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머씨이야기를 시작으로 향수.깊이에의강요.콘트라베이스.비둘기. 로시니까지.. 두번 이상씩 읽으면서도 킥킥거리고. 역시~!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이번 ''사랑을 생각하다.'' 제목.... [ㅋ ㅑ..쥐스킨트 아저씨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 준데...무슨 이야기를 해 주실려나~] 가슴 콩콩 거리며....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쉽지만 깊이를 가진..엉뚱하면서도 친절하게 사랑을 이야기 해 주리라...하며..망설임 1초도 없이 구입했는데.. 어렵다 --;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이야기 하시니 나같은 애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여느 책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논문의 한 구절구절들을 배껴놓은듯한.. 쥐스킨트 아저씨께서 9년동안...혹시 철학공부를 너무 하셨나... 그 이름만으로 별표 다섯개를 드리고 싶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운 책이다. 나와 그동안의 쥐스킨트 아저씨와의 감성이나 문장 코드가 이쯤에서 빗겨나가는 사이가 아니길.... 오랫만에 만난 옛 애인이 낯설게 변한 느낌... |
| 이전의 작품에 의해 쌓인 무조건적인 신뢰....혹은, 실제 작품성은 어떻간 간에 내 취향에 딱 꽂히는 작품만 눈에 띄어서, 이름만 듣고도 무작정 책을 사게 되는 몇 안되는 작가들 가운데 하나, 파트리크 쥐스킨트. 옛날에 우연히 학급문고에 꽂혀있던 ''좀머씨 이야기''....(확실히 애들이 읽을 책은 아니다는 생각은 뒤늦게 들었다.)를 읽고, 그 이후 ''향수'' 나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깊이에의 강요'' 등에서 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꽤 입맛 까다로운 나에게 불평 한번 들지 않게 하는 작가였다. ......''였다'' 라는 과거형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슬픈 현실. 아무래도 이 책은 그가 나에게 작가로써 보여준 완벽한 모습에 흠집을 냈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뭐,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적인 작품이고, 동시에 나온 시나리오 ''사랑의 추구와 발견'' 과 같은 테마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둘다 읽어야 완벽해 질 것이다.....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쨌건 이 작품 자체로의 완결성은, 그야말로 나를 서글프게 하는 수준이었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통한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는 다 출판사에서 흔히 쓰는 뻥튀기 광고. 실제 내용은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하면서 느낀 얕은 감상에서 그닥 벗어나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대 비교를 하려고 한 것은 그 발상은 참신했을 망정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세 가지 사례를 들어 사랑에 대해 고찰해 보려 한다는 그의 의도는, 여러 이야기를 꽁꽁 뭉쳐서 작은 공통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파편으로 흩뿌려서 결론은 없이, 그 생각의 파편을 뒤쫓는 독자들의 머리만 아프게 하고 끝났다. 한마디로, ''사랑이 뭔가를 생각해보았더니 역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로 허망하게 끝내버렸달까. 그래, 확실히 ''사랑은 이것이다'' 라는 것은 확실히 오만일 것이다. 누가 사랑의 참 모습을 완벽하게 한가지 결론으로 끌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간 좀머씨 이야기 등을 통해서 쥐스킨트가 보여준 것은, 세상의 보편적인 사고를 부정하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밝혀내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가 ''사랑은 이런 것이다'' 라는, 평범한 생각과는 다르면서도 그것 이상의 결론을 ''오만하게'' 내어주어서, 또한번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그런 기대는 이 책에서 완벽하게 부서졌다. 용어나 사례만 다를뿐, 누구의 머릿속에서나 맴돌법한 사랑에 대한 잡상을 조금 다듬어서, 이렇게 (글씨도 크고 얇은 두께의) 책으로 낼 수 있는 것은 ''쥐스킨트'' 라는 이름이 가진 힘일까. 차라리 ''사랑의 추구와 발견'' 의 뒷 부분에, 시나리오의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하는 페이지로 붙어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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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랑.....,남성과 여성의 이런 진실한 사랑이 결혼을 가능하게 합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실한 사랑이 뭡니까?"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눈빛이 강렬한 신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랑이 뭔지는 다들 알 텐데요." 더는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부인은 대답했다. "저는 모릅니다.뭘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말해 주시면.... ." "뭐라고요? 매우 간단해요." 부인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사랑이오? 사랑이란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를 다른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이랍니다." 그녀가 말했다. "얼마나 좋아하는 거죠? 한 달? 이틀? 반 시간?" 신사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웃기 시작했다. /181
'사랑'에 관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냉소적이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보려고 작정한 듯한 남자 포즈드니 셰프를 만난 기분이였다. 톨선생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을 관람하고 악평을 쏟아 냈다고 하던데..나는 이 소설집에 실린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힘들었다. 당시에 이 소설이 얼마나 파장이 컸을지 짐작이 갈 정도다... 그런데 사실 너무 정직한(?) 소설이어서 사람들이 화를 내고 불쾌감을 느낀건 아니였을까...소설을 읽고 난 후'사랑'이란 도대체 뭘까..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도서관에서 운명처럼 <<사랑을 생각하다>> 보이게 될 줄이야 자석에 끌린 기분으로 책을 엎어 왔다.
