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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의 향연을 듣다 _이중톈 (지은이),이지연 (옮긴이) / 보아스 중국의 역사에서 춘추 전국 시대는 빛나는 문화가 활짝 핀 시기이고, 제자백가는 지혜의 결정체이다. 선진제자의 수많은 학자나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자유롭게 논쟁한 백가쟁명(百家爭鳴)은 그 빛깔이 매우 다채롭게 남아있다. 백가쟁명은 30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세대를 뛰어넘는 대논쟁이 벌어진 때이기도 하다. 유가와 묵가가 서로 주장하고, 유가와 도가가 맞서 논쟁하고, 유가와 법가가 경합을 벌였다. 그 과정 속에서 후세대들이 마음에 담고 살아가야 할 많은 지혜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들의 책을 모두 찾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에는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공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 양주 등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공자(孔子)는 제자백가 중 첫 번째 인물이자 후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공자는 누구인가? “그는 문화의 거장이자 뜻을 이루지 못한 관리였고, 모범적인 교사였으며 고독한 선구자였고, 감정이 풍부한 보통사람이었다. 그러나 뭇사람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성인이기 이전에 뜨거운 피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비록 중국공산당의 흑역사인 문화대혁명 기간 중엔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기까지 했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공자는 여전히 성인(聖人)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맹자는 공자에 대해 ‘성인 중에 세상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자는 생전에 자신을 그저 ‘보통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다른 이와 별로 차이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 이중톈은 ‘공자에 대한 진실’을 시작으로 유가와 묵가의 논쟁, 유가와 도가의 논쟁, 유가와 법가의 논쟁 등을 자신의 견해는 물론 다른 학자들이 해석한 것을 거론하면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공자가 남긴 명언 중에는 특히 배움에 관한 것이 많다.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라든가 “명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등은 후세대들의 학문 정진에 자극을 주는 말이다. 공자는 학인으로서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호학(好學), 박학(博學), 활학(活學)이 그것이다. 활학의 반대말은 사학(死學), 곧 죽은 학문이 될 것이다. 공자는 생활 속 곳곳에 배울 것이 있고,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활용할 수 있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 수 있는 이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가와 다른 학파의 논쟁 공자가 유가 학설과 학파를 창립한 이후로 그와 그의 학설, 학파는 반드시 마주쳐야 할 대상이자 피할 수 없는 화제였다. 묵가, 도가, 법가 모두 공자와 유가를 공격했다. 유가 스스로는 한편으론 공자의 사상을 계승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수정 보완하며 발전시켰다. 유가 내부에서도 갈등이 발생했다. 세기를 뛰어넘는 논쟁 이것이 바로 선진제자의 백가쟁명이다. 저자는 백가쟁명을 크게 세 가지 논쟁으로 정리했다. 첫째는 유가와 묵가의 논쟁으로, 논쟁의 초점은 인애(仁愛)인가 겸애(兼愛)인가이다. 두 번째는 유가와 도가의 논쟁으로, 유위(有爲)인가 무위(無爲)인가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유가와 법가의 논쟁인데, 논쟁의 초점은 덕치(德治)인가 아니면 법치(法治)인가에 있었다. “공자와 묵자 모두 비록 그 성격은 틀렸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다. 그런데 유가는 한 시대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류가 되어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묵가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으로 끝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묵자(墨子)는 최초로 공자와 유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이다. 묵가는 최초의 반대파였다. 왜 최초인가? 도가의 장자(莊子)나 법가의 한비(韓非)는 모두 묵자 이후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가와 묵가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서로 같은 점이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 모두 이상과 추구하는 바가 있었으며, 원칙과 소신이 있었다. 유가나 묵가나 반전(反戰)사상을 갖고 있었다. 방어는 할지언정 침략전쟁에는 반대했다는 것이다. 공자가 남긴 말 중에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위정자(爲政者)들이 마음에 담고 실천해야 할 말들이 많다. 공자 가라사대 “올바른 것을 들어 잘못된 것을 바꾸면 백성이 복종하며, 잘못된 것을 들어 올바른 것을 바꾸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백성’이라는 단어를 ‘직원’으로 바꾸면 리더 또는 CEO에게도 적용될 말이 될 것이다. 공자 사후에 일어난 여러 논쟁들을 비교할 수 있게 정리가 잘 되어있다. “공자와 맹자의 다른 점은 공자는 온화하여 규범적이고 교양이 있었으며, 맹자는 강직하여 입바른 소리를 잘 했다” 공자의 화법이 완곡한 표현을 즐겼다면, 맹자는 직선적이었다. 저자는 맹자와 묵자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의협심이 강한 선비들이었다고 표현한다. “선진 제자의 값진 유산을 계승할 때 그들의 시대와 계급적 낙인은 벗겨 내고 합리적인 핵심 내용과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만 남겨 놓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색채 제거’작업이다. 