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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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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소설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자기 안의 내면을 가공시킨다면 수필은 온갖 양념을 제외한 체 담백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 식으로 자아를 드러내는 글일까? 한 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했다. 물론 그냥 읽었을 때 '이건가 보다' 감이 오는 글도 없진 않지만, 작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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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소설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자기 안의 내면을 가공시킨다면 수필은 온갖 양념을 제외한 체 담백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 식으로 자아를 드러내는 글일까? 한 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했다. 물론 그냥 읽었을 때 '이건가 보다' 감이 오는 글도 없진 않지만, 작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한다면 그 시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이 책은 시인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다가가기 난해했다. 왜일까? 연의 구분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껏 읽어온 시와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즐겨온 겉핥기식의 독서로서는 이해치 못할 무언가 깊은 세계가 시안에 잠들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뒷부분에 수록된 작품 해설을 약간 읽고 난 후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시는 빨리 읽으라 주어진 글이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은 그렇다.

과거에 대한 진한 향기랄까? 기억에 의존해 지난날을 더듬는 시인의 촉각에 그리움이 걸린 듯해 보였다.

-누군가를 앉혀줄 수 없을 때에도 / 의자는 꼿꼿한 척추를 펴서 하늘의 구름을 센다 / 지나간 것들 마흔여섯, 서른다섯, 스물넷(p 39)

버려진 의자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몸을 데워줬을 사람들의 엉덩이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낡아버린... 하지만 저자는 고물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그 의자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누군가가 의자 위에 앉음은 타인의 생을 끌어안은 게 된다. 잠시 의자에게 앉았다 일어나는 행위가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나 의자에겐 인연의 형성인 것이다. 하지만 의자에게 주어진 관계는 피상적이다. 마흔여섯, 서른다섯, 스물넷. 숫자로 치환된 인생들은 특정 시점에서만 유효할 뿐 시간이 지난 후 이전에 자신의 몸에 걸터앉았던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형성된 관계는 단절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럼에도 의자는 사람을 기다리고, 이왕이면 그 사람은 이전에 자신과 교류가 있었던 사람이길 꿈꾼다.
의자는 사물이다. 하지만 그 의자는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버려졌다는 것, 그리워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인간은 모두 의자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많은 시를 놔두고 유달리 이 시가 마음을 파고들었던 까닭은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잘 형상화한 듯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다른 요소보다도 이미지에 중점을 준 듯. 그녀의 시는 읽으면서 무언가를 계속 머리 속에 그리게 된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소를 파는 어머니의 슬픈 모습과 아이를 친정에 맡긴 체 달아나는(?) 언니의 뒷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기억이다.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아찔할 수도 있는... 그렇다 하여 그녀가 정착한 도시가 그녀에게 행복을 선사한 것은 아니었다. 메주 발효하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름 모를 곰팡이들의 활동이 왕성한 그 곳은 다름 아닌 지하철이다. 시골집 처마에 매달려 있는 메주가 정겨움을 상징한다면 지하철에서 발효되는 메주는 불쾌함의 상징이다. 빼곡이 들어찬 사람들에 치이는 도시는 메주의 따스함은 물려받지 못한, 오로지 역겹기만 한 공간이다. 화려한 도시 이면에는 소외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찾은 분식점은 다 찌그러져 버린 폐차를 그 공간으로 하고 있다. 폐차의 찌그러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불꽃이 내뿜는 그을음이다. 죽음이 공간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무언가를 창조하기엔 너무도 미약하고, 그 곳에 들어앉은 사람들의 모습은 아마도 무기력함과 가까울 것이다. 이는 도시의 속성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 화려함에 웃음을 짓는 반면,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죽어간다. 차가 할퀴고 간 도로 위엔 신원 확인이 힘든 주검이 누워있다. 가던 길을 더 이상 재촉하지 못한 체 길 위에서 사람이 죽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도시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속하지 못하는 작가는 중간에 붕 떠버린 듯, 자신이 속할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어쩌면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q*****2 2007.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