쥐스킨트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아니였다.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만나게 되었다.톨스토이의 소설을 읽고 난 후유증 극복(?)치료제가 될 것 같은 기분이...쥐스킨트의 글도 말랑말랑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해설서 성격을 취하는 에세이라고 했다.그러나 '사랑'을 주제로 한 글인 만큼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읽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었다.오히려 복잡한 듯한 이야기 속에서 명쾌하고 분명한 답을 얻은 기분이다.사실 이와 같은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무언가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다는 것은 알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책의 도움(?)으로 한 번 더 명쾌하게 정리하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남자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사랑이란 존재를 믿지만,자신이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음에 증오하고 있었기에 모두를 다 자신과 같은 부류로 규정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그와 같은 불안이 끝내 자신과 아내를 파멸로 이끌게 된 건 아닐까..사랑을 절대적 무언가로 규정하지 않고,같은 사람이 없도 사랑도 여러 결이 있다고 생각했다면...그러니까 사랑은 수수께끼 같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미로 같은 거라 생각했다면 남자의 마음은 조금 편하지 않았을까.. 쥐스킨트는 사랑에 과한 담론과 사례들을 통해 사랑의 조각을 그려냈다.그리고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는 않았지만 금욕적인 사랑이 절대우위에 있는 건 아니라는 쪽에 조심스러운 한표를 던지는 방향으로 마무리 되는 인상을 받았다.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에우리피데스와오르페우스까지 거슬러 가야 하는 걸까 싶었지만 영원불멸의 어려움 혹은 불가능을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비유가 아니였나 싶다.사랑에는 수많은 사랑이 있고,그것을 사랑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도 이어지고..그러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두어야 할 사랑...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피로감은 사실 너무 사실에 가까운 소설이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탓이였을지도 모르겠다.불쾌하고 화가 치밀었던 감정은 쥐스킨트의 글을 통해 연민의 시선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그리고 '사랑' 에 관한 이야기만큼 흥미로웠던 글 속에 인용된 노작가..와의 만남을 잊을수 없을 것 같다.실존 작가였으며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토마스 만의 <일기>를 인용 하면서 쥐스킨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고,작가가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마침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에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보여서 리스트에 담아 놓았더랬는데..읽어야 할 타이밍이 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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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쥐스킨트!!!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이름인가. 거의 10년은 된듯하다. 햇살 따스했던 그 겨울날, 막바지 기말고사 공부에 슬슬 지겨워져서 윗층 열람실로 가서 무심코 집어든 책 한권. 그때 선택의 기준은 얇고 쉬우며 가벼운 소설책일 것. 파스텔 톤 삽화가 간간이 섞여 있는 그 책 속에서 쥐스킨트 아저씨와, 그의 화신이라고도 여겨질 정도인 좀머씨를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쥐스킨트 아저씨의 책들을 전부 찾아서 읽어 들였는데, 비둘기 콘트라베이스 등 역시나 얇고 가벼운(책 자체의 무게가) 책들이었지만, 좀머씨에 비해선 무거운(그 내용이) 책이었다. 향수에 취해, 쥐스킨트에 취해, 결국 로시니...까지 갔으나 그뒤로 종적을 감춘 쥐스킨트 아저씨. 기억에서 거의 사라질 쯤 되니까 향수가 다시 새판으로 나오고, 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그러던 차에 쥐스킨트의 재래를 알리는 반가운 광고를 보게 되었으니, 그간의 기다림을 보상이라도 해줄량인지, 두권이 한꺼번에 발간되었다. 물론 그중 하나는 ''공저''라는 꼬리가 달려있긴 했지만. 2. 사랑을 생각하다. 쥐스킨트 아저씨와 사랑이라...과연 사랑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어떻게 썼을지 궁금했다. 사실, 그를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물론 철없는 독서시기에 읽은 이유때문이기도 하겠지만-그렇다고 지금은 철있는 독서시기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쥐스킨트 아저씨의 주된 관심과 생각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두 권중 우선 이걸 택한 건, 당연히 공저라는 꼬리가 좀 못마땅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감칠맛 날 듯한 소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제는 ''사랑과 죽음에 대하여''. 