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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여름이면 김애란 작가의 책을 기다린다.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다. 몇 년 동안 이곳저곳에 기고하거나 발표한 글, 적은 글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 글 끝자락에는 연도가 적혀 있다. 어느 해에 그녀가 생각한 글인지 알 수 있다. # 삶의 방식 여러 조각의 글들이 들어 있지만 이 책을 한 단어로 적는다면 '그녀의 삶의 방식을 독자인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단 지금까지가 아닌 ‘앞으로의’ 그녀의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도착 이후의 문제, 연착 전후의 문제인지 모른다. 밥과 꿈이 번번이 우리 손에서 미끄러져 나갈 때, 낯설게 얼굴을 바꿀 때 그 간극을 관리하고 메우는 사유와 언어를 갖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기술을 익히는 일 말이다.(p16~17)”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 사람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꾸려나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 필요한 것을 위해 ‘기술’을 ‘연마’할 수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고 만들고 이어나가는 것일 테니까. “처음엔 그저 필요에 의해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거나 취미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p143)” 그녀에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존재 방식이다. 그녀가 그녀로 살기 위한, 그녀가 그녀로 있기 위한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그녀의 글은 연도를 따라 읽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몇 살의 그녀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쓴 글인가가 중요하다. 그녀의 글에는 그녀의 성장이 들어 있다. 그녀가 건너고 있던 삶의 시기들이 들어 있다. 독자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같은 시기를 건너고 있다는 공감과, 그 시기를 그녀의 정제된 언어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농도를 옅게 만들려 노력중이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나의 농도를 조금씩 옅게 만들려 노력중이다.(p19)” 사십 대가 될 즈음, 아니면 삼십 대 후반일지도 모른다. 그 즈음부터 삶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단 생각을 강하게 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젊은 시절의 가치관은 ‘나’의 색깔이 강했다. 모든 중심이 ‘나’였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고 세상과 나를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보호막이 세상과 나를 단절하게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리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호막은 나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그건 ‘나의 농도를 줄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이십 대 때는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아 불안했다. 빨강, 파랑의 원색 셀로판지였던 내가 그 색깔을 버리지 않는 한 내가 보는 세상은 전부 빨강, 파랑뿐일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은 투명한 셀로판지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한다. 투명한 셀로판지가 되어도 절대로 자신의 색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지금이야말로 내게는 ‘내가 되지 않는 꿈’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p20)” 지나치게 ‘나’가 강하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작가로서의 그녀가 앞으로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기 위해서도 그녀에게 필요한 건 ‘볼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그것이 그녀가 글을 쓰는 삶의 방식을 위해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긴 시간, 나는 나였다가, 또 나였다가, 충분히 나였다가, 혹은 나인 줄 알았다가 ‘내가 되지 않는 꿈’을 꾼다. (...) ‘진정한’ 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얼마나 안심이 되나. 얼마나 해방적인가.(p20)” 나아가 그녀는 ‘진정한’ 나라는 ‘진정한’ 마저 떼어 버린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나’라고 하면 ‘거짓이 없고, 참된 나’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거짓 없는 나란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때로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모습도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거짓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후 후회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인 모습 그 자체가 인간스러운 게 아닐까. 진정한 나가 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는 나로 살면 된다. 일부러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고 그녀가 말하는 것 같다. # 그랬다고 적었다 왜 이 제목이었을까. 왜 이렇게 많은 조각의 글들이 들어 있어야 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글쓰기와 글 읽기라는 점에서 몇 년 간 그녀의 생각들을 모은 점에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그녀는, 앞으로의 그녀는 이렇게 적어가는 날들을 이어갈 것이기에, 그것이 그녀의 존재 방식이기에. 이 책을 읽은 후로 작은 수첩 하나를 옆에 두고 있다. 그녀처럼 나도 나의 오늘을 모으고 있다. 흩어져 가는 하루의 파편들을 적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돌아다니다 버려지곤 했던 작은 생각들을 글자로 적어두려 한다. 