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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courte de p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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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거대 출판사로 성장한 이 회사가, 그 시점 아니라 그 훨씬 전부터도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프랑스 굴지의 갈리마르와 손 잡고 그 총아(寵兒)인 decouverte총서(叢書)를 한국어로 번역해 내던 십여 년 전 그때만 해도, 어느 분의 영식께서 설립한 사업체이다(ㅋㅋ)이상의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워낙 이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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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거대 출판사로 성장한 이 회사가, 그 시점 아니라 그 훨씬 전부터도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프랑스 굴지의 갈리마르와 손 잡고 그 총아(寵兒)인 decouverte총서(叢書)를 한국어로 번역해 내던 십여 년 전 그때만 해도, 어느 분의 영식께서 설립한 사업체이다(ㅋㅋ)이상의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워낙 이 프로젝트의 의도와 결과물이 좋았고(보통 이런 고급용지에 도판이 깃들인 문고류는 한국의 실정에서 수명이 그닥 길지는 않은데, 이 시리즈만은 우리가 지금 보듯 단연 예외를 이룬다), 이후에도 이 출판사가 손을 댄 기획은 내는 족족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성공사례를 이루었음은 보는 바대로이다.


decouverte는 영어로 치면 바로 discovery이며, 같은 서구어라고 해도 미묘한 개념상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나, 이 두 단어는 그 모양, 어원상의 유사성 못지 않게 현대 자국어에서의 외연과 내포 면에서도 역시 패럴렐을 이룬다 할 만큼 비슷한 작용이다. 영어의 저 단어나 우리말의 '발견'이나, 그 뜻이 단지 외계의 사물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각 작용의 발현만을 의미하지 않고 쉽사리 '각성'의 의미로 전화가 가능하듯, 이 갈리마르 오리지널의 거대 기획은 일견 흔한 주제를 고른 듯하면서도 그 참신한 서술과 편집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정통적 시각과 익숙한 다수설의 편안한 배경을 넉넉히 마련하면서도 최소한 그 표현의 참신성이라는 덕목을 빠뜨리는 일이 없어, 진정 독서깨나 한 독자에게도 뭔가 새로운 '발견'이나 하게 한 양 넉넉한 포만감을 안겨준다는 분명한 기능을 발휘한다.


교황 열전, 혹은 교황 제도의 약사(略史), 통사를 다룬 책이라면 이 책 말고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분량으로도 각각 이 책의 십여 배를 넘으며, 또 그 부피에 걸맞은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편이라 여러 모로 참고하기에 좋은 양서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전문적 지식을 머리 속에 쌓거나 저술에의 레퍼런스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 작고 예쁜 책 한 권만으로도 이천 년 교황제의 지난 자취를 그 정수만 가려 정리하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세 번을 읽어도 머리 속에 채 남지 못하고 지나치는 항목이 나올 만큼,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화수분적 미스테리를 체험하는 맛에 이 책을 재독 삼독하게 된다 해도 그리 과장이 아니다.


가톨릭 사제 두 사람의 저술이니만치 그 태도상의 중립성이 의심된다거나, 혹은 아예 무신론 독자의 입장에서 불필요하게 스쳐 지나갈 각종 불편의 서술 부착을 지레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최소한 읽는 이 자신의 공정성부터가 객관적 검증에 버텨낼 양심상의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이 책은 충분히, 또 시종해서 페어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점 본 리뷰어가 담보할 수 있다. 예민한 이라면 아마 그노시스 운동 서술 부분에서 그 평가의 '단호함'에 당혹을 느낄 수 있겠고, 중세 카타리 파에 대한 설명의 일부에서 그 '냉혹함'에 다소의 '의분'이 일 수 있겠으며, 현대사 파트에서 나치즘, 파시즘 관련 기술에서 보이는 '개운치 않은 얼버무림'에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책을 펼치기 전부터 지레 부담으로 다가올 '종교 개혁' 관련 챕터에서, 이 두 저자가 얼마나 노련하면서도 유익한 필치로 난제를 쉬 어루만지는지 그 솜씨를 구경한 후에 이르러, 역시 넉넉히 공정한 심성을 갖춘 독자라면 합당한 찬사를 보내는 데에 별반 이견이 없을 것이다.