책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말엔 어김없이 죽음이란 말이 따라 다니는 것 같다. 죽을만큼 사랑해, 죽어서도 널 사랑할거야, 사랑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아... 사랑과 죽음은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이면서도 잘 어울려 다닌다. 이처럼 좋은 문학적, 연극-영화적 소재가 또 어디 있을까. 하다못해 요즘의 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 한둘쯤 죽어 나가는 건 대수도 아니지 않는가. 쥐스킨트 아저씨는 먼저 사랑에서 출발한다. 주변에서 볼수 있는 세가지 사랑의 예를 드는데, 물론 우리가 그걸 사랑이라고는 부르지만, 결코 좋아보이거아 해보고 싶은 종류의 그런 사랑은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사랑이 젊은이들에겐 기쁨을 주고, 노인들에겐 새로운 활력을 주며, 노작가에겐 예술적 영감을 주긴 했지만... 이어서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죽은자들의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녀를 데려가도록 허락을 받았으나, 세상으로의 문턱에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그녀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를 통해 죽음과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오르페우스의 행위와 예수의 행위(죽은자를 되살리는)의 비교를 통해, 그들이 추구하고자 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솔직히, 좀 이해 안되는 면도 있도, 논리 전개에 조금은 억지스러운(고집스러운, 이라고 해야하나? 깐깐한 꼰꼰한 완고한 그런 성격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면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3. 사랑을 생각하다... 그냥 생각을 했을뿐이다. "어느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면 더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맨앞에 이런 글귀를 인용하고 들어가는 이유를 알아챘어야 했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알아챘었다. 고로, 이책을 통해 사랑에 관한 뭔가 심오한 진리를 얻어내는 것을 불가능하다. 단지 쥐스킨트 아저씨가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과 연관시켜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 뿐이다. 물론 작가적 상상력과 글을 지어내는 뛰어난 솜씨로 인해 전혀 새로운 시각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순 있다. 4. "사랑을...생각하다"...를 생각해 보니, 일단 너무 가볍다, 책 무게가. 1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얇은 책. 한시간만 읽으면 뚝딱 다 읽겠다. 하드커버 양장으로 만들어져 나왔는데, 굳이 이걸 따로 떼어서 발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책만드시는 분들이 열심히 생각하셔서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책 한권으로 나올만한 가치, 그 가격에 팔 만한 가치!-가 있음을 결정했겠지만, 그래도 앞뒤 겉표지 두께 합한 것이 내용의 두께와 맞먹는 그런 종류의 책을 집어 들면, 어쩔 수 없이 그 "얇팍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물론 얇팍한 두께가 항상 얇팍한 상술을 의미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얇은 책 속에도 깊은 지혜가 담길 수 있는 법이니, 그 지혜의 샘을 파고 들어가 맛을 볼 수 있는 진정으로 착실한 독자의 포스를 지니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목마름을 참을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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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한다. 좀머씨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구든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전히 좀머씨처럼 숨어지내는 작가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은 그의 소설과는 다른,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강의. 예전에 읽었던 깊이에의 강요같은 느낌이었다. 조금은 답답하고.. 조금은 나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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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는 사교성이 결여된 은둔형 작가로 알려진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에세이다. 2005년 1월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철학, 신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고금을 넘나든 지식을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자신의 방식대로 설명하며 독자를 이해시킨다. .
