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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사고』, 에릭 사댕 한 달 전쯤, Ray-Ban 메타(Gen 2) AI 안경을 비롯한 스마트 안경이 이번 수능 시험일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됐다는 뉴스를 보았다. 시험장까지 침투한 AI라니, 낯설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무언가를 쓰거나 답을 찾을 때 챗GPT나 Gemini부터 켜는 모습을 너무도 쉽게 보게 된다. 나 역시 그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이 늘 불편했다. 분명 유용한 도구인데, 이 편리함 뒤에서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조금씩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막연했던 불안의 언어를, 나는 이 책에서 찾았다. 에릭 사댕은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분 짓는 것은 "사유와 자유를 행사하는 일인칭 주체자로서의 발화 능력"(p.15)이라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이 '언어'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계가 대신 쓰고 말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저자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를 언급하며 학생들의 읽기와 사고 능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배움의 과정 자체를 점점 회피하게 되는 현실을 짚는다. "더 넓게 보면, 노력과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즉 게으름과 경솔함이 만연한다는 말이다."(p.229) 책을 읽으며 특히 와닿았던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AI는 우리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극도로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답변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영구적인 자기만족과 태만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전체적으로 퍼지도록 만드는 데 매우 튼튼한 기반이 된다."(p.238) 교육자로서도, 엄마로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편리함이 어느 순간 '성장의 생략'이 될 수 있다는 것. 쉽게 얻은 답은 쉽게 잊히고,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장은 결국 자신의 문장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책이 AI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I는 이미 우리 삶에서 떼어놓기 어려운 도구가 되었고, 잘 활용한다면 배움의 폭을 넓혀줄 수도 있다. 다만 답을 너무 빨리 얻는 데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헤매고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함께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틀려도 좋으니 먼저 자기 생각을 말해보고, 오래 읽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앞에 조금 더 머물러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책은 마지막에 일곱 가지 선언문을 제시하며, 우리가 지금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떤 태도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대로 빈껍데기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요구하고 행동하여 고유성을 지킬 것인가?" 결국 AI 시대에 지켜야 할 것은 정답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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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창의성이나 감정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오래 붙잡게 됐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만들어 낸다. 반면 인간은 시간을 들여 경험하고, 실패하고, 수정하며 자기 생각을 만들어 간다. 비효율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결국 한 사람만의 사고를 만든다. <멸종 위기의 사고>는 AI를 비판하는 책이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기술에 넘겨주고 있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지난번 읽었던 <읽기의 위기>보다 훨씬 천천히 읽혔다. 여러 번 책을 덮고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책이었다. 계속 남아 있는 한 가지 질문, 우리는 지금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질문을 붙잡고 있다 보니, 발터 벤야민이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구분했던 세 가지 인간상과연결해 보게게 되었다. 벤야민은 19세기 자본주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경꾼, 관찰자, 그리고 산책자라는 서로 다른 태도로 설명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도시를 걷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구경꾼은 눈앞의 자극에 쉽게 이끌린다. 수많은 볼거리와 정보 속에서 자신의 기준보다 순간의 흥미를 따라 움직인다. 결국 생각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관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멈춰 서서 살펴보고, 기록하고,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눈앞의 정보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산책자는 조금 더 다르다. 군중 속을 걷지만, 군중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로 거리를 거닐며 서로 무관해 보이는 풍경과 경험을 연결해 스스로 의미를 만든다. 도시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AI를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누군가는 그 답을 검토하고 비교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AI를 하나의 재료로 삼아 자신의 경험과 질문을 더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연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인간은 조금 다르다. AI는 가장 높은 확률을 계산하지만, 인간은 실패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 때로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정답보다 자신의 기준을 믿어 보는 일. 