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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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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하다 발견하게 된 책인데 그림을 다 봐버렸기 때문에 지나가려 했었다. 하지만 동생이 쓴 글도 있다하고 본문이 더 많길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원래 보통의 다른 외국인들과 같이 일본에 먼저 갔던 사람이다. 동양의 매력에 반해 발을 딛게 된 영국여인은 조선으로 와 그 풍경과 문화에 감탄한다. 디자인이 동양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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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하다 발견하게 된 책인데 그림을 다 봐버렸기 때문에 지나가려 했었다. 하지만 동생이 쓴 글도 있다하고 본문이 더 많길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원래 보통의 다른 외국인들과 같이 일본에 먼저 갔던 사람이다. 동양의 매력에 반해 발을 딛게 된 영국여인은 조선으로 와 그 풍경과 문화에 감탄한다. 디자인이 동양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나는 예쁜 책이다. 키스가 조선에 오게 된 계기와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조선으로 와 느낀점이나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고있는데 역사 속의 인물들도 나와 재미있었다. 외국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은 조선의 뒤쳐진 문물을 경멸하는 등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곤 했지만, 엘리자베스 키스와 엘스펫 스콧은 조선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책에도 ''내가 특별히 사랑했던 코리아''라는 대목이나 나름대로 사람들의 성격, 문화를 설명하고자 하는게 보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역시 그 시대에 있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미약하나마 역사적인 증언들도 눈에 띈다. 민비의 시해사건에 대한 소문이나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느꼈던 점, 일본관리와의 대화 등, 이렇게 그 시대에 대해 일기같이 적힌걸 처음보는 나로서는 횡재했다 하겠다. 당시 우리사람들을 볼 수 있는 예쁜 그림들과 글이 있어 여러 사람에게 선물도 하고싶다.
c********k 2006.02.21.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내용보기
도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는 3·1 독립운동이 발발한 지 1달이 채 되기전인 1919년 3월 28일 우리나라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키스 Elizabeth Keith와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Elspet K. Robertson Scott 자매의 눈에 비친 '코리아' 의 모습을 기록한 도서 《Old Korea》(1946년 Hutchinson & Co., Ltd 출간) 에  옮긴이 송영달 교수의 소장품을 보충하여 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내용보기



도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는 

3·1 독립운동이 발발한 지 1달이 채 되기전인 

1919년 3월 28일 우리나라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키스 Elizabeth Keith와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Elspet K. Robertson Scott 

자매의 눈에 비친 '코리아' 의 모습을 기록한 도서 

《Old Korea》(1946년 Hutchinson & Co., Ltd 출간) 에  

옮긴이 송영달 교수의 소장품을 보충하여 완역한 도서이다.

(※ 《Old Korea》 총 39 점 →  위의 도서 총 66 점)



반 고흐, 모네, 드가, 고갱 등 후기 인상파들에게 

많은 영감과 동경을 주던 일본문화 Japonism 이 

당시 서양미술계에 영향을 주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배한 극동아시아의 식민지 민족들의 삶을 

인도주의에 기반한 인간애와 정의감, 

그리고 문화적 상대성에 기반한 존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자매들의 소중한 기록과 

옮긴이 송영달 교수의 안목과 열정으로


3·1 독립운동 직후 많은 조선인들이 

괴롭힘과 학살에 신음하던 시기였지만, 

그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려 애쓰던 

조선인들과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서양 선교사들의 모습을 

글과 그림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고, 


유명한 인물이나 장소만을 다루기 보다는 

민중 개개인의 다양한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남겼기에 

당시의 모습들을 좀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한편, 상투적인 표현일 수 있겠지만 

작가와 옮긴이 모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남겼는데

모순적이게도 동경 대지진 때문에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들의 원본인 목판들이 

대부분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마도 그녀의 작품 외에도 

수많은 작품이 동경 대지진으로 파괴 또는 소실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핵발전을 과신하고 뒷수습도 부정하게 다룬 

일본 정부에 대한 불편함이 들었다.


제발 인류애를 가진 정상적인 일본인들이 많아져 

정의로운 일본 정부가 들어서길 바라본다.




p.s. 엘리자베스 키스전 - 2011 - 국립현대미술관


https://youtu.be/oBF9vmrlc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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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는 

1887 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서 태어나 

1898 년 런던으로 이사했다.


집안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으나, 

아버지는 중요한 관직에 있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9 세기 말엽의 다른 영국 여성들처럼 

살림살이 하는 법, 

즉 요리, 뜨개질 등을 배우면서 자랐으나, 

부모는 특별히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주거나 키워주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명성과 물질적 도움에 힘입으며 

작품활동을 한 메리 카사트 Mary Cassatt 나 

일찌감치 유명 화가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한 릴리언 밀러와는 다르고, 

더구나 유명한 남자 화가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여류 화가, 

예를 들면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독신이었던 엘리자베스 키스는 

홀로 화가의 길을 힘겹게 걸었지만 

천부적 재능을 지닌 키스는 

독학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는커녕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곤 했다.




     p 012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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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동안 일본에서 머문 엘리자베스는 

동생 제시와 함께 '코리아' 를 찾았다.


두 사람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기미년 3 월 1 일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1919년 3월 28일이었다.



경부선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산하와 사람들의 모습은 

키스가 지닌 미술가로서의 

본능적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다른 한편, 기차역 마다 오르내리는 일본 군인들은 

한국이 압박받는 식민지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여전히 전국 여기저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 제시는 

무자비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의 칼과 몽둥이 아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문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서울에 도착한 두 사람은 

편리한 호텔을 사양하고 감리교 선교부에 거처를 정했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사람을 가까이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선교사들, 특히 30 여년간 한국에 머문 

제임스 게일 James Scarth Gale 목사의 안내를 받아 

그림의 모델을 구하는 한편, 

한국이 처한 사정과 

일본인의 잔학한 식민지 정책을 파악하게 되었다.