그녀가 그렇게 ‘그랬다’고 적듯이. “어쩌면 다른 이들 역시 그렇게 자기 안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못해 계속 읽고 쓰는 삶을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p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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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들었던 수업 마지막 시간에, 아주 좋아하는 교수님께서 했던 말이 있다. "문학은 여러분들이 취업하는 데에 쓸모없고, 도움되진 않지만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맞는 어떤 역경이나 고난을 견디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힘을 길러줄 겁니다." 그래서일까. 난 유독 힘든 시기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고, 교수님의 그 말씀처럼 문학으로부터 인생을 견디는 어떤 힘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은 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난 김애란 작가를 아주 좋아한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작가는 어떻게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스며들게 하고 그것이 또 나에게 천천히 스며들 듯이, 그러나 매우 강렬하게 닿게 되는 걸까. 이런 궁금증에 이번 산문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전의 <잊기 좋은 이름>과 이번 신간 <그랬다고 적었다>를 모두 보며 느낀 건.. 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사람들에게 와닿아 위로가 되는 것은 그 고민의 시작부터 끝이 단 하나도 허투루 쓴 게 없이 모두 '인간'을 향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고민부터 현실적인 문제까지 고민의 방향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흐르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생각과 감정들이 상당히 깊이 있고 섬세하다. 마찬가지로 밥 때문에 비루해질 때 꿈은 내 체면을 세워주고, 꿈 때문에 허약해질 때 밥은 내가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만날 용기를 줬다. -내가 되지 않는 꿈, 21p 누구나 고민하고, 혹은 평생을 '밥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도 특유의 따뜻함으로 풀어내는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낭만도, 현실도 모두 다 놓고 가지는 말자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면 내게 같은 고백을 들은 K씨에게는 있고 챗지피티에게는 없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망설임'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자주 주저한다. 자신의 말이 혹 옳다 여길지라도 그저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며 망설인 채 말을 삼킨다. 그리고 그 주저와 짐작 사이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품위와 배려가 있다. ... 이 부분은 김애란 작가가 얼마 전 출연한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했던 말인데, 처음 들었을 때도 '아.. '하고 깨달음의 탄성을 내질렀었는데, 그 생각을 글로 자세히 풀어놓은 부분이라 좋았다. 가까운 과거부터 지금, 미래까지 이어질 AI 시대에서, 경험하고는 있지만 인지하지는 못했던 사실을 콕 집어낸 느낌. 문학은 내게 추상이나 관념이 아닌 구체와 실감의 영역이며 이 실감은 나를 예감과 공감, 만감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나는 외향적인 인간도 모험심이 강한 작가도 아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보다 잘 전달하고픈 욕구와 기술적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게 됐다. 항상 감각을 열어 두고 자극을 받아들이며 편견을 교정하려 애쓰게 됐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지만 나 자신을 비롯해 바깥 세계를 내 살갗으로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끼고 해석하고픈 욕구를 갖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연습 자체가, 또 시도가, 내 삶을 보다 좋은 곳으로 이끌어준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엔 그저 필요에 의해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거나 취미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쭉 궁금해왔던 김애란 작가의 작가로서의 가치관, 시선들을 엿볼 수 있어서. 글을 읽는 건 습관처럼 하지만, 쓰는 건 어렵다고 게을리 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행위'를 왜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 라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고, 최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겹치면서 내가 버티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언급한 '존재 방식'이라는 표현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꿈에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며 삶은 여러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무게는 한 시절의 성취가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그 사람의 모순과 결함, 실패와 헤맴까지 다 포함한 채 재어진다는 것도요. 우리는 그걸 인생이라 부르지요.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가 담긴 <음악소설집>(프란츠, 2024)에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가 짧게 실려있는데, 그곳에 작가는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는 줄로만 알았는데,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머리 위로 물벼락처럼 쏟아진다는 것 또한 알았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위의 인용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삶의 아름다움 이면 아래 존재하는 것들을 콕 집어서 말하는 재주가 김애란 작가에게는 있고, 그런 모습이 여기서도 느껴졌기 때문..