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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만 생긴다는 ‘배아형 횡문근육종’이 예순다섯 살의 ‘어머니’에게 생겼다.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째이고 저자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암환자에게 무엇을 먹여야할지 고민하고 요리를 한다.
#맹렬한허기 는 단순히 신체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왜 하필 내 엄마에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를 생각하며 가족과 친구 관계망, 세포들 속에 자리하고 있는 유전성, 패턴 등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게 된다. 아마도 ‘맹렬한 허기’는 이런 배경으로 시작되는 듯하다.
암이라는 부조리에 맞서며 우리는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답,... 허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며 요리를 한다.
요리를 통해서 삶의 일상성을 유지하면서 삶의 부조리를 해석하며 알아가는 과정을 암환자의 돌봄과 아주 조화롭게 써내려간 기록이 바로 이 책이었다. 단순한 암투병기 그런 것이 아니라 뜻밖에 철학인문학적인 사유로 읽는 이를 안내하고 있어서 참 특별한 책이었다.
저자 #캐런바빈 은 ‘암과 요리의 계절’ 이라 부제를 달아놓았지만, 그 생각의 폭은 과학, 종교, 예술, 사회, 역사, 자연 등을 넘나드는 광범위함이 있었고, 요리로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들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또한 여성이라서 느끼는 고통에 대한 부조리한 시선 및 인식을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가져와 펼쳐주는 부분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런 면이 이 책의 비범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잘 쓴다. 어려워 보이는 내용도 술술 친근하게 문장을 만든다. 제목만 보고 건강관련 에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건강도 들어있지만 인문철학쪽에 더 가까운 에세이란 생각이 든다.
‘맹렬한 허기’는 암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낡고 폭력적인 은유를 걷어내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새로운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숨은 보물을 찾았다.
_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세포 단위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논리를 뛰어넘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개별성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일지 모른다._p22
_부조리란 세계의 근원적인 불협화음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말한다. 종교, 과학, 요가, 예술은 모두 그 불협화음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내놓으며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 요리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다. 즉, 세차게 끓어오르는 물 표면에서 터져 나오는 거품들 사이 공간에서, 숨결 사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열망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이다._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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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치료와 비과학적 은유들. 그러나 정성, 사랑, 시간을 쏟은 음식 같은 것들은 우리를 ’살게‘ 한다 이 책은 희귀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고 먹이는 일상으로 가득한 에세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면서 새로운 요리를 시작한다. 채식주의자로서 사본 적 없는 고기를 사고, 그러다보면 아끼는 냄비들과 그 냄비들에 붙은 이름들이 남는다. 그러한 일상들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만든다. 질병. 약. 항암치료. 우리는 이러한 단어들을 쉬이 환자에게 갖다 붙이곤 하지만, 실제 그들의 ‘삶’엔 다른 단어들이 넘쳐난다. <고요한 밤>을 불렀던 추억들, 할아버지가 능숙하게 구워주셨던 팬케이크, 그들만 아는 ‘월터 먼데일 핫디시‘.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논의는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혹은 경계없음이다. 과학적으로 병을 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일상을 채워주진 않는다. 당연하게도 환자는 ’환자‘라는 정체성으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항암 성분이 있는 채소가 잔뜩 들어간 병원식이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때로는 불 앞에 오래 서있던 딸의 마음이 느껴지는 스튜 한 그릇이 ’희망‘을 주기도 한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은 시간과 사랑을 향한 우리 몸의 욕구까지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다가 사라진 아픈 사람들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들과 나의 건강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그들이 아파할 때 나 역시 힘을 내지 못하곤 했다. 그때 나에게도 색색의 냄비들과, 무언갈 뭉근히 끓이는 시간들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도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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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허기》 | 캐런 바빈 지음, 이주혜 옮김 채식주의자인 저자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고기 요리를 시작한다는 소개가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원래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투병을 계기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꺼내고, 고기를 손질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한다. 요리라는 행위가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인,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책은 어머니의 투병 과정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달별로 기록한다. 항암치료와 병원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족과 함께한 일상의 에피소드와 계절의 음식이 나란히 놓인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암은 삶의 전부가 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있는 집에서도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을 담고 있지만 책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나 역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가장 받고 싶은 사랑의 모습 중 하나로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 많이 공감했다. 병을 치료할 수도, 고통을 대신할 수도 없지만 오늘 먹을 한 끼를 만들어줄 수는 있다. 돌봄은 어쩌면 이런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빈티지 조리도구에 이름을 붙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애그니스, 에스텔, 페넬로페라는 이름을 가진 냄비와 프라이팬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 저자의 일상에 이야기를 가진 존재가 된다. 