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누구나 할 것 없이 외국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심지어 고유 문화를 잊어 버리고 외국 문물에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며 세계화란 거창한 말로 이를 미화하기도 한다.
선택을 할 기회는 자유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자기를 알지 못한채 또는 알 기회도 잃어버린 채 쉽게 맞닿는 이국적인 풍취에 빠져드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책은 애국적인 행위를 강조하지도 않고 우리 옛 그림을 찾자는 캠페인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옛 그림을 세심하면서도 재미있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또한 호기심을 유도하는 유명인의 책이 아니며 어설픈 아마추어가 쓴 그림해설서도 아닌 전문서적에 가까운 교양서적이다.
그렇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없이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 미술책에 실리던 김홍도의 그림이나 정선의 그림, 그리고 정약용, 민영익이란 이름을 기억한다면 절대 난해한 책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서에 가깝다고나 할까.
책 겉은 매우 부드럽다. 마치 화선지로 된 고서처럼. 그러나 내부는 빳빳한 코팅지로 되어 있어 한 번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는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보관하며 자주 감상하며 자주 음미하는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 이야기와 같다.
글씨가 작아 졸립다는 핑계를 댄다면 그림위주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서 호랑이가 쳐다보고 있어서 절대 졸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토끼와 닮았다는 일본놈에게는 중국대륙을 쳐다보며 굉음을 내는 한반도 호랑이의 매서운 모습이 약이 될 듯 싶다.
동물을 싫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 다음 그림인 마상청앵도를 보시라. 버들잎을 쳐다보는 선비의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고층빌딩에서 숨막히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루내내 보며 상사의 숨은 칼날을 느끼며 부지런히 일하는 현대 샐러리맨의 애환과 비교해 보자. 아마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아직 책 읽기를 끝마치지는 못하였지만 이렇게 귀한 책을 남기신 고인이 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단순히 책읽기로 끝나지말고 옛 문화의 좋은 점을 널리 전파하고 계승되기를 기원한다. [인상깊은구절] 하늘을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이 세상에 불필요한 생명체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빼앗자마자 곧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작전에 나서 우리 겨레의 상징, 그 크고 씩씩하며 아름다웠던 조선 범을 전멸시키고자 했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조선 혼의 부활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래도록 이어진 삼림의 벌채와 전쟁 탓으로 잣나무는 시들고, 덩달아 먹이를 잃은 멧돼지가 사라졌다. 사슴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호랑이는 결국 우리의 곁을 떠났다.(49페이지) |
| 옛 그림 6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 그림에 대한 필자의 사랑이 담겨있어서 그런것일까? 어찌 몇 십개의 서양화를 본 것보다 놀랍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소감을 먼저 쓰자면, 대단하다 금강전도의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실은 2005년을 마감하는 의미에서 12월 31일에 국립중앙박물관(용산위치)에 갔었다. 그 당시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고 거의 2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들어간 터라 지쳐있었다. <송하담소도> 있었나? 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조희룡의 <홍매>를 보러 갔었던 길이긴 했었다. 보지 못하고 나오는 길이 무겁기는 했지만 우리 옛 보자기 엽서를 살 수 있게 되어 그것 하나로 만족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호암미술관 역시.. 친구와 지나다 가 본 적이 없다. 누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우연히 가게 된 곳.. 그곳에 금강전도가 있었나? 아마 다시 가서 금강전도를 본다면 다르게 느껴지질 것이다. 그 가운데 흐르는 선은...음과 양의 팔괘이고 각 위치나 농담이 그저 금강을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집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물론 많은 지식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그림을 봐야 그림을 잘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고 본 경우와 알고 본 경우의 느낌은 다른 것 같다. (실은 우선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는 방법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다. ) 거기다 더해, 간송미술관... 학부때 최완수선생님(책에도 언급이 되었었다)의 동양미술사 수업으로 간송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바닥에 자갈이 옹기종기 깔려있고 조금은 걸어 올라가야할 비탈 길이 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신윤복의 많은 그림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알고 미술관에 전화를 해 전시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전시 기간이 아니라는 말만 들었지만.. 그 곳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를 본 적이 있었나? 이 곳에 언급되는 미술관에 적어도 몇 번씩은 가보았는데...어찌 된 일인지 보았던 기억은 없다. 물론 몇 그림은 어렴풋이 본 듯하지만.. 하나 같이 내 놓으라 하는 작품들인데 말이다. 얼마나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었는지...새삼스레 마음이 짠해온다. 그 중 가장 나의 마음을 끌었던 작품은...김홍도의 <마상청앵도>이다.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버드 나무 위에 노래를 부르는 한 쌍의 꾀고리.. 길을 가다 우연히 시선이 잡힌 그림.. 정말 그 그려낸 수법이나 어떤 글귀를 논하지 않고도 눈을 빼앗기는 귀를 빼앗기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다 나도 그 소리에 이끌려 버드나무를 쳐다보고 있는 듯 하니.. 다시 보러 가야겠다 저 그림을 올 해 안에 다시 보지 못한다면... 봄을 맞이 하지 못한 마음일 게다. 마음이 동하는 그림을 보고도 가슴 아픈 글을 보았다. 일본식의 표구와 그네들의 만행.. 멀쩡한 그림에 자기네 식의 알록달록 금모란무늬..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화려하고..그림을 가리니 그것이 무슨 표구인가? 거기다 좋은 그림엔 좋은 사람들의 글이나 낙관이 보이는데(우리 그림에서는) 일제시대 변절자들의 글을 보며 마음 아파한 필자(오주석 선생님)의 심정이 이해간다. 내 나라의 그림에서 그런 사람의 글을 본다는 것은 참 가슴아프고 통탄할 일이니 말이다. 아직도 우리 그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림은 단순히 스쳐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럼 내가 주역.. 사서오경을 공부해야 하나? 아~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음을 절절하게 꾸짖는 책이었다.마상청앵도>마상청앵도>홍매>송하담소도> |
|
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초상화의 비밀’전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태조 어진」과「윤두서 자화상」을 비롯하여 이명기,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국보급 초상화는 물론 중국과 일본, 멀리는 유럽에서 온 루벤스의「안또니오 꼬레아」로 불리는 한복 입은 조선 남자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200여점에 달하는 초상화 작품을 볼 수 있었던 대규모 전시회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역시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채워줄 기회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 http://blog.yes24.com/document/7790771>에서 독립된 장으로 구분한 ‘한국미술사’편에서 오주석의 옛 그림 감상법을 담은 책들을 소개받게 된 것입니다. ‘선인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옛 그림의 깊은 맛’이라는 제목으로 옛 그림 감상법을 요약한 이진숙님은 오주석님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를 읽어볼 것을 권하였습니다. 저자 오주석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간송미술관 연구 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 특히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는 우리 옛 그림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토록 원대한 꿈을 품었던 그가 백혈병을 얻어 불과 49살의 나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백혈병 치료는 세계가 알아주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지 싶습니다.
