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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올라가는 O-miya 스파이럴 빌딩. 35층 짜리 나선형 구조로 완공되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건물. 이 소설은, 이 건물과 관련된 두 사람, 설계사 <이누카이>와 철근공으로 일하는 <하야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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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을 하며 규슈에서 와서 <규슈>라고 불리며 현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어 남성정조대를 사용하는 남자 하야토. 스무살인 나호코라는 아가씨와 바람을 피며 설계일을 하고 있는 이누카이. 두 사람은 한공간에서 일하지만 한번도 서로를 알지못하고 만나도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Number 10에서 Number 1의 순으로 구성되는 목차는 아마도 아래의 다음 노래의 영향을 받은듯.
Ten... kiss me on the lips 뭔가 끈적끈적한 곡이지만 그다지 좋지는 않다. |
| 역시 난교의 시대인 것일까... 사실 며칠 전 김영하의 소설에도 일대일이 아닌 이대일의 섹스(하마터먼 삼대일로 발전할 뻔한)가 등장했다. 게다가 김영하의 소설은 초반부에 이 난교가 곧 일어날 것처럼 언급을 하고 나서는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그 난교의 장면을 보여준다. (가뜩이나 잘 읽히는 김영하의 소설, 게다가 초반부에 이런 장치를 해놓으니 얼마나 초스피드로 읽게 되는지, 원...) 도대체 과거의 어느 시점을 낙심하며 회상하거나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 나이든 여자가 스무살 연하의 남자애들과(이들이 일류대학 법학과 학생이라는 것에 무언가 숨어 있는 것일까) 그다지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이대일 섹스를 하는 상황이 작가의 메시지 전달에 정말 필요한 설정이었을까, 싶어 기분이 씁쓸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김영하만큼이나 젊고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요시다 슈이치를 오랜만에 읽고 있자니, 여기에도 떡하니 난교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등장한다. 이번엔 이대이인데, 바람을 피우는 상대인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 남자의 아내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라는 설득력 없는 핑계를 대며 이대이 섹스를 요구하고 결국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바로 옆 침대의 두 사람을 참지 못한 남자가 벌떡 일어서고, 이대이 섹스를 하고자했던 여자 또한 몸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상황은 종료되고 만다. 두 작품이 다르고 두 작품에서 이러한 일대일이 아닌 섹스가 다루어지는 방식도 다르지만, 여하튼 연이어 읽은 소설에서 연거푸 난교가 등장하다니...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의 남자로 요약된다. 도쿄에 살고 있으며 설계사이고 신도시에 ‘O-miya 스파이럴’이라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의 공사현장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 지역의 호텔에서 생활하는 이누카이가 그 중 한 명... 그리고 이 거대한 공사장의 한 켠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하야토가 또 한 명이다. “... 열쇠를 풀고 허리에서 정조대를 벗어버리자 처음에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련의 그 행위가 끝나자 짧은 순간 맛보았던 해방감 이상으로 묘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가령, 쇠사슬에 묶여 사육되던 개가 갑자기 목줄에서 해방된 것 같은, 점원이 없는 심야의 편의점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설계사 이누카이가 어린 여자와의 불륜 관계를 이어가는 와중에 난교의 경험을 하고, 또 혼자 떨어져 사는 아내 노리코가 현대적 재료인 콘크리트로 아트하게 꾸며진 집을 거부하며 친정으로 떠나버리는 경험을 하는 동안, 잡역부 하야토는 아무도 몰래 남성용 정조대를 차고 생활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런 걸 입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지? 그건 뭐랄까, 내가 뭘 하든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갑자기 없어져도 말이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내가 세운 빌딩만 거기 남는 거야. 어때? 좀 상상을 해봐. 슬프지 않아?” 도시는(혹은 도시의 건설은) 모두에게 행복한 곳일까. 새롭게 건설되는 건축물과 그 건축물의 건설에 제 노동력을 판 사람들... 건축물을 설계한 이누카이는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공사장에서 누군가 자살을 하여 그곳으로 달려가는 동안 이 구조물의 약한 부분을 생각하며 건물의 자멸을 상상하고, 건축물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하야토는 같은 방을 쓰던 동료가 목을 맨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정조대를 찬 상태에서 여자에게 결혼을 하자고 조른다. “... 주어진 자리에 만족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주어진 자리가 못마땅해 불평을 하면서도 끝내는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현재를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하나하나 만족하기 때문에 오늘을 살 수 있는 걸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면서 지표 노릇을 하는 상징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남산 타워나 63빌딩, 무역센터빌딩이나 잠실롯데월드와 같은... 과거라면 남산 아래, OO 저수지 옆으로 지칭되던 공간은 이미 오래전 스타타워 맞은 편이나 갤러리아 건너편 등으로 수정된 지 오래다. 도시야말로 대표적인 유기체이다. 십년이 되어야 변하는 강산에 비한다면 노래방이 PC방으로 PC방이 성인오락실로 변하는 데에는 수년이면 충분하다. 자연의 생태계보다 훨씬 치열한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도시는 숨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한 도시의 생태계에서 인간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 가령, 당신이 뉴욕을 방문했다고 해보자. 