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방 전후사를 ‘재인식’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책을 썼다고 저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접하면서 이들이 이야기 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조금만 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 바로 ''객관적 기술''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모순성에 대해서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그 모순점을 안고 시작하고 있다.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겠다는 공언과는 달리 책의 내용들 특히 친일문제나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경우 이들이 이야기 하는 ''객관성''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만큼 편향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역사서로서 저자들 가운데 근현대사를 전공한 분이 안계신 집필진의 수준도 고려해서 읽어야 할것 같다. 특히나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지난번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모욕적 발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음에도 사과의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자기 전공 이외의 학문에 대해 왈가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
| qkrwjdemr님은 분명히 사학을 전공한학생으로 보이지 않으며 분명 책을 읽지도 않았을것으로 보입니다. 이책은 그간 기존의 해전사에서 제기한 현대사의 주제를 실증을 바탕으로 재검증되고 소개된 논문을 집대성한것이요. 편집자들의 개인의 성향을 쓴 책이 아니오. 학계에서는 해전사의 시각이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나 이 내용이 일반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아 새롭게 편집한것이지요. 책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자신의 이념과 맞지 않다하여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일이지요. 님이 역사학과를 나온 학부생일지 모르나 절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오. 한시대를 분석함에 있어 사회, 문화, 경제 각 분야를 역사학자 한사람이 모두 분석할수없오. 그 시대의 경제사는 경제사를 전공한 경제학자가, 그 시대의 문화, 사회사는 그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하는것은 당연한것이오. 이런 기본 상식도 모르는 님이 역사를 전공했다는것은 믿기 어렵오 |
| 보통 정치사회분야 책이 출간될 때 책에 담긴 내용들은 기존 사고체계속에서의 새로운 '중심잡기' 를 꾀하려거나 기존의 이념, 개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어떤 글쓰기이든지 의식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이미 정치성과, 또하나의 입장과 관점성을 갖게 된다. 글을 통한 생각의 전달이라는 '사고의 광고'들은 소위 관점주의, 상대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책에서 '재인식'이라는 대립개념화된 표제 속에는 이미 특정 자리에서 바라본 개별요소들에 대한 배제, 강조, 포괄, 추상화가 전제되어 있다. 이 책의 표적이 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 도 본질적으로 좌파편향이다. 스스로를 객관이라 억지부리지는 않았으되 제시된 증거자료들만은 객관화된 진실임을 실증하였다. <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은 소위 분단직후 우익강점의 (우익이라 불릴 가치도 없는 수구퇴폐성향의) 헤게모니 지반위에서, 무참히 제거된 반쪽 진실과, 가치들을 복권하기 위한 지향성으로 인해, 책의 논의점들이 최종 안착할 목표가 아무리 객관(중립)이라 해도 좌편향이라 기표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근본 딜레마, 한계성을 고려하여 이번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책을 최대한 수용해 보려 했으나 일단의 글들은 그동안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반쪽역사를, 지리멸렬한 50년전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스스로 표방했던 '다각적, 객관적, 실증적' 이란 수식은 견강부회하며 수집한 그들만의 자료였다. 구체적으로 꼬집자면 전쟁전후의 미군이란 존재의 정체성을 놓고 '결과지상주의' 관점 (현 남한의 체제우위의 승리?를 자축하며 과거의 모든 오류들을 긍정해버리는) 을 앞세워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련의 책임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해 미국의 책임과 불순한 행적들을 은근슬쩍 감싸주거나 아예 빼먹고 있다. 