ㅎㅎ 그리고 그런 시선들이 비관적이라고 느껴지기 보단.. 그냥, 그런 게 인생이야- 라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전하고 있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 그 벙커를 설계한 이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기도라고 여긴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최대한 경제적으로 지어야 할 벙커에 굳이 기도실을 집어넣었을 리 없다. 그들은 때로 기도가 식량이나 약품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살리는 몫을 해낸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지난해 부분일식 날 유튜브로 방송을 보며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 소원을 빌 때 그가 믿는 대상은 해나 달이 아니라, 심지어는 신도 아니라, '삶'인지도 모르겠다고. 사실 국립과천과학관 채널에 달린 소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좋은 일이 생기게 해달라"거나 "나쁜 일을 막아달라"는 청이 아니라 "힘든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문장이었다. 김애란 작가의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적어봤다. 이 책에서 가장 찡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삶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견디고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일 것이라고. 내가 배우고 믿고 있는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그러한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작가의 존재 방식이라는 김애란 작가. 이 두 가지의 이어짐이 김애란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섬세한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내가 그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나는 김애란 작가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과 문장으로 만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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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책들을 몰아읽었던 때가 아이가 초등 저학년이었던것 같아요. 지금 그 아이가 고2가 되어 있는 시간동안 작가님의 신작이 나오면 바로바로 사서 읽었던 것 같은데 아이 입시 치르느라 혹은 견디는 삶을 사느라 무뎌졌던것인지 처음처럼은 매혹적이지 않다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습관처럼 구매해 읽었던 안녕이라 그랬어 를 책등을 쓸어가며 가슴을 쓸어가며 읽은 후 오랫만에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라고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 후 손석희님과 나누시는 대화를 듣고 또 들었고요. 작가님의 고향 근처에 살아서 작가님이 묘사하시는 모든 배경들을 직접 본듯 느끼며 주위 사람들을 투영해 더 절절하게 읽었던 듯도 합니다만. 이번 신작을 예약구매 한 후 젊은 시절 좋아했던 여성작가님들 책을 다시 읽어보던차라 책이 배송되었을때 뭘 먼저 읽나 잠시 망설이다 읽던 책을 접어두고 꺼내든 작가님의 책에 또 마음이 베었습니다. 서산 로데오거리를 같은 마음으로 걸어본적 있는 사람으로서 ㅡ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세대들이 유난히도 많은 지역의 억척스러움과 결다른 사랑에 대해서ㅡ너무나 잘 알아서 였던것일까요! 원가족을 대하는 마음이 혼란스러워 미루고 덮어두려 했던 마음을 열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드리는 등 한번 토닥여 드리는 용기 ㅡ같은것이 생겼습니다. 돈이 많은 부모도 삶의 철학을 물려줄밀큼 깊이 있는 부모가 아니셨더라도 그 어리고 작은 인간들이 떨고 버티며 아이들을 길렀을 용기에 위로를 보내며ㅡ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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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았을 때 의외로 두껍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지만 읽다보니 두꺼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버릴 것이 없는 고농축 문장으로 저에게도 대입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어줍니다. 빨리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조금씩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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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내적인 고백은 어쩐지 독자를 향한 다정한 목소리 같다. 냉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상상의 산물인양 인물을 탄생하여 작가의 목소리를 내다가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의 곤란함이 이해가 된다. 때로는 자기를 보여주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정체를 감추고 있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이다. 뭐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취향일 뿐이다.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에세이는 조금 더 개인적인 감정을 나누는 것 같아 좋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다. 아프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져 먹먹해졌다. 부모님이 아프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과거와 나의 과거가 겹치고,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절로 애틋해진다. 아프고 싶겠냐만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함께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다 드러내고 다 털어놓는 대신 감추는 마음. 그리고 그걸 알아채고 헤아리는 마음. AI 앞에서 요즘 그런 마음을 자주 생각한다. 어쩌면 문학은 AI와 반대로 자신의 무지를 아주 길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백해온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36페이지, 「세 개의 빛」 중에서)