주로 엘리자베스가 그림을 그리고 제시가 글을 쓴 

자매의 합작품인 《올드 코리아》 는 

그래서 화가의 여행기인 동시에 

일본의 야만성을 지적하고 

한국을 서양 세계에 알리고자 한 

인도주의자의 양심서 良心書 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엘리자베스와 제시가 규탄한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주의, 

그리고 식민지 정책의 비인도주의였지 

일본 문화 자체나 일본인 전체는 아니었다.




     p 013, 014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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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한 시선을 보냈으며 

특히 사라져가는 동양의 고유 문화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


때문에 다른 화가 친구들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당장 캔버스를 펴놓고 스케치를 시작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동양의 창》 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먼저 그것을 들이마셨다.

아니 들이마신다는 말은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 안에서 멱을 감았다.

나는 그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가 

아예 풍경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그 느낌을 종이 위에 재구성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뒤따랐다."




     p 015, 016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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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화가로서 입지를 세운 것은 

적십자 모금을 위한 화집을 발간이 계기였다.


한국에 와서도 그녀는 

그림으로 남을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결핵 요양원을 운영하던 

미국인 선교사 홀 Sherwood Hall 이 

다른 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크리스마스실을 한국에서도 만들려 하자, 

키스는 1934 년, 1936 년, 1940 년 세 차례에 걸쳐 

자기 그림을 크리스마스실에 사용하도록 했다.


때문에 어떤 이는 키스를 도안가로 알고 있기도 하다.



1934 년 크리스마스실에 사용된 그림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그림이다.


크리스마스실에는 '보건' 이라고 쓰여 있지만 

원래 그림에는 그런 글자는 없고, 

한쪽에 '기덕 奇德' 이라고 쓰여 있다.


이는 키스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키스는 목판화 한쪽 끝에 친필 사인을 남기곤 했다.


E. K. 라는 이니셜도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奇德' 이라 한 것이다.




     p 018, 019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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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 1920 ~ 1940》 은 

《올드 코리아》 를 번역한 것이며, 

동생 엘스펫 로버트슨 스콧 과의 공동 저서이다.


그림을 그린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림 설명을 쓰고, 

본문은 동생 엘스 펫이 주로 썼다.


원서에는 약 40 점의 그림이 실려 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는 원서에 실려 있지 않은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약 30점을 추가하여 

총 70 여점을 실었기 때문에 

책의 제목은 《올드 코리아》 를 따르지 않았다.


이 책은 현재 수준에서 구할 수 있는 

키스의 작품 거의 모두를 망라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80여 년 전 한국을 다녀간 

서양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삶과 그림 세계를 

한국에 소개하는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p 019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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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1919 년에 서울을 방문하여 

큰길로만 다녔거나 전차로만 타고 다녔으면, 

아마 서울도 극동의 여느 도시들처럼 

부분적으로 서구화된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도시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대로를 벗어나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알라딘 단지 같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는 

신비스러운 집안 마당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흰색의 돌담길을 돌아 들어가면 

까만 머리를 헝클어트린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밝은 햇빛 아래서 즐겁게 춤추며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 뒤로 열려 있는 마당 저편에는 

암갈색의 장독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고 

그 곁에 반들거리는 노란 바가지들이 걸려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골목은 일종의 미로와 같아서 한구석을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p 048, 049

           1장 ... 서울 ㅡ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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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 2019.05.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또 아주 재미있는 책_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모든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또 아주 재미있는 책_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내용보기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몇개월간 머물며 그림을 그린 영국 화가다. ​ 일본에는 그녀의 언니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고, 언니한테 놀러왔던 키스는 눌러 앉아 일본에서 지내고 그림도 그리고 하다가, 한국으로 3개월 계획을 잡고 들어왔다. 처음부터 책을 출간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니는 글을 쓰고 엘리자베스는 그림을 그려 잠깐 방문했던 한
"모든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또 아주 재미있는 책_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내용보기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몇개월간 머물며 그림을 그린 영국 화가다.

일본에는 그녀의 언니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고, 언니한테 놀러왔던 키스는 눌러 앉아 일본에서 지내고 그림도 그리고 하다가, 한국으로 3개월 계획을 잡고 들어왔다. 처음부터 책을 출간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니는 글을 쓰고 엘리자베스는 그림을 그려 잠깐 방문했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 'Old Korea' (원제) 이다.

아마도 키스가 방문했던 1919년 당시 이미 우리 문화가 많이 말살되고 사라져가고 있었기에 원래의 한국을 담으려 노력했던 키스자매는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1946년 해방 후에 서양에서 출간된 이 책은, 너무나 귀한 진짜 우리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풀어낸 너무나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엔 2006년에 와서야 번역 출간되었다.

키스 작품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던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한 옮긴이 송영달이 아니었다면 이 귀하고 너무나 좋은 책을 이제라도 우리가 읽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너무나 큰 감동과 전율을 전해준 이 책을 출판해주신 송영달 교수님 및 모든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이러한 분들의 노력이 있기에 그래도 이나마 면무식 하고 뻔뻔함을 부끄러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1946년에 출간된 이 책이 이제서야 본고향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참 답답한 현실이나 어찌하리... 나부터 바뀌어야 겠지.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그리 알려진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그냥 그림책으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이 너무나 대단하다. 그림은 그야말로 이 책의 내용을 조금 보충해 주고 확인시켜주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맞을 것 같고, 그 안에 씌여진 우리 조상들의 생생한 모습과 생각들은 너무나 크게 내게 다가오는 진짜 역사다. 누가 권력을 쥐고 쫓기고 하는 권력자의 역사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을 담은 정말 귀한 역사책. 책을 읽는 내내 미소짓고 감동에 빠지고, 슬퍼지고를 반복했다.

자 100년 전 일제에 신음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우리나라에 대한 어떤 지식이 없던,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에서 지내다 온 영국인의 눈에 비친 코리아와 코리안에 대해 살펴보자. 책을 덮기 힘들게 만든 그 생생한 현장속을 잠깐 맛이나 보자.

