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 증보판으로 나온 <동양철학에세이>에는 내용적으로 ''농가''가 추가되었고 외형적으로는 삽화가 추가되고 인용문에 색이 들어가 한결 보기좋게 변화했다.
사실 삽화는 본문의 내용을 보조해 주기는 하지만, 그다지 필요한 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을듯. 다만 이 분야를 접하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책을 바라볼 수 있는 숨통 역할을 하는 정도라고 보면될 듯 하다.
<동양철학에세이>의 매력은 입문서가 대개 그러하기는 하지만,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 백가들의 핵심 사상을 쉽게 풀이하여 설명해 놓았다는데 있었다. 개정판이 새롭게 나와 다시 읽어보지만 여전히 그 매력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고등학교의 교과 내용에서 단편적으로만 소개되는 동양 철학(엄밀히는 중국 철학)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고 또 시대적 맥락과 연관시켜 살펴본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행의 교과서보다는 이 책이 고등학교의 교과 내용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갖는 ''현재성''과의 관계 설정이 뚜렷한 것에서 기인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의 의도가 담긴 ''남은 이야기들'' 속에 오래된 동양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신비주의적인 이기주의로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현대인들이 동양철학을 받아들이는 ''몰역사성''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자.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책이 그 사상을 낳은 사회 구조와 그 사상이 역사에서 한 역할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실 최근 유행하는 대부분의 동양철학은 전근대적 사회를 토대로 한 사유입니다. 따라서 이것의 사유 체계는 당시 사회가 가졌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합니다.''(본문 p.321)
따지고 보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동양 철학이란 결국 기원전 2000년 이전의 철학인 것이다. 저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이 책에서 소개되는 제자 백가의 입장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이 이 책이 동양 철학의 입문서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저자는 현실이라는 토양 위에서 동양 철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이런 현실적인 모색은 당대의 시대와 사상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매우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다. 새롭게 농가를 다루는 대목을 살펴보면
''노예 노동은 생산력을 높였고 그것이 공동체 안의 일정한 가족에게 더 많은 부를 안겨 주면서 마침내 특권을 지닌 지배자가 생겨났습니다. 춘추 전국 시대는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수많은 제후국이 더 많은 땅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싸웠고, 그 피해는 대다수 농민이 입었습니다. 비록 이상에 그치더라도 농민 가운데 의식 있는 사람들이 과거처럼 신분 갈등 없이 모두가 함께 일하던 씨족 중심의 원시 공동체를 꿈꾼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농가는 그러한 이상을 몸으로 실현해 보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p.278)
현대인의 동양 철학 수용은 다분히 서구의 시각을 재반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현대의 동양 철학 수용에도 심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투 웨이밍의 ''유교 자본주의론''이 대표적인 경우이며 현 시점에서 ''동양 철학''의 개념을 성공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 역시 별 다르지 않다.
''서양 철학''과 마찬가지로 ''동양 철학'' 역시 당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유를 확장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동양철학에세이>는 바로 그런 점을 잘 짚어나가는 책이다. 비록 전문 서적들처럼 아주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동양철학''의 입문자라면 매우 적절한 교과서 역할을 할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책이 그 사상을 낳은 사회 구조와 그 사상이 역사에서 한 역할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실 최근 유행하는 대부분의 동양철학은 전근대적 사회를 토대로 한 사유입니다. 따라서 이것의 사유 체계는 당시 사회가 가졌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합니다.''(본문 p.321) |
|
저자대표 김교빈은 '개정증보판을 내면서'라는 글을 통해 이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처음 책을 쓸 때 동양철학을 신비로운 것으로 해석하거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 위대한 사상으로 무조건 떠받드는 태도를 부정하는 시각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각 사상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와 한계를 통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함께 드러내 보이려고 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동양철학이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동양철학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보통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사주나 관상을 봐주는 점집을 예상한다. 또 실제로 그런 점집에는 '철학관' 내지는 '동양철학' 이라고 쓰여져있다. 그러니 오해를 할만도 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철학과를 나오면 철학관을 차리는 줄 알고 있다. 그래도 좀 안다 하는 사람들도, 동양철학과 중국철학을 동일시한다. 중국철학이 동양철학인건 맞지만 동양철학이 중국철학이지는 않다. '동양철학'이란 범주 안에는 엄연히 한국철학도 포함된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대립구도에서 중국철학이 동양철학을 대신하게 되었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오해를 한다. 이 책은 동양철학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풂과 동시에 좀더 엄격히는 중국철학의 대가들을 만나보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개정판이 나오면서 흔히 동양철학개론서에서도 다루지 않는 농가가 추가되었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이라고 말하면, 이미 동녘에서 나온 80년대의 필독서였던 조성오씨의 <철학에세이>를 읽은 분들은 알테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과 연결지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순히 공자와 노자와 장자와 순자와 맹자와 한비자와 기타 등등의 온갖 유명한 중국의 철학자들을, 그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라본다. 결국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각자의 시선을 키우고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중국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다. 고로 우리는 개론서를 익히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익힌 바를 가지고 새롭게 사회를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얇은 책이고, 그 안에서 여러 철학자들을 다루느라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묵자와 관련해서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장자와 관련해서는 현대 과학기술의 병폐와 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또 맹자의 혁명론과 관련해서는 5.16과 12.12를 말한다. 단면을 살펴보자.