상징적인 일례로 한반도 분단의 가장 근본적인 단초라고 할 만한 (45년 12월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이 책이 할애한 겨우 2페이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해방전후의 재인식> 제 2권, 5부 해방 공간 ㅡ p46 ~ 47) 당시 3상회의기록 전문에 대한 어떠한 증빙자료도 없이 당시 미국측 협상대표였던 '번즈'국무장관과 '조지 캐넌'의 몇마디 발언이 이 책이 내건 객관적 자료의 전부이고! 당시 미국의 음해공작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국내 동아일보의 기사(46년,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미국의 조직적개입은 이미 드러난 사료史料인데도 이 부분에 대한 일말의 소개나 분석도 없이, 신탁통치를 꾀한 주범과 간악한 여론몰이가 실제로 어떻게 벌어졌는지가 누락되어 있다. 논지를 펼치는 방식도 증거한다는 자료들도 50년전 논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당시 번즈국무장관에 대한 조지 캐넌의 증언을 인용한 부분인데 " 모스크바 3상회의 당시 그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가 없었고,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했던 터라 당시의 회의에 대해 별 준비도, 고민도 없이 좋은방향(통일국가수립)으로 빨리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애초부터 회의결렬을 작정하고 있었던것 같다." 라는 어설픈 대목이 소개되고 있다. 이 인용문이 마치 진실의 폭로인양 소개되는 것을 보며, 이 책을 쓴 저자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졸속한 수준으로 글쓰기에 임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당시 한반도의 운명을 앞에두고 표명한다는 비공식적(하지만 진실이 담긴) 입장이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국의 최대견제국이던 소련,중국의 지배영역권에 속해있던 한반도 (더군다나 전국민의 80%가 사회주의에 고취되어있던 나라) 를 신탁통치를 통해 어떻게든 견제용 전초기지로 만들려한 미국의 속셈을 이런 변명으로 숨기려 했다는 것은 졸렬함을 넘어서 우리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밖에는 생각할수가 없다. (미국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현재 전세계 90개국에 점령군, 파병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신탁통치조작에서부터 전쟁발발전 미군의 의도적인 철군, 양민학살진상, 전후 정치적개입과 비밀방첩활동 등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게 될때, 우리들은 어쩔수 없이 반대편 주장을 거짓으로 여기며 편이 갈릴수 밖에 없게 된다.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스스로 중립이라 참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오만이다. 애초부터 자기는 우편이요 좌편이요 밝히는것이 차라리 솔직함일 것이다. 역사에는 정립이 없다. 단지 끝없이 이어진 설득의 과정만 있을 뿐이다. 미국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아니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거 일제시대 부역지식인들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들과 그 잔존세력들, 또 그들의 행적들을 어떻게든 정당하게 윤색하려는 저자들의 모습들. 서두에서 이미 밝힌, 민족주의를 역사의 구닥다리로 못박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잔여물이 보이는 건 왜일까? 당시 일제가 주창했던 것이, 일찌기 근대화에 앞장선 자기네 우월인종이 아시아의 주인이 되어 민족을 초월한 전아시아의 공영(지배)으로써 서양세력과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수입된 근대사상들중 '민족주의' 사상이 일제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국내의 배알없는 몇몇 지식인들이 이에 부화뇌동하여 황국신민으로 포섭(인종상승)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 세력의 잔당들이 친일에서 친미로 주인을 갈아치웠듯이 요즘같이 극우민족주의가 다시 득세하는 추세에 이 책의 필진들이 과연 또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反민족주의'를 탈바꿈하여 그들의 입맛(극우)에 맞게 이용할지 지켜볼 노릇이다. 아니 어쩌면 지켜야할 노란피부의 민족이란 애초부터 필요 없어져버린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들과는 다른 피부의 주인(미국인)을 섬기고 있으니깐. 그래서 민족주의를 버리자는 거였나? |
