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생명을 잉태하는 것처럼 숭고한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여성은 부정되지만 어머니는 끝없이 칭송되는 세상이기에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침묵한다.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은 곧잘 여성에게 내려진 축복일 뿐이다. 수많은 책들이 태내의 아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입덧이나 임신으로 인한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를 아이를 가진 여성의 한낱 투정이라 여기는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임신 캘린더>라는 제목으로부터 처음 생각했던 것은 소설책이 아니었다. 요즘 많은 이들이 쓰는 태교일기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임신은커녕 연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세상이 정해놓은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꿋꿋하게 혼자 살아보겠다며 종종 다짐을 하면서도 문득 이 책으로 손을 뻗었던 것은 왜일까?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여성으로 태어나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성으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껏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의 영역으로 밀어놓았던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순간 고개를 치밀었던 것일지도... 결혼을 한 언니의 여동생인 화자가 바라본 임신은 어떤 것이었을까? 세 식구로 이루어진 가족의 울타리가 너무도 견고했던 것인지, 그녀에겐 아직 새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임신을 한 언니는 신경증 환자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증은 임신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임신이 이를 심화시킨 것도 맞는 듯했다. 시작도 끝도 애매모호한 입덧 앞에서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와 음식물은 집밖으로 추방을 당한다. 그녀에게 임신은 기초 체온이 조금 변화한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로 온 세상이 요동치는 것이었다. 추상적이고도 막연한 것, 도망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녀를 지치게 하는 것 그리고 두려움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임신이었다. 뱃속에 생명을 담고 있는 이가 그러하니, 아기를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보았던 염색체의 모습을 떠올리는 여동생의 태도는 당연한 것일지도... 온 세상이 잠든 시각,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창문을 버젓이 보고서도 비파 셔벗이 먹고 싶다고, 다른 음식은 절대 안 된다고 부르짖는 이의 목소리는 진정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은 저항이 허락되지 않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임신은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선택이 아니었나보다. ... 인간의 염색체를 파괴시킨다는 PWH가 대량 함유된 미국산 그레이프프루트로 잼을 만드는 여동생의 행동은 언니를 대신한 저항이었다. 상처 난 염색체를 떠올리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온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를 만나기 위해 신생아실로 걸음을 옮겼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와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완벽한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여름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런 섬뜩함을 느끼게 되다니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나로 인하여 나의 어머니가 경험했을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생명의 탄생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나를 위해 미국산 그레이프프루트를 드셨을 거 같지는 않지만, 심각한 입덧에 몸무게가 38kg 까지 빠졌었다는 한 여성에 대해서, 24년이 지나갔지만 느지막이 고민해보게 되는 까닭은 왜인지 모르겠다. |
| 뾰족한 연필 끝으로 살짝 찍은 점보다 더 작은 태아 혹은 수정란은 그러나 엄마의 몸에 여러 징조 - 끝없이 졸리거나 밥냄새가 역겹거나 미열이 난다던가 - 를 통하여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임신과 출산은 나의 연장선이며 나아가 인류계승의 필수조건이기에 축복의 대상이었다. 임산부의 음식투정은 당연한 특권으로 여겨지고 산고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인식된다. 과연 그런가? 말로만 듣던 '하늘이 노래진다는' 산고가 예정되어 있는 첫애 임신 말기에 그토록 아픈 출산을 경험한 모든 선배엄마들이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순산한 나는 산고의 아픔의 정도가 '일부 과장' 되어 있지 않나 의심한다. (산고도 개별적 차이가 있고 난산을 경험한 분들에게는 죄송하다) 물론, 아프긴 했지만 하늘이 노래질 정도는 아니었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는 극단적 아픔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애가 나오게 되어 있기에 참고 견디자는 생각을 했었다. 산고의 아픔이 과장되었다는 내 가설이 맞는다면, 왜 산고의 아픔은 과장되었을까? 내 결론은 남성이 경험하지 못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거짓말이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 여자들에게 과장된 이야기를 하듯이. 이 책은 언니 부부와 함께 사는 여동생이 임신한 언니를 지켜보는 시선이다. 입덧할 때 냄새에 민감한 언니와 입덧후 게걸스럽게 끊임없이 먹어대는 임산부 언니에 대한 축복과 기쁨 등 보통사람들이 임산부에 대해 갖는 일종의 편견(?)이 없이 냉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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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신 체험 따위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신선한 양파처럼 아무 얘깃거리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그 양파가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 시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소설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ㅡ오가와 요코
동료작가 마쓰무라 에이코는 오가와 요코의 문학적 특색으로 신체감각을 지적한다. 잘 지적해 주었다. 소설은 음식 냄새에 대한 노이로제에 가까운 묘사가 자주 나타난다. 여기에 오가와 요코의 문학을 독해하는 키워드를 두 개 더 덧붙인다면 그건 바로 '상자'와 '아픔'이다.