저자는 마지막 장 '남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오늘날 동양철학의 유행이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첫번째는 개인주의의 문제요, 두번째는 개인주의의 확산이 가져오는 사회성 부정과 실천성 결여, 세번째는 이런 것들이 귀결할 수 밖에 없는 신비주의, 네번째는 위의 것들이 갖는 몰역사성의 문제를 든다. 넷째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속에 담긴 가치와 아울러 한계를 함께 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절대화된 보편성과 가치만을 강조하면서, 토대가 다른 현대에 무차별로 접맥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객관적이라는 말을 통해 엄청난 주관화를 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변형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유교 자본주의론 같은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교 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적 물질 문명과 봉건주의적 정신 문명을 마구잡이로 엮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지배 형태인 관과 민, 자본가와 노동자 등의 관계에서 지배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는 논리가 되고 맙니다."
동양철학의 유행한다고 반길 일도 아니고, 굳이 유행시킬 필요도 없다. 우리가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부차적 산물일 뿐 먼저가 되어선 안된다. 우리가 동양철학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 기준은 '현실적 요구'가 되어야 한다. 현실을 보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고, 현실의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철학을 공부한다. 저자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게다. 여기 공자, 노자, 묵자, 장자, 맹자, 순자, 한비자, 공손룡, 허행 아홉명의 철학자가 있다. 그리고 <주역>을 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그대에게 권한다. |
|
이 책은 어느 방송에서 리뷰를 보고 사게 되었다.
'동양 철학'하면 두꺼운 하드커버에 한문으로 된 금박의 글자가 꽉 박혀 있고 책 내용에도 한문으로 도배된 책을 연상하게 되어 압박감을 느끼곤 했는데 TV에서 보니 일단 하드커버도 아니고 내용면에서도 한문이 거의 없었고 약간의 예쁜 그림까지 있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하였다. 이 책은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공자, 맹자의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한문에 눌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읽기 어려웠던 일반인들을 위한 책이다. 중고교생들이 논술공부을 위해 읽어도 부담없을 책이다.
얼마전에 개봉한 '묵공'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묵자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고 보았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왜 이런책이 없었을까?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
그 이유는 쉽고 재미있으니까. 누구나 쉽고 재미있는 책을 원한다. 그것은, 일부 까칠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쉽고 재미있으려면 어려운 내용을 빼야 하는데, 아무 내용이나 뺐다가는 글의 질 자체가 팍 떨어질 수 있다. 읽어도 썩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실패한 교양서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런 책을 읽느니 그냥 지식인의 강의를 듣거나 조용히 혼자 사색하는게 훨신 좋다. 좀 더 필력 돋는 글쟁이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쓴다. 어려운 글을 쉽게 풀어 쓰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먼저, 어려운 글의 핵심을 이해하는 재주가 필요하다. 그 글 또는 문장의 맥락을 알고, 그 맥락 속에서 어려운 말들을 어떤 쉬운 말로 바꾸어 써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이 건 아무나 못하는 거다. 내공이 필요하다. 매일같이 내공수련을 하시는 교수님과 연구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시장에 쉽고 재미있는 글보다 어렵고 재미없는 글들이 더 많은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술한 지식인들이 쉬운말을 잘 못 쓰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교류하는 학술계에서는 어렵고 전문화된 어휘가 주로 쓰이는데, 그 세계에 깊이 천착할 수록 세상과는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날, 어느 지식인이 그 세계에서 나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펜을 들어 정말 명문이다, 명료하다, 혼자 자화자찬하며 글을 써보는데... 영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쉽다고 생각하는 말이 대중에겐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혹 자는 왜 나와 비슷한 스타일의 작가는 베스트셀러에도 오르고 잘만 팔리는 지 모르겠다고 반문할 수 도 있다. 아쉬워할 것 없다. 아마, 그 책 사재기했거나, 저자의 학력&경력이 화려하거나, 논술교재로 쓰였거나, 올해의 서울대 수석입학자가 읽었거나 등의 사정이 있을거다. 그냥 쉽게 쓰면 문제는 해결된다. 책 이야기는 안하고, 내용이 길었는데... 이 책은 위에 언급한 쉬우면서 가급적 오해를 줄이는 꽤 괜찮은 글들의 묶음이다. 그렇다고, 전공서로 인용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고... 입문서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야기책처럼 쉬운 것이 강력한 장점이다. 이 책은, 팔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
