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버 부인은 주인공 '그리어 가슨'을 좋아해서 내용도 모르고, 고른 작품이었다. 2차대전 참전후 평화로웠던 마을이 전쟁으로 인해 평화와 일상이 파괴되는 내용을 담은 것인데, 연일 북한의 도발을 연상하는 듯한 발언에 시달리며 긴장감이 없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을 고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미니버 부인은 건축가 남편에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 빈센트를 비롯해서 아직 어린 자녀까지 모두 삼남매를 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여인이었다. 그녀가 사는 마을은 귀족인 벨돈경(卿) 부인의 입김이 세고, 꽃 품평회가 마을의 축제이자 관심사가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웃끼리 알고 지내는 아주 평온한 고장인데, 이 평화로운 마을에도 평화가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이 2차대전 참전을 선언하면서, 이 마을 역시나 전쟁의 폭풍에서 피해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마을에는 입대 바람이 불고, 미니버부인의 아들 빈센트도 공군에 지원해 조종사가 되고, 참전하는 아들을 둔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미니버 부인도 아들의 안위 때문에 초조함을 금치 못한다. 남편도 민간인들도 참여하는 작전에 참여하니 속을 태우기도 했다. 마을 전체는 전지 체제로 들어가는데,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등화관제 훈련을 하는가하면 공습시 대피할 방공호도 집집마다 마련해 놓았다.
전쟁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뒤 흔들어놓는다. 참전한 가족의 안부에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부근에 비행장이 있는 관계로 수시로 전투기 폭격음에 폭격의 피해를 입게 된다. 2차대전은 전투기가 등장해, 후방 역시나 폭격의 위험에 노출되면서 이미 전선이 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습의 피해를 받을 수 상황이 돼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니버 부인'은 중반까지는 전쟁의 위협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고, 전쟁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기꺼이 참전하거나 마을에 비상 조직망을 만들어 공습에 대비하고, 민간인인데도 자신의 배로 정부 작전에 참여하는 등 정부정책에 협조하는 마을 사람들을 비춰 주었다. 영국인 특유의 애국심이 반복해서 나오는 바람에 반전이 아닌 참전 독려 영화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중반이후부터 '미니버 부인'은 분위기는 담담하고 밝은 분위기는 깨지고 본격적으로 전쟁의 희생을 담아낸다. 독일군이 미니버 부인을 위협해 식량을 요구하다가 미니버 부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을 계기로 급속도로 전쟁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담아낸다. 독일군은 미니버 부인에게 자신이 체포되더라도 자신보다 뛰어난 더 많은 군인들이 밀고 올 것이라고 하면서 그 호전성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바야흐로 마을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졌다. 공습을 위해 출격하는 전투기며, 폭격으로 방공호로 대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마을도 폭격을 당해 미니버 부인의 집도 반파되기에 이르는데.
그런데 전시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을은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니버 부인의 아들 빈센트와 벨론경 부인의 손녀 캐롤이 사랑에 빠져, 빈센트가 군복무중인데도 결혼하게 되는 경사를 맞게 됐다. 캐롤은 빈센트가 전사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기꺼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마을의 축제인 꽃 품평회도 거르지 않고 열려, 오랜동안 장미꽃 우승자로 독주하던 벨돈 부인이외의 우승자가 탄생하는 이변도 벌어졌다. 귀족인 벨돈경 부인의 기세에 눌려 대부분 출품을 포기했던 예년과 달리 마을 역무원인 벨러드가 출품한 '미니버 부인'이라고 이름 붙인 장미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꽃 품평회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이 마을에서 여전하게 유지됐던 봉건적 질서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물러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벨돈 경 부인은 시대의 변화를 직감하고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 선택을 함으로써 마음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꽃 품평회의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뿐, 마을은 독일의 대대적인 공습에 시달리게 됐다.각기 집으로 돌아가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는데.. 꽃 품평회에 관람갔던 '미니버 부인'과 캐롤도 차를 몰고 집으로 서둘러 가지만 그 사이에 마을은 폭격을 당하고, 이들의 귀가길 역시나 안전하지 못했다.
'미니버 부인'은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데,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쟁의 공포를 묘사하는 방법이었다. 폭탄을 투하하하는 장면이나 마을이 파괴되고 인명이 살상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도,무자비한 폭격과 그 피해를 상상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방공호에 갇혀서 커피 마시고 책을 보거나 뜨개질을 하고 아이들한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주기까지 하는 어떻게 보면 대피가 아니라 일상을 그대로 누리는 모습이 나왔을 때에는 실소마저 나왔다. 폭격에 위급상황을 왜 저렇게 묘사한 거지?하고 고개가 가웃거려졌는데, 그렇게 평화롭던 방공호 위로 폭격음이 점점 강렬하게 깔리면서 시각적인 장면보다 청각적으로 전쟁의 위험을 묘사하는데 그 효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점점 귀가 찢어질듯 강해지는 폭음과 함께 어두운 방공호가 흔들리다 방공호 문이 덜컥 열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아..이런 게 전쟁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돈 많이 들어갈 폭탄 투하 장면이 없었으니 제작비 줄이고 효과는 배가되고..역시 윌리엄 와일러야 싶었다.
'미니버 부인'은 폭격에 희생된 사람의 장례식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장례 미사를 집전한 신부의 추도사속에 이 작품의 메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싸우자는 것이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희생되는 전쟁, 우리를 위협하는 독재와 공포에 맞서기 위해서,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의 전쟁이라고, 맞서 싸우자는. 이 작품을 내내 감돌았던 항전의 분위기는 끝까지 유지됐던 것이다.
'미니버 부인'을 보면서 내내 물음표가 생겼던 것은 굳이 제목을 '미니버 부인'이라고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그녀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남편은 자발적으로 작전에 협력하는 의로운 시민이고, 또 그녀 역시나 독일군을 신고하고 가족을 지키며 맞서 싸운 사람이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아니면 피하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담당하는 영국시민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때문일까.
이 작품을 고른 이유가 앞서도 말해듯이 여주인공 '그리어 가슨'때문이었다. 어렸을 적에 본 '마음의 행로'에서 본 그리어 가슨의 여성스럽고 차분한 분위기가 생각나서. 이 작품에서도 그녀의 미모와 여성미는 가려지지 않았다. 도드라졌는데, 위급한 비상 상황에서도 늘 성장에 머리를 멋지게 스타일링하고, 화장까지 멋지게 하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호감도가 떨어졌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도 개인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게 또한 실망스러웠다. 이 작품에서는 계급에 따라 외모나 캐릭터 설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진부하고 고정적이라서 윌리엄 와일러 작품 맞아? 할 정도였다. 귀족은 완고했고, 일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외모나 캐릭터, 미니버 부인의 가족들과 캐롤만 우아하고 젠틀하고 외모도 멋졌다는 점에서 다양하지 못한 인물설정과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 눈에 띄였다.
'미니버 부인'은 내가 좋아하는 흑백 고전 영화인데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없었다. 맞서 싸우자는 메세지가 요즘 우리의 시국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어서 인가보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서 그런건지, 어디서 많이 들을 법한 논리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하수상한 시국에는 멀쩡한 영화를 봐도 이렇게 마음 불편해 지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