먼저 신체 감각의 특색을 말해보자. 오가와 요코는 대학 졸업 후 종합병원 비서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는 의학적인 지식이나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관찰해나가는 인간의 변해가는 몸이 자주 이야기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 전형적인 신체 감각의 특성이 대폭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임신 캘린더>이다. 임신캘린더는 말그대로 여성의 임신일지다. 다만 특색인 것은 임산부가 쓰는 일기가 아니라 언니의 임신을 지켜보는 여동생이 써내려가는 일기라는 점이다. 입덧으로 인한 냄새 노이로제와 입덧이 그치자마자 찾아온 폭식, 점점 불러오는 언니의 배를 바라보면 동생은 미묘한 심리변화가 일어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냄새에 민감하다. 특히 부엌이나 급식실처럼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냄새가 얼마나 끔찍한 건지 너 아니? 피할 수가 없어. 가차없이 파고든단 말이야. 냄새가 없는 데로 가고 싶다. 병원의 무균실 같은 곳. 거기서 내장을 전부 꺼내서 깨끗해질 때까지 중류수로 씻었으면 좋겠다."(임신 캘린더, 32쪽)
"25년 전 일이니까, 급식실도 지금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낡은 목조 건물에, 어둡고 좁고, 짐승 우리나 다름없었죠. 지금도 그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메뉴는 크림 스튜와 감자 샐러드였죠.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 냄새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죠.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물론 맡고 싶지 않은 냄새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죠. 그런 냄새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급식실에서 나는 냄새가 내가 곧 먹게 될 음식과 연관돼 있다는 불쾌함이었습니다. 대량의 크림 스튜와 감자 샐러드에서 나는 냄새는 급식실 안에서 뒤섞이고 발효되어, 그 성격이 변질돼가고 있었던 겁니다."(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170쪽)
다음으로 '상자' 문학론을 얘기해볼까 한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은 '상자'에 관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여성 작가들은 상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신화의 여주인공들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열어젖히곤 했다.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판도라, 프쉬케, 페르세포네 모두 금기를 깨고 자기들에게 온 상자를 열어젖혔다. 사실 오가와 요코의 문학에서 상자란 무엇을 넣고 보관할 수 있는 사방팔방이 막힌 폐쇄공간으로 재현된다. 등장인물은 자기만의 작은 '상자'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성채' 안에서 살아간다. 이번 단편소설집에서는 <임신 캘린더>에 등장하는 3층짜리 M병원(진찰실, 입원실, 신생아실, 급식실)과 거즈와 탈지면 상자, <기숙사>에 등장하는 좁은 고시방과 종이 상자, 그리고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의 급식실과 수영장이 대표적인 상징적 오브제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오가와 요코는 등장인물들이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을 묘사한다. 물론 아픔과 고통은 모든 문학적 상상력의 핵심 테마이다. 그런데 그녀의 소설에서는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그런 아픔의 감수성이 유독 돋보인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 지금까지 가장 아팠던 때는 언제였을까. 말기 암과 두 다리 절단, 진통은 어느 쪽 아픔을 닮았을까 하고 말이야. 아픔을 상상하는 거 굉장히 어렵고 기분 나쁜 일이야."(임신 캘린더,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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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너무나 눈길을 끌어 다른 책표지 글들은 눈이 좀 적응된 후에야 들어왔다. <임신 캘린더> 어? 이걸 왜 내게? 하며 가우뚱 하며 책표지며 작가프로필을 보니 책의 제목 책속 단편 제목중 하나였던 것이다. 나도 보유중인 도서인 <박사를 사랑한 수식>의 오가와 요코의 또 다른 작품. 그녀의 책은 <임신 캘린더>가 처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라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투명한 악몽처럼 오싹한 세 편의 소설이다."
