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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낯선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고, 경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두려운 것을 멀리 밀어내려 한다. 수평마을 사람들이 찌니들을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따뜻하게 음식을 나누고 이름을 불러주던 손길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다. 그들의 태도는 분명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정지아는 그 장면에서 누구 하나를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대개 악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편견 자체보다도 편견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시간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익숙하게 믿어온 세계를 단숨에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질서와 가치관은 낯선 존재를 만나는 순간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곧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해에는 용기보다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들려주는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계절이 바뀌듯 조금씩 스며들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의 굳은살을 부드럽게 만든다. “잘 모리던 것을 워치케 냉큼 받아들이냐.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약이여.”(165쪽)이라는 한마디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정지아의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큼만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낯선 삶을 만났을 때 서툴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서툶을 부끄러워하며 조금씩 마음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작품은 이해를 타고나는 자질보다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익혀가는 마음의 습관으로 바라본다. 『찌니주의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음식이다. 문고리에 걸린 호박전, 이름 없이 놓여 있는 나물 반찬, 함께 둘러앉아 먹는 조기매운탕, 슬그머니 놓여 있는 장조림과 전복장. 한국인의 밥상은 오래전부터 사랑과 사과를 같은 그릇에 담아왔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을 한 그릇 더 떠주고, 걱정된다는 말을 삼키는 대신 반찬을 챙겨준다. 수평마을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은 음식이 되어 대문 앞에 걸리고, 그 밥상 위에서 조금씩 관계가 회복된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한솥밥을 먹는 사람을 뜻한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라도 같은 밥을 나누는 순간 사람은 식구가 된다. 그래서 수평마을의 밥상은 허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삶 안으로 들이는 의식처럼 읽힌다. 말보다 먼저 밥을 건네는 사람들, 용서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아주는 사람들. 정지아는 한 끼의 식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리’라는 이름을 천천히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수평마을’이라는 이름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읽힌다. 수평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 되는 상태가 아니다. 각자의 삶을 그대로 지닌 채 서로를 위아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의 높이다. 누구는 먼저 이해하고 누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속도로 마음을 움직이며 같은 자리로 다가가는 풍경. 공동체란 서로 다른 삶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려 애쓰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상대를 바꾸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동안, 낯선 사람은 조금씩 이웃이 되고 이웃은 어느새 서로의 삶을 기대어 사는 사람이 된다. 낯선 사람이 이웃이 되는 데에는 특별한 계기보다 오래 함께한 시간과 작은 마음들이 필요하다. 한 끼의 밥을 나누고, 서툰 사과를 건네고, 이해하지 못했던 존재를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찌니주의보』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삶들이 한 마을 안에서 부딪히고 어울리며,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다정함을 발견하는 독자, 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독자,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소설은 깊은 울림을 건넬 것이다. 또한 피를 나눈 관계만이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같은 밥을 나누는 순간 서로의 삶에 들어설 수 있다는 따뜻한 감각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정지아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주 조금 움직이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우리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유를 조용히 보여준다. ✏️도서출판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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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신작 <찌니주의보> 역시 기어코 나를 울렸다. 유쾌한 사투리와 정겨운 시골 마을의 풍경 속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의 배경은 구례쯤에 자리한 작은 수평마을이라는 시골 마을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주로 살아가는 동네인 만큼 전라도 사투리가 진하게 쓰인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외할머니의 말투를 떠올리며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금세 귀에 익는다. 특히 이장의 말투는 꼭 우리 작은 외삼촌을 떠올리게 해 더욱 친근했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 전 이사 온 두 젊은 여자 혜진과 성진을 이름 대신 ‘찌니네’라고 부른다. 키가 작은 혜진은 작은 찌니, 키가 큰 성진은 큰 찌니다.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 둘을 모두 찌니라고 부르는 단순한 호칭이지만, 읽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귀엽고 정겹게 느껴진다. 소설은 오랫동안 ‘윤 선생’이라 불려 온 할머니가 찌니네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시작된다. 