* 참고로 책 본문내용이 수정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엘리자베스 키스가 형제중 막내다. 그래서 글을 쓴 엘스펫은 언니인데 내가 읽은 초판에는 동생이라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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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생 엘스펫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3일 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애국자들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줄지어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 그런 심한 고통과 구속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많은 한국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나 아픔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스케치한 어느 양갓집 부인은 감옥에 들어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도 일본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려고 흰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일본 사람들은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자국에서의 악질적인 선전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열린 마음을 가진 일본인들은 한국의 문화와 그 미술을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국의 역사가 일본 역사보다 더 오래 되었고 또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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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 4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일본 사람들의 능력, 적응력, 관용성, 지적 호기심, 일상 용구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탄복하기도 하며, 인력거로 여기저기를 다니기도 하고, 기차여행도 하고, 도쿄의 데이고쿠 극장 등에서 연극을 즐기기도 했다. 마침내 우리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한국 여행을 떠나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로 결정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야간 열차는 각종 설비가 잘 되어 있고 편안하고 깨끗하였으며, 두 겹의 유리창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나무 하나 없는 야트막한 언덕의 경치는 원시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봄은 일러서 겨우 나온 볏 잎은 약간의 푸른빛을 보일 뿐이었고, 동산들은 그 둥그런 모습이 마치 오래된 한국 도자기를 닮아 사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붉은 해가 올라올 무렵,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땅은 옛날 도공들이 사용했을 듯 하게 질펀했고, 끝없이 이어지는 논밭 사이로 가느다란 농로가 이어졌다 사라졌다 계속되고 있었다. 가끔 여기저기에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보기에는 사람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버섯들의 군락지 같았다.

날이 밝아오자, 암갈색의 황소들이 잔뜩 짐을 싣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떤 소는 산더미처럼 실은 장작에 가려서 몸집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사람이 옆에서 걸어가거나 끌고 가는 모습만 보였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걸어서 위엄이 있어 보였다. 모두들 시커먼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었다. 기차역마다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는데, 모자를 쓴 사람도 있었고 안 쓴 사람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상복 비슷한 하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흰옷은 사치스럽고 고급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 옷을 세탁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딱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한국의 옷 스타일은 중국의 명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윽고 부인들과 여자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의 치마는 엄청 폭이 넓고 저고리는 짧았는데, 빨강, 파랑 또는 초록색 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거무튀튀한 산들이 붉게 변하면서 밝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파스텔 색을 배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때때로 키가 크고, 흰옷을 입은 남자들이 기차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곤 했다. 그들은 과거에 웨일스 여자들이 쓰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갓이라 부르는 모자가 괴상하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차차 점잖게 보였다. 아마도 모자란 처음 볼 때에는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그런 물건인가 보다.우리는 처음엔 좀 우습다고 생각하여 웃음을 터트렸으나 한국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을 쳐다보면서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국 남자들은 참 좋은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몸매가 날렵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고 표정은 침착했다. 단 하나, 극동 어디에서도 그렇지만, 침을 아무 데나 마구 뱉는 것은 정말 문제였다.

몸단장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머리와 발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머리와 발 꾸미기에 무척 신경을 쓴다. 서양에서 남자의 머리는 바싹 자르는 것이 보통인데,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머리를 길러서 올리는 상투가 적어도 과거에는, 어른이 되었다는 상징이었다. 한국인들의 발은 가늘고 모양새가 좋다. 한국 여자들은 중국 여자들처럼 전족을 하지도 않고, 일본 여자들처럼 게다를 신어서 발등이 휘어져 있지도 않다. 한국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두꺼운 광목으로 된 버선을 신는데, 버선은 수눅이 발등으로 올라가게 한다. 신발은 가죽, 비단, 종이들을 이리저리 붙여서 만든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신발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발 앞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고 신으면 잘 맞게 되어 있다. 내 서양인 친구가 말하기를, 집에서 일할 여자를 구할 때 버선 바느질 한 것을 보고 그 여자의 일솜씨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남자들의 바지는 발목 근처에서 색깔 있는 대님으로 단단하게 묶는 것이 특징이다.

긴 여행 중에 보니 기차역마다 두세 사람의 일본인 무장 군인이 카키색 제복을 입고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의 기운이 강했고, 고종황제의 장례식 날에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볼 때는 모든 풍경이 마치 조바위를 쓰고 서 있는 한국 여인의 차분한 얼굴 마냥 평안하고 조용해 보였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은 접시처럼 생긴 분지에 위치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에는 초가집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사도 요한의 환상에 나타났던 새 예루살렘처럼 서울도 한때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아름다운 성문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화강암 성벽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대문 두 개는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아름다운 기와지붕이 얹혀 있었다. 그 문은 요즈음 사용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넓었고, 앞으로 백년을 가도 끄떡없을 듯하였다. 예전에는 야간에 성문을 닫았다지만, 지금은 낮이고 밤이고 열어놓고 있다. 이런 동양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서양의 각종 기독교 종파들의 교회 첨탑이 뾰족뾰족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영국 국교회, 미국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는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종파들, 예를 들면 침례교, 구세군, 안식교회들도 있었다. 일부 교회들의 건물 주위로는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학교들과 병원들이 서 있었다.