책표지 이 한줄의 문구가 약간 망설이게 했다. 워낙 공포물이나 잔혹스릴러와는 담을 쌓고 있는지라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안의 내용을 휘릭~ 들춰보았는데 그런 내용들은 아닌것 같다. "그럼 무슨 내용이지?" 더욱 궁금해진 책의 내용. 책은 세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임신 캘린더/ 기숙사 /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임신 캘린더/ 임신을 한 언니, 여동생, 형부 이 세명이 주요인물이며 임신을 한 언니의 심리상태를 보는 동생을 화자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상적으로 알고있는 '임신' 하면 두가지가 떠오른다. 모든 이들의 축하를 받는 축복받는 임신, 축하받지 못하는 임신. <임신 캘린더>에서 임산부인 언니의 심리는 임신을 타인의 일인것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새 생명을 '생물'이라 지칭하기에 이른다.
"이 안에서 제멋대로 쑥쑥 자라고 있는 생물이 내 아이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가.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그런데도 절대적이어서 도망칠 수 없어.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도중에, 입덧과 M병원과 이 남산 같은 배, 그런 것 모두가 마치 환영인 것만 같은 순간이 있어. 그 순간, 에이 다 꿈이었잖아 하면서 기분이 후련해져. 그런데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내 배를 보면 다시 우울해지는 거야. 아아, 내가 이 아기와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어." -64 '
어쩌면 '임신' 어쩌면 당사자에게도 축하받을일 만은 아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이 기혼자의 임신은 '축하받는 일' 이라고 각인 된건 아닐까?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그런데도 절대적이엇 도망칠 수 없어." 언니가 임신에 대해 표현한 말이 처음엔 '뭐 이런사람이 있지? 싶었지만 그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왠지 그럴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모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의 심리에 대해 날카로울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 임신에 대한 새로운 작가의 시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임신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중인 언니에게도 임신이란 2년간의 기초 체온표의 변화, 입덧으로 음식을 멀리해야하는 요인이며, 초음파를 통해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런 언니를 곁에서 보살피는 동생의 무던함도 눈여겨볼만 했다. 언니의 심한 입덧에도 무엇이든 먹이고자 노력하고 집안에서 나는 음식냄새를 괴로워하자 정원에서 밥을 먹는다. 절대 반항하지 않는 동생. 그저 언니 옆에 있어주며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 그리고 언니의 남편도 아내의 임신을 방관? 지켜보는 제 3자 같다. 설레임도, 거부반응도 없지만 아내의 기분이나 몸상태에 대해 새로운 상황이 되면 조용히 있는것으로 상황을 대처한다. 임신이란게 뭔지 알기나 하는걸까?
등장인물 누구도 생명의 존엄이나 부모가 되는 기쁨, 책임감, 아이의 장래에 대한 희망이나 현실감을 볼 수 없다. 어쩌면 우린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보존이나 종족의 보존은 생물의 본능이라고 배웠지만 우린 본능적인 행동에서 점차멀어지고 있다. 태어난 아기들은 다 이쁘다. 그 아기들을 이뻐 할 줄은 알지만 막상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워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큰 것 같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투명한 악몽 처럼 오싹한' 감정을 얼핏 알 것도 같다.