어쩌면 사고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AI는 완성된 형상을 빠르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형상에 어떤 의도를 담을지, 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삶과 연결할지는 대신 결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AI를 잘 사용하는 방법보다 AI 시대에도 산책자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책처럼 읽혔다. 우리가 몸을 사용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생각과 경험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는 머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으로 살아낸 시간, 실패를 감수하며 내린 선택, 그리고 그 경험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능력이 아니라, 구경꾼처럼 소비하지 않고, 관찰자처럼 기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산책자처럼 자신의 기준과 속도로 세계를 해석하는 힘. 그리고 AI가 계산한 가장 높은 확률보다, 자신이 믿는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용기.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도 인간의 사고가 멸종되거나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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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위기 - ai시대에 누가 책을 읽고 있는가_ 지금의 ai시대가 오기까지 긴 시간의 발전이 있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블랙베리 메시지에서 읽음 표시가 대중화 되면서 사람들은 누가 읽고 안 읽었는지 알수 있게 되었다. 번역과 인공지능 연구를 계속 해왔으며 오랜기간을 거쳐 대중에게 상용화가 되면서 누구든 쉽게 번역과 ai와의 대화도 할수 있게되었고 핸드폰으로 목소리로 주문이나 문자를 적을수 있게 되었다. 워크맨 휴대용 카세트가 나와서 길거리에서든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수 있어 편리해졌다. 예전에는 읽기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배우며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단련을 함으로써 진정한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훈련을 할수 있었다. -새로운 라틴어의 시대 미디어를 쓰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글을 쓰고 읽는 것에는 다른 사람의 강의나 팟캐스트를 이용해 원하는 지식을 들을수 있으니 텍스트에는 점점 멀어져가게 되는거 같다. 지금의 기술 발달로 인해 책을 요약해주고 읽어주고 영상으로도 볼수 있으니 자신이 직접 책을 펴지 않아도 읽기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고 sns 의 활성화로 함께 읽을수 있게 되면서 상대방이 글을 읽고 쓰는 것도 표시되어 원활하게 소통할수 있으며 언제든 읽을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책을 잘 읽고 이해하고 있는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다양한 책을 잘 읽고 있나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 자신도 검색하면 모르는 것을 바로 알려주는 미디어 강의를 많이 보는 거 같다. 직접 찾아 읽는게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읽어서 알려주는 내용들을 보며 지식을 채우는 방식을 사용했다. 종이책 만의 향과 손으로 만지는 책의 두께, 그리고 텍스트 언어를 읽고 해석하며 문해력을 키워야겠다. #러블리 비블리 #읽기의 위기 #헤이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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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종이책을 넘기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꽤나 귀한 풍경이 되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 화면 위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짧은 영상과 자막, 쉴 새 없이 달리는 댓글과 알고리즘이 골라준 뉴스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흔히 "이제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며 걱정 어린 탄식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책 『읽기의 위기』는 그 익숙한 걱정 너머로 조금 다른 질문을 건넨다. 정말 우리는 읽기를 멈춘 것일까. 이 책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읽기의 변화를 단순한 '퇴보'나 '상실'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읽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 자체가 모양을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종이 위를 따라가던 선형적인 읽기 대신, 화면 위를 유영하며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골라내고 연결하는 비선형적 읽기가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책은 "기술이 나쁘다"거나 "세상이 좋아졌다"는 식의 한쪽 편만 들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깊은 집중력을 흩뜨린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기술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더 넓은 정보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게 되었는지도 함께 살핀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읽기 능력을 가꾸고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오래 남았던 질문은 이것이다. ‘깊이 읽기’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일까. 아마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다만 그 깊이를 재는 기준이 꼭 종이책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긴 글과 짧은 정보, 활자와 영상, 인간의 사유와 AI의 요약이 뒤섞인 시대에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감은 읽기의 종말이 아니라, 읽기라는 행위의 정의가 다시 쓰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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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스스로 책을 읽고 해석하기보다 유튜브나 블로그처럼 ‘대신 읽어주는 사람’의 역량에 의존하게 된다. 또는 AI가 요약해주거나 설명한 내용을 참고하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직접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 보다 누군가 정리해 준 내용을 찾아 먼저 접한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 역시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해석을 통해 판단한다. 