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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그대로였다.
"바다는 그대로였다." 내용보기
기다렸던 작가님의 첫 그림책을 받았습니다.<바다는 그대로인데>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었던 것은바다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 바다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모두가 바다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아이에게 바다는 생선 냄새가 나고,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고,축축하고 끈적이는 곳입니다.그래서 아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절대로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그런
"바다는 그대로였다." 내용보기

기다렸던 작가님의 첫 그림책을 받았습니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다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 바다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바다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아이에게 바다는 생선 냄새가 나고,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고,

축축하고 끈적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절대로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 아이 곁에서 아빠는

바다의 좋은 점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좋아해 보라고 설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함께 걷습니다.


비가 오면 같이 비를 맞고,

바위를 건너고,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봅니다.


저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일.


어쩌면 어른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다정함은

그런 기다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글만큼이나

그림을 오래 보게 합니다.


참 서정적인 그림인데

그 서정을 어디까지 밀어붙이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만큼

무엇을 그리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사람의 그림.


어디를 더 만져야 하고

어디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쯤에서 여백으로 남겨두어야 하는지를

참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덜 그려진 곳이 비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물이 출렁이고

아이의 마음이 머뭅니다.


바다가 아직 멀게 느껴질 때는

넓은 여백 속에 아이가 작게 놓여 있고,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푸른 물감은 조금씩 화면을 채우고

물과 사람의 경계도 흐려집니다.


다 그리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많이 보게 되는 그림.


그릴 줄 아는 것과

덜 그려야 할 순간을 아는 것은

또 다른 감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절제가 이 책의 서정을

더 오래 머물게 합니다.


그러다 책장을 넘기며

자꾸 아이의 노란 장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와 바다 사이에 늘 장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장화를 벗습니다.


맨발로 물을 밟고,

손을 담그고,

차갑고 간질거리는 물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마침내 바다로 뛰어듭니다.


바다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이와 바다 사이에 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싫다는 마음도,

낯섦도,

거리도,

마지막에는 노란 장화까지.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바다를 좋아하게 되는 이야기라기보다

무언가를 제대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을 때의 세상은

참 많이 다르니까요.


누군가 아름답다고 말해준 바다가 아니라

내 발로 밟아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고

내 몸으로 들어가 본 뒤에야 알게 된 바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만의 바다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꾸 아빠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마음보다 먼저 가지 않는 사람.

싫다는 아이의 마음을 고쳐놓으려 하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데리고 바다를 걷는 사람.


어쩌면 사랑은

좋은 것을 대신 골라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바다로 데려간 사람은 아빠였지만

바다로 들어간 사람은 결국 아이 자신이었습니다.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에는 끝이 있지만

그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좋아하게 될지는

결국 아이의 몫이겠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아이는 훗날 바다를 떠올릴 때

바다만 기억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비를 맞던 날도,

맨발로 물에 들어갔던 날도,

처음 바다로 뛰어들던 순간도,


그 모든 장면 한편에

늘 함께 있던 한 사람까지 기억하겠지요.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는 것.


책을 덮고 다시 제목을 바라봅니다.


바다는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앞에 서 있는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따라

그 아이와 함께 바다를 걸었던 제 마음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말이야.


첫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그리고, 지우고,

또 남겨두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좋은 그림책은

얼마나 많이 담았느냐보다

무엇을 남겨두었느냐로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첫 바다가

이제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저마다 다른 바다가 되기를.


첫 책의 시작을 오래 응원하겠습니다..☺️

m*****6 2026.08.18. 신고 공감 11 댓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