서울을 생각하면 회색 화강암으로 덮인 넓은 길, 강렬한 햇빛, 새파란 하늘, 탁트인 전망, 아름다운 대문, 그리고 땔나무를 싣고 천천히 걸어가는 소들의 행렬이 머리에 떠오른다. 소를 끌고 가는 남자는 마르고 건장했으나 때묻은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짚신을 신고 있어서 황토 흙을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국은 유교가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교 문화권인데, 총각은 상투를 올리지 못하고 머리를 뒤로 땋아 내려 빨간 리본을 달았다. 열두어 살 난 남자아이라도 일단 정혼하면 어른 행세를 해서 자기보다 두 배나 나이 많은 총각에게 하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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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많이 들어서 있는 음식점에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으며, 하루 종일 구수한 음식 냄새를 풍기고 있다. 국은 고정된 솥에서 끓이고, 다른 음식들은 구리 그릇 혹은 놋그릇에 담아 석탄 불 위에서 끓인다. 손님들은 환히 열려 있는 문으로 수시로 드나든다. 약삭빠른 쥐들도 여기저기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으며 돌아다니고, 파리는 더 말 할 것도 없이 제철을 만난 듯 윙윙거린다. 한국 음식은 다양한데, 대부분 매운 고추를 어찌나 많이 넣는지, 외국인이 멋모르고 한입 넣었다가는 눈물 흘리기가 일쑤이다. 어디가나 고추를 줄에 엮어서 처마에 매달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상하게 생긴 오이지 종류들과 배추에 고추와 기타 양념을 섞어서 만든 김치라는 것은 근사하게 생긴 독에 담아놓고 필요할 때 가져다 먹는다. 흔하지 않은 파란색의 항아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양념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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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서울에 갔을 때 스케치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주위가 참 아름다운 이곳에서 예쁜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 건물은 원래는 절이었는데 임시 교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식민지 교육을 강행하기 위하여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된 학교를 부지런히 짓고는 있지만 아직 학교의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주 어린 아이도 눈에 띄었지만, 바지는 다 하얀색으로 통이 넓었다. 군인처럼 칼까지 찬 선생이 학생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행진을 시키고 있었는데, 주위의 평화스러운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학생 중에 덩치가 좀 큰 학생들은 규율도 그리 심하지 않고 푸근한 집 같았던 서당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몇 년 후에 한국에 다시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어 학생들은 일본식 교복에다 흉한 치즈자르는 칼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제 일본의 압박에서 놓여났으니, 한국 사람들은 다시 옛날 한복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일본 사람들의 복장을 계속 사용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까? 과연 한국 사람들은 옷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서도 추악한 일본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그들에게 현명한 충고를 해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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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윗 글을 통해 1919년에 이미 일본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그래도 변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고 몇 년뒤에는 모든 것이 일본화 되어 한국적인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 가슴을 울린다.

'이제 일본의 압박에서 놓여났으니, 한국 사람들은 다시 옛날 한복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일본 사람들의 복장을 계속 사용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까? 과연 한국 사람들은 옷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서도 추악한 일본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그들에게 현명한 충고를 해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에게 현명한 충고를 해줄 사람이 없었나보다.

현명한 충고를 해줄 사람은 없었고 힘없는 이들이 사는 이 땅을​ 자신들 세력화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나보다. 그래서 멀쩡한 나라가 둘로 나뉘고 결국 그들로 인해 말도 안되는 우리끼리의 피흘리는 전쟁을 한다. 일본하고 전쟁도 못해보고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가. 남하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싸우고 결국 지금까지 이렇게 분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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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순수하고 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학문을 존중하고 무력을 싫어했다. 한국인의 심성에 대하여 게일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는데,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들의 현대 문명과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순수한 정신 세계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도 지난 30년 동안 그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하였는데 아직도 채 이해 못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깊이 파고들수록 한국 사람들의 문화를 더 존경하게 됩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기 전부터 이미 기독교 선교 사업의 영향력은 한국 내에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게일은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시아에서는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이 대부분 문맹이라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문자는 있지만 문자 자체가 배우기 힘든 인도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야말로 제일 안 좋은 경우인데, 지배층에서는 고고한 문화를 논하며 편안히 지내는 동안, 대중은 일자무식으로 소문, 귀동냥, 그리고 미신만 믿으면서 살아왔다. 극동에서 한국은 유일한 예외인데, 그들에게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어떤 선구자적인 본능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460년 전에 간단한 표음문자가 발명되었다. 따라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교회 일을 보는 한국인들 중에는 평생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글로 성경을 번역했고 그리하여 이 은둔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곧 에덴동산에서 갈릴리 바다에 이르기까지 성경 이야기를 훤히 알게 되었다. 또 한국에는 이미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할 수가 있었고,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주관하는지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한글은 복음 전파의 선교활동을 아주 쉽게 해 주었다. 이에 비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은 유일신 개념이 전혀 없다."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언어 능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일본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인이 일본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은 기독교를 새로 받아들인 나라들 중에서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보다 한국인 선교사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집 세기로 유명한 노바 스코샤(캐나다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사람들이 한국인 목사를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사람들은 서양과 교역을 통해 기계, 배, 철도, 공장 등을 얻으면서 기독교는 그 해독제 정도로 받아들인 반면, 한국 사람들은 약간 투박한 형태의 복음주의를 받아들였고 인근 나라들과의 무역관계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 나라는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학문을 쌓은 학자라면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사도 바울로와 그 제자들의 행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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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학문을 쌓은 학자라면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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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사람들이 1919년 3월 1일, 행복한 아이들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며 비밀리에 준비했던 수천 개의 태극기 - 나라의 상징이지만 금지되어 있던 그 태극기 - 를 높이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들 누구에게도 이 거사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의 행사일정은 용의주도하게 계획되었고, 상세한 지시가 지하 신문을 통해​ 전달되었다. 유명인사 중 33인이 독립운동의 대표자로 선정되었고 그중 몇 사람은 이미 반역죄로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33인의 대표들은 그들이 일본 판사에게서 어떤 벌을 받을지 이미 알고 있었다. 투옥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견디기 어려운 고문도 각오해야 했다. 그들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인 태화관에 모여 작별 점심을 나누었다. 이 만찬에는 일본 정부 고관도 몇 사람 초대되었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다. 그 대신 말직에 있는 사람 하나를 보냈다. 만약 일본 고위직 사람들이 참석했다라면, 33인의 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크게 낭독하고 서명하는 장면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경찰에 스스로 자수하러 갔다. 만약 체포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매를 맞아가며 또는 총 끝에 찔려가며 서울 거리를 끌려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좀 우울한 유머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미리 자동차를 대기시켜놓고 있다가 위엄을 잃지 않고 판사에게 가서 자수하는 동시에 독립선언서를 제출하였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사람들에게 전한 행동지침은 다음과 같았다. 폭력을 행사하지 말 것, 난동을 피할 것, 일본인의 물건을 사지 말 것, 만세를 부를 때는 다 같이 할 것, 자진해서 체포되려고 하지는 말고 일본인들이 포승줄에 묶으려 할 때 저항하지 말 것, 반항하여 덤벼들지 말 것 등이었다.

