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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초원,야생의 동물들,끝없는 사막,울창한 밀림,찌는 듯한 더위,무서운 말라리아 모기들...이 모든것이 아프리카엔 있다 아직도 아프리카는 우리에겐 미지의 세계이며,신비에 싸인 문명과 야생의 세계이다
19세기 초엽까지도 미지의 세계였던 검은 대륙의 베일을 벗긴 것은 유럽의 식민주의 열강들이었다
초기엔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탐험활동들은 결국 경제적, 정치적 지배욕을 채우기 위한 정복활동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 책은 아주 솔직하게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주의,선교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파괴행위들,풍부한 자원에 대한 착취와 수탈로 점철되어버린 아프리카 탐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백인들의 영광 그 뒤편에 숨겨진 원주민들의 피와 땀,그 뜨거운 숨결이 느끼고 싶다면,이 책을 선택함에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탐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잔지바르에 체류하는 동안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고,한 순간도 낭비하는 일없이 탐험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필요한 피륙,유리제품,철사 등을 사들여야한다" 라고 스탠리는 그의 탐험일기에 적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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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은 탐험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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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노예무역으로 관계를 맺은 이후 3세기 동안 유럽인의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은 해안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19세기에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유럽인의 절반이 희망봉 지역에 거주할 만큼 아프리카 내륙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였다.
유럽인들이 최초로 아프리카 탐험에 나서게 된 동기는 고대에서부터 의문시 되어온 나일강의 수원을 찾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리빙스턴,스탠리,베이커등의 탐험가들이 내륙오지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적 정보가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아프리카의 정치적영향력의 확대를 꾀한 영국외무성이 이를 지원하게 되면서 아프리카 탐사는 민간차원에서 국가적인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탐험가들의 탐험일지에는 흑인들의 무지,야만적인 생활,그들에 대한 경멸등 편협한 시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히려 흑인들을 동등한인간으로 보고 관용적인 태도로 그들을 개화시키자고 주장한 리빙스턴이나 아프리카 정착하여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했던 여류탐험가 킹슬리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수 있을 것이나, 이들의주장 역시 백인우월주의를 전제로 한 입장에서 나온것임을 작가는 지적한다.
탐험가들의 목적이 순수한 연구차원이었든, 선교사업차원이었든 간에 이들의 탐험결과는 유럽의 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침략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에 기여하였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에서 발견된 수많은 내륙의 호수와 강등에 이름을 붙이기전 이미 아프리카인들이 부르던 명칭이 있었다. 세계 3대 폭포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인들이 '포효하는 연기'라고 불렀던 폭포였음을 이야기 하며 백인들의 오만함을 작가는 비판한다. 또한 탐험가들의 위대한 성과는 연봉 7~35달려의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kg에 달하는 무거운 짐도 마다하지 않고 들고, 현지지리에도 정통한 현지인들의 공적이 있었음을 잊지말것을 기억하여야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