윤 선생은 새로 이사 온 두 여자가 ‘레지’라며 마을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다방 레지를 말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레지’는 레즈비언을 뜻했다. 우연히 찌니네를 만난 한씨댁은 거리낌 없이 “참말 레지여?”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은 낯선 존재인 찌니네를 바라보고, 경계하고, 때로는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그들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도 있다. 이장과 베트남에서 온 쑤언이다. 쑤언 역시 이방인으로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시선을 견뎌 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쑤언은 또 다른 이방인인 찌니네를 외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소란스럽게 그들을 감싸고, 누군가는 말없이 집 앞에 반찬을 놓아두며 마음을 전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처음에는 찌니네와 시골 노인들의 세대 갈등을 다룬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점차 마을 전체로 넓어진다. 양촌댁, 절골댁, 장씨댁, 한씨댁을 비롯한 인물들이 한 명씩 고개를 들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들려준다. 누군가는 왜 찌니네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누군가는 왜 오래 머뭇거렸는지. 그 이유는 모두 각자가 지나온 삶과 상처에 닿아 있었다. 오랜 세월 자신의 사연을 진하게 품은 채, 오래된 집의 기둥처럼 묵묵히 버텨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끝까지 밀어내려 한 사람은 결국 한 명뿐이었다. 마음의 빗장이 한 번 풀리자 다시 찌니네를 찾아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양촌댁 할머니도, 절골댁 할머니도, 장씨댁도, 농담이 조금 심한 한씨댁도 어느새 모두 정이 들었다. 하지만 윤 선생만큼은 끝내 정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동네에도 윤 선생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윤 선생마저 마을 밖으로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마을은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아가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찌니주의보>는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고, 굳게 닫아 둔 마음의 빗장을 풀어 가는 일에 더 가깝다. 유쾌한 사투리에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책을 덮은 뒤에는 괜히 믹스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은 그렇게 조금씩 넓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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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78세의 수평마을에 서울에서 온 두 여성 ‘찌니들’이 이사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세대와 삶의 방식은 오해와 충돌을 만들지만, 함께 밥을 먹고 곤란한 순간에 손을 내미는 동안 낯선 타인은 조금씩 ‘우리’가 되어간다. 이 소설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을 화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한쪽을 위나 아래에 두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작품이 보여주는 ‘수평’의 의미처럼 느껴졌다. 정지아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에 웃다가도 인물들이 견뎌온 삶의 무게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공동체란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한 뒤에도 다시 밥상에 자리를 내어주는 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남기는 따뜻하고 생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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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_정지아] #가제본서평단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신작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됐다🧡 전작을 비교적 최근에 읽어서인지 기억에 아직 선명한데, 이번 작품 역시 그 결을 고스란히 이어간다. 조금 엉뚱하지만 역시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서 조금 비껴난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쾌한데 따뜻하고, 익살스러운데 다정하다. 그게 정지아 작가만의 힘인 것 같다. 서울에서 아웃팅을 당한 뒤 도망치듯 찾아든 수평마을. 평균연령 78세의 어르신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마을 사람이 되어가는 혜진과 성진의 모습이 기특했고, 마을 어르신들께도 괜시리 감사했다. 🥲 투박하지만 정 많은 시골의 인심이 괜스레 그리워지기도 했다. 글은 굉장히 잘 읽힌다.개인적으로 아버지의해방일지보다 더 술술 읽혔다!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찡해진다. 이 소설은 꼭 동성애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 쉽게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 어딘가 외톨이였던 이방인들까지도 품어주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이 정말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고, 그런 마을이 하나쯤은 존재할것이라는 믿음을 선물받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오래전 어려웠던 시절을 묵묵히 견뎌냈을 할머니들의 삶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희생이 너무도 당연했던 시대를 살아낸 그분들의 이야기는 웃음 속에서도 먹먹함을 남겼다. 특히 윤선생과 절골댁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ㅜㅜ 줄긋고 감상들 메모하면서 웃고 먹먹해하며.. 행복한 시간 보냈다! 다정한 책은 항상 좋다.🧡 츨판사에서 선물받은 책을 읽고 쓴 후기입니다. #도서제공 #정지아 #찌니주의보 #소설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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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딱 "하루" 밖에 주어 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때도 그랬다. 소설은 며칠을 넘나들며, 몇 십년된 과거까지 거슬러 거슬러 타고 올라갔지만,