| 기존의 해전사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책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매우 실망스럽다. 해전사와대비되는 다른 새로운 논리도 있으면 하는 기대가 무너져 버렸다. 물론 세상에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이 책은 저자들과 그 배경인 뉴라이트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혹시나 하고 기대한 사람들에게 여지없는 실망을 주고 있다. 특히, 친일은 시대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하고 이승만을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또한 민족주의가 과격한 낡은 이념이라고 단정한다. 진짜 말하고 싶은게 뭔지 속들여다 보인다. 소위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변명을 한다니 그들의 도덕적 기준은 여건에 따라 쉽게 바뀌나 보다. 필자들만 보아도 역사학자는 단 한명이다. 일본과 관계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심각한 역사적 오류를 보여온 이영훈이나 기무라 미쓰히코 같은 이들이 필자로 있으니 더 할말이 없다. 그럴 바에는 김완섭, 조갑제 같은 이들도 필자로 참여시켜야 하지 않을까? 누구 말처럼 수구주의자들의 커밍아웃이다라는 말에 매우 공감이 간다. 왜 우리네는 이런 구질구질한 변명이 필요없는 떳떳하고 당당한 자주적 우익세력이 존재하지 않는걸까? |
| 이영훈 교수 왈 [식민지에 관한 역사 서술도 질적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몰라요. 일본이 토지의 4할을 빼앗았다거나 식량의 절반을 약탈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시장기재를 통해서 일본의 쌀값이 비싸니까 한국의 쌀이 건너가는 것이고, 또 당시 일반 민중들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거든요. 소작인들이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으니까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 한 다음에 토지의 4할을 빼앗은 것이 시장을 통한 것이었습니까? 저는 이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빼앗은 것은 언제까지나 기한부 신고제, 홍보의 기피, 복잡한 절차라는 방식을 통해 강제로 빼앗은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시장기재를 통한 것이 될 수 있나요? 또한 식량의 절반을 약탈했다라는 것 또한 시장에 의해 일본의 쌀가격이 비싸 싼 조선의 쌀이 건너 간 것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 확실히 조선의 쌀에 비하면 일본의 쌀 가격은 비쌌지요. 하지만 생각해보셨나요? 조선의 쌀이 일본으로 ''너무나도 많이'' 넘어가서 일본의 쌀 가격이 너무나도 하락하는 나머지 일본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것이 조선땅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자발적인 것이었나요? 아니지요. 그것은 지주들의 행동이었지요. 그리고 그런 지주들의 행동에 힘을 준 것 또한 일본이 아니었던가요? 일본은 조선말보다도 심하게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었지요. 자신들의 마음대로 소작인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을요. 이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다른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최소한 조선시대에는 지주들이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마음대로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또 소작농들을 상대로 받는 지대와 같은 것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터무니 없이 높아집니다. 물론 거기에 반항을 하는 소작농들을 쫓겨나거나 지주들의 요청을 받은 일본 헌병이 와서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했지요.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마름''입니다. 이 ''마름''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소작농들이 자신이 붙이고 있는 땅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혹은 지주의 땅을 빌리기 위해 거치는 일종의 중간보스(?)라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조선의 쌀이 비정상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유는 농사를 직접 짓는 조선농민들의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소작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쥐어짤 수 있는 권리를 일본은 지주들에게 주었으며 거기에는 일본의 헌병과 경찰이 함께 하였습니다.(왜 헌병이 붙었는가 의구심이 계시는 분께 말씀드리자면, 당시의 헌병은 지금의 헌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을 시장경제의 논리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예. 지주가 쌀을 일본에 파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이겠습니다만, 그 이전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절대로 시장경제가 아닙니다. |