이렇게 제거 작업을 하고 나면, 제자는 회색으로 변하게 된다. 회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계승한 유산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또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한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도 적용을 할 수 있는 사상, 이것이 바로 '회색‘의 의미다.” 즉, 선인들의 어깨에 올라 미래의 길을 찾자는 이야기다. 이젠 제자의 사상에서 본질을 읽어내는 과정만이 남았다. 중국 고전을 읽어나가는데 좋은 지침이 되는 책이다. #이중톈의이것이바로인문학이다 #천재동양철학자들 #생각의향연 #이중톈 #이지연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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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이다. 그럭저럭 읽어 가면서 궁금하던 제자백가의 생각과 방식의 차이를 알아 보려는 생각이 스스로 부족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됬다. 이것만으로도 읽은 값을 한 셈이다. "인류의 문제는 무엇을, 왜,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이 참으로 좋다. 국내에서 발간되서 접한 책들은 각 학파의 원문과 큰 줄기를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의 책들은 큰 줄기는 기본이고 좀더 세밀하게 본다는 생각을 해봤다. 중국인들의 합리성이란 가끔 이해가 됬다가 안됬다가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공자와 묵가, 도가(노장), 법가를 큰 분류로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앎을 통해서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나아갈 방향의 토대를 잡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냥 이거다라고 가르치는 것과는 달라 보인다. 겸애와 인애의 차이를 통해서 공자와 묵가의 차이를 비교할 때에도 현실적인 실용성과 목적성을,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질적 부분을 함께 비교 함으로 쉽게 다가간다. 아마도 동양고전을 접해본 각 각론의 이야기들은 쉽게 이해한다. 그들의 본질적 차이를 비교하는 책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통점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면에서 제자백가의 접근이 인류가 문제를 풀어가는 다양한 방식,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기 힘든 기술방식이 아니었나 한다. 노장사상과 공자의 비교를 통해서 공자의 현실성과 노장사장이 갖는 더 큰 개념의 이상을 비교하는 설명이 간결하다. 반면 공자와 법가의 비교를 통해서는 법가의 현실성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생각의 상대성을 알아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명제에 매우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품는 의문과 현실적인 접근에 있어 저자도 한가지 생각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태평성대에는 공자가 난세에는 한비자가 적합하다는(사실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방법보다, 책에서 언급된 4가지의 생각을 비교함으로 얼마나 적절하게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이 아닐까한다.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그 과정속에서 인간이 품어야할 인본주의의 생각을 해야하는 이유를 이런 인문고전들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자 차이가 아닐까한다. 일상에서 내가 행하는 행위가 사려깊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렇다고 제한된 시간에 어떤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씀한 일일삼성의 굴레를 벗어나는 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유지하는 노력과 과정이 더 큰 의미가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좀더 좋은 컨디션과 마음의 여유 또는 절박함을 갖고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책이다. 이해하기 쉽게 씌여서 참 좋고, 서로를 분석으로 설명함으로 남는 것이 많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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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직도 유교 사상이 대중 문화이다. 대부분 한국사람들은 중국의 사상을 유교중심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유가 뿐 아니라 묵가, 맹자, 노자 장자, 한비의 법가까지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유가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 해서 참 흥미롭고 재밌는 책인거 같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덜 익숙 한 묵가나 법가 노자 장자의 주장은 신선 하게 다가 왔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는게 좋을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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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여년 전의 이야기를 25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계속 해서 읽고, 해석하고, 깨닫는 과정이 연속되고 있다. 알파고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파악하여 정보화하여 사람에게 대응한듯, 사람들은 이런 데이터(지식, 깨달음)을 책과 어록을 통해서 남겨왔다. 그 시대와 다르기에 지금에도 유효할까라는 의문은 매우 우매한 질문이다. 상황에 대한 대응의 방식에서 역사 책들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 상황이 다를 뿐이다. 모든 판단과 행동이 사람의 상상력을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글자 한자의 해석에 따른 유추와 해석을 갖고 격론을 한다. 