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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결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한다. 이는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혼인 건수의 증가라는 통계 뒤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뉴스를 보니 한동안 외면당했던 결혼 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2025년 혼인 건수는 24만 326건으로 전년대비 8.1퍼센트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이 부활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스펙 과 자산으로 자신을 입증하려는 남성들, 외모와 나이로 평가받는 여성들, 로테이션 소개팅에 나서는 청년들의 모습. 그리고 TV와 OTT에 쏟아지는 결혼 예능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 인지, 아니면 원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것인지 묻게 한다. 결혼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책은 여러 담론을 이야기 한다. 결혼 담론에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동화의 결말이다."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는 결혼이 모든 고통의 종점이며, 거기서부터 영원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OTT 예능에서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은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연출된다. 그것이 모든 갈등의 해결, 모든 기다림의 결말인 양...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고, 때로는 냉철하다 : 결혼은 보험이 다.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다. 떨어질 수 있는 연애 감정을 법적 구속으로 들어잠그는 것, 결혼하지 않으면 언제든 상대가 떠날 수 있지만, 결혼하면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믿음. 이것이 결혼이 제공하 는 유일한 안정"이다. 사회가 결혼만이 안정을 제공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안정을 원하면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형태의 안정 즉, 공동생활, 법적이지 않은 헌신적 관계, 친구들과의 깊은 연결 등은 "진정한 안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결국 제도가 목적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혼 시장은 낡은 성 역할이 가장 적극적으로 재생산되는 장소다. 남성에게 결혼은 "가장으로서의 증명"을 의미한다. 스펙, 자산, 직업 등 모든 것이 남성성을 입증하는 수단이 된다. 혼자서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혼하지 못한 남성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능력이 없는 " 남자가 아닌 존재"로 낙인찍힌다. 산업화 시대에조차 한 남성이 온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신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있다.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 남성에 대한 요구 는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고하다. 한편 여성들에게 결혼은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나이, 외모, 그리고 "남편보다 낮지 않으면서도 압도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라는 모순적인 요구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자율성을 양도한다. 인정하거나 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여성이 서른다섯 넘으면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기준이 자신에게 작용한다. 이것이 제도적 폭력의 본질이다. 인식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 더 심 각한 것은, 결혼이 여성에게 자율성의 포기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든 것을 용해시킨다. 결혼의 최종 목표는 보통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결혼의 필수 요소로 아이를 이야기했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삶의 안정은 오직 핵가족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시 대적, 지역적, 경제적 발명인 핵가족을 동물적 본능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에서 핵가족만이 임신- 출산육아, 그리고 이것 너머 생애 전반의 경제적, 관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성하는 유일한 길로 여겨지 기 때문이다. 핵기족은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생물학적 본능으로 착각한다. 역사와 정치경제를 생물학으로 위장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안정을 원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가져야 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완성된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도적 필연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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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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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결혼을 꿈꾸는 마음에는 낭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섞여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와 돌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결혼은 삶의 바닥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지만,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고 나의 집이며 어려운 순간에도 책임을 나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종류의 안도감을 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쉽게 대체되는 시대일수록 오래 머무르겠다는 약속을 품은 관계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결혼이라는 형태를 향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안정이 결혼이라는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문밖에 서 있는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남게 된다. 좋은 직업을 얻고, 돈을 모으고, 집을 마련하고, 적절한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삶. 우리는 이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부르지만 그 평범함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결혼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관리하며, 남성에게는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이, 여성에게는 외모와 나이, 출산과 돌봄의 가능성이 따라붙는다. 누구도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결혼하지 않는 삶을 불안해하고, 누구도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았는데 이미 정해진 생애의 순서를 따라가게 된다. 가장 단단한 규칙은 명령의 목소리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새 자신의 생각과 욕망인 것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그 문을 통과한 뒤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위에 사회가 오래도록 정해온 역할이 포개진다. 사랑은 때때로 그 역할들을 부드럽게 감싸는 언어가 된다. 사랑하니까 이해하고, 사랑하니까 양보하고, 사랑하니까 돌본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말 뒤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몫으로 굳어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오래된 사회의 관습은 사라지는 대신 사랑의 얼굴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책임질 경제력을 증명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경력을 조정해야 한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계산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사랑이 두 사람의 세계를 넓히는 힘이 되려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한 자원으로 소모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안정이라는 말의 자리를 조금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안정은 정말 배우자 한 사람에게서만 얻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곁을 내어주는 친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관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사람, 아픈 날 말없이 찾아와주는 사람. 