‘전통 미술 전반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은 저자가 공무원교육원에서 가졌던 강연녹취를 책으로 꾸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총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은 대표적인 옛 그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각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강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옛 그림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오주석의 한국미 특강; http://blog.yes24.com/document/7781417, 17쪽, 솔, 2003년)”라고 옛 그림을 감상하는 원칙을 요약합니다. 이어서 옛 그림 감상법 설명에 들어가는데, 우선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거리는 그림의 대각선 길이를 기준으로 1~1.5배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옛 그림은 옛 글씨를 쓰는 원칙대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법칙에 따라 읽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글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가로쓰기로 하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세로쓰기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읽을 때는 옛 사람들 방식대로 오른쪽 위로부터 왼쪽 아랫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은 가능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주마간산 식으로 휙 하니 지나가면서 중요한 점을 제대로 붙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 원칙을 설명한 다음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려 있는 「씨름」이라는 소품을 놓고 옛 그림 감상법을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전체를 개괄하고 이어서 그림의 세부적 요소를 따로 들어내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물두명의 등장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여 그의 출신성분과 성격까지도 유추하는데, 필요에 따라 세부를 확대한 여덟 장의 도판을 별도로 실어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진숙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엮어 보는 재미가 꿀맛이다(이진숙, 위대한 미술책 270쪽, 민음사, 2014년)”. 이처럼 오주석님은 그림의 미학적 요소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하여 그 시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유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씨름의 승패까지고 예견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그림을 꼼꼼하게 읽었으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옛 그림 읽기의 각론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자가 생전에 출간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http://blog.yes24.com/document/7800547>에서는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등 열두 점의 그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림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 그리고 저자가 그림을 해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고사와 시문을 언급하고, 나아가 이 그림들이 화가의 삶이나 당대의 정치와 사회상황, 그리고 선, 불교, 주역, 유학 등 조선시대의 철학사상과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에 곁들여, ‘옛 그림의 색체’,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옛 그림 읽기’, ‘옛 그림 보는 법’, ‘옛 그림에 깃든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들은 옛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익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주옥같은 작품 설명을 하나라도 건너뛰면 안 될 것 같지만 지면관계상 한 작품만을 고른다면 서양화와 우리의 산수화의 중요한 차이점을 깨우칠 수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여름날 밤의 꿈속에서 노닐었던 도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무릉도원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선비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안평대군은 당대의 화가 안견에게 꿈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고, 작품을 제작하게 된 연유를 손수 적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全景)에 압도된다.(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62쪽, 솔, 2005년)’라고 했습니다. 한편의 장대한 교향시와 같은 그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른편 위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가로지르는 대각선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몽유도원도」에는 우리 옛 그림의 원근법이 갖는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으로는 “첫째 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치켜다본 시각[고원법(高原法)], 둘째 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본 시각[심원법(深遠法)], 셋째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폭 넓게 조망한 시각[(평원법(平遠法)]이 있어, 이를 통틀어 옛 그림의 삼원법(三遠法)이라 하는데(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7쪽, 솔, 2005년)”,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풍경화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풍경 밖의 한 곳에서 전체를 조감하는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산수화는 풍경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주인공을 치켜보고, 내려다보고, 비껴보고, 휘둘러봄으로써 산수의 다양한 실제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것(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9~81쪽, 솔, 2005년)이라고 합니다. 이진숙님에 따르면 오랫동안 원근법에 익숙해온 서구인들은 세잔에 이르러 비로소 원근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데이비드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는 ‘원근법을 절대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구의 특정 관념을 맹신하는 폭력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호크니의 설명에 따르면 “오랫동안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선원근법은 인간의 눈의 법칙이 아니라 렌즈 사용에 근거한 광학의 법칙일 뿐’이라는 것입니다(이진숙 지음, 위대한 미술책 405쪽, 민음사, 2014년).” 그리하여 사람은 사물을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본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바로 동양회화가 표현하는 원근법이기도 합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편지에 “대개 서울에 있을 적부터 이 일을 포기한 지 벌써 오래되었는데 남쪽으로 돌아온 후로는 더더욱 적막하게 지내면서 눈의 시력 또한 흐리고 뿌예졌습니다.(101쪽)”라는 대목을 보면 윤두서가 백내장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눈 둘레에서 안경에 눌린 자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윤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노안으로 안경을 사용했음을 의미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리고 뿌옇게 변했다고 한다면 렌즈에 혼탁이 생기는 노인성 백내장으로 인한 증세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렌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 밝은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의술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는 저자 생전에 마무리를 하지 못한 유고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1권과 같은 형식으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그리고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옛 그림의 표구’, ‘문인화, 옛 선비의 그림의 아정한 세계’ 그리고 ‘조선과 이조’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은 옛 그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너도 나도 금강산 관광을 나서는 것이 왜 못마땅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금강산을 구경해보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운 금강산>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서 정선의 「금강전도」가 반갑기도 합니다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서는 역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의 해설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서 일 것입니다. 