어머니의 병처럼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상황에서, 저자는 이름을 붙이고 음식을 만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들어간다. 책에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손택은 질병에 환자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 같은 의미를 덧씌우는 것을 경계하고, 암을 ‘전쟁’에 빗대는 방식도 비판한다. 반면 바빈은 질병 자체를 은유화하기보다, 질병을 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음식과 사물(무쇠 팬)에 의미를 부여한다. 통제할 수 없는 병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삶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 원제를 찾아보았다. 원제는 《All the Wild Hungers》로 ‘Wild’를 ‘맹렬한’으로 옮긴 점이 좋앆다. 허기는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 곁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 평범한 하루를 계속 살아가고 싶은 마음처럼 느껴진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을 향한 허기는 더 맹렬해진다. 정말 좋은 여성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어머니의 항암이라는 사건을 하나의 서사로 만들기보다 음식과 계절, 가족의 일상 같은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돌봄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긴 마음을 오래 생각하게 한다. 질병과 죽음에 관한 책이지만 삶의 감각을 잃지 않는 에세이를 찾는 사람, 그리고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여성의 목소리로 쓰인 에세이를 읽고 싶다면 《맹렬한 허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위 도서는 녹스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녹스 #맹렬한허기 #캐런바빈 #allthewildhungers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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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적게 나오는 여행기, 암이 주제지만 암에 함몰되지 않는 투병기. 어쩌면 독자인 나로서 내는 욕심이겠지만 이런 글을 읽을 때 에세이의 묘미를 맛 본다. 무거운 주제를 자기 안으로 끌고와 숙성해서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 글을 창작하는 에세이스트들의 존재는 늘 소중하다. 저자 캐런 바빈은 에세이를 쓰고 창작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친다. 인간과 자연 풍경 그리고 가족의 역사를 탐구해 자신만의 문장으로 써내려 가는 작가. 이번 눅스 서평단을 통해 접하게 되었고 완독하고 나서 전작을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문장력이 탁월했다. 희귀암에 걸려 항암기간 동안 식욕을 완전히 잃은 어머니가 먹어야 할 육식을 만드는 채식주의자 딸. 독일계×스웨덴계 가족을 둔 미국인으로 나고 자란 작가의 배경과 미네소타의 자연이 에세이의 근간을 이룬다. 항암 부작용으로 식욕을 상실한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던 작가는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주말 식탁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들 이었고, 기억을 되짚어 음식을 준비하고 할머니의 레시피를 읽으며 식탁을 차린다. 중고샾에서 산 르 크루제 무쇠팬에 이름을 붙여 주고 닭 육수를 뽑는 하루의 시작- 읽으며 신성한 아침 루틴을 보는 듯 명상하는 느낌으로 빠져들곤 했다. 이 주혜 번역가님 '옮긴이의 말' 부터 역순으로 읽기 시작했다.번역가님의 글을 통해 '질병' 과 '돌봄' 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문장의 유려함으로 훨씬 몸에 가깝게 들어왔다. 만약 나중에 에세이를 쓴다면 캐런 바빈의 글이 늘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만큼 문장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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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12월,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째고, 나는 여전히 육식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는 중이다.' 책 속 문장이지만 놀랍게도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20년 가까이 채식주의자로 살아왔고,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매일 고기를 손질하고 국을 끓이며 식탁을 차린다. 한때 살아 숨 쉬던 존재를 식재료로 마주하는 일은 지금도 내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오래 지켜온 신념마저 기꺼이 넘어서게 만든다. 채식주의자인 내가 육식을 요리하며 느꼈던 딜레마와, 독한 항암약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든 단백질과 지방을 충분히 드시게 하려고 골몰했던 시간들이 저자의 기록과 너무도 닮아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책은 암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에 담긴 가족의 역사와 어린 시절의 기억, 함께 식탁을 둘러앉았던 시간, 부엌을 채우던 온기를 차곡차곡 꺼내 놓는다.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조차도 저자의 문장 안에서는 파르메산 치즈 국물처럼 뭉근하게 끓어오른다. 뜨겁게 몰아치지도,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지도 않지만 천천히 스며들어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희망이나 절망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였다. 기적을 약속하지도 슬픔을 덮어버리려 하지 않고, 대신 오늘도 국을 끓이고 재료를 다듬고 함께 밥을 먹는 평범한 하루로 삶을 바라보며 이어가게 만든다. 결국 음식은 헌신이었고, 요리는 사랑이었다. 비록 내게는 저자처럼 이름을 붙일 만한 멋진 르쿠르제 냄비는 없지만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불 앞에 서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어머니는 수술 후 보조항암을 마치며 한 계절을 마무리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기약 없는 암과의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음식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 어려운 날에도 오늘의 한 끼를 준비하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결국 삶은 이렇게 손에 잡히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내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채식주의자인 내가 육식 요리를 하는 이 모순된 일상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예정된 이별의 슬픔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있으면서도, 오늘 먹을 한 끼를 정성껏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죽음에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맞서는 방식이라는 것을 캐런 바빈의 『맹렬한 허기』는 알려주었다. 오늘도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일, 그것은 어쩌면 삶을 끝까지 사랑하는 가장 평범하고도 용기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 . . #맹렬한허기 #캐런바빈 #맹렬한허기_캐런바빈 #녹스출판사 #암과요리의계절 📚 출판사 @nox.et.libro 로부터 선물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