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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책이다. <손자병법>을 한번 읽어보겠다고 검색어로 '손자병법'이라고 치면 웬놈의 책들이 그리도 많이 뜨는지. <소설 손자병법="">은 그래도 낫다.(사실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은 손자병법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 <자녀교육 손자병법="">이나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손자병법="">까지도 그래도 참을만 한데, 급기야 <고스톱 손자병법="">까지 있다. 우리에게 손자병법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돼 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볼만한 손자병법은 불과 몇권 되지 않는다는데 또한번 놀란다. 애초 이 책을 고르던 기억을 되짚어 볼 때, 원전을 맛을 느낄만한 책은 서너권을 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자병법이란, 얼마나 부실한 기초위에 세워진 누각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길가는 어린아이를 잡고 물어봐도 손자병법이라고 하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바로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말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런 말은 나온다. "知彼知己면 百戰不殆" 물론 뜻은 같은 말이라 하겠으나 손자는 오히려 백전백승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걸 상기한다면, 원전을 확인해 보는 재미를 또한번 즐길만 하다. "百戰百勝은 非善之善者也라. 不戰而屈人之兵이 善之善者也라"(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편이 진짜 좋은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 손자병법은 굳이 한자책으로 보는 미련한 짓이 과연 필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나 역시도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답할 듯 하다. 우선 요새는 쓰지 않는 글자나 표현이 너무나도 많이 나온다. 3천년 전에 군대 편제 단위를 뜻하는 글자를 알아서 뭐하겠으며,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감도 오지 않는 무기 이름은 또 알아서 뭐에 쓰리. 한자 자전을 찾아봐도 잘 나오지 않는 그런 글자를 찾느라 애먹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게다가 한문학 가운데에서도 고(古)라는 한자를 하나 더 붙여야 마땅할 문장을 해석하다보면 정말이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손자병법이 각광받는 이유를 이해했다면 그런 억울함을 다소나마 풀 수 있을까? 단 일독을 끝내자마자 이런 단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정도에서 책임을 회피한다면, 손자병법의 키워드를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利"라고. 戰도 아니고 勝도 아닌 利라고. 이 사소한 정의는 사실 유려한 해석 문체로 읽었다면 미처 간파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부분이다. 다만 한 글자 한글자 짚어가며 봐야했기에 더더욱 와닿은 손무 할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즉 전쟁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은 항상 다른 곳에 있으며, 그렇기에 승리도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다는 진리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대부분의 문장을 옮겨 적었더니 불과 7장 분량이다. 이걸로 책 한권 엮어 봤던 선인들의 비효율에 감탄하면서도, 곱씹을수록 새록새록 묻어나는 문장의 맛에 또한번 혀를 내두른다. 한문 문장의 맛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내게 한문은 어렵기만 하니 답답하다.//고스톱>성공하는>자녀교육>소설>손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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