봄날 나들이에 나선 선비가 문득 들려오는 꾀꼬리 우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꾀꼬리를 뒤쫓는 모습을 넉넉한 여백을 곁들여 담백하게 그려낸 「마상청앵도」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는 저자는 선비의 뒤쪽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둔 것은 ‘꾀꼬리 소리에 정신을 빼앗겨서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아득한 심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서 문인화의 정신과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 문인화는 선비의 그림이다. 2. 문인화에서는 작가를, 그리고 한 인간을 본다. 3. 문인화에서는 미태가 떠도는 점을 꺼린다. 4. 문인화에서는 형상을 극소화하고 상상은 극대화함으로써 감상 행위가 살아 숨 쉬게 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서문에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라고 적을 만큼 저자는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모양입니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인데, 그 꿈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그가 남긴 책들은 분명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옛 그림을 통한 우리 문화 읽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글쓴이는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조건을 통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방법을 통해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장들의 빼어난 그림의 온전한 의미를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를 이야기하기 위해 호랑이와 우리 겨레의 오랜 인연을 들고 있다.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랑이 이야기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호랑이 이야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중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호랑이를 잡으면 세 차례 매질을 한 다음에야 상금을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호랑이가 흉포한 동물이지만 산군(山君, 산의 임금)이기에 감히 임금을 잡았다는 죄목 때문이란다. 책을 몇 쪽을 넘겨도 호랑이 그림이 아니라 호랑이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변죽 울리기다. 변죽부터 시작해서 알속[核心]으로 다가가는 것,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화가의 삶과 정신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을 쓴 이의 자세이다. 금시라도 호랑이가 그림을 박차고 뛰어나올 듯한 김홍도의 <송하맹호 松下猛虎圖>를 보자. 글쓴이는 그림에서 휘어져 올라간 허리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읽어내고, 바늘처럼 가늘고 빳빳한 붓으로 터럭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그려낸 화가의 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호랑이의 다리와 소나무의 가지를 중심으로 주위 여백들이 기막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몇 개의 선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낙관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소나무를 그린 이가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아니라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던 동갑내기 화원 이인문의 솜씨임을 밝혀내었다. 이처럼 터럭 하나, 점 하나까지 소홀히 넘어가지 않고 그림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김홍도의 다른 그림인 <마상청앵도 馬上聽鶯圖>에서도 길과 버드나무 가지와 제시의 글자가 이루는 여러 사선들 속에서 그것을 치켜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는 선비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듦으로써 봄날의 경치에 몰입한 선비의 흥취를 글로써 그려낸다. 화성(畵聖)이라고까지 추앙받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金剛全圖>에서는 주역의 이치를 통해 그림을 살펴본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무심코 지나갔던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금강전도>에 원과 물결이 흐르는 듯한 S자 모양의 곡선을 그려 넣음으로써 ‘웬 주역?’하며 머리를 가로젓던 나의 머리를 저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원의 맨 위에 자리 잡은 비로봉은 양을 상징하고, 맨 아래 장안사 비홍교는 음을 상징하고 있단다. 그리고 태극의 왼편은 부드러운 흙산으로 음을, 오른편은 날카로운 돌산으로 양의 성질을 띠고 있고…. 원으로 상징되는 무극(無極)이 음양으로 이제 막 나누어지려는 태극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통해 그려낸 것이다. 태극은 바로 혼돈과 무질서에서 창조와 질서로 가는 첫걸음으로서, 정선은 조선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다가올 이상세계에 대한 기원까지를 그림 속에 담아낸 것이다.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露根墨蘭圖>는 빼앗긴 국토의 흙을 한 줌도 그리지 않고, 연약한 뿌리는 쑥대머리인 양 처참하게 그렸다. 민영익과 쌍벽을 이룬다는 흥선대원군의 난이 날카롭고 예리하다면 그의 난은 둥글면서 곧게 뻗어 있으며 여백과 풍치를 잘 살리고 있다. 민영익이 그린 또 다른 난초 그림인 <노엽풍지도>와 <노근묵란도>를 비교해 보면, 나라를 잃은 비통함이 ‘뿌리 뽑힌 난초[露根]’ 그림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하는 것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의 미덕은 하나의 그림을 살펴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거나 다른 그림과 비교를 해 나가면서 생생한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글을 읽다 반가웠던 것은 ‘정사초의 뿌리 없는 난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문열의 ‘금시조(金翅鳥)’를 읽어본 이들은 잘 아시리라. 스승과 제자로서 평생을 서로에 대해 애증을 지닌 채 살아야 했던, 석담과 고죽의 매죽(梅竹) 논쟁을…. 소설 속에서 망국의 한과 슬픔을 표현하는, 뿌리가 드러난 정사초의 난초를 여기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유배지에서 13년째 생이별하여 홀로 살림을 꾸려가던 아내가 보내준 치맛자락에 그린 <매화쌍조도 梅花雙鳥圖>에서는 딸의 행복을 비는 속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읽어내고, 마지막에 실린 <이재 초상 李縡肖像>을 통해서는 조선시대 한 선비의 단아한 삶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이재의 할아버지인 이채의 초상으로 알려진 그림을 꼼꼼한 읽기를 통해 <이재 초상>의 별본임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그림을 그 자체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려낸 화가의 삶의 역정이나 철학 등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태도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또 어떤 부분 지나치게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글을 쓴 이의 공력과 정성이다. 하나의 그림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온전하게 전하고자 하는 글쓴이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이 자기 과시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만큼은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글의 행간에서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요소들(상징이라든가 구도와 같은 것)과 그것들이 이루어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일부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또 각 장의 맨 끝에 실린 ‘옛 그림의 표구’,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한 세계’, ‘조선과 이조’ 등은 그 자체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이었다. |
|
옛 그림을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것이 전부인 것을 부끄럽게 만들며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책이다.