|
공자 현세적 철학, 정연한 질서, 계급에 의한 사회적 분업, 인간에 대한 도덕적 통치... 군자는 결코 소인의 일을 할 수 없고, 소인이 군자의 일을 하려 해서도 안 된다. 군자의 도리를 갖춘 이가 군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관리가 되도록 하여야 하고, 그러한 군자의 도리로 잘 다스려지는 것이 이상적 사회이다. 그리해서 결국 타고난 것을 벗어날 수 없는 봉건적 통치이념이었으나 전국시대에는 크게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전국시대는 국가 간의 대결적 ‘힘’에 의한 사회였기에 공자의 주장은 봉건적 통치의 원리일 수는 있었으나 전국시대의 혼란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의 원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노자 인간중심적 가치를 자연 각각의 존재적 가치의 평등으로... “천지만물은 모두 우리와 같은 동료입니다. 동료들 사이에 귀천의 차별은 없습니다.” 지율 스님과 함께 천성산 고속철 싸움을 할 때, 스님은 작은 새 한 마리의 존재의 무게와 사람의 무게가 어찌 차이가 날 수 있겠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태초에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존재화 된다면, 그러한 실현이 이상적 세상이지 않냐는 것이다. 묵자 비밀결사체, 노동자 서민의 전위적 조직, 평등의 극단적 주장. 반전평화, 언제나 반골의 기질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약자의 편에 사람의 생각은 지배층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묵자는 지배적 권력에 저항적이기는 했으나 지배계급이 될 수는 없는 딜레마가 있었다. 묵자의 비극적 종결은 이미 그 발상의 출발점에 이미 내재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일이다. 장자 문혜군과 소잡이와의 대화가 유명하다. ‘도’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 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활의 달인’이 생각난다.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장자의 얘기들도 새겨들을 만하다. 커다란 박이 열렸는데, 그릇으로 쓰기도 어렵고 쓸모 없다 하니 장자는 배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또 옹이 박힌 나무의 쓸모에 대한 문답도 새겨들을 만하다. 고정관념을 바꾸면 세상에 모든 것은 각각의 쓰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맹자 성선설. 정말 인간이 선한가의 얘기는 두고두고의 화두이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타고난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맹자는 군자와 소인도 타고난다고 본 것이다. 군자의 본성과 소인의 본성. 유가의 파수꾼이라는 별칭답게 공자의 얘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연하게 하였으니, 공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맹자이지 않나. 순자 성악설보다 눈에 잡히는 순자의 얘기는 “성(性), 정(情), 려(慮), 위(僞)”이다. 인간의 마음 작용을 나눈 것인데, 심리학을 보는 듯하다. 요약해서 옮겨 보면 성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으로 생리적 본성을 포함한 것이다. 정은 사물들과 만나서 생긱는 감정으로 좋다, 나쁘다, 기쁘다, 즐겁다 등의 감정 상태를 말한다. 려는 구체적인 감정이 생긴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즉 사고 작용인 셈이다. 위는 선택이 끝난 후 실행해 나가는 의지적 실천을 말한다. 법가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는 첫 시간에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여전히 법가를 이렇게 알고 있다. 칠판에 "교육과 훈육"이라는 말을 썼다. 교육이 edu+care로 ‘돌본다’는 의미라면, 훈육은 ‘기른다’는 의미와 질책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교육이 훈육보다 인간적이며, 동어반복이겠지만 더욱 교육적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가들의 사상도 있었고, 순자로부터 비롯된 법가의 사상도 있었다. 공자는 군주가 어질고 덕이 있으면 백성이 모여들고 그래서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했다. 맹자는 何泌曰利라 했다. 맹자는 소위 성선설을 주장하며 '맹모삼천지교'라며 좋은 환경을 강조했다. 하지만 순자는 인간은 악하다는 성악성을 주장하며 이를 이은 법가는 인간은 법으로 다스려야 할 존재라 여겼다. 그래서 목수승직이라 했다. 원래 나무는 굽었으므로(인간은 악하므로) 먹줄을 받아(훈육) 곧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의 이 사상들 중 어느 사상이 중국을 통일하게 되냐면 인과 덕을 말한 유가의 사상이 아니라 법과 엄격함을 말한 법가의 사상이 중국을 통일했다. 물론 현대의 판단은 유가의 사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학교의 교육은 당연히 '교육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러하냐 했을 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나는 공자 노릇만 할 수는 없다. 