독립선언서에서 발췌한 다음 글은 정치적 성명서라기 보다는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다. ​

​거룩한 단군의 자손인 우리들

온 사방에는 우리의 적들뿐.

우리는 인류애의 깃발 아래 목숨을 바친다.

구름은 검어도 그 뒤에는 보름달이 있나니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약속하도다.

We the sacred descendants of Tankoon

Where all surrounding us is the enemy.

​Under humanity's flag let us perish.

Shadowed from the great black cloud is the perfect round moon

Which to us great hope will show.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6척 또는 그 이상 되는 장신이었는데, 그 앞에 가는 일본 사람은 총칼을 차고 보기 흉한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데다가 덩치도 왜소했다. 그들의 키는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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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 머물 때 1~2주 동안 매일 저녁 공개적으로 우리를 찾아와서 한국 사람들의 희망과 목적을 말해 주던 젊은 청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그는 외국 사람인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면 거기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군인 두 사람과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이 자기를 감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청년은 대로를 당당하게 걸어와서 보초들에게 인사를 하고, 좁고 긴 길을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올라왔다. 한번도 주저하거나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청년은 의사였고 영어도 잘 했다. 아마 지금쯤 그 청년이 신상에 해로운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청년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늘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 문화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에 삶의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운동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다 잘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일본은 이 난국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습니다. 일본의 성공이 바로 일본의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정신적으로 거의 파탄 상태입니다. 어떤 거대한 힘으로 그들의 머리를 쳐서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일본이 현재의 일본보다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도덕, 양심, 인류애, 언론의 자유, 그 무엇도 다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도 예전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바깥세상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뱃길을 이용하여 일본인 몇 사람이 유럽으로 가게 되었고, 그들은 '일본을 위해 무엇을 배워갈 것인가?' 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거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물질문명만 중시했고 정신적 측면은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대화한 일본은 순전히 물질주의에 기초를 두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한동안은 대화가 잘 됩니다. 그러다가 원리원칙의 이야기에 도달하면, 그들의 황당한 발언에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과연 이 사람이 내가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어온 바로 그 사람인가 할 정도로 변해 버립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명예나 감정은 정말 소중한 가치인데 이런 것들을 일본 정부가 일괄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어떤 일본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도덕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손으로 들어볼 수도 없는 것, 보거나 만질 수도 없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뺏어올 수도 없는 것이고, 물론 팔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물질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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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것이 내가 얼마전 글에서 우리는 조선을 살았던 우리 조상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며 ​​, 서양인과 일본인 짬뽕에 더 가깝다고 한 이유다. 지금 우리는 위 말을 하고 있는 우리 조선 청년에 가까운가? 아니면 그가 이야기 하고 있는 일본 사람에 가까운가?

​아래는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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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송영달

엘리자베스 키스의 머리말
로버트슨 스콧의 머리말

1장-서울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2장-한국의 여성들
*아름다운 한국 여성들
3장-무당의 춤을 보러가다
*한국의 풍속

4장-양반가를 방문하다
*인상적인 한국의 풍경

5장-독립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6장-두 자작
*내가 만난 다양한 한국 사람들 Ⅰ
7장-현명한 한국 사람들
*내가 만난 다양한 한국 사람들 Ⅱ

8장-한국을 위해 애를 쓰다

9장-총독과 대면하다


부록
앨리스 아펜젤러 박사가 쓴 하와이에 있는 한국인들
세실 주교의 추천사

참고문헌
찾아보기-그림

f******y 2014.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애정과 관심으로 들여다본 조선 사회
"애정과 관심으로 들여다본 조선 사회" 내용보기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그 당시 다른 외부인의 기록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 동생 엘스펫이 한국을 방문해서 남긴 글과 그림 모음집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송영달이란 교수님이 키스의 그림에 반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총망라해서 편찬했다.   일단 목판화와 수채화로 된 그림이 예쁘다. 언젠가 전시회가
"애정과 관심으로 들여다본 조선 사회" 내용보기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그 당시 다른 외부인의 기록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 동생 엘스펫이 한국을 방문해서 남긴 글과 그림 모음집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송영달이란 교수님이 키스의 그림에 반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총망라해서 편찬했다.

 

일단 목판화와 수채화로 된 그림이 예쁘다. 언젠가 전시회가 열리면 꼭 가보고 싶을 정도. 그리고 화가의 애정이 듬뿍 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꾀죄죄한 흰 옷만 입고 있다는 런던의 기록과는 다르게 알록달록하고 깔끔한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색깔있는 옷이 ‘그림이 되기 때문에’ 많이 그린 것일까, 화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예쁜 모습을 골라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도 많이 입었을까? 키스 그림만 보면 조선 사람들이 영화 ‘스캔들’에서처럼 예쁜 한복을 잘 차려입었던 것 같다.

 

그림 하나하나에 키스가 직접 달아놓은 설명을 보면 얼마나 피사체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갔는지 알 수 있다. 북부 지방의 한 과부를 그리면서,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표정이 평온하고 원한에 찬 모습이 아니었으며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썼다. 심지어 외아들이 삼일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일제에 끌려가버린 상황에서도 그렇다고 했다.

 

의외의 관점에서 조선 후기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태하고 기운없고 게으른 것은 기생충 때문일 수 있다! 기생충만 퇴치해도 민족성이 돌변하는 현장을 보게 될 지도...

