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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아파트 22층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동네 자체가 아파트가 그득한 곳이었는지라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파트 일색이었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22층이라는 걸 망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그 아찔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멀게만 느껴지는 콘크리트 바닥, 그 위에 세워진 시멘트 건물 안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 삶이 참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많은 이들이 유럽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고, 나 역시 종종 TV나 책자에서 만나곤 하는 유럽의 푸르른 모습에 감탄을 하곤 한다. 아파트에서의 삶에 길들여진 나에게 어쩌면 유럽 대륙에서의 삶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낮은 건물들로 인해 사방이 탁 트여 보이고, 무엇보다도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푸르른 정원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란 나로서는 부러워할만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마음으로만 그리던 유럽을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지난 2004년 겨울에 방문했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았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은 별로 만끽하지 못했다. 아- 왜 사람들은 나에게 유럽은 여름에 가야 제 맛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성수기가 아니라 다니기엔 좋았지만, 가는 곳마다 눈 덮인 허허벌판이었기에 지난 여행은 아직도 나에게 아쉬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른 나라를 엿볼 수 있는 책들은 언제나 즐거운데, 유럽 중에서도 정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데서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체험하지 못한 정원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라도 만끽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조경학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저자들의 정원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같은 유럽이라 하여 모든 정원이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서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아시아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을 아시아라 칭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이나 기타 다른 지역보다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사라센 제국이나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등의 국가 등은 내게 막연한 이름으로서만 인식될 뿐이었고, 이들 국가들이 얼마나 화려한 문화를 구축했었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이 책에 수록된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이궁의 정원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이들 정원은 이슬람 건축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벽면은 깔끔하다 못해 경건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고 있었으며, 조각 하나하나의 섬세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사실은 웅장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소박한 이들 정원이 추후 스페인의 주류가 된 가톨릭 문명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지금껏 간직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숱한 세월의 모진 풍파를 모두 견딘 자에게만 주어지는 내공(?)이 느껴지는 정원의 모습을 보며 난 이미 파괴되어 역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라 하여 정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우리나라도 여타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의 정원 역시 과거에는 왕이나 소수 귀족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창덕궁 후원과 같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정원이 대중들에게 꽤나 가까운, 살아있는 공간인 반면 우리나라의 정원들은 다소 폐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 공간을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공간이 지닌 가치가 보다 더 잘 구현될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