순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굽은 나무'가 있다면 당연히 '먹줄'을 튕길 것이다. 명가 궤변론자. 말재간.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歷物十事)은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 첫 번째가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등등 상식적인 것에조차 의문을 가졌기에 나오는 논리의 힘? 농가 농자천하지대본을 말하나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농업이 주업종이었기에 농부를 얘기한다는 것은 다수 민중의 삶을 얘기하는 것이다. 맑스가 노동자 계급의 주도성을 얘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주역 천만 겁의 통계학, 비유와 상징의 총화... 전국시대의 사회 경제적 혼란엗 불구하고, 수많은 제자백가가 출현하였고 다양한 이념이 자유로웠던... 그래서 사상적으로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 혼란을 통일한 진나라는 법가의 사상을 근거로 했다. 다른 사상들은 전국이 작은 나라로 쪼개진 소국일 때의 통치이념일 뿐, 또는 그러한 바탕의 이상이었다면 법가의 사상은 전국을 통일한 대제국의 획일화된 강제적 통지이념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해석한다면 결국 작은 것에서 이상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
|
공자가 꿈에서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흠모했다는 주공(周公).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해 제도문물을 만들고 봉건제를 실시하여 확고한 신분제도의 틀을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보장해주는 안정된 질서의 구조 속에 내재한 모순이 ‘힘의 관계’ 로 바뀌어 드러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시작된다. 춘추전국시대다. 춘추시대에 성립된 200여 개의 제후국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고 또 벌인다. 주(周)나라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땅과 사람을 차지한 강국이 등장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불린 제(齊)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초(楚) 장왕(莊王), 오(吳) 합려(闔閭), 월(越) 구천(勾踐)은 작은 제후국들을 멸망시키고 중원 땅에 세력을 확보해간다. 약소국은 강대국에 병합되고 이 힘은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재정비 된다. 그리고 다시 진(秦)시황제가 종지부를 찍는다. 550년 동안의 길고 지루한 전쟁. 위계질서와 안정의 파괴. 혼란. 놀라운 사실은, 이 침울한 시기에 동아시아 철학과 사상의 뿌리가 형성되고 인문의식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르네상스에 비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 공자, 맹자, 한비자, 노자, 장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상가를 낳은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과 암투가 횡행하던 춘추전국시대라는 사실. 과연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陽) 속에 음(陰)이 있는 것인가. 힘겹고 어두운 시대야말로 철학자를 낳는 토양인가. 지금으로부터 2300년... 혹은 28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이다. 독서대학르네21 2011년 2학기 동양고전강좌의 첫날 강의 주제는「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였다. 생산력이 증대되면 풍요로운 평화의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토지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지고 결국 땅과 사람을 뺏기 위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씁쓸한 도식이다. 긴 전쟁을 하는 동안 수탈을 당하는 민(民)의 의식이 각성하게 되고, 귀족의 몰락과 함께 그들을 보조하던 지식인[儒, 士]도 동반몰락하게 되면서 오히려 지식이 일반화 되고, 지방문화가 독자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학문과 사상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이것이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읽어야 할 역사의 키워드. 김교빈 교수는 이날 강의를 통해 ‘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 주 강의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 사상가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비뚤어진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광화문 길에 부는 바람은 한결 서늘해졌다. 강의가 끝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걸으면서 새삼 ‘흐르는 시간’ 에 발을 적시고 서있는 기분이었다. 기원전 700년 운운하는 그 시대와 2011년이라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얼마나 흘러갔고 다시 또 얼마나 흘러갈 것인지. 혹은 지금 우리 발을 적시고 있는 이 시대의 물은 과연 전혀 새로운 것인지. 그런 사념에 젖었다. 暫時.