책에는 세편의 단편에 세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세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느낌은 책 표지 짧은 한줄로 표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때가되면 찾아올 기다림의 끝. 출산, 멀리 떠난 남편과의 재회, 결혼은 어쩌면 여자에게 인생을 살면서 한번은 거쳐야 하는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 저 편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 끝을 보기 전까진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늘 곁에 있는것 아닐까? 한번 읽었을때는 '뭐지?' 했던 책의 내용이 두번 읽었을때 곁에 살짝 와 닿았다. 하지만 아직도 정리 되지 않은 듯한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그 무엇이 여운으로 계속 남아있다. 이 책으로 인해 <박사를 사랑한 수식>이 궁금해졌다. 과연 그 책에선 작가의 어떤 글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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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캘린더」. 임신 캘린더는 그러니까 임신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임신의 기록은 임신의 당사자가 아닌 그녀의 동생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병원을 찾아 6주가 된 아이가 있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38주+1일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기록이다. “갓난아기는 끝없이 울어댔다. 3층의 문을 열자 바깥의 밝음이 순식간에 가려져 현기증이 일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울음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잠시 서 있었더니, 안쪽으로 뻗어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가 보였다. 나는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를 만나기 위해 신생아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지만 소설 속의 임신의 기록은 어떤 탄생을 기리는 엄숙함도, 가장되었음에도 아름다운 축복의 기운도, 그렇다면 반대로 구질구질한 생의 비의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니의 임신과 그 언니의 이런저런 행동, 그런 그녀와 남편의 스치는 듯한 일상을 띄엄띄엄, 그리고 무척 냉정한(너무 담담하여) 시선으로 살피는 동생의 시선이 있을 따름이다. 아, 그런데 작가는 왜 마지막 문장, ‘파괴된 문장’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기숙사」. 대학시절 내가 지냈던 기숙사... 그리고 꽤 여러 해가 흘러 이제 남편을 따라 스웨덴이라는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내게 그 기숙사를 소개해달라는 사촌동생... “선생님의 방은 식당 건너편에 있다. 선생님이 말한 대로 요리사가 떠난 식당은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돈된 채 바짝 말라 있었다. 우리는 확인하듯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곳을 지나갔다.” 두 팔과 한 다리가 없어 턱과 쇄골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처리하는 선생님이 있는 그곳은 지금 어떤 변화를 겪는 중일까... 학생의 행방불명과 혐의자가 되어버린 그 선생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나는 열심히 생각했다. 선생님은 잠들었고, 사촌 동생은 합숙 중이고, 수학을 전공하는 그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나는 정말 혼자였다.” 모든 생각, 그리고 더한 생각이 있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두커니 혼자 남게 되는 한 순간처럼, 그곳에 서있는 기숙사와 선생님의 묘사가 그로테스크 하지만, 애틋하다.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우리 주변의 어떤 공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탁월하다. 그곳은 억지로 찾아낸 소설적인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그곳에 있는 공간이었다가 작가의 입을 거치면서 소설적인 공간이 되어버린다. “급식실 유리창에 서서히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침묵하고 있는 띠처럼 정지한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샤워기 꼭지도, 구석에 쌓여 있는 바구니도, 선반에 나란히 진열돼 있는 냄비도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북작복작한 급식을 연상시키는 잔반 부스러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작가의 그러한 공간들에는 물기가 없다. 바짝 말라 있다) 이번 소설에서 그러한 소설적인 공간의 대상인 곳은 바로 초등학교의 급식실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완벽하지 못한 결혼을 앞둔 나와 그런 나에게 (알 수 없는) 종교를 전도하기 위해 다가왔던 부자 사이에는 어떠한 종교적 함의 없지만 그럼에도 그저 세속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는 만남의 교차점이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훌륭한 소설로 우리를 찾았던 작가의 단편 세 개가 실려 있는 작품집이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분명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력적이다. 어떤 소설들은 이러한 불가해가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떤 소설들은 이러한 낯섦이 잔잔하던 감정의 표면에 결을 만들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 역자인 김난주씨의 “... 이 작품집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보다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혼란스러움, 그 혼란스러움으로 우리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다양한 감정의 미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는 말에 한껏 수긍한다. 그런가하면, 『어제, 오랜만에(석 달 정도) 싱크대 밑 수납장을 열어봤더니 죽은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그것은 고양이의 시체가 아니라 썩은 양파였다. 썩어 물컹해진 양파가 고양이 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임신 캘린더>는 자신의 경험을 쓴 작품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실망한다. 나의 임신 체험 따위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신선한 양파처럼 아무 얘깃거리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그 양파가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 시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소설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너무나 적당한 설명이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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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오가와 요코의 작품은 잔잔하게 섬뜩하다.
마치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
사방이 새하얀 정신병원이 떠오른다.
그 새하얀 벽들 틈 사이로 조금씩 핏방울이 번지면서
급기야 사방으로 터지면서 온몸을 적시고야 말것같은 공포!
*임신캘린더
임신을 한 언니에게 인간의 염색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미국산 그레이프프루트 잼을 만들어주는 동생
동생에게 임신은 가지런하던 생활이 조금씩 어긋나가는 것이고
언니에게 임신은 음식냄새만으로도 역겨움을 느끼며
심지어 자기가 낳을 아기를 두려워한다.
남편의 존재감이라고 없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까.
모성이나 부성을 전혀!!(놀라울 따름이다)느낄수 없다.
결혼을 했으니 낳자..라는 느낌정도..
임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시각은 지극히 객관적이다.
태어날 아기에 대한 감정따위는 없다.