시조를 읊듯 그린이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글로 풀어놓은 것이
흥에 겨워 판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송하맹호도>에서는 호랑이의 위엄과 세밀함이 경이롭다 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 폭의 그림속에 뭍혀 그 속에 호랑이와 눈빛을 교환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위엄이 있어 나도 섬짓 놀라 마음이 그림에 머무른다.
<마상청앵도>의 그림의 주제는 매혹된 영혼의 시선이라 한다.
멋스러운 선비의 시선이 봄을 맞이하듯 자연을 즐기듯 고정된 시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맞게 되는 아름다움에 그만 빠져버린 것이다.
버들 잎을 그린 표현을 "붓 닿는 대로 툭툭 쳤다"는 말이 붓 가는 대로
김홍도의 풍류적인 마음이 그대로 붓 끝으로 이어지며 핍진의 상태로 관조했을
오주석님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하나이게 한다.
호주가였다는 김홍도처럼 나도 호주가여서 즉흥성짙은 창작을 많이 하지 않을까?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정선의 <금강전도>
"제 발로 금강산을 두루 다녀보아도 베개맡에서 (내 그림을) 실컷
봄만 못하리라"고 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금강산만 그린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기를 그렸고,
[주역]의 이치를 응용하여 조선의 평화와 번영,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원한다는
깊은 뜻까지 담았기 때문이라 한다.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궁핍하고 외로움이 철철 넘쳐났을 것인데
선비의 곧고 바름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보낸 부정(父情)이 아름답다.
민영익의 <노근묵란도>는 한 줌의 흙조차 없는 ''뿌리 뽑힌 난초"다.
그의 절망감과 아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한 거짓이 없는 선조들의 지혜와 스스로 속임이 없는 성실함을
그대로 표현한 <이채 초상="">은 경이롭다 하겠다.
"터럭 한 올만 달라도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정직함의 표현이
사람의 겉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듯 여섯 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 하나 하나에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았을
오주석님의 마음도 알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림을 이토록 자세하고 유심히 보기는 처음이다.
읽다가도 다시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관찰하고 "정말 그렇네"하면서
읽었다. 재미 보다는 옛 그림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없어서인지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인지
또 학식이 없어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부분들을
자세하고 아름답게 엮어주신 오주석님께 감사하다.
오주석님 보다 우리 옛 그림을 이처럼 재미나게 풀어 줄 누군가가 빨리
있었으면 좋겠다. 옛 그림을 사랑한 오주석님의 명복을 빌며... [인상깊은구절] 우리 시대도 <이채 초상="">과 같이 뛰어난 초상화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초상 작가가 드문 것이 첫번째 이유이긴 하지만 꼭 그런 까닭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저 그림의 주인공 같은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채는 정치가이고 학자였지만 그 무엇보다도 근신 수양하는 선비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해서 한 점의 회의도 갖지 않았다. 한 여름에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였고 죽는 순간까지 관을 고쳐 쓸 만큼 그저 하루하루의 삶에 경외심을 잃지 않았던 단아한 선비였던 것이다.이채>이채>노근묵란도>매화쌍조도>금강전도>마상청앵도>송하맹호도> |
|
얼마전 작은 도서관(http://www.smalllibrary.org/main/index) 독서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즐거운 책수다'라는 홍보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보았던 동영상 '즐거운 책수다'에서 다루었던 책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었고, 영상 속에서 언급되었던 우리 그림이 <씨름><미인도><송하맹호도><이채 초상> 등이었습니다. 특히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에서의 김홍도의 '씨름'에 대한 감상은 정말 놀라울 정도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책만 한 작은 화첩에 스물두 명이 그려져 있고,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다른 표정에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것까지 그려낸 김홍도의 그림 솜씨도 놀랍지만 그 그림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분석하면서 씨름이 행해졌던 시기와 지역, 씨름의 종류, 씨름에서 이기는 사람이 누구인지까지를 설명한 오주석 선생님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서는 즐거운 책수다에서 언급되었던 <송하맹호도>와 <이채 초상>을 비롯하여 <마상청앵도><금강전도><매화쌍조도><노근묵란도>에 대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우리그림에 대해 갖는 막연한 느낌을 오주석 선생님은 옛 그림에 담겨있는 선인들의 마음과 함께 우리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있습니다.