 

책을 읽는 동안 20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 여성에게 깊이 이입하게 되었다. 남존여비 사상으로 고통을 받던 조선 여성들이 21세기 초에는 어느 정도 법, 경제, 교육 면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모습을 키스가 보면 좋아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다고 칭송하던 조선의 산하가 이제는 만신창이 되고 어딜 가나 지긋지긋하게 똑같은 흉칙한 근대적 건물로 뒤덮인 걸 보면 매우 슬퍼하겠지. 내가 키스였다면 몇십 년 뒤 조선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얼마나 궁금했을런지.

 

엘리자베스 키스의 동생 엘스펏 로버트슨 스콧의 머릿말 중 일부.

'중국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 가운데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으로부터 빌려간 돈을 갚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한국이 전쟁에 기여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 당시 다른 서양 사람들은 '싹싹한 일본인들'에게 감탄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그런 처사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일본이야말로 너무나 뒤떨어진 한국을 문명국가로 만드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잭 런던이 키스 자매와 교류하고 정보를 얻었더라면 처음부터 편견으로 얕잡아보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한국의 묘사 중에 '한국 사람들은 키가 크고..'라는 부분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일본 사람의 작은 키와 비교가 된다고 하였다. 서양인의 눈에 한국인이 작아 보이는 것은 비교적 최근(예를 들면 한국 전쟁 후)의 일인 걸까? 오히려 구한말까지는 영양 상태가 좋아 조선인의 발육이 좋았던 것일까?

 

파리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킹의 기록과는 달리, 키스는 도시의 민가에 파리가 많았다고 쓰고 있다. 두 서술을 종합하면, 농촌에는 파리가 적으나 인간 밀집 지역에는 파리가 몰려 있다는?

 

일제의 무식한 탄압은 키스에게도 미쳤다. 크리스마스 씰로 쓰기 위한 그림에는 산이 너무 높게 그려져 있어 군사법에 어긋난다고 생트집을 잡아서 다시 그렸다나.

 

키스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실을 정말 세심히 조사했다. (통역사를 좀 귀찮게 했을 듯 ^^) 그림 속 소녀의 이름이 섭섭'sorry'인 것까지 적어놓았다. 결혼식날 신부는 꼼짝 없이 앉아서 아무것도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한편 무릎꿇고 고정 자세인 일본 여성에 비해 한국 여성들이 자세를 이리저리 편하게 고쳐 앉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돌팔이 한의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한의사=돌팔이인 것인지, 한의사 중 돌팔이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의료 상황이 열악한 것만은 분명. 무려 12번 사산한 여성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말 열두 번이었을까? 관용어인 '열두 번도 더'를 직역한 게 아닐까?- 이런 사람에게는 서양의학이 아마 하느님같았을 것이다.

 

한글에 대한 칭송도 나온다. 460년 전에 선구자들이 표음문자를 발명해서 빈부, 남녀노소 무관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고.

 

무당집에 굿 구경하러 간 것도 나온다. 기독교 신자인데도 편견 없이 재미있게 관찰. 

 

한 양반가를 방문한 이야기. 놀라운 것이, 한국 다과와 함께 바나나와 다른 과일, 딸기에는 크림을 쳐서 대접하더라는 부분. 31운동 직후인데, 벌써 이런 과일이 들어와 있던 것이다. 나 어릴 때도 귀해서 못 먹던 바나나가! 게다가 딸기에 크림을 찍어 먹고! (1%에게는 개방, 주권 양도, 매국이 생활수준의 급상승을 의미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세련된 서양 문물을 배우고 오페라와 발레를 구경하고 커피, 초콜렛, 바나나를 맛보는 생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파토스가 이런 걸까?)

 

서울시내나 원산, 금강산 등을 묘사하면서 극도로 아름답다고 칭송, 또 칭송한다. 우리가 근대화를 서두르면서 버리고 온 것이 무엇인가, 마음이 아련하다. 수정처럼 맑은 물, 끝없이 산들이 중첩되어 있는 신비로운 풍경. 별들도 다르게 보이는 평화로운 분위기. '어떤 예기치 못한 프로젝트가 그 오래된 땅의 매혹적인 풍경을 망가뜨리지나 않는지 혹은 파괴해버리지나 않는지 걱정이 되어 한시 바삐 그곳에 되돌아가고 싶은 동경을 느낀다.' 그렇게나 키스가 칭송하던 풍경은 남김없이 파괴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냥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 사람들이 현명한 통치자였다면 '그냥 노래를 부르도록 내버려두라!'고 했을 테지만, 폭군은 원래 현명하지가 못하다. 전화가 바쁘게 오가고, 군사령부와 경찰청은 진압 명령을 내리고, 칼과 몽둥이, 나중에는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연장까지 든 일본 진압군들이 무기라곤 하나도 없이 즐겁게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 앞에 나타났다. 일본군은 물어보지도 않고 막 때리며 잡아가기 시작했고 특히 남녀 학생들을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삼일운동에 대한 일본군의 대처를 보면서 '안녕하십니까, 조현옵니다'가 떠오르는 것은...환영일까?

 

자작 김윤식과 자작 이용직은 일본 작위를 반납하고 삼일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친일파였다가 개심한 것이지. 이용직이 체포된 후 심문당한 기록을 보면 재미있다.

 

심문관 : 조선 사람들의 본부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이용직 : 알고말고.

심문관 : 누가 만세운동의 배후인지 아십니까?

이용직 : 알고말고.

심문관 : 그렇다면 그 본부의 소재지와 배후 조종자를 말해 주십시오.

이용직 : 당신들의 그 훌륭한 경찰 조직을 가지고도 아직 그런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요?

심문관 : 잔소리 말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하세요.