언어를 다양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작가는 부모님의 이야기도 이처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작가의 글이 곧 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매개체인 듯하다. 그저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라는 틀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단순한 덧셈 뺄셈이 아니라 여러 개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학은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15페이지, 「내가 되지 않는 꿈」 중에서)
긴 시간, 나는 나였다가, 또 나였다가, 충분히 나였다가, 혹은 나인 줄 알았다가 ‘내가 되지 않는 꿈’을 꾼다. 자연인으로서도 창작자로서도 그렇다. ‘진정한’ 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얼마나 안심이 되나. 얼마나 해방적인가. (20페이지, 「내가 되지 않는 꿈」 중에서)
삶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삶의 다양한 것들이 문학으로 표현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삶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문학 속에서 발견하고 공감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문학에 기댔던 어느 순간들이 모여 창작자의 삶을 사는 작가의 마음이 고요히 와 닿는다. 문학에서 위로를 받고 그러한 마음을 담아 문학을 창조한다는 것,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일이다. 문학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는 명사의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힘든 시간 문학은 우리의 친구이자 위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이 낯설지 않다. 생활인으로서의 개인과 글을 쓰는 작가로서 경계를 표현하고, 과거의 시간을 끌어내어 그때의 마음들을 펼쳐놓는다. 과거에는 가능했고, 현재에는 불가능한 것들. 그 틈새를 메우는 글이 있어 좋은 게 아닐까.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놓기는 불가능하다. 과거를 들여다보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듯, 우리를 이루는 건 과거의 시간에서 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를 이루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도 과거에서 왔을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 나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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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산문 김애란 저 문학동네
김애란 작가님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미처 내가 명명하지 못했던 마음의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계 뒤에서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작가 고유의 목소리를 통해, 생활인이자 창작자로서 바라본 '지금 여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 작품입니다. 1부 '사람의 얼굴'은 고유명사로서의 사람을 재발견하는 일에서 시작해 일반명사로서의 사람 그 자체를 재인식하는 일로 나아가는 긴 호흡의 글들이 묶여 있습니다. 김애란 작가님은 아버지에게 생긴 예기치 않은 병과 그로 인해 달라진 생활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며 그 사건이 '앎'의 측면에서 불러일으킨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인지장애, 루이소체, 알츠하이머, 치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내 곁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을 영위하던 분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줄 몰라 당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기분이 드는 것을. 김애란 작가님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담백하게 적어나가고 있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상황이 응축되어 있는지를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내 안에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있는지도 몰랐던 슬픔이. 이렇게 글로. 마음으로 쓰여진 글에서 꺼내져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은. 훌륭한 문장은. 저자에게서. 독자로 옮겨와 또다른 이야기와 세계를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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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산문집이라 가볍게 읽기 좋네요~ 김애란작가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나름 신간이라 선물해주었어요. 마침 한번 읽어봤다기에 아쉬웠지만 소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좋아하더라구요. 무겁지 않게 하지만 결코 가볍기만하지 않은 기분좋은 선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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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김애란의 인터뷰 내용 중 군데군데는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AI에 대한 물음에 과거 손석희가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에서 노회찬의 사망 사건을 다루며 보여준 ‘망설임’을 이야기하던 장면도 그중 하나이다. 