한 선비의 단아한 삶을 그린 <이채 초상>을 보고 있으면 수염 한 올 터럭 한 올까지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채 초상>과 전(傳) <이재 초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두 그림은 한 인물을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 <이재 초상>은 <이채 초상>을 제작한 후 십여 년 뒤에 주인공의 더 늙은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낸 것인데 왜 이름이 다를까요? 후대 사람들이 그림에 아무런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 초상화를 보고 이채 보다 명성이 높은 조부 이재의 초상으로 잘못 전해졌을 것이라 오주석 선생님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채 초상>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작품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매하고 반듯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며,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조금의 회의도 갖지 않는 고매하고 단아한 선비임을 느낄 수 있다는 오주석 선생님의 안목 또한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옛 그림을 볼 때는 옛그림 속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자세 뿐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를 파악하면서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안목이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단은 우리그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책을 통해 올바른 감상법을 배워야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우리의 그림을 다시 감상했을때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작품을 좀더 심도있게 보는 안목도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평소 우리그림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서양미술에 비해 결코 뒤지지않는 우리그림을 올바르게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고, 우리그림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우리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에 놀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
두 권으로 나온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었다. 그림 감상에 관한 책이니 당연히 원색도판들과 자료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공들여서 편집하고 인쇄한 출판사의 정성이 우선 눈에 띄어 기꺼웠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옛 그림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써내려간 오주석 선생의 단아하고 유려한 문장들은 또 얼마나 맛깔스럽던지, 그가 옛 그림들을 보면서 느꼈을 즐거움만큼이나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옛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도 나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니 ‘읽는’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옛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느꼈을 오주석 선생까지도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으니 말이다. 이상할 것 없다. 옛 그림들을 바라보는 그의 꼼꼼한 눈길이 그렇듯이 그건 허투루 붙인 제목이 결코 아니다. 옛 사람들은 그림 감상을 일러 ‘간화(看畵)’, 즉 ‘그림을 본다’는 말보다 ‘독화(讀畵)’, 곧 ‘그림을 읽는다’는 말 쓰기를 더 좋아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받아본 제자 이상적이 스승께 올리는 편지에서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음’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歲寒圖一幀 伏而讀之不覺涕淚交)” 하고 쓴 것도 그 일례다. 그림을 ‘읽는’ 것과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본다’는 것은 겉에 드러난 조형미를 감상한다는 뜻이 강한 데 비하여, ‘읽는다’는 말은 동양의 오랜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글씨와 그림이 한가락이므로 보는 방법도 한가지로 ‘읽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림에서 읽히는 내용 또한 형상보다는 그린 이의 마음이 주가 되니 문인화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1권, 172~173쪽) 이처럼 그림의 미학적 측면보다는 그린 이의 내면 풍경을 더 중시했으니 당연히 그는 옛 그림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겠다. 이것은 대상과 예술가의 분리를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서양의 예술관과는 달리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예술이라고 여겨온 동양의 오랜 전통에 입각한 예술관인데, 오주석 선생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린 그림들에서 그러한 예술관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선비들이란 자신의 사상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동양의 오랜 역사에서도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림에서는 서화일률(書畵一律)로, 더 나아가서는 물아일체(物我一體)로까지 표현되었으며 오주석 선생은 남다른 감식안과 꼼꼼한 관찰 그리고 참으로 부지런한 고증으로 그걸 고스란히 읽어냈던 것이다. 그래서 거침 없는 일필휘지로 그려낸 그 유명한 <달마상>에서 그는 중국의 고승 달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그려낸 조선의 화가 김명국, 불우한 처지였으나 거칠 것 없었던 그의 삶과 정신을 읽어내는 것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서는 한겨울 유배지에 서 있는 쓸쓸하기 짝이 없는 노송 네 그루를 보는 게 아니라 꿋꿋이 그 모든 역경을 견뎌내는 한 선비의 올곧은 의지와 그리고 그걸 잊지 않고 알아주는 옛 제자에 대한 고마움까지도 읽어낸다. 또한 민영익의 <노근묵란도>에서는 뿌리가 드러나 있는 난초들의 줄기와 꽃들에 눈을 빼앗겨 그 자태와 향기에 취하기보다는 구한말의 한 고결한 선비가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던 망국의 슬픔과 울분을 먼저 읽어낸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겸재 정선의 대작 <금강전도>에 이르면 우리의 감탄은 경탄에까지 이르게 된다. 커다란 원 안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다 담아낸 대담한 구도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배열한 제시(題詩)와 기년명(紀年銘) 및 관지(款識)의 독특한 배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유례가 드문 이 걸작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화성(畵聖)이라고까지 추앙 받는 화가였으며 동시에 『주역』에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던 조선의 한 선비가 자신의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그 웅혼한 뜻을 오주석 선생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철저하게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오주석 선생의 옛 그림 읽기는 그래서 결국은 그 그림을 그린 작가 읽기로 귀결된다. 작가의 인품과 서화의 품격이 서로 내밀하게 이어져 있다고 보는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현대예술이론가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답적인 이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린 옛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주석 선생의 이러한 견해에 우리는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인화 하면 사람들은 흔히 점잖은 남종(南宗) 산수화나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부터 떠올린다. 