심지어 그의 의견이 내 생각과 다를 때조차, 댓글 반응을 살피며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해석과 반응 속에서 내 생각은 쉽게 흔들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판단이 정말 내 것인지 조차 헷갈릴 때가 많아진다. 『읽기의 위기』는 바로 이런 시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읽고 있지만, 그 읽기의 상당수는 이해와 사유를 위한 읽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고 반응하기 위한 읽기기 늘고 있다. 카카오톡의 읽음 표시와 말줄임표, 댓글과 좋아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짧은 텍스트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계속 읽고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책 속 한 문장 앞에 오래 머물며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새로운 라틴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시대에도 복잡한 텍스트를 끝까지 읽고 자기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책은 읽기의 위기를 날카롭게 분석하지만, 어떻게 다시 깊이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적어도 한 가지 질문만큼은 분명하게 남긴다. 나는 정말 스스로 읽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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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률이 이처럼 낮았던 시대가 있었나. 인쇄술과 전자매체의 발달로 어디서든 편하게 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읽기에 큰 위기가 온 시기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고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은 각종 구술로 정보가 전달되는 플랫폼과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를 대신 읽어 빠르개 요약해주는 챗GPT같은 AI의 발달로 굳이 내가 수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책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은 폭발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서, 출판계는 여전히 위기이다. 하지만 직접 ‘읽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 위기일까? #읽기의위기 (#크리스토프엥게만 지음 #헤이북스 출판)에서 저자는 문해력으로 출발한다. 직접 읽고 판단하는 행위를 선택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젊은 층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더이상 세상의 신뢰할만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읽기’가 최우선이 아닌 세상이라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될까? 이제는 읽기의 시대가 아니라 읽기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위임받은 사람이 말로 들려주는 구술 강연을 소비하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대이다. 기존의 아카데믹한 권위있는 기관에서 여전히 읽기를 차용하고 있기에, 스스로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다름 없는 것이다. 읽기의 위기를 염려하는 것은. 모든 것에 효율을 따지는 경제사회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읽기에서도 경제성을 따지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읽기가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권위있는 쪽의 정당성의 수단이었던 읽기가 듣기로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청자들에게 읽기를 위임받은 화자의 중요성을 말한다. 독자들이었던 청자들을 대신하여 깊은 읽기를 해야하는 독자, 바로 청자인 것이다. 그 어느 때 보다 읽고 말하는 것에 권위와 카리스마가 부여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 권위와 카리스마에 부합하는 깊이 읽기로부터 유례된 제대로 된 말하기, 들려주기(동시에 출처가 확실한 래퍼런스를 보여줌)는 읽기를 위임한 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청자들은 다시한번 자발적으로 독자가 된다. 자발적으로 읽기를 자처한 독자들의 열정과 이해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독자들은 또다른 새로운 화자가 된다. 독자가 화자로, 청자가 독자로, 다시 화자로. 이것이 정말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보전달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강압적으로 요구받던 읽기보다 자발적인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 쓰기(말하기)의 허들이 낮아짐으로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등 이익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화자의 신빙성이다. 무분별한 AI의 사용으로 화자가 읽지도 않고 생산해내는 영상, 현재 AI의 문제점인 할루시네이션 (사실이 아닌 것응 AI가 만들어내는 현상)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깊게 읽고 생각을 피력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신뢰도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자기 주장만이 답이라고 강요히지 않는 진정한 독자이자 화자들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올바른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 올바른 순환에 우리도 참여해야한다. 청자이면서도 독자이길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제대로 책을 읽는 능력이 더더욱 필요하다. 책을 스스로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건강한 생각 후 답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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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긴 텍스트를 읽는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숏폼의 빠른 자극과 재미라는 짧은 만족에 두 눈과 시간을 맡기면서부터가 아닐까?
종일 단톡방과 채팅으로 업무를 하고 나면 눈이 피로하고 머릿속이 글자로 가득 찬 느낌이다. 퇴근 후 책을 뒤로하기 시작한 건 ‘의미 없는 말들이나 내가 원하지 않는 글자’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업무 안에서 글자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오며 글에 대한 소중한 감각은 멀어졌고 몰입하며 책을 읽고 싶은 욕망도 점점 사라졌다.