| 밤새 읽을 요량으로 간만에 사회과학서적을 구입하며 읽게된 ''재인식''... 그런데,도저히 2권을 다 읽지 못하고있습니다. 포탈에서 관련 자료나 서평들을 매일 매일 꼼꼼히 읽으면서 다 읽으려 노력은 하지만참 어렵네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서평을쓰는 이유는 째,뭘 재인식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더란 것입니다. ''재인식''의 논문들을 크게나누어보면(저도 여기선 이분법을 적용하게 되는군요 ㅎㅎ) 인식을 재인식 하겠다는 주요 집필진(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용훈)과 논문 게재 정도의 다른 필자로 구분되더이다. 먼저 대부분의 논문들은 ''재인식''이라는 제목엔 어울리지 않는 이미 우리들이 알고있는 내용이더이다.386이나 386에 근접한 나이인 저 정도의 허접한 지식 수준에서도 식민지나,50년대,박통시기를 무조건적이게 ''O'',''X''식으로 폄하나 평가절상 하는 돌덩어리들은 아닌듯합니다.그정도의 다양성에 대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구별하는것도 웃기고 어이없지만) 다들 인지하고 있는 바라고 봅니다.여기까지의 제 느낌은 별다르게 재인식 하는게 아닌 이미 인식하고있는 수준의 논문들이라는것입니다.논문들도 10~20년정도 된게 제법많구요.10년전과 지금의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인터넷이 충분히 설명될터입니다. 문제는 주용 집필진들의 논문들인데(그들의 논문은 다 읽었습니다.물론 대담도)... 그들의 생각이나 이념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저보다 많이 배운 분들이구 그쪽일로 밥벌이 하시는 분들이니까 전문성이 뛰어다는것은 인정합니다. 러나,그들이''재인식''하겠다는 부분이 도대체 뭔지를 갈피 잡을수가 없습니다.''해전사''를 객관적으로 제평가 한다는데,제가 읽고 느낀 바로는 ''객관''이라는 단어조차도 인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으니 ''해전사''를 ''인식''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틀린것을따르지 말고 옳은 우리를 따르라."우리들은 새롭게옳다"가 ''New right'' 입니까? 결론은 이분법적 그것도 근거 박약에 논리 비약인 감적적인 이분법. 친일 할 수도 있고 그들의 성과도 있을터이다.이승만,박정희대통령,심지어 대머리아저씨,보통사람도 성과는 분명히 있을터이다. 그렇다고,우리 아이들에게 "저렇게 살아도돼.누구나 잘못하는 부분도 잘하는 부분도 있어.인간의 역사는 원래 그런 과정이야,말해야 할때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말하는 사람이나 조용히 입다물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그래도 사회에 이바지 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같은거야.우리조상들도 다 그렇게 살았어."라고 가르칠 순 없지요. 왜? 어른들은 후손에게 자신들보다 올바르고 곧고 참되게 살라고 말해 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진정한 배움이니까. 제가 ''재인식''을 아까운 돈주고 사보고 돈이 너무 아깝다고 느낀바입니다. 더욱이 제가쓴 5만원여의 돈에서 그들이 인세라는 익을 챙기는게 더 속쓰리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
| ''인식'' 저자들 중 하나인 연대 김모 교수는 모 일간지에 올린 ''재인식''에의 반론평에서 "거시적 인식의 외면은 곤란하다 - - - 역사는 끝없이 수정되는 것 - - -" 운운하고 있던데 - - - 그렇다면 그는 리영희류의 해방전후사-대한민국현대사 해석이란 게 그 무수한 단위의 ''미시적'' 팩트의 오독 내지 무시 / ''거시적'' 이념형 도출 내지 활용 / 의도적-결과적 역사날조 등으로 구성되는 지적-실천적 범죄와 무관할 수 있다고 본다는 얘긴가? 또 ''재인식''의 문제의식들 중 하나인 ''수정주의 미신의 해악 타파''에서의 수정주의라는 게 커밍스류의 ''무지한 수정주의 군락''를 적시하고 있으며, 지적 생산에서든 대중노선적 응용에서든 그것의 다양한 변용들이 대한민국 내 지식-문화계와 정치권을 막론하고 무성히 창궐중임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짐짓 위장하거나 외면하자고 선동해 보자는 건가? 그 ''수정주의'' 내지 ''수정주의''를 경우에 따라 차폐막 삼으며, 수십년간 ''인식''을 싸고 도는 꽤 다양한 섹트들의 집합인 진영론적 수용자들의 군락이 일면 2006년의 권력 이데올로기 유포-수혜자들의 지형과 거의 일치할진대, 사실 이들에게 있어선 그 ''이데올로기'' 수정을 가열차게 요구하는 지적 작업에 일말의 양심적 불편과 사업적 경계심이 일어날 만도 하리라고 본다. 사실인식과 실천과제의 ''수정''과 ''진보''를 누구보다 환영해마지 않을 입장이지 않을까 싶던, ''인식''의 출판사 사장이란 자는 아예 "학문적 생산 과정에 ''이념'' 문제를 끌어 들인다 - - - 좌-우를 도식화시켜 빨갱이사냥을 기도한다 - - -" 식의 몰상식한 철지난 음모론적 반응을 반론평이랍시고 표하고 있던데 - - - 불모의 대한민국현대사 연구 발전에 이바지함을 그리 절실히 소망해 온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자-타칭 문화계 인사답게 ''재인식''의 논지를 따라갈 만한 현실감각 및 지적 수준 도야에 어느 정도라도 신실하게 신경을 써 온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그는 ''재인식''의 출판을 나서서 떠맡아, 제 회사의 상품 라인업에 ''인식''과 나란히 놓을 줄 알았어야 했을 것이다. |