아마도 당신은 사라진 쌍둥이 빌딩의 자리를 허공 속에서 찾느라 눈에 힘을 주기는 하겠지만, 바로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골똘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시다 슈이치는 랜드마크가 될 건물의 건축 과정, 그리고 그 건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또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매우 명쾌한 방식으로 도시 사회학을 다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작가는 매우 유용한 지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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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10 <요시다 슈이치> - 은행나무 \9,400 <파크라이프> 다음으로 읽게 된 <랜드마크>.. 이 작품의 ‘공간’에 대한 평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파크라이프>의 ‘공원’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선 요시다 슈이치의 ‘차가운 시선’이 어떤 곳을 보여주고 있을지, 그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랜드마크>의 책장을 펼쳤다. 요시다 슈이치 특유의 ‘차가움’이 잘 드러난 작품.. <랜드마크>는 요시다 슈이치스러운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 속에서 나타나는 그런 차가운 감정들.. 그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차가운 속성’의 감정들을 고층 빌딩 즉, 랜드마크가 건축되고 있는 도심을 배경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아니 우리 역시 포함된 도심 속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드러나는 ‘단절’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가 보여주는 것..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는 절대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35층짜리 대형 건물을 세우는 동안 같은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말 한마디 나눈 적 없고 다른 장소에서 마주쳐도 금세 떠올리지 못하는 이누카이와 하야토의 모습, 정조대를 하고 다니는 기행을 일삼지만 아무도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 거리에서 살인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뒷모습과 같은 기묘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풍경 같지만 <랜드마크>를 읽다보면 이렇게 단절된 것 같은 풍경들이 묘하게 겹쳐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풍경 속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넓게만 느껴지는 도심 속의 사건들이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겹쳐짐’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관심 없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단절이 그 공간을 마치 각각 다른 공간인 것처럼 어긋나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어긋남’을 콘크리트 공사판이라는 차가운 공간에 덧입혀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순의 구성이 주는 효과.. <랜드마크>는 Number10에서부터 1까지 이어지는 역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지상에서 먼 곳(하늘에 가까운 곳이 아닌)에서부터 지상으로 서서히 내려옴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작품의 내용이 점차 지상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도 작품의 ‘알맹이’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은연중에 그 알맹이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암담했기에 마지막부분에 가서는 좀 더 희망적인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는 그 기대를 철저히 비웃는다. 마지막 부분의 그 알맹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아니라 한 인물의 죽음에도 그 인물이 누군지, 왜 그런지 에는 관심이 없고 헛된 몽상만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절, 그 철저한 단절의 순간 속에서 독자들의 ‘랜드마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우리를 경멸하는 듯한 ‘삐로리로링’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요시다 슈이치는 작품을 통해서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기’를 통한 것이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요시다 슈이치의 눈으로 ‘인간’을 본다는 것.. 그 시선을 잠시 훔쳐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이 작가의 ‘마력’(?)이 아닐까. 나도 그런 마력을 지닐 수 있도록, 존재하지만 제발 좀 봐달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그런 곳들을 보기 위해 여러 작가들의 눈을 꾸준히 빌려야겠다. “그 모습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기보다 마네킹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 보였다.” - p25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하늘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평평한 지면에서 멀어진다.” - p61 “누가 하고 싶어서 거짓말했는지 알아요? 얘네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게 만든 거라고요!” - p89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들이 이 밤하늘에 떠 있는 것일까. 그 가운데 어느 문을 열면 나의 집이 보일까. 그 가운데 어느 문을 열면,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줄까.” - p103 “저기, 저 사람들 말이야, 돈을 받으니까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는 건가? 그럼 반대로 우리들은 돈을 지불하니까 아무 짓도 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 p133 “각자 지그재그로 다른 이들을 피해 걷는 것도 아니다. 사전에 코스를 미리 정하고 걸을 리도 없다. 