이용직 : 정 그렇다면 말해 주리다. 하지만 대단한 비밀이니 크게 말할 수는 없고 당신의 귀를 이쪽으로 좀 바짝 가져다대시오.(죄인이 정중하게 말하니 위엄을 부리던 심문관이 궁금하여 허리를 구부리며 노인의 입 가까이 귀를 갖다대었다. 이용직은 엄숙하게 말했다.) 조선의 본부는 하늘에 있고, 이 운동의 뒤에는 2천만의 조선인이 있소.

심문관 : (화가 나서) 당신이 이 운동을 사주한 것은 아니요?

이용직 :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똑똑해서 나 같은 늙은 사람의 말을 어디 들을 것 같소?

심문관 : 당신이 도쿄로 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그것이 사실이요?

이용직 : 사실이요.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당신들보다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오. 머지않아 모든 일이 제대로 풀려나갈 겁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오.

심문관 : 늙지만 않았으면 당신은 매를 맞았을 거요!

이용직 : 일본 사람들이 노인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보았소. 내가 듣기로 일본 어디에서는 부모가 나이 들면 산에 끌고 가서 언덕 아래쪽으로 떨어뜨려 죽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 옛날 노인이라고 촌스럽고 구닥다리인 것이 아니다. 센스와 유머 감각은 시대를 초월해서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

 

'한국에서는 노인들을 지나치게 공경하기 때문에 가끔 노인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버릇이 있다.' 지하철 행패부리는 할아버지들의 전통이 깊었군...

 

'춘추제례식은 이미 베이징에서도 1920년부터 폐지되었다.. 서울의 종묘제계는 베이징의 그것보다 더 전통에 충실한 것이었는데...'

 

'(무인의 복장)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복장으로 전쟁을 하려고 했다니!'

 

그림이 아름답기 때문에 서평만 읽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꼭 책을 찾아서 그림을 확인하길 권한다. 신간이 아니니 도서관에 가면 빌리기 어렵지 않을 터.

YES마니아 : 로얄 r****t 2011.1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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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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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바라본 한국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솔깃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림을 그려 전세계에 한국을 한국을 알린 글과 그림이라면 모른척 하기는 쉽지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서 보듯이 1919년  3.1운동 직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영국인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의 여동생이 각각 그림과 글을 썼던 [올드 코리아]라는 책을 번역하고 그 책에 수록되어 있던 흑백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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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바라본 한국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솔깃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림을 그려 전세계에 한국을 한국을 알린 글과 그림이라면 모른척 하기는 쉽지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서 보듯이 1919년  3.1운동 직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영국인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의 여동생이 각각 그림과 글을 썼던 [올드 코리아]라는 책을 번역하고 그 책에 수록되어 있던 흑백 그림을 옮긴이가 수집한 원색 그림과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일단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제일로 크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본 적있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림 설명과 함께 저자의 글들이 들어있어 그림을 보는 느낌이 한층 따스해진다. 그림들은 직접 수채화나 유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채색 목판화이다. 그림을 설명할 재주가 없지만 어떻게 그렇게 묘사를 잘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리 길지않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세심한 화가의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사진도 아닌 그림이 내가 살아보지않았던 그 시기이지만 마치 내 삶의 한 부분을 보는 듯 생생하다. 서울뿐만아니라 평영, 함흥, 원산, 금강산까지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고 또한 시골 벽지에도 두루 다닌 듯 하다. 우리가 요즘 외국을 여행하더라도 그처럼 그 나라를 자세히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역시 여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베테랑이다.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지않았던 시기에 그나마 호텔이 있었는데도 그를 마다하고 선교사 집에 머무르면서 일상생활을 살피고 보통사람들을 만나려했다. 그런 그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도 잘 모르는 한국을 세계에 소개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외국인의 시선이라서 그렇게 비교적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일본인들의 식민정책에 대한 질타와 무한한 한국인에 대한 애정은 감동적이다. 사실 조금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고 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연한 한국인들을 잘 조명해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정말 보통 사람들의 그림은 별로 없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이 된다. 외국인 여자도 신기했을텐데 그런 여자가 그림을 그리면 삽시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그래서 그들을 피해 새벽에 나와 그림을 그리곤 했단다.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서 섭외를 하면 농꾼조차도 말쑥한 차림을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러 계층의 인물화를 잘 그려냈고 우리 풍습의 아름다움이나 경치를 감상하는 맛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동생
YES마니아 : 로얄 k********i 2006.10.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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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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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나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책에는 일본 판화를 공부하던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919년 3·1 운동 직후 한국에 와 그린 그림이 담겨 있다. 함께 한국에 온 그녀의 여동생은 글을 썼다. 책 속엔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아주 많이 실려 있다. 그렇지만 그림 몇 장만 봐도 금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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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나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책에는 일본 판화를 공부하던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919년 3·1 운동 직후 한국에 와 그린 그림이 담겨 있다. 함께 한국에 온 그녀의 여동생은 글을 썼다. 책 속엔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아주 많이 실려 있다. 그렇지만 그림 몇 장만 봐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모든 그림에는 정성스러운 설명까지 덧붙여 있다. 내가 살지 못했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제 치하의 우리 나라. 그림만 보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다. 그냥 조선 시대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건 아마도 그녀가 관심 있었던 건 우리 나라 사람들과 문화와 풍경이었지, 일본의 압제 속에 허덕이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또 외국인으로서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녹아 있는 그림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인물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 책에서도 역시 그랬다. 특히 <우산 모자="" 쓴="" 노인(the="" umbrella="" hat)="">이라는 그림과 글이 참 재미있었다.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편집이 매우 깔끔하고 종이 질도 좋다. 다만 책 사이즈가 큰 편이라 들고 다니기는 좀 불편하다(물론 작은 것보단 큰 게 더 좋겠지만.). 소장 가치는 당연히 있다.
YES마니아 : 골드 b*******0 2006.06.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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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0년 전의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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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를 보고 우연히 알게된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들을 보고 반해 버려서 컴퓨터에 그림도 저장해놓고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핸드폰에도 깔아놓고 봤었다.  이번에 책을 드디어 구입해 그림과 함께 글도 읽게 되었다. 작품마다 애정을 가지고 설명을 기록해 둔 내용이 모두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시절 골목 골목마다 있던 사람 사는 풍경들, 집, 상가, 서당, 아낙, 아이들, 남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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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를 보고 우연히 알게된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들을 보고 반해 버려서 컴퓨터에 그림도 저장해놓고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핸드폰에도 깔아놓고 봤었다.