보통 '카노사의 굴욕'이 오해되듯, 교황제의 역사적 성격 역시 크게 오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 '굴욕'이란 위세등등한 교황의 위신 발휘를 풍자하거나 치켜세우는 게 본의가 아니며, 오히려 무엇에도 굴함이 없어야 할 군주의 위신이 그런 '사소한 추락'이나마 일시 감내해야 했다는 그 점에 무게가 있다. 포인트는'굴욕이 일점도 없어야 할 군주의 지엄함'에 놓인 것이지, '세속 군주를 능멸하는 교황의 득세'가 결코 아님은, 이 책이 아니라 중등 교과서만 잘 읽어도 알 수 있는 팩트이다. 다만 교황사를 다룬 어느 책이건 결코 누락할 수 없는 그 이벤트에 대해, 이 책은 역시 요점만 잘 간추리고도 운치 있는 문학적 서술로 핵심을 모두 전달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교황제 전반의 특색 역시, 영광과 권위를 누리던 시절이란 이천 년 전체의 비중에서 매우 짧게 지나칠 뿐이며, 그 대부분은 분열과 부패, 독직과 독신(瀆神), 약탈과 망신으로 점철되었다는 점 이 책은 '내부자'의 관점으로도 매우매우 정직하게 묘파하고 있기에, 그 진상과 실상을 현대 독자에게 냉연히 전달함에 있어 부족함이 전혀 없다. 종교 개혁기 각종 서적과 매체에서 교황제를 적그리스도의 화신으로 비꼰 각종 도판을 큼직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책의 대범함이랄까 오픈된 태도를 쉬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되려, 로만 가톨리시즘 성향의 독자라면, 이 호된 자아비판적 곤욕 속에서 의기소침, 혹은 모멸의 불쾌를 체험하는 게 보통일까? 역시 통상의 교양을 갖춘 독자라는 전제 하에, 이 책은 그런 역경과 수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온 그 오랜 명맥의 지탱에 차라리 경의감을 새삼 다지게 한다고나 해야 합당한 평가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서술하는 바에 따르자면 그 오랜 '연명'의 비결이란, 참된 성직자와 '신의 종'의 비율이 비록 그 열에 하나, 혹은 스물 중의 하나라는 아주 미미한 비중이라고 해도, 그 소금과도 같은 청빈과 건전한 학식의 방부 작용이, 사악한 권력욕과 치부에의 타락이라는 원심 작용을 끊임 없이 막아내었다는 사실 역시 감동적으로 적어 내고 있는 것이다. 쌩뚱맞게도 이 책의 대단원은 느닷 돈강(頓降)의 회의론으로 빠지면서, 당혹스럽게도 현대를 '역사의 마비'로 규정하고는 있으나(이 부분은 납득할 수 없고, 혹 오역이나 아닌지 원저를 찾아 대조해 보고 싶다), 성실한 독자가 완독 후 느끼는 감정은 '역사의 (재)발견'에 가까웠다는 점 다시 강조해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권은 특히나 디스커버리 총서의 모범적 총아이다.


s****o 2012.10.05. 신고 공감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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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자에서 인간들을 위로하는 자로.
"신의 대리자에서 인간들을 위로하는 자로." 내용보기
1] 아마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일반인으로 끌어내려진 대표적인 인물들을 들라면 일본왕과 바티칸의 교황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에서 인간으로내려온 일본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신의 대리자이자 천국의 문지기였던 교황이 자신들의 지난 역사 동안의 과오를 시인하는 요즘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2] 사실 2차 대전 동안의 나치에 대한 묵인(으로 가린 침묵의 찬동)
"신의 대리자에서 인간들을 위로하는 자로." 내용보기
1] 아마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일반인으로 끌어내려진 대표적인 인물들을 들라면 일본왕과 바티칸의 교황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에서 인간으로내려온 일본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신의 대리자이자 천국의 문지기였던 교황이 자신들의 지난 역사 동안의 과오를 시인하는 요즘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2] 사실 2차 대전 동안의 나치에 대한 묵인(으로 가린 침묵의 찬동)은 물론이고, 십자군 출병, 신대륙 침략 등등의 굵직한 과오들만 해도 엄청나기는 하다. 그러나 교황이란 직위가 한 사람의 어깨에 걸려있기는 해도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정점에 있는 한 조직의 수장이란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고, 앞으로는 더욱더 인간의 위로자로써 진실되길 바랄 뿐이다.
4***e 2001.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