| 한마디로 대한민국 커다란 몇개의 수구신문에서 키워준 책~~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념이 많이 바뀌도 자유로워진 지금... 예전처럼 유신시절을 그리워하는...오랜 독재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그러한 생각을 가진 집단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책입니다... 어떠한 사상으로...어떠한 사고로 자기 주장을 표현하고 생각하는건 충분히 자유입니다...그렇지만 결코 역사문제 만큼은 자기 집단을 위한 합리화나 비약으로 많은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해선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건국 이후로 불과 몇년전까지 그토록 잘못된 역사를 배워왔음에 지금 모두가 깨닫고 그 교훈속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할지언데... 잘못된 역사가 사라지기도 전에 벌써 그 틈을 파고 들어 대중들을 혼란케 하는 이런 책들이 나오게 되다니....답답합니다... (정말 평범한 사고로 그냥 회사에 다니고 있는 32살 청년입니다...다른 오해는 결코 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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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두께가 상당하더군요. 내용은 논문형식으로 많은 자료를 실어서 그 시대에 관한 객관적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역사를 전공한건 아니지만, 근현대사에 나름 관심이 많아 이런류의 책을 즐겨봅니다. 물론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읽었죠. 한 20년전쯤에 읽었으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에 흥분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나이들어 새로이 나온 `재인식`을 읽으니, 그때와는 또다른 새로운 역사에의 시선이 좋네요(?). 먼저 이런 논의가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 개방성(?)을 느꼈죠. 언젠가부터 금기시되다시피한 우측의 관점. 그러나, 그보다는 객관적 자료제시및 해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듯 싶네요. 똑같은 통계자료를 보고도 해석이 다를수 있죠. 첫째, 일제가 우리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지만, 이책에서는 그렇다는군요. 물론 일본이 원했던것도 아니고, 만주사변및 2차대전때문이었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영원히 지배할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기때문이겠죠. 역사의 아이러니죠. 둘재, 위안부문제입니다. 이 책은 정신대와 위안부를 분리하죠. 일본군의 성적 학대대상은 위안부이지 정신대가 아니니 정확한 명칭을 부르는 것이 맞죠. 또 그 위안부가 일제의 강제징집도 있었지만,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의 내몰림과 인신매매에 의한 경우도 많았다고 밝힙니다. 이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죠. 이것이 꼭 위안부할머니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네요. 모든 인간사에는 그시대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더군요. 똑같은 것을 보거나 들어도 말이죠.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가 쓴 것이 아니라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임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나누어 썼으니 그 부분을 더 잘 볼 수있죠. 따라서 전체적으로 뭉뚱거려 넘어가지 않아, 보고싶지 않은 부분도보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듣게 되네요. 좀더 넓게 생각하기 위해 읽어 보고 비판하세요. |
| 비전공자들이 나타난 자료들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춰 해석한 역사책에 가깝다고 하고 싶다. 수치나 객관적 자료라고 할지라도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이 역사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독이나 설익은 이해는 누구도 쉽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접근하자면 먼저 한국사의 영역 부분에 대한 접근인데 여기에 참여하는 학자들 대부분의 면면을 보자면 정치외교학, 경제학, 서양사학, 국문학이라는 점이다. 무엇을 의미할까? 이데올로기의 상당한 과잉이라고 생각지 않는지 먼저 묻고 싶다는 점이다. 특히, 자유주의적 사고만을 중시하는 정치외교학자들(이들이 보수적 존재인지는 너무 의심스럽다. 오히려 정치적이고 정략적은 아닌지)의 한국사에 대한 접근과 해석은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묻고 싶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 나타난 이광수의 생각을 판단한 경우를 보았을 때에도 철저한 일본의 군국주의에 경도되어 그때그때의 변명으로 일관한 존재에 대해서 "민족"을 읽었다는 점 자체가 의아스러울 뿐이다. 이광수는 모든 물리적 힘이라는 것에 경도된 혼자 잘난 소아병환자였을 뿐인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