그것들은 흔히 수묵으로만 그렸거나 혹은 옅은 채색을 곁들인 수묵 담채화(淡彩畵)인 경우가 많다. 산수나 사군자가 문인화를 대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꽃과 새를, 인물을 그린 문인화가 없지 않고, 또 화려하게 채색을 쓴 작품이라 해서 문인화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재, 기법 같은 형식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인화에서 무엇을 보는가? 작가를 본다. 한 인간을 본다. 소재가 소나무든 대나무든 꽃과 새, 심지어는 소나 말, 그리소 거창한 산수라 할지라도 화폭 속의 사물은 그저 보이는 외야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작가 그 사람만의 독특한 내면 풍경으로 환원되는 까닭이다. (2권, 93쪽)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옛 그림들의 소재가 산수(山水)나 사군자 말고도 호랑이, 매화, 씨름판, 옛 고사(故事) 등 참으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오주석 선생의 주된 관심이 언제나 그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 라고까지 말한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정약용이 부인이 보내온 헌 치맛자락 한 조각을 잘라 신혼의 딸에게 그려준 <매화쌍조도>가 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림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전문적인 화가의 눈으로 보자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그 그림에는 갓 결혼한 딸의 행복을 멀리 유배지에서 빌어주는 안쓰러운 부정(父情)이 가득 담겨 있고, 오주석 선생은 무엇보다도 그걸 먼저 읽어낸 것이다. 고사 속 인물을 소재로 삼은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역시 미학적으로 별로 볼 게 없는 평범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그림에 담긴 작가의 마음, 즉 태평성대를 염원하고 임금께 선정(善政)을 청원하는 마음을 읽게 되는 순간, 고사 속 인물인데도 기이하게도 윤두서 자신의 얼굴을 똑 닮은 그림 속 선비의 모습이 참으로 따스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그렇다고 해서 오주석 선생이 옛 그림의 미학적 측면을 전혀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보다 식견이 더 많은 전문가들조차도 미처 잡아내지 못한 아름다움을 수없이 발견해냈을 정도로 그의 미적 감식안은 깊고 넓었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에서 서양화에는 없는 우리 옛 그림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인 ‘여백의 미’를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겠지만, 오주석 선생처럼 그 여백 속에서 화가의 못다한 마음(노년의 쓸쓸함)까지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어린 소년과 고집 센 나귀의 힘겨루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 김시의 <동자견려도>에서는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그림의 구도에 주목함으로써 소년과 나귀 사이에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그 힘겨루기의 판세까지도 쉽게 예측하는 통찰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림에 대한 그의 미적 통찰이 얼마나 섬세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데, 진실로 우리 옛 그림 들여다보기를 즐긴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일 것이다. 일찍이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것처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오랜 진리는 그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예술은 궁극의 경지에서 단순해진다. 그리고 분명해진다. 거기에는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다. 화가는 그리는 게 본연의 임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더 그리고 싶은 욕구를 어느 순간 차갑게 끊을 수 있다는 것, 아니 무엇을 그리지 않아야 좋은 그림이 되는지를 절로 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사 화가들이 넘볼 수 없는 지극한 경지다. 그리고 단원 같은 천재라 할지라도 대체로 현명한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획득하는 드높은 경지다. 김홍도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한 작품의 3분의 2를 그냥 비워두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대체로 음악가들은 빠른 곡보다 느린 작품의 연주를 어려워한다. 거기에는 침묵의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에서 형상을 조금 그리고 여백을 많이 남기는 것 또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둘 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적은 만큼 남겨진 빈 부분을 채울 그 무엇을, 작가의 마음속에 거꾸로 살뜰하게 품고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인다 함은 아마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들어 있으므로 가능하리라. <마상청앵도>에서 큰 것을 머금은 작은 것이 무엇인가? ‘시선(視線)’이다. 저 선비의 기품 있게 들린 고개를 보라. 매혹된 영혼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 매혹의 대상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꾀꼬리 한 쌍일 뿐이다. 선비는 참 풍류를 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그림의 주제가 된다. 물론 선비의 시선 외에도 동자의 천진한 시선이 있고, 꾀꼬리의 은연중 경계하는 눈길이 있고, 또 말의 아랑곳하지 않는 눈빛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감상자의 시선이다. 선비는 그림의 아래편에 있다. 꾀꼬리를 바라보느라 고개를 치켜든 그는 새소리에 몰입된 까닭에 그림 보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꾀꼬리에 넋을 앗겨 멍하니 자신을 드러내고 있을 뿐…… 그러나 감상자는 화폭 중간에 눈높이를 두고 주인공을 살펴보느라 절로 시선을 내리깔게 된다. 바로 이때 선비의 올려다본 시선과 보는 이의 내려다본 시선이 마주친다.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순간적으로 똑 떨어지게 이루어지며, 보는 이도 자연스레 선비의 시정(詩情)에 젖어드는 것이다. (2권, 72~73쪽)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옛 그림 감상자로서의 이러한 섬세함이 있었기에 오주석 선생의 시선은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 너머,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마음에까지도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이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작가의 마음을 더 이상 간직하지 못하게 된 지금 이 시대의 세태에까지 결국 가 닿게 되는데, 이때 그의 시선은 예리해지고 글은 단호해진다. 