그런 정확성에 대한 도전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학자의 몫이기도 하고, 그 상황과 뜻은 그 말을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는 originality가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어느 누가 내 머리속과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폄하나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라면 고전의 큰 줄기와 의미를 해석하여 실생활에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 나와 남을 더불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읽어서 이해가 되지 못하고, 이해하였지만 내가 사용할 줄 모르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삶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서너가지의 동양고전을 읽어 봐서, 읽기에는 참 문안하다고 생각한다. 이중톈의 이 책을 고른 이유도 종종 야밤에 잠이 안와서 리모콘 돌리기를 하다보면 KTV에서 삼국지 강의인가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호기심과 중국인이 해석하는 경전의 의미는 어떠한가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다. 근래 중국의 성장과 전략을 보면 그들의 사고가 서양 기술발전과 동양의 인문학적 사고를 교묘정치하게 잘 다룬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대의 중국 학자가 말하는 2500년전의 사상과 인간 군상들의 행동에 대한 해석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한다. 공자에 대해서 풀어가는 글들을 보면 몇 가지 차이점들이 있다. 우리는 성인이나 종교와 같이 공자에 대한 엄숙함과 존경이 글에서 묻어난다면 공자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써 접근한다는 생각이다. 우리와 같이 평범하고 태어나 어린 시절은 고생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간다. 우리 나라의 책을 읽으면 여기서 이 글자는 이렇게 해석해야한다거나 다른 이는 어떻게 해석하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의 글들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저자는 이런, 저런 해석이 존재하고 나는 어떤 해석에 동의한다는 말이 있다. 그보다 재미있는 말은 이런 세부적인 사항이 아니라 독자는 이런 큰 의미 정도로 이해하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설명과 글쓰기가 인문학에 관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읽고 듣는 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학자라면 좀 다르겠지만... 익숙한 엄숙함이 낮아져서인지 읽기가 참 편합니다. 논어와 공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익숙함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얻는 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지만, 동 시대의 경쟁학파인 묵가, 도가, 법가등과의 비교와 논쟁은 좀더 자세하게 보려고 합니다. 특히 노장사상의 도가에 대한 이중톈의 생각이 개인적인 관심사입니다. 요즘과 같은 어지러운 시절에 공자님의 말씀은 참 좋으나 현실과의 궤리감을 유발하기도 하니까요. 목차만으로도 keynote에 대한 비교들이 있기에 나머지를 읽고 나면 한 번더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그래도 공자님의 말씀은 현실속에서 너무 당연한 것들을 관찰하고 짚어낸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내용이 한 두마디가 아니라 책을 낼 정도라면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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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의 향연 책을 선택하기 전에도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보다는 이중톈이라는 브랜드에 먼저 끌렸을 만큼.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제목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읽기 시작하다가 가만히 표지를 들여다보면 큼직한 글씨 위쪽에 자그맣게 생각의 향연이라는 부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히 책을 읽기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표지를 훑게 되면 <생각의 향연>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띌 것이다. 2. 이 책은 내가 읽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을 소개하는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유가와 묵가와 도가와 법가를 춘추전국시대의 주요 사상으로 다룬다. 이중톈은 이 사상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그들의 사상 가운데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서 이들의 사상이 지닌 한계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한다. 아마도 앞으로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3. 지식과 지혜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즉, <생각의 향연>에서 이중톈이 이렇게 다양한 사상을 그것이 출발한 원인에서부터 설명한 이유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순간에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지혜... 음.. 개인적으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은 인간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지식이 필요한 순간은 인간이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지식은 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으며, 생각보다 꽤 단순하게 비교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열관계를 손쉽게 선택할 수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서 간단히 손가락만 움직여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혜는 개인의 관점에 속한 것으로서 오로지 각자의 깨우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지식이 가능성의 판단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가능성이 어떤 인식의 확장으로 통해 다가왔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미리 판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노자 <제18장> 262. 