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저문 세상에 건 꽃등 하나
"저문 세상에 건 꽃등 하나" 내용보기
봉안터널     양평에서 강변북로로 빠지다 보면 협궤열차 같은 터널 다섯 개 잇달아 서 있다   살도 뼈도 내장까지도 다 긁어낸 산의 복부를 차례로 관통하면서 누군가에게 길을 터주는 일이란 저토록 말끔히 자신을 비워내는 일임을 잘린 뼈마디 끈적한 진물도 감추고 살아온 날의 흔적마저 가셔내는 일임을 그리하여 마침내 완벽한 육탈보시肉脫布施에 이르는 길임을
"저문 세상에 건 꽃등 하나" 내용보기

봉안터널

 

 

양평에서 강변북로로 빠지다 보면

협궤열차 같은 터널 다섯 개

잇달아 서 있다

 

살도 뼈도 내장까지도 다 긁어낸

산의 복부를 차례로 관통하면서

누군가에게 길을 터주는 일이란

저토록 말끔히 자신을 비워내는 일임을

잘린 뼈마디 끈적한 진물도 감추고

살아온 날의 흔적마저 가셔내는 일임을

그리하여 마침내

완벽한 육탈보시肉脫布施에 이르는 길임을 본다

 

한때 숨통이었다가 죽음이기도 했던

까칠한 사람 하나 터널 끝에 서 있다

잠시, 목이 멘다

 

 

아침에 시집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한여름이지만 바람이 창문으로 넘어 들어와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좋은 시간. 어제는 딸과 딸의 영혼의 단짝이라 할 만한 아름다운 영혼을 만났다. 이국에서 스물몇 해를 달리 살아 다르지만 너무 닮아 있는 영혼들과 하루종일 함께한 즐거운 여운이 몸을 지배했다. 게다가 시인을 직접 만난 날이었다. 이튿날 첫 끼니를 먹기 전에 펼친 시집이었다. 시집 안 당신 사진 밑에는 단정한 글씨로 시인의 글이 있다. “기차를 놓치고 그댈 만났으니 다시 놓친다 한들...”, 단정한 글씨로 다정하게 건네는 말이다. 흥감한 마음으로 시를 읽다가 그만 인용한 시에 이르러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 재작년에 큰누나가 돌아가셨고 지난해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하나같이 내게 길을 터주던 분들, 아버지 큰누나 엄마. 나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의 길을 트고 있는가.

 

서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 세상으로부터 나를 / 완벽히 봉해본 적 있던가 /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얼음 호수). 겨울에 꽝꽝 언 호수를 보고 세상으로부터 단 한 번도 나를 봉인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돌아보는 단단한 정신을 만난 듯 반가웠다. 몸의 오른쪽이 탈이 나 침이란 침 온통 왼쪽에 찔러넣고 내 부실함 탓하지 않고 온전한 사지육신에 침을 꽂은 그대를 살펴보는 시각(오른쪽이 왼쪽에게)도 가슴 깊이 다가왔다.

 

한때 숨통이었다가 죽음이기도 했던 까칠한 사람그대를 거쳐 짱둥어야 생합아 농게야 농쟁이야 댕기물떼새야 이름을 부르는 데 이르러다저문 세상 꽃등 하나건 듯하여 환했다.  외변산 휘돌아 채석강 가는 길 / 살점 발라 방조제에 쏟아붓고 / 거죽 얄팍한 산 눈에 들면 / 우측 갓길에 차를 세우시라 / 산 허물어지고 물길 끊어진 / 저기, 해창 석산 / 거기, 해창갯벌 // 곁가지 본가지 뒤틀려 / 생목숨 정수리에 이고 지고 / 갯바닥에 맨발로 시리게 서 있는 / 못생긴 소나무 밤나무를 / 무심히 장승이라 / 싸잡아 갯것이라 / 괜히 객지 사람 티내지 말고 / 이참에 이름 한번 불러보자 / 짱둥어야 생합아 농게야 / 집 나간 누이 부르듯 애타게 / 농쟁이야 댕기물떼새야 / 돌 지난 조카 부르듯 살갑게 // 찰진 영토 빼앗아 둑 쌓고 길 넓힌 죄가 / 이름 한 번 부른다고 다 용서될까마는 / 듣거나 말거나 불러주자 / 외사랑하듯 불러주자 / 부르다보면 정도 붙고 / 정들면 뒤엉켜 살고도 싶어지느니(그대, 변산에 가시거든).

YES마니아 : 골드 g*******g 2021.09.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