책을 손에서 놀 수 없었던 예전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에는 페이지 수를 손으로 짚어가며 아껴 읽으리라 했지만 결국 하루 만에 다 읽고 말았다. 정지아 작가님이 책이 그렇다. 첫 장에서 그 뭉근하고 따스하며 포근한 묵은지 같은 맛깔스러운 대사를 접하게 되면 계속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읽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작가님 소설이 언제쯤 출간되는지 방앗간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한 덕분인지 소중한 책을 가제본으로 받아서 읽을 수 있었다. 실제 책 표지는 오늘 보았는데 찌니들과 수평마을 사람들을 한눈에 본 느낌이었다. 책표지를 보면 검은 비닐봉지(일명 비닐 봉다리)가 가운데 일러스트화 되어 있는데, 소설에서 나름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제본의 표지를 장식한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작은 인덱스, 펜, 필사 노트를 같이 준비해서 읽다가 바로바로 필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그 흐름을 끊게 하기 싫어서 한참 읽다가 여러 개를 모아서 쓰기도 했는데, 필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 이야기가 귀에 맴돌아서 행복한 기억이 있다. 6개의 목차에서 빠질 만한 것이 있을까 할 정도로 나에게는 맞는 내용이었다. 수평마을에 이사 온 "찌니"들과 수평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들어갈 시간이다. 성정체성이란 특히 시골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만 사는 한적한 마을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소재이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하지만 빨래가 "햇빛 말고 바람 좋은 오늘 같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순식간에 꼬들꼬들 말라" 부서지는 것처럼, 늙음을 "늙디늙어 고요히 가라앉은 채 죽음을 향해간다"는 표현으로 시골의 깊은 시골마을에 이제 젊은이는 없고 늙은 나이의 어르신 조차 더 나이 들어 간다는 작가님의 특유한 문체는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얼마 전 읽은 편집장이 주인공인 글에서 2~30년 이상 편집을 한 주인공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30년 이상 하고 있고, 일을 하면서 결혼까지 미룰 만큼 보람도 느끼고 일에 몰두했는데도, 그 일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지, 적응되는 것이 아니였다 라는!! 하물며, 싫은 말은 오죽 할까! 그 질문을 견뎌내는 근육은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꼭 발가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의 질문을 받으면 그 상황이 꼭 멈춰진 화면처럼 굳어 있는 느낌 일텨, 찌니들은 수평마을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경험한다 . 하지만 검은 봉다리의 따끈한 부침개, 김치 등 따스한 사랑을 겪으면 점점 수평마을에 가까워진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 아닌가? 예로부터 계속 내려오는 말이다. 일해서 맛있는 거 먹고 자식들 맛있는 거 주는 것이 제일 큰 낙이듯이, 찌니들도 누가 걸어 놓은 지도 모르는 검정 봉다리에 담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김이 나오는 국을 한수저 뜨고 눈물을 흘리며 수평마을 사람들과 말없는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정지아 작가님의 고향이자 지금도 살고 계시는 구례 산동면의 멀지 않은 곳, 수평마을(실제 존재함)의 맛깔스러운 음식과 정겨운 토속어도 소설의 재미와 깊이를 한결 깊게 만들어 준 듯!! #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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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정겨운 사투리체가 우리 시골 할머니들이 생각나서 실감나게 읽혔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중간중간 해학적인 농담이 소설의 중압감을 덜어주는 것 같아서 읽는 사람이 오히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은 사람 사는 곳에서 누구나 각자만의 사정이 있었고 문제가 크던 작던 보듬어 주고 살펴주는 이웃이 있다면 다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삶이 고달프더라도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면 이 또한 괜찮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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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지아 작가님 #찌니주의보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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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니주의보] 완독 리뷰 정지아 작가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다렸던 책. 정지아 작가의 문체는 참 묘하다.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참 따뜻하다. 특히 수평마을 사람들을 읽으면서 서로 너무 다르고, 때로는 부딪히면서도 ‘수평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수평하게 오래도록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가슴 저 밑바닥부터 따스한 봄기운 같은 것이 스멀거리는 것 같았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도 웃으며 읽었는데 마음에는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정지아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 찌니주의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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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다소 낯설은 단어의 뜻을 고민하다 책을 펼쳤고 책을 읽는 내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좋은 의미의 허탈한 웃음을 반복했다. 나이든 노인들의 시골, 수평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인사성 밝고 싹싹한 젊은 처자 ′찌니들′이 사실은 레즈비언이더라라는 주제가 올라오며 시작된다. 사이사이 계속 밝혀지는 마을 어르신들의 과거 이야기며 가족관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명암이 서술되는데 그 방식이 너무나도 태연해서 되려 실감나게 와닿았다. 장소도 시대도 제각기 다르지만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며 때로는 오해가 쌓이고 풀리기를 반복하던 모습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사램 사는 거사 다 제각각이제.′ 책을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의 초입에 나오는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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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무료로 제공받아 쓰는 후기 입니다 마을에 일년전 이사온 '찌니들' 이 레제(레즈)라는 사실이 모든 마을 사람에게 알려지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힐링소설이다. 모든게 신식이라는 서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그녀들이 시골의 고지식한 어른들에게 인정 받는다. 시골 사람들에게 중요한건 그들의 성정체성보다 그들이 얼마나 배운 사람이느냐 이다. 이게 옳게 된 방식이라는 생각이든다. 서로 사랑한다는데 누가 찬성 반대를 논하겠는가. 혐오와 비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찌니주의보는 필독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