조선의 선비들이 ‘물아일체’를 추구하며 자연 경물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려낸 산수화들을 즐겨 보았던 그의 눈에, 자연보다는 인간, 인간 속에서도 특히 ‘나’를 앞세우는 서양식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교육 현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전역의 산중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겨레의 상징 동물 호랑이가 지금은 멸종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전혀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 생태적 재난에 대해서도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그래, 옳커니 하면서, 고개도 끄덕이면서 책을 읽어나갔으나 다음 문장 앞에서는 나 역시도 낯을 붉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조선의 멸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朝鮮)’을 ‘이조(李朝)’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조시대니, 이조백자니, 이조회화니 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일제 때부터 이 말에 익숙해진 노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조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분들은 이조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그것이 내포한 불순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학을 전공하는 일부 학자들에게 있다. ‘이조’라는 말은 옛 문헌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용어에는 뭔가 곡절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버젓이 ‘이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흔히 이조는 ‘이씨 조선’의 준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조의 ‘조(朝)’는 조선을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라, ‘왕조(Dynasty)’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라를 일컫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면, 고려는 왜 ‘왕조(王朝)’라고 하지 않는지, 신라는 왜 박, 석, 김 세 성을 따라서 ‘박조(朴朝)’, ‘석조(昔朝)’, ‘김조(金朝)’라고 부르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은 이조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쓰도록 강요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빼앗은 것은 부덕했던 전주 이씨들의 왕권일 뿐, 옛 조선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 통치 아래서 더 잘 살고 있다는 억지가 숨겨져 있다. (2권, 200~201쪽) 이 글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무심코 써왔던 ‘이조시대’, ‘이조백자’라는 말에 담긴 일제의 저의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강대국에게 비굴하게 취하는 저자세’라고 알고 있는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말뜻도 사실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기 비하 심리를 조장하기 위하여 그들에 의하여 왜곡되고 조작된 것이지 그 유래가 된 『맹자』에서 밝혀놓은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사대주의는 사소주의(事小主義)와 짝하는 것으로서 힘에 의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예(禮)의 정신에 근본을 둔 평화적 외교 관계였으며, 따라서 소국이 대국과 현실적 관계를 가질 때 자기의 독립성과 이익을 유지하려고 취했던 대응 방식이었던 것이다. 아, 부끄러운 무지(無知)여! 그러니 뭐가 되었든 우리가 무슨 일을 제대로 즐기려고 할 때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우선은 제대로 아는 것이겠다.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일 텐데, 이 책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는 우리 옛 그림들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준법이니 운지법이니 하면서 수묵화의 기법들을 어렵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작품들을 택하여 하나하나 그 작품들을 들여다보면서 마치 슬라이드 강의 하듯이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또한 그림 바깥에서 작가의 삶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까지도 불러들여서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는 오주석 선생의 옛 그림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우리 옛 그림을 보고 읽는 기본 지식이 쌓이게 되기 때문이다. 오주석 선생께서 아직 살아계셨다면 분명 더 많은 우리 옛 그림들이 그의 눈길 앞에서 숨겨놓은 아름다움과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들려주었을 텐데, 그래서 우리 옛 그림들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졌을 텐데, 아쉽게도 그는 지난 2005년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니 참으로 슬프다. 너무 늦게야 그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도 든다. 언제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을 때, 그때는 꼭 이 책을 들고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을 다녀와야겠다. 우리 옛 그림들을 이젠 내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고 읽어봐야겠다.
|
|
사실 처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차라리 1권과 2권을 함께 묶어서 양장본으로 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그림을 넣기 위해 반들반들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이 경우 양장본이 아닌 경우 쉽게 제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권과 2권 따로 내놓은 것 역시 따로 따로 판매하여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주석 선생 사후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에서 유고를 모아서 출판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로 묶어서 내는 것 역시 좋은 모양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유고를 묶어서 낸 것이기 떄문에 1권에 총 12개의 옛 그림이 소개된 데에 비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이렇게 6개의 작품만 소개되고 있다.
일단 가장 먼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소개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따로 언급할 것이 없지만 글쓴이는 일제 시대 일본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의해 한국 호랑이가 멸종된 것은 한민족의 정신, 그 기개와 기상이 허물어졌음을 상징한다(p.22)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호랑이를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유전적으로 극히 미비한 것이나 나는 호랑이 보다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호랑이의 수난은 굳이 일제 시대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글쓴이는 <송하맹호도>의 표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은은한 옥색의 우리 나라 전통 표구가 아니라 화려한 비단으로 치장된 표구로 인해 그림 관람에 적잖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구된 옛 그림을 대할 때에는 원래의 여백이 좀 더 넓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p.55)
그리고 <마상청앵도> 역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살펴본 바 넘어가도록 하고 이 책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금강전도는 한마디로 '이상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이상한 형태로 '제시'를 배열해 쓰고, '기년명' 그리고 '작품 제목'과 '작가 호'를 따로따로 적은 관지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아래 사진은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온 것인데 제시 윗부분이 짤려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이를 주역의 심오한 이치가 담긴 그림이라고 평가한다. 즉,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태극을 세워놓은 모양이고 제시 역시 주역으로 해석하여 조선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원하다는 깊은 뜻까지 담았다고 보는 것이다.(p.135) 덕택에 책에 갑작스레 주역 내용이 나와서 당황을 하였으나 같은 그림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그림을 보는 기쁨이 아닐까? 다만 조금 억지로 주역을 꿰맞춘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해석은 나름 일리있고 흥미있다. ![]()