큰 도가 없어지니 인과 의가 나타났고, 지략과 지모가 나타나니 큰 위선이 생겨난 것이다. 가족이 화목하지 못해 효성과 자애라는 것이 나타났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충신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 책의 이 구절을 통해서 처음 깨닫는 건 아니다. 작용과 반작용.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게 되는 것 이면에 숨겨진 방어기제라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내용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니 이 구절이 제일 강하게 박히는 건 사실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무언가 무너졌다. 사상가들은 그 원인을 살폈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인과 의, 지략과 지모, 효성과 자애, 충신이라는 관념을 내세웠다. 그것의 이동과정을 살펴보면 사상의 단계별로 맨 처음에는 도덕이 필요치 않은 무위의 사회 -> 인 -> 의 -> 예악 ->법(권세)으로 흐르고, 이러한 도구를 통해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대로 회귀(유가, 도가, 묵가)하거나 권세가에 눈에 들어서 자신의 힘을 인정받는 시간(법가)으로 이동한다. 5. 헬조선이 뜻하는 난세. 헬조선을 인정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한 처세가 점차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이제는 군자는 '인애'의 상징이 아니라 틀의 틀에 박힌 예법. 혹은 신분 차이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도구로 전락했고, 무위라는 것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잉여라는 사회부적응이라는 관점으로 변질되었다. 그에 대응하여 우리는 이제. 스스로 자신을 포장해야 한다. 우리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상품이 배송되는 곳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군주(지금의 기업가)이다. 우리는 이들의 눈 에 띄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 세상의 위치는 덕과 자연스러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지 오래요. 법 혹은 권세에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그것이 모든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다. 그런데 최근에 생긴 의문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전체적인 틀로 볼 때 헬조선이라고 불릴 정도로 팍팍하고, 그렇기에 모사의 사고방식으로 법과 권세에 의존하여 부를 쌓아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본다 하더라도. 그런 룰을 적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만한 아주 일상적이며, 사소한 것에까지 다소 무리하다시피 하여 난세의 룰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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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제자(先秦諸子)에게서 인문학을 배우다 . 먼저 제목부터 짚어보자. 이 책 제목은 <이중텐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이다. 그러니까, 제목에 의한다면 이중텐이 인문학에 대하여 쓴 책이라는 것이다. 제목만 본다면 이 책이 마치 인문학이 어떤 것이라는 등, 인문학에 대하여 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그 안에 인문학이라는 말은 거론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중텐은 선진제가들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중텐은 이 책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니, <先秦諸子百家爭鳴>이었다. 그러니, 이중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진의 여러 학자들이 말한 것을 정리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은 아마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편집자가 그렇게 고쳤을 것이다. 아무리 이중텐이 유명하다할지라도 선진시대의 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터이니 '인문학'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아닐까? .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바꾼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이중텐이 말하는 것이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 그저 제목만 유행어를 따라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이중텐이 선진시대의 제가(諸家 혹은 제자 諸子 -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면, 그래서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보며주는 것이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며 읽었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이중텐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그는 일단 공자로부터 시작한다.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제자 중 묵가, 도가, 법가와의 논쟁, 즉 선진 백가쟁명의 3대 논쟁을 설명한다. 이를 요약하기는 복잡하니, 건너뛰자. 그런 다음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왜’, 즉 궁금한 점을 설명한다.
