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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은 군주에게 쓴 책이기도 하고, 군주정을 반대하는 누군가들(독재나 권력집중 자체를 혐오하는)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는 등 해석의 범위가 매우 넓다. 내가 볼 땐 군주론의 큰 성과는, 인간의 사악함과 비르투(탁월함)의 함수관계를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어떤 희소성,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둘러싼 인간 간의 이해관계는 필연적으로 사악함을 불러들이는데, 이걸 누르고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적정한 수준까지 관리는 건 인간의 탁월함이다. 사악함이 강하면 탁월함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반대로 탁월함이 강하면 사악함은 관리 수준으로 조절된다. 여기서 마벨(마키아벨리)께서 놀라운 발견을 한 것 같은데, 사악함의 반대를 선함에서 찾지 않고 탁월함에서 봤다는 점이다. 선함과 탁월함은 하늘과 땅차이다. 아마 이 점이 그전의 정치고전과 지혜와 극명하게 차이가 난 점일 것이다. 그래서 마벨이 오해를 많이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마벨에 대해서는, 0.1초 사이에 '보다' '느끼다' '알다' '확신하다'로 이뤄지는 특출난 감각 내지는 동물적 본능 혹은 선척적 아님 후천적 탁월함을 보유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권력 등 희소성 두고 나타나는 사악함을 보고 해결책으로 비르투를 제시한 건 마벨 자신이 군주의 자질을 갖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비슷한 경험에서 직관적으로 도출한 결론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통찰은 솔직히 다수가 갖기 어려운 능력인 건 분명하다. 고양이과 맹수가 보이는 놀라운 순발력이 동원된 사냥능력, 순간 권총을 빼들어 저격하는 서부극 총잡이의 기술, 어떤 틈을 보고 해결책을 찾는 동시에 집행해 들어가는 프로운동선수들의 운동능력에 등에 비견할만 하고 어쩌면 그 이상의 능력일 수 있겠다. 더불어 서구 사회의 구조, 그러니깐 그리스도 정신의 토대 위에 수틀리면 정직하게 싸워되는 호전성이 구조적으로 마벨에게 상당한 지적 자극과 긴장성을 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벨이 편지에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달라 했는데, 아마도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탁월함을 알아달라는 것으로 읽히는데, 이미 묘비에 담겨있다. 그리고 제한된 정보라는 한계를 전제로 말한다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마벨과 유사한 어떤 탁월함이 잘 발현되는, 그리고 정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는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기에 마벨이 섭섭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물론 미국 사회의 탁월함의 완벽을 기하려면 독일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 최대 난관인데, 우리의 다날드 제이 트럼프 드래곤이 근접해 있다. 기대해보자) 한국사회에서 군주론이 가지는 의미는, 역시 우리 사회에 부재한 탁월함에 대한 존중이고 정당한 평가와 기록일 것이다. kbs역사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역사 속 인물들 중에 허균 등 포함에서 탁월성의 자질을 보이는 사람이 여럿있는데, 아쉽게도 성리학적 명분론적 질곡 속에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탁월함을 지우고 거세한 대단히 특이한, 잔머리 굴리는 걸 능력이고 지도자의 자질로 보는, 가히 죽은시인의사회이다. 적어도 탁월함은 위선과 잔머리와는 거리가 먼 가치이다. 아마도 서구 교회에서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한 배경에 이런 게 있었을 것이다. 차이를 모르고 군주론을 접했을 때의 부작용을 염두에 뒀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든 상상인데, 마벨의 환생이 프리드리히 2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사람이 비슷한 성정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