그동안 나는 ‘유튜브에서 읽어주는 책도 좋아! 감사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진짜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읽고 넣어주는 생각도 좋지만 책을 직접 읽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사유가 Al 시대에 더욱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긴 텍스트를 읽는 집중력도 다시 키우고 싶다. 위기 속에도 내일의 태양은 뜬다. 다시 책 안에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초기 근대 대학의 강의에서는 책을 접하거나 이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갈망과 책을 읽을 수 없는 현실 사이에 격차가 존재했다면, 책과 텍스트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읽을 수 있음’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음’ 사이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 ‘읽고 싶지 않음’에는 긴 텍스트를 읽을 때 요구되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14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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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11세,10세 남매를 키우며, 콕콕 찌르듯 예상 못한 일들로 고민이 깊은 요즘이다. 아들은 사회시간에 처음 접한 패드수업을 하다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한다. 평소 게임이나 미디어 매체를 다뤄보지 않아 패드 조작이 낯설고 미숙했나 보다. 또 컴퓨터 방과 후 수업을 적극 추천하던 친구 엄마가 뭐든지 뚝딱 만들어내는 AI시대에 파워포인트, 엑셀 자격증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며 재수강을 고민하는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미 우리 일상 속에 자리잡아 이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직까지 챗GPT 와 대화조차 시도해 본적 없는 나로선 AI는 여전히 참 어렵고도 생소한 주제이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추구해오던 가치관이 갈피를 못 잡고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며, 그야말로 위기감 속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헤이북스의 『읽기의 위기』라는 제목에서부터 공감과 지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미처 몰랐던 사실들과 마주하며,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 만큼 읽는 내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텍스트와 독서는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에서는 대규모 언어 모델에 의한 텍스트 습득과 생산의 자동화가,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 동영상과 팟캐스트의 높은 매력이 이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스스로 읽어야 할까? (읽기의 위기,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헤이북스, P.183) 다행스럽게도 딸은 생일선물로 스마트폰이 아닌 레고나 책을 택했다. 자극적인 미디어 세상이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즐거움 보다, 책을 읽으며 상상하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과정속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경험을 먼저 해보길 원했다. 나 또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어 냈기에, 새로운 지식을 확장하고 ‘플랫폼 구술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교육적 측면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보다, 변하는 시대에 맞게 AI를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있어야 겠다. 그러기 위해선 질문을 잘 하는 능력도 요구되고, 더욱더 깊이 있는 독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엥겔만 작가의 『읽기의 위기』 덕분에 AI에 대해 경계하던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 마법 같다는 챗GPT에게도 ‘안녕’하고 첫 인사를 건네 보았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읽기의 사유가 여전히 중요하고, 쉽지 않지만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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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우리는 너무 편하고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늘 불안하다. 이 책은 책을 읽자는 캠페인의 책은 아니다. AI에게 읽기와 쓰기를 외주 주는 시대,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어야 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AI를 부리는 주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최적화된 결과값에 고개를 끄덕이는 구경꾼으로 전락할 것인가? AI가 대신 써주고 요약해주는 편한 시대에 살면서 과연 나에게 (나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AI 가 있는데!) 읽기 쓰기라는 고단한 과정이 더 이상 필요한가? 라는 의구심이 드는 시점에, 빨간 경고등이 울리는 것 같이 빨간 표지의 ‘읽기의 위기’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도서들은 상당히 많지만 미디어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 위기 상황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잔뜩 기대를 하며 선택한 책이다. 저자인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사람들이 단순히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의 '읽는 방식' 자체가 아예 바뀌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그 효율성 뒤에 가려진 '읽기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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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 우리는 정말 스스로 읽고 있을까요? 독일의 미디어 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언제든 읽을 수 있기에 오히려 아무것도 읽지 않는 ‘읽기의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AI와 요약본 뒤로 숨지 않고 오롯이 내 눈으로 세상을 사유하는 ‘진짜 독서’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이 시대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묵직한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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