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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을 시작으로 가네시로 가즈키와 두번째 만났다.
역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두번 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눈물이 흘렀다.
한번은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밤새워 다 읽고 난 어스름한 새벽녘에...
내용이 무지하게 슬퍼서가 아니다. 미묘하게 가슴이 아팠다.
읽는 내내 유쾌했고, 문장이 쉬워서 쉽게 빨리 읽어 내려갔다.
정말 재미있는 만화책을 정신없이 독파한 것 같은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이 먹먹한 것이 아련한 슬픔이 남는다.
그것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심각하게 인상쓰고 받아들일 만한 주제와 내용을 가네시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런 것이 무엇이 대수냐라는 어조로 담담하게 유쾌하게 웃어넘긴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대단히 무겁고 힘들지만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묵묵히 일깨워 준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이겨내야 할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겨냈느냐보다 그 고통을 얼마나 이해했느냐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정도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한번 해보지 뭐'' 하는 대담함이 생겨날 것이다.
다음에 만날 작품들이 더욱더 기대되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
닮고 싶어진다. [인상깊은구절]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다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니까.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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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청춘은 늘 그렇듯 생각만 해도 상큼하고 시원하고 힘차다. 그런 청춘에게 STOP은 없다.
GO"에는 청춘을 맞은 주인공 스기하라를 자꾸 멈추게 하려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허약한 몸도, 가난한 마음도 아니다. 피. 국적. 나라. 민족. 이것은 그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를 막는 것은 바로 “다름” 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다른 피를 가진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차인다. 다른 교복을 입고 앞으로 나가려 하는 그의 친구를 잃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다름은 다름일 뿐. 편견은 편견일 뿐. 그는 그의 길을 “갈!” 뿐이다.
가네시로가즈키의 Go 를 읽으면, 심각한 재일한국인의 문제나, 조선학교의 학생들이나, 불쌍하게 일본인에게 죽음을 당한 정일이 때문에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이 슬픔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스기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3번쯤 읽었다. 매번 읽을 때마다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 이 책을 접한건 고2때였는데, 이 책은 마치 만화책 같았다. 예쁜 사랑이야기 멋진 친구. 싸움을 잘하는 남자주인공은 한창 소녀에게는 정말 순정만화가 따로 없었다. 두 번째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두 번째 읽은 이 책은 멋진 어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는, 내 스스로가 멋져 보일 수 있는 멋진 어구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노 소이 코레아노 조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 (나는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본문 p.222>
그리고 이소룡의 영화, 재즈, 음악, 그림까지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두 번째 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대학교 졸업 후, 멈추고 싶었다. 인정받지도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고, 심지어 바뀌려고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본 것은, 차이를 이기는 힘이고, 멈춤을 저지하는 가속버튼이고, 악셀레이터였다!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차이, 차별, 다름, 돈, 외형, 학력.... 지금 나를 멈추려고 노력하는 것들은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그 멈춤 대신 “가라” GO 말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 한, 우리를 STOP 하게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뚫고 얼마나 GO 할수 있는지 알려준다!
모든 힘든 청춘들에게, 막 멈추려 브레이크를 밟는 청춘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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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에서 재일교포로 국적을 바꾸게 된 소년의 일대기다. 아버지가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 스기하라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왜 이리 복잡한지 감이 안왔는데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사쿠라이라는 여자 친구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가 더럽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 일본이라 해서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것. 물론 한국도 그럴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어려운 행정을 잘 모르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이라 일컬어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그들을 위해 여러가지 문화행사도 하지만 참여하거나 구경해 본 적도 없어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심정은 어렴풋 늘 외계인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참...어지간히 어설프게 짜증스럽게 민족이니 국적이니 하는게 귀찮기도 하다.
10년전쯤 24세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태국에서 남편 선배한테 시집왔다. 그녀는 생김새도 한국인같다. 열대 지역 사람치고는 굉장히 부지런했고 서울대라면 꼬빡하는 것처럼 태국에서 그녀는 그런 대학을 나왔다. 4개국어를 할 줄 알고 예쁘고 똑똑했는데 한국에선 구질구질 그 자체로 살았다. 그녀가 처음 왔을때 내가 해 준 건 예쁜 식기 사기 그릇을 바리바리 싸서 친정엄마처럼 갖다 줬다.