중화민족은 어떻게 이처럼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어떤 이유로 춘추전국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했는가 그런 사상이 왜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 위의 세 가지 의문점을 설명한 다음에는 선진의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 시점에 살려보자 주장한다. 선진 제자의 사상은 인류 문명의 값진 유산이니 당연히 계승해야 하는데, 문제는 방법이다. 이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상서를 읽어보면, 대개 이런 실천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은 독자들에게 맡길뿐, 사상을 실천, 계승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상 계승의 예로 논어의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라는 구절을 든다. 이를 어떻게 실천, 계승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구체적 계승과 추상적 계승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자세한 내용은 506쪽 이하 참조) 이렇게 저자는 제자의 사상을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분류 분석하고, 더 나아가 통합하며, 그것을 계승하고자 한다. 이 책, 바로 인문학이다. 그러한 저자의 생각을 읽던 끝에 이 책의 제목을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라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문학의 정의에 대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합당한 것은 특별히 어떠한 한계에 가두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인문학 자체가 통섭의 학문이지 않는가? 그래서 어떤 특정한 분야 – 예컨대 문 사 철 – 만이 인문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의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이중텐이 비록 인문학이라는 말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대에 맞게, 또는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집대성한 선진시대 제가들의 생각을 드러내 보인 이 책, 인문학이라는 범주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상들을 통하여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도록 하는 이정표를 제시하였기에,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펼쳐보인 제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는 점이었다. 제자백가의 사상이 분출하던 시기, 2500여 년 전 춘추 전국 시대처럼 그러한 시간이 되돌아 온 것 같은 이 시대에 생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한 시점에 오히려 공자 등 제자의 사상들을 이 시대에 대안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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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버지가 '중화TV'라는 채널로 '삼국지' 강의를 열심히 챙겨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책을 구할 수 없는지 아버지가 물어서 '이중톈'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중톈'은 "역사학자이자 고전해설가이며 중국 최고의 학술 스타이자 스타 작가"였습니다. "<포브스>가 발표한 중국 갑부 순위 47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하니 그가 "중국대륙에서 얼마나 유명한 스타 작가"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해설로 그가 이처럼 유명한 스타 작가가 된 것은 중국의 시대적인 요청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인구 억제 정책으로 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많은데 자본주의 등의 유입으로 사회가 큰 혼란을 겪으면서 '버릇 없는 자녀'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이중톈의 고전강의는 잊고 있던 정신적 유산을 일깨웠고, 사회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갔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중국인들은 경제만큼 사상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민족이고, 그래서 그들이 강대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오로지 '경제'만 붙들고 있는 우리의 진짜 가난이 무엇인지 비춰주는 듯합니다. 돌아갈 사상이 있고, 붙들어줄 정신이 있는 그들의 유산이 부럽습니다. <이중텐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는 크게 보면 백가쟁명의 3대 전쟁, 다시 말해 유가와 묵가, 유가와 도가, 유가와 법가의 논쟁에 대해 살펴본 책입니다. 그리고 그의 백가쟁명 이야기는 "모든 일의 시작인 공자"로부터 시작됩니다. "공자는 민간 시상가의 신분으로 천하 대사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선례를 만들었"(411)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중톈은 백가쟁명을 통해 선진이 남겨준 사상문화 유산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묵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두어 이상 사회의 모습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평등, 호혜, 박애다. 도가는 인생에 관심을 두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 자유, 관용이다. 법가는 국가에 관심을 두어 치국의 이념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공개, 공평, 공정이다. 유가는 문화에 관심을 두어 핵심 가치를 알려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애, 정의, 자강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묵가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도가는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결정을, 법가는 변혁에 대응하는 사상 자원을, 유가는 민심을 모으는 가치체계를 남겼다"(597). 그들의 사상문화 유산을 가르치며 이중톈이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어떤 이유로 춘추 전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왜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을 지는가?" 위대한 사상가들이 춘추 전국 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한 이유로는 "사고의 성숙", "사회 격변", "사인의 부상"을 꼽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와 사회에 많은 풍파가 일었던 격변기에 위대한 사상가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격변이라는 거센 소용돌이가 치열한 사상적 논쟁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고난의 500여 년 동안 전쟁과 동란, 궁중 정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전화의 불길이 사방을 메우고,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 이에 중요한 과제가 모두의 눈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일까?"