도서관에 가자마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도서를 집어 들었다. 선택을 마치고 뒤돌아서려는 찰나 우연히 내 시선이 눈에 잘 띄지 않던 어느 책장의 언저리로 이동했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얄팍한 도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수필집 '사랑을 생각하다'였다. 평상시 그의 작품은 빠짐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하지만 책의 표지를 전체적으로 감고 있는 투명한 비닐이 훼손되어 미관상 좋지 않았다. 이왕이면 깨끗한 책을 기분 좋게 보고 싶어서 처음엔 다소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뒷면을 돌려 보니 '아무개님이 도서관 이용자를 위하여 기증하여 주신 책입니다.'라고 적혀있는 문구를 붙어 있었다. 막상 기증 도서라는 문구를 보니 책의 손상 상태도 저절로 이해되는 듯했다. 망설임 없이 앞서 대출하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서는 제자리에 꽂아 놓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대출했다.
'사랑을 생각하다'는 철학과 종교적인 부분까지도 접근했지만, 특별한 거부감이나 이질감은 없었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서 만난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친근했으며 앞에 읽었던 소설들과는 다르게 여타의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사랑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지적 탐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의했다. 적절한 예시와 문헌을 인용하여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직설적이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문제의 요지에 접근하여 적당한 시점에 호기심을 유발하여 주의를 환기했다. 그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카리스마는 독자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다소 엉뚱함으로 웃음을 자아내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예컨대, '사랑을 배설물과 확실하게 구별해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이 책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철학적인 요소들을 접목해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므로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요구한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책에 구멍이 뚫린 듯 내용 파악에 허점이 생겨 앞 문단을 다시 읽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랑을 생각하다'가 긴 여운을 남기는 건 아니지만, 그의 글귀를 통해 내 머릿속에 잊고 지내던 사랑에 대한 잔상을 떠올리며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두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어느 정도 멍청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자신이 쓴 연애편지를 한 20~30년쯤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라.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 멍청함, 치기, 우월감, 그리고 맹목적인 사랑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내용은 얼마나 유치하고, 문체는 또 얼마나 격정적인가. 평균 이상의 지적인 사람조차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어리석은 내용을 써내려 간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너그러운 시각에서 말한다면, 순진무구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에서 오히려 공감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은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멍청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입증해 줄 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의도로 하는 충고들, 저항할 수 없는 논증들, 분명하고 진실한 언급들이 얼마나 커다란 저항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를(혹은 그 남자를) 사랑해요!>라는 반응 말이다. 더 나쁜 경우에는 그것을 질투로 인한 적대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서, 똑같은 보복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수년간 지속된 우정과 진정한 관계들이 깨지고 만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한테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연인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있을 수 있는 모든 일들은 그녀에 대한 사랑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은 텅 비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몰두하고 있다. 한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치, 지성, 활기, 호기심, 그리고 신중함은 사라져 버렸다. 성스러운 뭔가를 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죽은 자의 시선처럼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멍청한 표정뿐이다.