아들낳고 딸낳고 ...영어교사 자리도 마다하고 그녀는 간병인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 갔다. 친정 아버지는 부인이 4명이었고 그녀는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게으름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이혼을 했고 아버지의 접근금지령으로 인해 성인이 될 때까지 딱 한 번 만났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 그녀를 찾아 모녀의 상봉이 이루어 졌다.
남편 선배는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엘리트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행운과는 거리가 멀듯 선배는 고등학교때 친구와 싸워 상대의 치아가 빠져 퇴학을 당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좋은 공부 머리는 돈 버는것과 사회생활 하는데 걸림돌이며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고집스런 성격은 좋은 직장도 걷어차기 마련이다. 선배는 산꼭대기 가까운 월세방에서 두자식과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녀는 한국여자들과(아줌마) 어울리지 않았다. 동정이랍시고 신고 다니던 신발, 가방등 한국을 떠나기 전 나한테 넘겨준 것들은 하나같이 굽이 닳고 닳은 것들이었는데 한국 아줌마들이 준 것들이었다. 내가 받아 놓고도 짜증이 나서 길에다 던져 버렸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작년 12월 그녀의 가족 모두를 태국으로 이민(?)시켰다. 물론 선배도...친정엄마는 이혼후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어 있었다.
고국이니 잘 살겠지만 그녀가 떠나기 한 달 전 결혼식을 다시 올렸고(2번째) 밤이 새도록 함께 술을 퍼마시고 춤추며 놀아 줬다. 그녀는 술을 못마시고 유흥도 즐겨하지 않지만 몇 안되는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인 몇 명이서 그렇게 취하는 밤을 보냈다.
GO를 읽는데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가 한국에 왔을때 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이름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했다. 그녀가 마지막 나에게 남긴 말은 태국에 가면 비행기 티켓을 보낸다는 거였다. 참...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녀가 없으면 선배, 남편, 나와 셋이서 술 마시고 밥 먹고 했는데 선배가 가버리니 나의 술친구가 한 명 떠나간 셈이다. 술생각나면 남편이나 나나 선배 핑계대면서 술자리를 갖었었다. 이런 나쁜 술친구들에게 잘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다. 그녀가 태국에서는 잘 살아서 쭉쭉빵빵 잘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그녀는 한국인같고 그 선배는 태국인처럼 정말 태국인처럼 생겼다. 그래서 선배는 태국 가서 아무말 안하면 태국인인 줄 알거라며 웃던 기억이 난다.
가네시로 가즈키. 참 묘한 슬픔을 준다. 해외 나가면 애국자 된다던데 얼른 해외한 번 나갔다 와야할까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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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대학입시, 구직활동 등 우리는 커다란 분수령을 몇 번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무엇을 골라야 옳은 일일지 항상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무언가가 결정되어 있고 나를 얽매고 있는 상황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내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라 믿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GO’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우리 인생에 쉼표를 찍는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이다.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자신의 출신 성분에 고민해야했던 한 남자가 던지는 통렬한 비판이다. 이 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겨나는 사회적 구속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성별, 출생지역, 종교, 정치성향 등 수많은 분류로 나뉘어져 싸움을 반복하는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시스템 안에서 빠져나와 기득권의 공고화된 아성을 타파하라는 외침은 지극한 대리만족을 주며 독자를 짜릿하게 만든다. 지역감정과 정치파벌싸움, 더 나아가 남북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직접 겪었던 방황의 세월과 재일교포로서 북한과 남한, 일본 그 어느 곳에도 소속 될 수 없었던 새로운 국적의 인간이 풀어낸 고민은 진정성을 담고 있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의심 없이 믿고 있던 많은 것이 ‘GO’에서는 새롭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국적, 학연, 지연을 은연중에 당연하게 여긴다. 광주사람은 너도나도 전체주의처럼 기아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술이 발달해 소통이 자유로워진 현대에서 회색분자를 용서하지 않는 양분법은 이제 구태일 뿐이다. 그리고 연고주의는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억압하는 굴레일 뿐이다.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막연하게 근거 없이 따르는 태도가 현재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그리고 한국은 사회적 갈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내 또래 재일 한국인 젊은이에게 중요한 문제는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입니다.”라고 말한 작가의 명제처럼 그는 진정 모든 것을 떨치고 날아오르고 싶었으리라.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무언가를 추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동물이다. 물론 꿈은 원 안에 없다. 원을 자기 손으로 뚫고 나가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쟁취해야 비로소 꿈을 만나게 된다. 안전한 원 안에서 벗어나면 도리어 외부로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에 갇혀 지내기엔 힘든 생물이란 것이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돼 왔다. 주인공 스기하라 역시 자신의 원을 깨는 도구로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운다. 그리고 자신의 주먹으로 세상과 맞부딪힌다. 자칫 폭력에 대한 미화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소설 속 청년들이 그리는 청춘은 방향 없는 방황이 아니기에 숭고하다.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오랜 시간 방황을 했던 사람이다. 