그리고 동생은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를 만나기 위해 신생아실로 걸음을 옮기면서'' 끝난다.
임신은 모두에게 축복받을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누군가를 축복하고 있는 나에게 이 섬칫한 소설은 분명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하지만!!!독특한 작가만의 특성이 아주 돋보인다.
*기숙사
*해질녁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두 작품 모두 아주 독특하다.
별다른 이야기 전개도 없이 머릿속에서 온갓 상상들을 끄집어낸다.
이렇게 별 이야기 없는 소설을 읽고
온갓 상상을 하기도 쉽지는 않다.
도대체 뽀족하게 끝나지를 않는다.
기숙사에서는 남편에게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를 뿐이고
해질녁~~에서는 이제 신접살림을 차리기 직전이지만 여전히 혼자다.
뭔가를 해야하는 혼자된 여자들이 겪게 되는 음침한 이야기들
벌통에서 나오던 것은 꿀이었을까, 피였을까!! [인상깊은구절] 이 안에서 제멋대로 쑥쑥 자라고 있는 생물이 내 아이라는 것이 도부지 납득이 안가.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그런데도 절대적이어서 도망칠 수 없어.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도중에, 입덧과 M병원과 이 남산 같은 배, 그런 것 모두가 마치 환영인 것만 같은 순간이 있어. 그 순간, 에이 다 꿈이었잖아 하면서 기분이 후련해져. 그런데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내 배를 보면 다시 우울해지는 거야. 아아, 내가 이 아기와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어. |
| 임신 캘린더라는 제목만 보면... 임신을 하고 나서의 일상을 기쁜 마음으로 적어내려갔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선택했다면 '깜딱' 놀라실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이 임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곳이라 '임신'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다. 정상적인 임신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보통의 부부들도 있는 반면, 미혼모들과, 몇십년씩 임신 못하는 불임부부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아기를 갖는다는 행위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도 아기를 갖고 마냥 기뻐하기만 할까? 임신을 하게되면 일반적으로 '양가감정' 갖게 된다. 내 몸안에서 자라고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하여 상반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임신초부터 입덧이 시작된다. 모든 음식 냄새가 싫어지고 축 늘어지게 된다. 12주가 지나면 입덧이 끝나고 폭식이 시작된다.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모든 살들은 트게 된다. 막달이 되면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태어나기만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임신의 과정을 동생의 입장에서 담담히 그린 소설이다. '임신'이란 과정을 축복이라기 보다는 무섭고, 신경질적인 사건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다 읽고나면 섬뜩한 느낌이 밀려오니 말이다. <갓난아기는 끝없이 울어댔다. 3층의 문을 열자 바깥의 밝음이 순식간에 가려져 현기증이 일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울음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잠시 서 있었더니, 안쪽으로 뻗어있는 어두컴컴한 복도가 보였다. 나는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를 만나기 위해 신생아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가와 요코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쓴 작가이다. 아~이 책! 하실거다^^* 불의의 사고로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천재 수학자와 미혼모 파출부와 그의 아들이 그려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수학'하면 무조건 머리 아프게만 생각했던 나에게 수식의 아름다움과 함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선물해준 이야기였다. 이 작가가 쓴 또다른 이야기 '임신 캘린더' 를 읽고 싶어 찾아보았으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였다. 무척 아쉬워했었는데 주말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앞뒤 보지도 않고 책을 덥썩 집어들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술술 읽히게 되었다. 그리고 <오가와 요코> 시리즈로 이 두권을 묶어 블로그 친구들과 돌려읽기를 하려고 한다. (위드미박님처럼.....^^:;) 줄을 서시오~~ 오가와 요코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두권의 책입니다. 원하시는 분 코멘으로 신청받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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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악몽처럼 오싹한 세 편의 소설이다" 사실은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 공포책으로 알고 주문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리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뜻밖이라 여긴것은 임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은 아니라는것, 임신을 공포로 여길만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동생의 임신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제 삼개월을 넘어서 사개월에 접어든 동생의 임신으로 그 위에 있는 3살짜리 유진이는 내 몫이 되었고 엄마와 떨어져 이모와 놀아야 하는 조카가 안타갑기도 했다. 