(470-471)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내던져졌을 때, 이중톈은 이 문제에 대답을 해준 사람들이 바로 사, 농, 공, 상, 중 사(士)에 속하는 계층이었고, 특수한 신분, 역사적 사명,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한 사(士) 계층만이 오직 이 문제에 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흥미롭게 풀어줍니다. 출신과 지위를 문제 삼지 않아야만 엘리트 계층이 양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신선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바로 '공자에 대한 진실'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던 분도 계시지만 이중톈의 강의는 공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습니다. 공자는 이제 성인이라기보다 고군분투했던 진실한 정치인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도 살았을 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관직, 관직, 관직을 외치며 끊임없이 관직에 연연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동분서주했음에도 가는 곳마다 벽에 부닥쳤고, 노심초사했지만 끝내 아무런 수확도 없었으며, 무리를 잃은 기러기처럼 서글펐고, 상갓집 개처럼 초라했다"(412). 그러나 그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관직에 연연했던 이유는 공자의 학문이 정치학이고, 윤리학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학이든 윤리학이든 모두 실천이 중요한데, 공자는 정치적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학문적 주장을 실천하고,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관직에 연연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자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논어》 <태백> 편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어 태평하면 자신을 드러내 벼슬길에 오르고, 도가 없어 태평하지 않으면 은거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38).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하고 맙니다. 우리에게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정치가 열 명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춘추 전국 시대라는 사회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에게 던져졌던 중요한 과제, "이 사회는 대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 그것은 공자와 같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정치가에 목마른 우리 국민 앞에 여전히 놓여 있는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에 답했던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사유와 논쟁을 담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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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이중톈 저 / 이지연 역 / 보아스]
이 책의 저자 이중톈은 역사학자이자 고전해설가이며 중국 최고의 학술 스타이자 스타 작가로 현재 샤먼대학교 인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분야를 연구하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탁월한 글을 써왔으며, 다양한 인문학 분야를 통섭한 연구로 중국의 신 '르네상스맨'으로 불리고 있다. 이 책 <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는 다방면에 걸친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동양 철학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짜면서 통섭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꾸준히 사랑받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지혜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많은 고전들 중에서 공자의 논어는 빠질 수 없다. 혼란스러웠던 춘추 전국 시대에 공자는 대표적인 성인이었다. 그로부터 25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세계적으로 중국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는 <역사 속의 영웅들>이란 책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칸트, 다윈 등 위대한 사상가들과 함께 공자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선정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우선 제일 먼저 마음가짐과 인간관계, 배우는 기술, 말하는 기술, 일하는 지혜 등 일과 관계에 관련된 공자의 사상과 지혜로운 가르침들을 접하고 그 뒤 공자의 유가 학설과 학파를 공격했던 묵가와 도가, 법가의 사상과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공자를 중심으로 첫 번째 유가와 묵가의 논쟁으로 인애(차별적인 사랑)와 겸애(무차별적인 사랑)에 대한 논쟁을 만나고, 다음은 유가와 도가의 유위(무엇이든 해야한다)와 무위(아무것도 하지말라)의 논쟁, 마지막으로 유가와 법가의 논쟁으로 덕치(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와 법치(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만날 수 있다.
공자는 학인으로서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호학, 박학, 활학이 그것이다. 그의 명언 중에는 배움에 관한 것이 많다.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명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공자는 자신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 또 말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학문에 몰두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도를 실천함을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으니, 늙어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늙어서도 끝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또 자신처럼 착실하고 온후하며 정직한 사람은 열 집 정도 사는 작은 마을에도 이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공자는 '호학'을 '충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P.19)
공자는 학문을 하는 데 있어 네 가지 병폐로 '의', '필', '고', '아'를 반대했다. '의'는 근거 없이 멋대로 상상하는 것이고, '필'은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며, '고'는 아집에 얽매이는 것이고, '아'는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병폐는 요즘 사람들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오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고집불통에 전혀 융통성이 없고 한계를 정해 놓으며 결코 깨닫지 못한다. (P.23~24)