불량학생 생활도 해봤고 법조인을 꿈꾸는 법학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왜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보잘 것 없는 관습에 얽매여 있는 걸까?’란 생각을 품게 된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말이다. 그 끝에 그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GO’라는 성장 소설로 사회를 성장시키고 싶어 했다. 모든 작품은 자서전이라는 괴테의 말처럼 ‘GO’에는 30대의 초입에 이 책을 썼던 작가의 30년 내공이 담겨있다. 한 세대를 구분하는 기점이 30년이라는데 한 세대를 이 얇은 책에 담아 낼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기적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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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용기있는 작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차별을 받고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한국계 일본인 혹은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끊임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작품 중에서는 일제 시대에 벌어졌던 잔혹한 지배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존재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주류 감성과는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네시로 가즈크의 그러한 작품 성향 자체가 이 작가를 용기있는 작자라고 부르게 한다.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는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는 또한 아니다. 아니 어떤 점에서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상황을 극복한 것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극복은 그대로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난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작품 'Go'는 바로 그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Go'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경험하는 마르크스 주의자인 아버지의 전향으로 인해서 국적이 바뀌는 과정을 실제고 작가도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이유에서는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살짝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이유로 국적을 몇번이나 바꾸는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삶은 그 자체가 드라마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가네시로 가즈키의 경험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가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품 'Go'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무척이나 경쾌한 이 작품의 분위기는 조금 더 가볍게 하지만 상당히 깊이 그 주변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차별과 평범한 일본인들의 시선을 볼 때면,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극복해낸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이 작품 'Go'는 읽는 이들에게 조금 더 깊이 다가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차별의 모습들은 사실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무척이나 경쾌하며 가볍게 풀어낸다. 그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이 작품 'Go'를 부담없이 읽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 'Go'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무겁게 그 차별의 장면들을 만났다면, 어쩌면 이 작품은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을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것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세상의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차별과 차별 당하면서도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그것은 역시 자신이 경험하고 극복해내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작품 'Go'에서 이름만 바꾸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 작품 'Go'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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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장 마지막 부분 주인공 스기하라가 스프링스턴의 <Born in the U.S.A>를 개사해 노래하는 『유복한 나라와 가정에서 태어나 말썽을 부리곤 아버지에게 걷어차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당당하게 살았지만 긴장을 풀면 언제나 벌 받은 개꼴이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를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 십대 소년 스기하라가 살아가고 싶다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 스기하라는 조선, 한국, 일본 이 세 가지의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외치고 있다. 스기하라는 태어나자마자 본인에게 적용된 일본 속 조선이라는 정체성 속에 자신 나름대로 적응해 버텨가고 있을 때 아버지로부터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겠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결정에 화가 났지만 아버지의 결정이 자신을 위한 것 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는 그것을 수용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일본학교로에 진학을 결정한다. 그러나 그곳엔 그동안 자신에게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조선계 친구들도 없이 오직 홀로 자신을 배척하는 일본인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기다린다. 이때 스기하라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권투가 빛을 발하는데 이야기 속 그의 전적은 25승 1패로 26승을 예고하며 마무리된다. 