- p.36~p.37 - |
|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어떤 책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 집이였구나.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을 설명을 하려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인용한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정말 사랑이라는게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가 "사랑이 뭐니?" 라고 묻는다면,, 막상 뭐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너, 사랑에 빠졌구나!!" 그렇게 몽롱하고 애매한 것이 사랑이 아닐까? 쥐스킨트는 사랑을 "사랑에는 도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 속에서 성스러움을 보고 있으며 뭔가 창조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을 에로스의 본질을 충족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무엇인가? 에로스는 욕망과 충동에 좌우되는 것이라는데.. 플라톤은 향연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영혼은 세 개로 나눌수 있는데, 그것은 전차의 성질이 다른 두 마리 말고 거기에 타고 있는 인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단다. 성질이 다른 두 말을 인간이 그러니깐 이성이 얼마나 잘 길들이는가. 뭐 그렇게... 이런 소크라테스나 아우구스티스 플라톤 등을 예로 들어 사랑을 이야기 하다가, 이제는 문학 작품에 나오는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것이 진정 쥐스킨트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듯 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보바리 부인, 안나 까레리나 등을 예로들면서 이들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랑을 테마로 한 작품에서 의외로 죽음이 많은 듯하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끼느니 죽여버린다" 이말 역시, 사랑 때문에 나온 말이지 않은가. 그 중에 오페르우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오페르우스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오페르우스가 저승의 하데스를 찾아가 아내를 몇년 동안만이라도 더 살려달라고 하자, 하데스는 조건을 내건다. "저승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것"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자린고비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시중을 한 며느리.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즉시 아이를 데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오. 대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요." 두 사람 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에 갈등을 느낀다. 어쩔까.. 어쩔까.... 오페르우스 이야기로 되돌아가, 오페르우스는 아내가 정말 뒤에 따라 오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없다면 어떡하지? 하데스가 나를 속인 걸까? 사랑하는 아내가 진짜 있는 걸까? 오페르우스는 사랑 때문에 갈등을 한다. 그렇게 쥐스킨트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넘어서 사랑과 죽음의 사이까지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오랜만에 생각을 해 볼수 있는 글을 읽은 듯해서 기분이 좋다. 내친김에 쥐스킨트의 <콘트리아베이스>까지 다 보려했는데,, 역시 집중력의 한계로 반쯤 보다 내려놓았다. 한동안 의미없는 소설들만 읽어대다가 사념적인 결론이 없는 것을 보는 맛도 꾀 솔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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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지만 살면서 한 번씩은 해보게 되는 질문, 사랑이란 무엇일까.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개인에 있어서도 참 많이도 다루었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적해 오직 글로만 독자를 만나고 있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곰곰이 생각하듯 여러 번 질문을 되뇌고, 플라톤, 스탕달, 괴테, 바그너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불러와 그들의 저서에서 다룬 사랑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비교해본다. 그저 쥐스킨트의 책이라 고르게 된 이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보단 '사랑'에 대한 철학적 보고서나 짧은 소논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책은 헬무트 디틀과 공동작업한 시나리오이자 영화<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해설서를 겸하는 에세이라고 한다.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영화는 전쟁이다>라는 긴 제목의 첫 번째 시나리오 이후 쥐스킨트가 쓴 두 번째 시나리오 작품이 <사랑의 추구와 발견>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시나리오의 내용에 대해서는 책의 맨 뒤 옮긴이의 글에서 알게 되었다. 해설서인 이 책에도 물론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한 여인 에우리디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길 바랐던 오르페우스와, '죽음'이라는 인간이 가진 약점을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예수라는 인물을 비교하는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신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존재를 비교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사랑의 면모를 부각하는 저자의 글 솜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국내에는 2006년 시나리오와 함께 발간된 <사랑을 생각하다>는 (간간이 새롭게 재판되어 나오는 <향수>등의 책들을 제외하면) 저자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너무나 좋아했고 대학교 때부터 그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터라 내게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는 여전히 현역의 젊은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다. 사람들을 피해 은둔자 같은 생활을 했다는 작가의 특성상 그의 프로필 사진이 더 이상 늙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삼 확인해보니 그는 올해로 만 69세(우리나라 나이로는 칠순!)의 나이가 되며 그의 대표작인 <향수>는 무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이었다. 아직도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작품을 썼던 작가 움베르토 에코처럼 그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며, 아직 발표하지 않은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리란 기대와 상상을 해본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사람을 가장 모순투성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옛 지성들은 물론 기록에 남지 않은 무수한 무명의 인류는 모두 살아가며 저마다 사랑의 정의를 갖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파멸과 비극에 치닫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도 있겠지만, 우리는 보통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했을 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라는 느낌을 받는다. 새해의 첫 책으로 썩 괜찮은 책이었다. 서평을 쓰며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의 저서 중에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시나리오 책을 올해 안에 꼭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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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한다. |
| 가벼우면서도 깊게 생각하게하는 ㅎ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그 누구도 쉽게 답ㅍ할 ㅎ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만 아 누구의 사랑이 가장 인감적이며 가장 숭고할까를 알게 해준다. 처음에는 좀 저질 스러운게 아닌가하다가 끝까지 읽으면 좋은 통찰을 주리라.....................샬롬의 사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