공자는 사방으로 분주히 돌아다니며 관직에 연연했는데 이를 관직에 눈 멀어 벼슬을 탐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정치적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고, 학문적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두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공자가 분주히 돌아다니며 관리가 되려고 했던 것은 관직을 갖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관리가 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고 관리가 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돈을 버는 것과 벼슬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군자는 처하지 않는다. 빈궁과 비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당한 수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피하지 말아야 한다." (P.39)
그렇다고 벼슬만 주면 무조건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간절히 정사에 참여하기를 바랬지만 나름의 원칙과 최소한의 조건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나라에 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관직, 재물, 부귀영화를 간절히 바란다 할지라도 반드시 "취함에 마땅한 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부귀를 구구하든 빈천을 피하든 반드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순조롭게 통하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합하지 않으면 백성이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게 된다." 명을 바르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찾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고, 본분을 지키게 된다. 이로써 혼란이 없고 사회가 질서를 갖추어 천하가 태평하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분을 세우면 그에 맞는 도리가 있어 말할 수 있고, 이 도리를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다." (P42~43)
나도 개인적으로 인을 중시여기는 공자의 사상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공자의 사상 위주로 만나고 동양 철학자들의 사상까지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어려워 보일수도 있지만 공자의 충고와 조언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성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수월했다. 공자와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 공자와는 다른 입장을 주장하던 이들, 노자, 장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동양을 대표하는 성인들을 두루 만나며, 페이지 중간중간에 첨부해놓은 성인들의 가라사대를 통해 좋은 말씀을 접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너무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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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시선으로 중국 철학을 한 번 바라보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의 스타 인문학자. 이중톈 그는 책을 팔아 2007년 <포브스>가 발표한 중국 갑부 순위 47위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에 인문학 열풍이라더니. 이러한 책 판매량은 정말 부러운 문화다. 원래 초한지와 삼국지로 유명한 저자인 것 같은데, 이번에 이 책이 재발간되어 사보았다. 굉장히 두꺼운 이 책은, 제자 백가를 다루고 있다. 유가의 공자부터 시작하여 묵가, 도가, 법가까지 이어지는 사상을 다루고, 이 시대상황과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설명한다. 인문학 책들은 딱딱한 문체가 많다. 반면 이 책은, 저자의 단호한 면이 있긴 하지만 문체가 쉽고 재밋다. 예를 들면 "의봉인은 유명한 사람을 좋아해서 요즘의 팬클럽처럼 유명 인사가 의성에 들르면 언제나 직접 만나 보았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매를 맞아야 한다고 지목된 학생은 한 명이고, 욕을 먹은 학생은 세 명이다." 는 문장이 읽다보면 튀어나와서, 딱딱해질 수 있는 중국 철학을 읽기 쉽게 풀어준다. 이렇게 논어를 분석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중텐은 고전 내용을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 풀어낸다. 고서의 해석만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들과 다르게, 왜 사상가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다른 사상가들의 사상은 비판했는가? 그 비판을 한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 사상의 헛점은 무엇인가? 를 묻고 그는 사상가들의 차이점과 공통점, 논리적 개연성을 계속 반복해 설명해 준다. 우리에게 고전은 무슨 의미일까? 이중톈은 고전을 추상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분석, 핵심파악, 색체 제거, 재해석의 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제자백가의 관점을 '분석'한 다음, 그들의 사상이 여전히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핵심을 파악' 한다. 선진 제자의 시대와 계급적 낙인은 벗겨내고 합리적인 내용과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만 남겨놓는데 이것이 '색체 제거'작업이다. 이렇게 제거 작업을 하고 나면 제자는 회색으로 변하게 된다. 회색만이 다른 색과 배합을 할 수 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 하고 연결의 고리를 잇는다. 그는 모든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며 한 사상만 편애할 것이 아니라 각각 취할 부분만 취하고 버릴 부분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다. 개인적으로 <법가>는 색다른 해석이 돗보였고, <유가>와 <도가>는 재밋었다. <묵가>는 아는게 없어서인지 신선했다. 번역이 꽤 잘되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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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자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중에서도 사실 유독 한국이 더욱 공자가 중요하다. 다양한 사상체계가 난립하고 유입되며 여러 사상이 혼재(??)되어 있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한국은 공자의 가르침을 거의 중심사상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체계가 권장되었다. 오죽하면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교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다. 