삶을 지탱하는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오랫동안 사랑과 돌봄과 책임과 주거와 경제적 연대를 한데 묶어온 탓에, 그 밖의 관계들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을 뿐이다. 관계의 가치는 이름보다 그 안에서 서로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내 곁에 붙잡아두는 것이 사랑의 증명이 될 필요는 없다. 상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때로는 등을 내어주고, 필요할 때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갈 힘을 잃지 않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이라면, 돌봄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닌 서로를 살아 있게 하는 관계의 방식이 된다. 좋은 관계 속에서는 한 사람의 세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기대면서 각자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독립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안정』의 마지막에는 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던 사랑과 결혼과 가정과 안정 사이에 다른 길들이 생겨난다. 친구와 가족 사이에도 돌봄이 있고, 연인 사이에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거리가 있으며, 이름 붙이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서로의 삶을 견디게 하는 책임과 애정이 존재한다. 안정은 한 사람의 어깨에 모든 무게를 올려두는 대신 여러 관계 사이에서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갖는 일일 수 있다. ‘관계의 기하학’이라는 말은 그래서 이 책의 사유를 잘 보여준다. 삶은 하나의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다른 사람의 곁을 지켜주면서 수많은 선과 면을 만들어간다. 그 모든 관계가 반드시 같은 모양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사람이 작아지지 않는 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 삶을 잃지 않는 일, 서로의 불안을 혼자 견디게 하지 않는 일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안정될 필요가 없다. 안정 역시 한 사람의 어깨 위에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 서로의 삶을 지탱하면서도 각자의 삶이 더 넓어질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이라고 부르며 찾아 헤맨 것은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 그리고 결혼이라는 이름 너머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 『사랑과 안정』은 사랑과 안정 사이에 너무 오래 놓여 있던 하나의 등식을 천천히 풀어내며, 그 자리에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수많은 관계의 형태를 그려낸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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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결혼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안정’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저는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읽으면서 제 결혼과 관계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결혼하면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안정은 정말 같은 모습이었는지… 하나씩 생각하다 보니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결혼을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안정과 책임, 돌봄,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좋았어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사랑과 안정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정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요즘은 결혼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이 나오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지?’ 혹은 ‘나는 지금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런 고민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도, 저처럼 이미 결혼한 분들에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안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제게 안정이란 무엇인지, 좋은 관계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꺼내어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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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양 장난없음 주의) 우리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심도 깊게 탐구한 책이다. 젊은 저자가 가진 사회 비판적인 시선과 총명한 다각도의 탐구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책. 하지만 가치 정립이 제대로 안 된 불안한 청년들이 읽는다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책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기혼자도 알아채지 못했던 결혼에 대한 신박한 견해들이 담겨있다. 머릿말에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연결되고 끊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세계를 이해해가는 인류학적 논증이 하나의 기초적인 놀이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는 부분을 못 보고 지나쳤다면 왜 일부분으로 전체를 관망하려하는지 의아했을 수도 있다. ‘기꺼이 그 놀이에 참석해 주지.’ 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어려운 단어들이 나열된 논리적으로 보이는 글은,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저자의 생각을 100% 그대로 흡수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이 당연시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물음을 가지고 접근한 시도가 도전적이고, 자기 방식대로 해부해 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지만 내게는 마치 딸기를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딸기‘라는 것을 ’먹는다‘로 이어지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의미, 딸기가 가진 부정적인 효과만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주관적인 해석이 안타까웠다. 딸기를 한 입 먹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의 퀘일리아는 영원히 기혼자만의 영역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단 한번 먹어 본 딸기가 새콤달콤한 것이어서 나 역시 달콤한 맛 밖에 모를지는 몰라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미혼자의 해석은 협소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던 십여년 사이에 ’결혼‘이라는 것이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증명해내는 좁은 관문이 되어 버린 걸까 시대에 뒤쳐져 버린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저자 안희제님과 교환 독서하는 느낌으로 싸우면서 읽었다. 물론 실제로 붙으면 크게 지겠지만 연구자의 지성에 박박 반박하며 읽는 독서 시간은 너무 즐거웠다.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 하자]를 실천하려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은 두번, 세번 읽으며 모든 문장을 이해하고 넘어갔다. 다른 의견에 반박하려고 열심히 읽었는데 (나 혼자서)실컷 책과 싸우고 보니 싫기보다는 더 좋아졌다. 저자가’ 결혼‘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된 사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을 것까지 염려하며 다시 좋았던 내용들을 곱씹어 봤다. 특히 ’자리‘와 ’히스테리‘의 연결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궁금하게 만드는 저자에 홀려 나는 급기야 남편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우리가 왜 들어왔다고 생각해?“ ”음...(생각 중)“ ”책에 보니까 경제적 안정이나 심리적 안정, 주변의 압박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더라고.“ ”음... 헤어지기 싫어서. 사랑하니까 했지.“ 내가 생각하는 결혼도 이거다. 저자가 말하려는 결혼도 종국에는 이런 모습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든 없든 상대방을 피어나게 해주는 사람과 알콩달콩 챙겨주고 잘 살라는 것. 물론 그 결론으로 가는 과정에서 불편하고 날카로운 비판들도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다. ’결혼‘만을 위한 ’결혼‘을 하지 말자는 것. 서로 사랑하고 믿고, 아이를 통해 배우는 큰 인생의 과업을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루어가기를 바란다. 📖 한겨레출판에서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