아마 스기하라 본인에게는 더 많은 승수가 쌓였기를 빈다. 지금까지의 나의 설명으로 예상하자면 이야기가 참 우울하겠다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재미있는 문체가 이야기의 우울함을 엷어지게도 만들지만 그보다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있는 스기하라의 연애이야기가 읽는 이의 가슴을 풋풋하게 만든다. 작가 본인을 투영한 스기하라이자 가네시로 가즈키가 말하는 “내 또래 재일 한국인 젊은이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입니다”가 소설전반에 걸쳐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으로써 재미나게 배어있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자면 내가 단 내 글의 재목 <나는 한국계 일본인이다>를 보고 어떤 이는 ‘민족의 자긍심을 저버린 쓰레기새끼다’라 손가락질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반추해보기를 빈다. 재일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우리 또한 그들을 배척하지는 않았나 말이다. 실 예로 많은 재일교포출신 운동선수들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선수생활을 하다 차별에 의한 상처로 일본국적을 취득한다. (대표적 예로 추성훈과 이충성을 적어본다) 다시 소설이야기로 넘어가면 스기하라는 일본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친구로 대하는 가토를 만난다. 그와의 만남도 처음에는 싸움이었는데 우스갯소리를 더하자면 가토는 스기하라의 공격덕분에 높은 코를 가지게 된다. 가토가 주체하는 댄스파티에서 사쿠라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된 스기하라, 그동안 가끔씩 들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나고 싶던 마음이 사라져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얼마나 행복 하겠는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하지만 그동안 재일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졌던 아픔으로 인해 그는 구태여 사쿠라이에게 자신이 재일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아, 한명 더 꼭 적어야 하는 인물이 있다. 이 이야기 속에 모든 인물이 스기하라에 성장에 작용하지만 그중 정태를 빼먹어선 안 된다. 스기하라가 일본계고교로 진학할 것이 그가 다니는 조선계 중학교에 알려지자 학교선생들부터 시작해 그의 동패였다 할 수 있는 무리들조차도 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그때 유일하게 그의 편을 들어준 정태, 지옥보다도 못한 자아비판시간을 거부하는 스기하라한테 무차별적 구타를 행하는 선생에게 외치는 정태의 말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는 스기하라가 정하는 자신의 정체성의 시작일 것이다. 나 같은 이를 위해서 조선계 학교도 필요하다 말하던 정태, 그렇기에 난 조선계학교 선생님이 되겠다 말하던 정태, 너무나 아름답던 정태는 그 아름다움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너무나 어이없게 일본인학생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일본인 학생도 너무도 안타깝게 자살로써 죽음을 맞이한다. 좀 더 소통하고 공존했다면,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 둘의 삶은 분명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스기하라에겐 정태의 죽음과 함께 사쿠라이와의 이별도 찾아오는데 정태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하고 싶어 하던 사쿠라이가 같이 있어주고 싶다 말해 같이 하룻밤을 보내게 됐을 때 그는 그녀에게 솔직하고 싶어 자신은 한국국적을 가졌다 말한다. 그때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그녀에게 상처받아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다 아니 도망친다. 자신이 꿈꾸던 희망이 사라졌지만 자신은 이곳을, 일본이라는 곳을 살아가야하기에 그는 또 다른 희망인 정태가 자신에게 가르쳐줬던 희망에 본인을 걸어보기로 한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입시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입시에 매진하던 스기하라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를 데리러 나갔다 과거 북 ‘귀국운동’때 북으로 건너간 삼촌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되는데 보통의 부자사이라면 이럴 때 아버지를 위로하겠지만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 비아냥거린다. “당신네들 1세, 2세가 그렇게 궁상을 떠니까 우리들 세대가 아직도 때를 못 벗는 거란 말이야” 라고. 한국적 정서의 가치관이라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겠지만 그는 제일3세다 삼촌이라는 사람의 얼굴은 본적도 없다. 모호한 정체성 속에서 일본을 살아가야 하는 제일 3세. 그다운 행동이었고 그다운 위로였을 것이다. 허나 이일로 부자간의 싸움이 발생한다. 여기서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 처참히 패한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직은 아버지의 삶의 방식보단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모세대들이 일본사회 속에서 자신들보다 더 극심했을 차별을 견뎌오며 제일이라는 영향력과 정체성을 확립해 온 것을 존경한다고 표현하려 한듯하다. 그리고 스기하라 자신조차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너의 시대를 살아가라고 말이다. 소설 ‘GO’는 성장소설의 왕도라 할 수 있는 아이를 성장시키는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그 사랑에 힘입어 성장한 아이가 자신의 삶에 부딪쳐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일본 속 재일이라는 문화 속에 힘차게 그려냈다. 작가가 말하는 제목 ‘GO’는 “살아가자”라는 그의 스기하라의 외침일 것이다. 아직 내가 얘기하지 않은 이 소설의 대단원이 있다. 이 괴상한 글을 다 읽고 ‘GO’라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생각하게 된 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직접 읽고 확인하시길. 꽤 유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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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장난끼 가득해 보이는 소년의 얼굴을 보니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이 떠오른다. 그와 비슷하겠거니, 일본 소년의 성장소설이려니, 유쾌하고 가볍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장소설이 맞고 유쾌하고 빠르게 읽어낸 것도 맞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주인공 스기하라가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라는 걸 밝히는 서두부터, '이 소설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 신봉자였다가 전향을 했고, 스기하라는 조총련이 세운 북조선 민족학교에 다녔다. 