|
|
동양철학하면 아직도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라는 사상적인수가 많았음에도 자료보존에 많은 심여를 기울이지 못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동양권에서 한자라는 특수한 문자가 이러한 사상들이 원형보존되지 못하고 여러가지버전으로 떠돌다가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러한 사상에 대한 논의가 명확하지 않고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여 이게 오히려 철학에 대한 안좋은 인식으로 대중에 퍼져, 동양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동양철학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취하게 한것이 아닌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모호함에도 공통된 의견이 있으며 여러가지로 논의가 나누어지더라도 그것에 따라 얻고 버릴것은 버리는 것은 개인의 판단에 따르면 될것이지 논의가 많다고 모호하다고 외면해버리면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물의 흐름이 복잡다고 하여 물의 생리를 외면하여 물의 흐름에 그냥 맞겨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 이 책에서는 많은 사상을 다루어지기때문에 그렇게 자세하지도 않고 더구나 저자의 생각이 많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한 인물에 대한 생각은 본인조차도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 논의가 나하고 다르다고 할지라도 외면하면 안될것이다. 내 생각은 오히려 이러면 나와 다른생각을 포용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해야만 오히려 나의 생각을 더 굳히는데 도움이 된다는게 요즘 나의 중논이다. 각설하고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한 동양철학일지라도 이책에서는 동양사상의 흐름이 그나마 쉽게 쓰여져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아직은 서양철학사와 같이 체계적인 책이 많이 나와 있지 않은점이다. 많이 알면 알수록 복잡해지는게 철학이고 역사인것 같다. 비록 저자의 사견으로 비칠수 있는 대목이 많은책이지만 내가 보기에 적당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 읽었던 서양철학사에 비해서는 아직도 많은점이 보강되어야 겠지만 또한 아시아에서 많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교가 빠졌고 나머지 지역적인 사상들이 빠진점은 이 책이 동양철학인지 중국철학책인지 분간이 안될적도이다. 다른 작지만 민족적인 종교라든지 동양사상에서 지역적으로 빠질수 없는 샤머니즘도 같이 다루었으면 좋을것 같기도하다. 아무튼 좀더 나은 동양철학책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이러한 통시적인 책들은 자주 읽으므로 해서 한부분적인 사상으로 생각이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의 사상들을 골고루 취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처음에 동양철학 에세이
라는 제목만 보고 책 내용이 많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사실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이 더 먼
느낌을 갖고 있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예전보다 훨씬 더 동양철학과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세이라는 제목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용은 에세이라는 제목이
주는 딱딱한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동양철학에 대해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동양철학 이라고 한다면 떠올리는 사상가는 보통 공자, 맹자, 장자, 순자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조금 더 추가하자면 노자정도 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우리가 익숙한 사상가를 넣어 흥미를 더하고 우리가 조금 낯설어 하는 사상가들을 넣어 교양을 심화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 같은 경우도 순자, 법가 등의 사상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순자는 이름이 낯설었지만 성악설을 내세웠던 사상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법가의
경우 이름만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잠깐 들었던 것이지 그가 내세운 사상이나 이름이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그가 어떤 말을 하였었는지를 알려주어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법가가 순자와 같이 인간의
본성을 가장 중요시 이야기하였으며 또한 인간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사상을 내세운 것을 책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책은 사상가들이 한 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굉장히 흥미롭게 내용을 풀어가기에 동양철학 입문책으로 읽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굉장히 잘 읽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동양철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우선 느낀점은 공자 부터 주역까지 내가 과연 언제 이 모든것을 다 읽고 이해 할 수 있을까? 10년정도면 얼마 정도 이해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우선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책을 읽으면서 동양철학에 대하여 조금은 개념이라도 파악은 된것 같다. 깊게 모든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가지 배운것은 혼란의 시대에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고 좀더 안정된 사회와 누구나 행복한 시대를 만들기 위한 실천 철학을 하였다는 점을 배웠다. 책만 읽고 많은 지식을 안다고 한들 밝은 세상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점. 실천하지 않는 말로만 떠드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것 같다. 그러나 실천하는 부분은 책을 읽는것 보다 더욱 어려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현재 답답한 마음이다.