중국에서 뒤늦게 자신들보다 더 유교적 가치를 지키는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중국 사람이니 중국인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중톈은 솔직히 처음 서점에서 그 이름을 접했을 때 우리나라 교수인줄 알았다. 중국인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상당히 많은 책마저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인이 저술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견이라고 하면 편견인데 책을 읽어보면 음모론을 이야기하건 중화사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답지 않게 수준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책을 좀 읽는다는 분들도 비슷한 의견이라 중국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중텐같은 경우에 이번에 처음 접하는데 중국에서 갑부 47위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기업인이 아닌 교수가 책을 출판하고 강연만으로 버는 금액이 상상초월이라 본다. 이중텐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제외하면 책 내용은 딱히 더 대단할 것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자는 이미 수많은 책에서 다루고 언급되며 어느 정도 모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공자의 논어 등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어도 다양한 책으로 공자의 사상을 접했고 공자일대기도 읽어 봤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은 인물이다. 공자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가진자를 위한 사상체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시대상을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럽다. 계속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이상적이라 당대에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덕분에 두고 두고 사상이 후대에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제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본다. 대부분 종교위치에 있는 사상가들이 그렇다. <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 여러 사상가를 비교하며 알려주는 책이다. 처음에 공자에 대해 알려준 후 백가쟁명에 따라 한 명씩 사상가를 불러낸다. 같은 문화권에 어릴 때부터 알게모르게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새롭거나 생소하지 않다. 본문 해석이 다소 애매한 부분을 이중톈이 나름 해석하는데 그 부분은 큰 흐름에서 딱히 벗어나지 않기에 읽는데 어렵거나 불편함은 없다. 배우는데 일정한 스승이 없어야 비로소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스승이 없어야 다양한 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대사(대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장무기가 위기 순간에 장삼풍에게 태극권을 배운다. 한 차례 시전한 후 장무기에게 얼마나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거의 전부 기억한다고 답변을 하자 다시 시전을 한 후 얼마나 기억하느냐가 묻는다. 몇 번을 그렇게 장무기에게 물어본 후 전부 다 잊었다고 한 후에 비로소 겨루기를 수락한다. 급작스럽게 배운 기술로 무공을 펼치다 자신도 모르게 기존에 몸에 익은 기술이 나오면 오히려 위험하기때문에 한 행동이다. 모든 것을 잊었다는 것은 새롭게 배운 내용이 자신이 이미 익혀놓은 기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뜻이다.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무술가들은 자신의 류파에 자유로울 수 없어 한계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큰 위인이 되는 것이 무협지에서 많이 나온다. 누군가의 파냐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지션마저 정해져 운신의 폭이 적어지기도 한다. 경제공부를 하고 다양한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파로 나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정 파가 된 사람은 죽었다 깨워나도 스승에게 사사받은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파에서 거두가 되어 일가견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실전적인 면이 좀 더 강하다보니 다양한 사상을 접하고 다방면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그때마다 써 먹은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무슨 무슨 파로 규정당하는 것 자체가 나는 싫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그중에 반드시 나에게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공자가 한 수많은 어록(?)중에 가장 내 기억에 오래 남는 둘 중에 하나다. 또 하나는 아마도 '오늘 새로운 것을 배웠으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는 뜻인 세 사람이 길을 가면 한 명은 반드시 스승은 있다는 이야기는 갈수록 참 힘들어진다. 나이를 먹으며 책을 읽고 지식이 쌓일수록 교만한 마음이 싹을 핀다. 그저 내가 그보다 특정 분야에서 좀 더 많이 알고 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우월한 감정을 갖게 된다. 실제로 그가 하는 분야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뇌충이 되어버리면서 내가 알고 있는 분야에서 그가 모른다고 낮게 보는 것은 아주 꼴보기 싫은 모습이다. 늘 이런 교만을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갈수록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아주 약간 있다는 것이 노출되어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은 받아들여도 결코 내가 잘난 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야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인문학이 뜨면서 다양한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는 책이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이 책도 그런 책중에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차라리 다이제스트식으로 이것 저것 짜집기하며 써 놓은 책보다는 이 책 <이중톈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처럼 공자에 대해 집중 탐구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공자는 이미 참 많이 알려졌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공자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사상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168523007 ![]() http://blog.naver.com/ljb1202/220136415687 ![]() http://blog.naver.com/ljb1202/2201185803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