모두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도 마주 오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피해 지나간다.” - p137 “인간이란 존재는, 어쩌면 아무 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생물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나 해서 결국 필사적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게 아닌가..” - p166 “주어진 자리에 만족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주어진 자리가 못마땅해 불평을 하면서도 끝내는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현재를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 살아나가는 걸까 아니면 하나하나 만족하기 때문에 오늘을 살 수 있는 걸까?” - p167 “예를 들어 내가 갑자기 없어져도 말이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내가 세운 빌딩만 거기 남는 거야. 어때? 좀 상상을 해봐. 슬프지 않아?” - p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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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서점에서 쇼핑(?)하게 된 책이다. 평소에는 잘 그러지 않는데, 이 책은 저.. '무라카미 류'가 극찬했다는 말에 혹해서 샀다. 이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매번 둘이 헷갈린다)의 글들을 재미있게 봤기에 알수없는 믿음(?)을 가지고 사게 되었다.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친구 하나가 '건축 하는 사람 아니랄까봐 책도 '랜드마크'냐? ' 라는 물음에.. 문득 나도모르게 그래서였을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그때까지는 책 내용도 모르고...
내용은 오미야라는 지역에 재개발에 의한 랜드마크로 우뚝서게 될 '오미야 스파이럴 빌딩'을 중심으로 설계사와 철근공,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글이다.
주제는 현대인의 위기라고 할까... 아마도 그것을 그린것 같은데, 내가 놀란점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번도 그것이 위기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내주변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정도라고 할까. 이렇게 글로서 비춰지고 나니, 어찌보면 너무나 상막한 글 내용(내 주변의 일상이라 할수 있는 것)에 대하여 당혹스럽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고도 그렇게 그냥 살아가고 있다(아무런 위기의식없이)는 것이, 검정커텐을 드린운 방에 놓여진 것처럼 나를 멍하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이글에서 답은 없다.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것 만으로도, 그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럼 난 뭘 어떻게 해야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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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도서관에서 '랜드마크' 를 읽었다. 책은 오미야에 특이한 모양으로 새로 건설되는 'O-miya 스파이럴 빌딩’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하야토와 이 빌딩 설계자인 이누카이, 이 두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고 있었다.
하야토는 규슈에서 상경한 지 2년째 되는 철근공으로 도호쿠 지방 출신들로 가득한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평일에는 공사장과 기숙사를 오가고, 주말에는 도쿄의 라이브하우스에 가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 중 하야토는 어느날 인터넷으로 정조대를 구입해 착용하고 다닌다. 공사장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던 하야토는 결국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자 정조대 열쇠를 수십벌 복사하며 건설중인 스파이럴 빌딩 각 층마다 하나씩 묻으면서 쾌감을 느낀다.
이누카이는 도쿄의 집에서 오미야까지 출퇴근하는 것이 귀찮아 오미야에서 호텔 생활을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아내에게 다정하고 일도 열심힌 이 남자는 사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나호코와 바람을 피고 있으며, 자신이 설계한 스파이럴 빌딩의 붕괴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책을 읽을수록 단조로운 삶의 반복이 조금은 지루한 감도 있었다. 게다가 책은 마지막에 가서 허무하게 이야기가 뚝 끝나버린다. 마치 이 책에서 주인공들이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는것처럼 이 책은 끝까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채 방관하며 끝나버린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야토와 마사카즈는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며 함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다. 하지만 둘은 서로 어제 이야기한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설계자 이누카이와 하야토는 서로 닮은점이 하나도 없지만 한명은 스파이럴 빌딩 설계자이고 한명은 그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들은 단 한번 스쳐지나갈 뿐 서로 어떠한 '소통'도 나눠본 적이 없다. 이누카이와 아내 또한 가끔 얼굴을 보이고 전화통화도 하지만 단지 서로의 이야기만 형식적으로 나눌뿐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해도 그뿐, 해결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아내는 그의 바람을 알고 있는 걸까? 아내 있는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나호코의 불안과 미안함도 해결해주지 못한 채 자신만의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이누카이, 요시하루가 가족 문제로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도울 생각은 하지 않는 건설팀 동료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행을 떠안고 타인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하루하루를 불안불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야토의 정조대는 언제 들킬 것인가? 이누카이의 불륜의 끝은 어떻게 될까?
