을 쓰진 않았다. 그냥 내가 읽으면서 느낀 감상이 그렇다.)
100년 전에 이미 미국 공무원이 미래는 동양의 유기농업에 있다고 설파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기만 했다. 생산량을 증폭시킨다는 '녹색 혁명'. 우리나라는 미개한 농업을 선진화시켜야 한다면서 땅을 오염시키고 농민을 내쫓았고, 미국은 막 나가다 못해 이제 유전자조작 농작물이 뒤덮고 있다. 이제서야 유기농이 슬금슬금 다시 퍼지려고 하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왜 우리는 보고 나서야 믿는가? 겪고 나서야 믿는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에 대한 진실도 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전통적인 방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때 막 의료의 개입이 잔뜩 들어간 분만과 분유수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미래가 과학적인 설명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드럽게 이행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책이 우리나라에 뒤늦게 알려진 사연도 재미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농부 조지프 젠킨스 씨. 그는 '똥 살리기 땅 살리기'의 저자로 1979년부터 똥을 퇴비로 만들어 농사에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인분 퇴비법을 한 책을 통해 독학했다고 소개했다. 그 책이 바로 이 '4천 년의 농부'였다. 돌고 도는 지혜.
한미 FTA로 한국 농업은 아예 묻고 가겠다는 요새 한국 정부 방침(이게 어느 나라 정부야..)을 보면 지은이가 무덤에서 돌아눕지 않을까. 씁쓸하다.
사족> -지은이는 공기난방 아닌 바닥난방을 유심히 본다. 바닥난방은 세계화되면 좋겠다고 내가 생각하던 것 중 하나다. -차나무 옮겨 심을 때 떨어진 잎과 차잎이 달려 있는 마른 가지를 타작판 위에서 도리깨로 내려쳐서 만든 가루차를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다고 한다. 말차의 유래는 이런 것..? -전족을 한 중국 여성들도 차별받지 않고 똑같이 노동을 한다고 했는데.. 이게 가능해? -모지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기차 안에서 깔끔한 나무 상자에 담긴 도시락을 팔고 있었다. 이미 이 때 틀이 잘 잡혀 있었던 것. 이것이 에키벤의 시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