책 내용 요약 :
공자 공자의 중심사상 : 인(仁) : 어질다 인에 대한 해석 -> 맹자의 인의 해석 : '사람이 사는 편안한 집' 인(仁)은 두 이(二) + 사람 인(人) : 두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중용>>, <<맹자>>에서 인(仁)을 '사람다움'이라고 풀이함. 공자의 관심은 어떻게 사는것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길(道)인가를 밝히는데 있다. 공자는 사람을 네등급으로 나누었다. 1. 소인 :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따지는데 밝은 사람, 남들과 가아지는 일은 잘하지만, 남들과 어울리지는 못하는 사람 사람다움의 실천은 충서의 실천이며, 충서의 실천이란 내면적으로 자기자신을 다하는 일이고 밖으로는 남과의 관계에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해아려 보는것입니다. 공자 사상의 알맹이(핵심) : 보상을 바라지 않는 실천
공자의 도 vs 노자의 도 도의 형상, 도의 작용, 도의 속성 덕德 = 도道 (
노자의 요점
도덕경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도덕경의 가르침
공자의 사상 중심 -> 지배계층 묵자 철학의 핵심 -> 겸애, 교리 교리는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의미로 경제적 평등의 요구였음. 묵자는 자기를 위하듯 남을 위하고, 자기나라를 위하듯 남의 나라를 위한다면,
유가비판
묵자가 전쟁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장자의 사상 -> 상대주의 핵심 -> 조화와 적절함에 있으니,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주장 =>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고,
무엇이 인간의 참모습인가? 맹자 이전에 인간의 본성 맹자의 성선설 위 네가지 마음을 잘 기르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 착해질 수 있는 네가지 실마리(四端) 군자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의예지 맹자가 배격대상으로 삼은 세가지 사상 전국시대 혼란을 끝낼수 있는 방법은 => 왕도정치의 실현
인간의 마음 작용을 성, 정, 려 ,위 순자의 철학이 갖는 가치는 '위' => 의지에 기초한 실천철학 맹자와 순자의 차이점 맹자는 군자의 도덕성만을 인정한 것이며, 순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사람의 본성이 악하다 다투지 않고 화합하게 할 수 있는 통제수단으로 예에 의한통치를 강조함. 예는 사전예방이고, 법은 병에 걸린다음에 하는 치료
순자의 성악설을 흡수하여 발전함. 동아시아의 역대 국가는 실제로 유가의 도덕적 인간관을 기초로 한 예악 문화와 법가의 사상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비자의 주장은, 법가사상이 원대한 이상과 철학을 강조하기보다 사회 정치적 현실 상황과 국면의 변화에 실천력 있게
법가 사상의 의의
<명가> => 명의 대가(학파) 명가라는 이름은 한대에 만들어 졌다. 명가는 명친과 실제, 또는 형식과 내용의 본질과 그 관계성을 논한 사람들이다. 서양학자는 명가를 궤변론자, 논리학파, 변증론자 왜 명가사상이 나왔는가? 뛰어난 논리성을 갖추었던 명가가 왜 후대로 이어지지 못한 까닭은? 1. 동양적인 사유 체계에서 분석적인 방법이 주류를 이루지 못하였다.
<농가> 중심사상은 임금과 신하가 똑같이 농사지어야 한다는 것 대표사상가 => 허행 (아홉개의 분파가 있다.) 신농의 가르침은 무었인가? <여씨춘추>에서는 "백성들이 짓는 농사는 그 땅보다도 거기에 담깅 의미가 중요하다. 백성들이 농사를 지으면 순박해지고, 맹자는 도덕을 기반으로 백성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려 함 다른사상가들은 백성을 부국강병의 도구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농가는 군주도 백성과 똑같이 농사를 짓고, 똑같이 자신의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고 주장함. 농가 사상의 핵심은 임금도 백성과 똑같이 밭을 갈아 자신의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자신의 밥을 지어 먹는 "군민병경"이다.
주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두 학파로 나누어 진다. 의리학파는 성인이<주역>을 만든 본래 의도가 결코 점치는데 있는것이 아니며, 역의 목적은 천지 자연의 운행과
<주역>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 <주역>의 정신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태도
공자, 맹자, 순자로 대표되는 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세계의 실현에 있었으며,
노자,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사상은? |
|
1993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2006년 개정판이 나왔으며, 2011년 그 개정판의 23쇄가 바로 내가 본 책이니 베스트셀러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는지 몰라도 스테디셀러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책을 본 사람들이 낸 입 소문이 저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나 또한 그러한 입 소문의 한 자락을 거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책이라는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