그리고 글쓴이는 [조선과 이조]라는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p.207) 이렇게 아주 열변을 토하시던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고 남의 춤을 추는 것은 과거 우리의 전통 옷, 음악, 술, 춤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짐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뛰쳐진 것에 대해 반성은 없고 단순히 시대 한탄만 하고 있으면 불만만 많은 늙은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한 현재 우리 나라가 주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오늘날 젊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인 글쓴이 세대 사람들 잘못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라가 백년 못가도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라라라면 차라리 망하는게 좋은 것이다. 이렇게 가끔 맹목적으로 전통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만 보여주는 글쓴이의 글을 읽을 때면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오주석 선생 사후 처음 유고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유고를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문장의 흐름 역시 다듬어 지지 않았는데 과한 손질을 하면 고인에 대한 누를 끼칠 가능성이 높아 그 작업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편집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미리 알지 못하면 유고라고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책이 나온 것에 대해 독자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기쁠 따름이다. 다만, 다시는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누군가 오주석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기를…. |
|
조선시대 회화의 걸작을 오주석 선생의 해설과 함께 읽었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모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원고를 집필하시다 고인이 되신 저자의 사연과 그 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전문가들이 모여 유고집으로 이 책을 출판했다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이 얼마나 장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책을 통해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것도 평생에 이루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함께 우리 문화와 예술을 논하던 지인들이 뜻을 모아 유고집을 내어준것은 고인의 삶과 인격이 어떠했는지 대변해 주는것 아닐까 싶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는 찬찬히 볼수록 값진 그림이다.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게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일제가 민족의식 말살을 위해 우리땅에서 호랑이를 절멸시킨 치욕의 역사가 더욱 서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일본식 표구에 담긴 호랑이가 얼마나 가소로운지 돌아보면서 조선시대 옛사람의 안목이 얼마나 고매한 것인지 더불어 알게 되었다. 이어지는 '마상청앵도'는 선생께서 비교해주신 병풍속의 다른 그림과 함께보니 그토록 열심히 설명하신 뜻을 조금이나마 알것 같다. 한시속에 담긴 시상과 선비의 그윽한 눈길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회화 자체로서도 훌륭한 그림이라 생각되지만 주역을 통해 풀어주신 조선시대 성리학의 이념과 이상세계가 담겨있는것을 알게되어 놀랍기 그지없다. 음악은 음악일뿐이고 예술은 예술일뿐이라는 생각의 요즘 예술가들에게 진정한 예술의 완성은 정신세계의 구현이고 작품속에 작가의 인격과 이상이 해석 가능하도록 담겨있어야 함을 가르쳐주는것 같다. 놀랍고 자랑스러울밖에...
정약용의 '매화쌍조도'와 민영익의 '노근묵란도'를 통해서는 학문을 통해 이름을 남기신 두 어른을 친견하는 것 같은 친밀감과 존재감이 느껴진다. 뜻이 곧은 선비가 가슴에 담은 자식사랑, 나라사랑의 마음이 시공간을 넘어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람에겐 이루어낼 성취 못지않게 항상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것이라고 알려주시는것 같다.
'이채 초상'은 우리 옛그림이 대상의 단순화와 추상화를 통해서만 표현되는줄로 이해할 뻔한 나에게 옛 화가들이 초상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사실적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확연히 알려주고있다. 이를 통해 평상시 수행을 쌓는것은 자기과시를 위함이 아니며 때에 이르러 그 방도를 가려 쓰는 법이라고 가르쳐 주시는것 같다.
옛사람들이 한옥을 지을때도 그 구조와 장식의 단순하고 소박함 속에 정교함과 치밀함이 담겨있고, 비례와 반복을 통한 통일감만을 추구하지 않고 조금씩 규칙을 벗어나는 파격을 통해 자연과 닮으려고 했다는 선조의 지혜와 미감을 생각할때 우리것의 소중함은 더욱 절실하다. 옛그림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해주신 오주석 선생과 유고간행위원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
| 우리문화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일깨운 많은 이들 가운데 특히 조선회화의 정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되살려낸 오주석 님의 유고작품이다. 여섯 작품을 소재로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 기법, 화가와 그림의 표현된 정신세계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화를 통해 현세태의 못남과 조선화를 결코 제대로 살릴 수 없는 잘못된 일본문화의 영향을 꾸짖는 선생의 일갈은 여지껏 알지못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그림보기 방법을 다시 생각케 한다.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늘 자연을 향해 열려 있었다. 수더분하고 맑고 깨끗했던 겨레의 전통문화, 그것을 일구어온 심지는 대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 거기서 우러난 생활의 경건함 그리고 지극한 정성스러움이었다. 꼭두새벽 작은 소반 위에 정화수 한 사발을 정갈하게 길어 놓고 아무도 모르게 소망을 빌었던 옛 아낙의 손길 은 언제나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듯 곱고 깨끗한 마음결이 우리 옛 그림은 물론 음악과 무용, 옛 건축과 도자기 그리고 때묻 은 목가구며 선인들이 짜낸 낡은 멍석자리 위에도 아직껏 고스란히 스며 있다. #아름다운 예술품이건 참된 생각이건 혹은 알뜰한 사랑이건 간에 세상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것 은 모두 선하고 결 고운 마음이 빚어낸 것이라 믿으므로... =》오주석 님이 이 책을 펴기 위해 써놓은 서문의 글귀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것을 선하고 결 고운 마음으로 소개해 주신 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2006년 3월 28일 어제 주요일간지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치마서첩(하피첩)' 3점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다산은 첩을 만들고 3년 후 남은 치마 조각에 '매조도(매화, 참새 그림)'를 작은 족자로 만들어 딸에게 주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오주석 선생의 글이 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 실려 있다. 이 치마서첩은 아내의 '부부의 정'에 '자녀의 사랑'을 실어 아들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준 다산의 애틋한 가족사랑을 느끼게 해주며 더욱이 기존 다산의 글씨에서 볼 수 없는 전서篆書가 포함 되어 있어 문화자료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 치마서첩을 접하였다면 오주석 님의 기쁨은 얼마나 더 컸을까...........안타까울 뿐이다.) @ 하피첩에 부쳐 병든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만년에 서글픔을 가눌 수 없구나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