임신 캘린더 부모님이 돌아 가신후 단 둘이 된 자매, 언니의 결혼으로 형부가 집으로 들어오고, 언니가 임신을 함으로 집안은 변화가 생겨난다. 임신후 일어나는 여러가지 징후들, 입덧( 이것 참 괴로운 것이다)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괴롭힌다. 음식냄새를 맛지 못함은 물론 성격까지 예민해져 버린다. 그러다 입덧이 지나가면 생겨나는 강렬한 욕구, 무엇이든 먹고 싶어지고 무엇이든 못먹을 음식이 없어진다. 딸 유진을 임신 했을때 그때 난 어땧을까? 어려운 살림에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저렴한 것을 대신해 먹여야 했다. 그때의 부작용이랄까, 딸은 잘 먹지도 않고 먹어도 살이 찌지를 않는다. 기숙사 대학 졸업후 결혼해 생활하던 나, 오랜만에 걸려온 사촌 동생의 전화에 과거의 기억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삼촌의 죽음으로 멀어진 사촌동생 헤어질때 4살이었던 아이가 벌써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저렴한 기숙사를 원하는 남동생, 내가 대학다닐때 기숙했던 그곳을 원하기에 동생과 그곳을 찾아가게 되면서 과거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외따라진 그곳은 지금은 아무도 없는 관리인 혼자만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살던 남학생 한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상한 소문이 돌아 아무도 기숙사에 들어오길 원하지 않아 폐허에 가까워진것, 그곳에 사촌동생이 들어간 후 만나지 못하게 되고~~~.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이 세번째야 말로 어찌 이해를 해야 할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물, 그 물이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담겼을때 나 또한 공포를 느낀다. 수영을 못하기에 깊이를 알수 없는 수영장은 그 자체로 공포가 되기도 하는것, 여기 수영장의 공포를 느끼는 또 한사람이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급식실과 수영장에 읽힌 이야기도 담아낸다. 왜 그리 무서워 했는지 그것이 공포가 될수 있었는지~~~~. 이해를 하면서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해도 될런지~~ 무튼 공포소설 답지는 않았다는것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임신 캘린더/ 기숙사/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강렬한 공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순간 실망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실망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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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요가와 요코 그것과는 다른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임신 캘린더라는 제목만 보고 내가 우리 아들래미를 가졌을때를 생각해 보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결혼 초기에 그야말로 얼떨결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텔레비젼에서 보던 "여보 , 나 임신이래"라는 대사와 함께 끌어 안고 뱅글뱅글 돌고 밥통 뚜겅을 열다가 "우웨엑~~"하면서 뛰어나가고 그런 것을 예상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특별한 입덧도 없었고 조금 잠이 많고 졸렸던 것 말고는 그렇게 무난하게 아들래미를 낳았다.
가끔 속이 메슥거린다는 정도 점심시간 이후에는 약 30분 정도 낮잠을 자야 오후 일에 지장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도시락으로 얼른 요기를 하고 점심시간을 낮잠시간으로 활용했던 것 5개월 이후의 태동- 그때 비로소 임신 했음을 느끼게 된 듯 하다 점점 불러오는 배 샤워하면서 거울을 볼때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이티 같은 희귀한 생물을 보는 듯한 섬뜩함 새로운 탄생에 대한 불안감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 그 10개월동안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기간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축하와 흥분,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당장의 힘듬과 현실적인 계획등으로 남들보다 더 좋아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나에게 임신 캘린더는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동지를 만난듯한 이야기였다.
나머지 두편의 단편에도 어찌보면 현실성이 조금은 배제된 두 여인이 등장한다.
모든 성가심은 유보해 놓은 채 스웨덴으로 발령받은 남편의 부름을 기다리며 패치워크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인 남편이 이사오기 전에 준비해야할 것들을 죽 적어보내지만 그것은 서랍속에 갇힌채 자신이 머물렀던 그리고 사촌동생이 머물 그 기숙사와 그 기숙사 선생님의 일로 현실을 채워버린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하는 여인 결혼 후 살게 될 보금자리에 먼저 이사와 결혼생활을 준비하는 현실 중에 학교의 급식실을 바라보는 한 남자와 한 아이를 또한 그의 현실에 끼워 넣는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여인들은 여자로서 느껴야 하는 행복이라든가 , 설렘에 모두 무덤덤하다. 오히려 그러한 무덤덤과 약간의 냉소가 솔직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 하여 마음에 든다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사실은 말이야~~"하면서 그 설렘 뒤에 있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걱정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맨정신으로 하고 있는 듯한...
오가와 요코의 매력인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