 

이번에 책을 드디어 구입해 그림과 함께 글도 읽게 되었다.

 

작품마다 애정을 가지고 설명을 기록해 둔 내용이 모두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시절 골목 골목마다 있던 사람 사는 풍경들, 집, 상가, 서당, 아낙, 아이들, 남정들...

 

지금은 갈 수 없고 가도 그 때와 많이 달라졌을 평양, 원산 등 북의 아름다운 경치...

 

그 중 두 노 선비가 담뱃대를 물고 고서를 읽으며 논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면서

우리 민족은 참 된 것과 바른 것을 생각해보고 따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제와 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잃은 것이 이러한 사유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시절 한국을 방문해 작품을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의 작품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준 역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YES마니아 : 로얄 s******7 2015.08.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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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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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사진이나, 박물관을 통하여만 볼 수 있었던 1920년대의 우리나라 풍경을   선조들의 모습을 일상생활을 영국여인의 손을 통하여 볼 수 있게 되어 커다란 기쁨   이요, 행복이었다. 1919년 3.1운동에 관여하였던 이화학당 학생들의 모습도 생생한   일기를 통하여 재현되니, 뜻밖에 얻은 귀중한 이야기였다.   조선의 백성으로 고종의 승하를 맞이한 그 시대의 풍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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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가끔 사진이나, 박물관을 통하여만 볼 수 있었던 1920년대의 우리나라 풍경을

  선조들의 모습을 일상생활을 영국여인의 손을 통하여 볼 수 있게 되어 커다란 기쁨

  이요, 행복이었다. 1919년 3.1운동에 관여하였던 이화학당 학생들의 모습도 생생한

  일기를 통하여 재현되니, 뜻밖에 얻은 귀중한 이야기였다.

  조선의 백성으로 고종의 승하를 맞이한 그 시대의 풍경도 엿볼 수 있어 더욱 더 좋았다

  참 귀중하고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내 아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a****1 2013.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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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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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파란 눈에 비친 오리엔탈   이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녀의 동생 내외가 1946년 허치슨 출판사에서 펴낸 《올드코리아》의 완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언니인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과 동생 스콧이 쓴 글을 역은 이 책을 역자 송영달 씨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더하여 원서에 충실하면서도 미흡하고 아쉬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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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파란 눈에 비친 오리엔탈


  이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녀의 동생 내외가 1946년 허치슨 출판사에서 펴낸 《올드코리아》의 완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언니인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과 동생 스콧이 쓴 글을 역은 이 책을 역자 송영달 씨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더하여 원서에 충실하면서도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을 보강하였다.


  엘리자베스 키스, 그녀는 동생 내외가 일본으로 초청하여 머물면서 동양에 심취하게 되었고, 제부 로버트슨 스콧의 제안으로 적십자사 모금을 위해 《웃고 넘깁시다.Grin and Bear It: Caricatures by Elizabeth Keith》(1917)라는 저명인사의 초상화를 희화적으로 표현한 캐리커처 집을 내어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책으로 인해 키스는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3.1운동 이후, 3월 28일에 한국에 들어온 엘리자베스 키스 자매는 한국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녀는 서울뿐만 아니라 평양 함흥 금강산 등 각 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풍경화를 그렸고, 왕족, 고위 정치가, 양반 귀수부터 시골 아낙네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인물화를 그렸다. 그녀는 한국에서 수채화로 그린 그림을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다가, 그 곳에서 만난 목판화 출판계의 저명인사인 와타나베 소자부로의 권유로 목판화로 남긴다.

  

  전부터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여 쓴 책들은 많았지만 그녀의 책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그림들을 보면 일제 강점기시대의 한국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몇몇 그림을 살펴보면 먼저 ‘장기 두기(A Game of Chess)’라는 그림이 있는데 시골의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는 그림이다. 컬러 에칭그림으로 일본에서 배운 우키요에1)(浮世絵)의 분위기가 불씬 풍기면서 독특한 그림이 되었다. 폴 자크레2)의 그림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아기를 업은 여인(Lady with a Child)'인데 채색 목판화로 우리나라 크리스마스실의 도안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그림 중에 신부(Korean Bride)가 가장 마음에 든다. 컬러 애칭 그림인데 색감이나 신부의 단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도 훌륭했다. 이 그림은 왕립 학술원에 전시되어 있고, 유럽의 주요 컬렉션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금강산(The Diamond Mountains)'이라는 그림인데 주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금강산을 둘러보고 그 신비로움에 빠져 전설에 의탁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렸다. 위로는 승려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물속에는 용, 바위위에는 호랑이 두 마리, 오른쪽 바위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이 있다. 20장 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희귀작품으로 엘지라베스 키스의 다른 채색 목판화와는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이렇듯 엘리자베스 키스는 우리나라를 두루 둘러보면서 일본인의 만행을 분개해가면서 소박한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 시절의 금강산, 평양, 동대문과 시장, 아낙네들 여러 복식들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지혜를 느꼈고, 아름다움에 감복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순수한 모습의Old Korea를 만날 수 있을까.



 

 


 

 

m****a 2009.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용도 재밋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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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를 섬세하게 나타낸 그림들이네요. 덕분에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그림집입니다. 내용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읽다 보니 몇가지 교과서에서 본 작품들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니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같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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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를 섬세하게 나타낸 그림들이네요.

덕분에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그림집입니다.

내용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읽다 보니 몇가지 교과서에서 본 작품들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니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같네요.

추천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g*******0 2008.03.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