온갖 정신교육을 받다가 그는 (민족학교 재학생들 중엔 이례적으로) 일본 고등학교를 지원한다. 소설의 배경은 스기하라가 고3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스기하라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실제 성장이력과 스기하라의 상황이 매우 일치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 중에 그 당시의 사회나 학교의 모습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믿음이 간다. 북한의 학교 모습은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해방 후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의 학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접해본 적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남한과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쓴 소설이었다면 나도 '너희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대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말은 이것이다. '정말 힘들었겠구나.' 소설의 화두는 차별,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이다. 아버지가 제주도 사람이면서 일본에서 태어났고 민족학교에 다니는 스기하라는 일본이나 한국 어디에도 제대로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시절을 버티며 살고 있는 소년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적을 취득하고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 그러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인에게는 "존공"이라 불리며 모멸적인 차별을 당하고, 그들만의 세계인 민족학교에서는 강압적인 정신교육과 폐쇄성에서 오히려 반발심을 느껴 온갖 일탈을 저지른다. 다행히 스스로 선택하여 일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자신이 숨어있어야 할 우리를 벗어난 것에 대한 벌인 것인지, 섬처럼 외롭게 학교를 다닌다. 스기하라는 결국 생각한다. 다 싫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말이지, '사자'와 비슷해. 사자는 자기를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너희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 사자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흥에 겨워서 이름 불러가며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봐. 너희들의 경동맥에 달겨들어 콱 깨물어 죽일 테니까. 알아, 너희들이 우리를 재일이라고 부르는 한, 언제든 물려죽어야 하는 쪽이라구. 분하지 않냐구.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261p) 이러한 감당하기 힘든 주제들이 그의 삶을 흔들고 있지만 그의 이야기는 재밌다. 통쾌하기 그지없다. 싸움 잘하는 남자가 멋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의 주먹과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내 마음이 왠지 시원하다. 싸움 얘기보다 훨씬 달달한 스기하라의 연애질도, 아빠엄마도 친구들도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의 삶을 엿보는 것이 우울하기보다 기대되는 이유는 작가의 글솜씨때문만일까. 소년의 시선이 품고 있는 순수 때문일까. 자기 자신을 놓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고 급 판단하여 저질러 버리기도 하는 사람 냄새 때문일까. 민족 학교의 아이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 안에서 정일이처럼 사명감과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원수나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증오와 일탈, 그리고 차별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을 배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다문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회문제의 피해자라는 말도 있고 많은 사회문제의 발단이라는 말도 있다. 생각해볼 일이다. 그들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꿈꿀까. 인상깊은 두 구절을 적어본다. 기억하고 싶다.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81쪽 정일의 말)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첫페이지보다 더 첫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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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했을 때 심장이 뛰었다. 고뇌하는 젊음. 뭐, 고뇌하는 젊음을 표현한 책이야 많고, 많겠지만 당시 내 가슴으로 확 들어온 이야기였다. 반항심 가득하고, 열정 가득한 십 대의 소년. 나는 그 소년을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그 소년처럼 반항심을 키웠고, 열정을 키웠지만, 아쉽게도 독서는 안 했다. 쯧쯧쯧... 그 때 책만 제대로 읽었더라면 지금 내 모습은 확실히 달라져 있을 텐데... 어쨌거나, 이 책은 지금도 내게 젊음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젊음의 호르몬이 가라앉은 지금 다시 읽었다. 처음은 심장 떨림은 없었지만, 여전히 주인공을 사랑한다.
요즘 우리나라 문학공모전에 입상을 한 다수의 성장 소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근래 읽은 국내 성장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고뇌만 있지, 진정한 성장은 없다. 그저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젊은 존재는 괴팍한 사회 속에 물들거나, 회피하거나, 사라진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내 속이 얼마나 쓰리고 답답했던가.
그 답답함을 날려 버리려 카네시로 카즈키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역시 에너지가 넘친다. 자고로 젊다는 것은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에너지를 주체 못해 미칠 것 같아야 젊다고 인정해 준다. 내 나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도 에너지가 넘쳐 주체를 못하겠다. 결국 생체 시계가 아닌 정신 시계는 나도 젊다는 말이다. 푸하하하하!
이 책을 통해 간만에 힘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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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자이니치로 일본에 산다는것은 얼마나 힘든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