나는 그 대담 내용을 좀 적어보자,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언제든 원하는 컨텐츠를 찾아 눈앞으로 끌어올 수 있는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얼마 전 종합병원에 갔다 간호사분 바지 아래 드러난 발목 위 문신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그런 것을 보았다고 적었다. 어느 오후엔 혼자 밥을 먹다 홈쇼핑 진행자가 “나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관상이고 우리 아무개씨는 백제 사비성 왕자 스타일”이라 칭하는 걸 보았다. 그러곤 그날 그런 말을 들었다고 적었다. “저분, 전에는 흰 접시를 팔면서 ‘여기 파김치만 하나 올리면 동양화가 된다’고 말씀하신 분이지” 하고 웃었다. ‘어떤 비유와 농담이 느닷없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도 서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기억의 총체가 문화로구나, 역사로구나’ 생각했다. 그러곤 그날 그런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pp.138~139) 김애란의 방송 출연 이후 오 개월 여가 지나 〈전지적 참견 시점〉에 카이스트 출신 연구원인 허성범이 출연했다. 그 프로그램은 출연자와 그 매니저가 짝을 이루는데, 허성범의 매니저는 도나라는 이름의 AI 비서였다. 도나는 허성범의 스케줄 관리를 비롯하여 실제 인간 매니저가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나는 이날 허성범이 어떤 질문을 하였을 때, 즉답을 하지 않고 음···, 이라는 애매한 뉘앙스의 시간차를 두었다. “... 내가 장르를 불문하고 소설 안에서 으스스함을 느끼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건 그들이 ‘자기 서사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보통 종교와 정치 영역에 잘 나타나며 둘은 쉽게 결합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둘이 힘을 합해 진실을 해하는 이야기를 섬뜩해했다...” (pp.105~106) 손석희가 그날 방송 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이십여 초를 침묵하면서 가진 망설임의 시간과 AI 시스템의 일부인 도나가 즉답을 하지 않고 가진 로딩의 시간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도나는 그날 필요하지 않은 로딩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김애란은 대담에서 손석희의 망설임을 예로 들어 인간과 AI를 구분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I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또 다른 방송에서 전시한 셈이다. “인간은 균질하지 않고 인간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 어떤 인간성은 사랑할 만하고 어떤 인간성은 지리멸렬하지만, 그 이상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무언가 믿거나(종교), 의심하며(과학) 살아온 것이 우리 인간이지 싶다. 삶과 앎을 향한 의지가 종내 삶과 앎에 대한 반동으로 이어져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더러 일어나지만. 불길한 소식 앞에서 나 여기 자주 어두운 표정을 짓곤 하지만. 낙관 혹은 비관 대신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곡, 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시간주권을 가진 채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물으며, 시간의 시작과 끝을 사유하면서...” (p.190) 얼마 전에는 교보문고에서 (최종적으로는) AI 학습 데이터로 쓰일 것이 의심되는 1권씩 10만 권의 주문 의뢰를 거절하였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이미 그 전에 AI 학습용으로 희귀 도서를 구입하고, 학습이 끝난 뒤에는 아예 폐기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자신의 회사가 아닌 또 다른 글로벌 인공 지능 기업들이 그 도서를 학습할 기회를 아예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 내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거나 취미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p.143) 김애란의 ‘망설임’을 한참이나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을 학습한 AI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다움’을 학습하리라 짐작한다.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본다) 그리고 그때 학습의 대상이 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와 ‘글 읽기’를 ‘삶의 방식’이자 ‘존재 방식’으로 삼겠다는 김애란의 생각을 응원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건 나를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김애란 / 그랬다고 적었다 / 문학동네 / 219쪽 /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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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데, 김애란 작가님의 책을 워낙에 애정하고 있다 보니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겟! 병환 가운데 계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오열까지 하고 말았다. 김애란작가의 작품은 나에겐 참 많은 울림을 준다. 소설도 산문집도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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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일상과 생각을 통해 평범한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익숙한 일상에도 저마다의 사연과 감정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지나쳐 버리기 쉬운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는 일이, 그런 능력을 지닌 작가님의 재주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놓쳤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평범한 하루도 기록하면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