책 속 나호코가 좋아하는 드라마 ost 에서 따온 목차를 보면 긴장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숫자 10에서 1까지 카운트다운되는 목차를 보면 그들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비록 결국 둘에게는 아무 일 없이 소설은 끝을 맺지만 과연 진정으로 둘에겐 아무런 일이 없었을까?
그냥 이렇게 살다가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기억을 못할 것 같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는 하야토. 그의 청혼은 받아들여졌을까? 그리고 결혼 후에 그는 정말 행복했을까? 친정으로 간 이누카이의 아내는 다시 이누카이에게 돌아왔을까? 스파이럴 빌딩은 과연 무사히 완공이 되었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심할 것은 없다. 매일매일 수많은 타인과 부딪히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책 속에 하야토와 이누카이처럼 같은 공간에 있어도 무관심한채 자신의 불안을 감추며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부재에 대한 경고를 하는 듯 하다. 타인의 불행을 끝으로 뚝 끝나버린 이 책은 그 결말도 그 주제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책의 마지막 장이 아쉬운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 |
![]()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챙기는 것 중 하나가 기념품이다. 나 역시 기념품을 모으는 중이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 가면 그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미니어쳐를 꼭 산다. 이처럼 어떤 지역을 대표할 만한 건축물을 랜드마크라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하야토는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건설노동자다. 건설노동자라고 하지만, 사실 하야토는 별다른 기술이 없는 막일꾼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남다르다. 높이 35층 높이 200여 미터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 그것도 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 나선형 빌딩을 세우는 현장에 하야토는 투입된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일종의 팀을 이루어서 움직인다. 하야토가 일하는 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고향 출신의 팀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하야토는 외부인으로 비추어 진다. 고향에 떠나온 하야토에게 기댈 곳이란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친구 뿐이다. 그러던 하야토는 어느날 정조대를 구입하여 착용한다. 이유도 모른채 하야토는 그렇게 정조대를 입고 생활을 시작한다. 스파이럴 빌딩을 설계한 사람은 이누카이다. 하지만 그는 빌딩설계에 관련된 일을 하느라 정작 본인의 가정과 아내에는 소홀하기만 하다. 그리고 스파이럴 빌딩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만난다. 불안한 외줄타기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그에게 건물을 짓는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야기는 처음부터 외줄을 타는 듯한 불안함이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일탈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등장인물이 만드는 건물 조차 삐딱하게 나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나선형 건축물이다. 이처럼 등장인물 그리고 등장인물을 둘러싼 공간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 등장인물이 내뱉는 이야기, 그리고 생각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생각의 꼬리를 잇게 만드는 것 같다. 하늘이 높아진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빌딩들로 이루어진 감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p62- 누구든 하나로 결정하기가 힘들기 보다는 누구라도 상관이 없기 때문에 고르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p106- |
|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 참 많이 번역되어 있는 걸 보고, 이 작가의 책이 인기가 많은 구나 생각했었다. 친구가 퍼레이드를 추천해 줬는데- 그 책은 없고,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작품 중에 이 책의 제목이 그냥 끌렸다. 어디선가 요시다 슈이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제 2의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라는 말을 많이 듣는 다는 그런 질문이 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는 신인작가들에게 제 2의 하루키나, 류는 많이 붙는 다며, 자기는 하루키보단 무라카미 류에 가깝다고 했었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보단 난 무라카미 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하나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래서 편견을 안 갖기 위해, 최소한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하나라도 읽어보잔 심정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땐엔 그래도 꽤나 흥미진진했다. 어떻게 전개될 지 내용도 궁금하고- 근데 결말에 가서는 답답하더라. 이 책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이 작가가 쓰려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투명인간. 사람들은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세상에 날 기억해주고, 날 생각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그의 작품이 싫진 않지만, 당분간은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다른 그의 작품은 보류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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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악인으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그 건축물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그냥 잔잔하면서도 쉽게 읽히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그냥 사회,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