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 없이도 가능한, 낙관주의!
"희망 없이도 가능한, 낙관주의!" 내용보기
#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서평 #책추천희망 없는 낙관주의. 토미 비링하/류동익 옮김. 어크로스. 2026._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제목부터가 이미 역설적이다. 희망없는 낙관주의라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일 수가 있을까. 낙관주의란,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이나 사물을
"희망 없이도 가능한, 낙관주의!" 내용보기

#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서평 #책추천


희망 없는 낙관주의. 토미 비링하/류동익 옮김. 어크로스. 2026.

_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목부터가 이미 역설적이다. 희망없는 낙관주의라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일 수가 있을까. 낙관주의란,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으로 쓴다. 이미, 단어 뜻 안에 '희망'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잘 되어 갈 것으로 여'긴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낙관주의가 희망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아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부터가 질문 폭발이었다. 또 하나, 부제에 '무너진 세계'라는 단어가 보였다. 아, 이 세상을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고 있으니 더더욱, 낙관주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세계에 희망이 없는 게 맞지 싶었다. 그러니 더 호기심이 생겼다. 희망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굳이 밝히고 있는 낙관주의가 무엇인지 꼭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그 두려움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죽어 묻힌 뒤에도 내 딸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 미래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물려줄, 살 수 없는 땅에 대한 두려움이다.(18쪽)


아! 처음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세계가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의 기후 위기 생태계 변화 지구의 위태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정! 나도 이미 두 딸이 있고, 지금의 아이들 세대에게 곧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으니,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저 두려움을 익히 나도 확인했고 또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손 쓸 방도를 미처 찾기도 전에 무자비한 속도로 무너졌다고 있는 지금의 지구, 우리의 세계가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운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자연의 변화는 곧 우리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아이들은 너희들의 잘못 없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이런 지구를 물려주게 돼서 미안하다고.

예전 환경 관련한 독서 토론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지금의 이런 세계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그래서 딩크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무너져가는 세상에 무책임하게 살아남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놀랍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연결짓는 것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이유를 들으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싶기도 했던 것이다.


경제 생산성의 최적 기온은 평균 섭씨 13도다. 그해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온도는 섭씨 48보였다. 가까운 미래에 섭씨 50도 이상도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캠핑객, 기후 난민.

북쪽으로의 대이주가 시작되었다. 크롭스볼데에는 점점 더 몸집이 작아진 이탈리아인들이 텐트를 치게 될 것이다.(63-64쪽)


올 여름 무척 더웠다. 아니, 덥다. 아직도 여름, 현재 진행형이니까. 내년 여름은 더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마,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는 더 더 더, 덥겠지. 앞으로 기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지금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 그저 현장유지 정도, 더 이상 심해지지만 않을 뿐이라고.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이제 불가능이라고 하셨던 좋아하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 이런 지경에 온 것이다. 그러니, 기후 난민, 텐트를 점점 더 북쪽으로 쳐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희망은 더 이상 쓰레기와의 모험을 이끄는 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점 없는 낙관주의의 근본 태도다. 세상을 최선으로 보는 철학적 낙관이 아니라 보고도 눈감는 낙관이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다.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질 거라는 어떤 기대로 없이. 강력하다.(...) 환경과 기후 위기 속에서 희망이 지속적 행동 원리를 제공하지 못할 때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지속적 추진력을 가진다. 즉각적 보상 없이도 올바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131-132쪽)


왜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필요한지 명확히 알게 됐다. 그냥, 희망은 없지만 하라는 것이다. 항상 환경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숨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의 이런 개별적인 행동이 얼마나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데도 계속 했다가는 데에서 지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빠진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계속하면 된다는 것. 철학에서 말하는 희망적인 태도 없이, 즉각적으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계속 쭉 해나가자는 말.


어디에서도 응원받지 못하는 고독한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외롭고 지난한 싸움이 될지라도, 그저 묵묵히 '행동하기'! 그럴 수 있기 위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책을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n*****0 2026.08.2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 없이, 그래서 절망 없이!
"희망 없이, 그래서 절망 없이!" 내용보기
책을 읽는 동안 기묘한 강강술래를 떠올렸습니다. 보름달 아래 서로의 손을 맞잡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는 사람들. 누구도 손을 놓지 못하고 발을 멈추지도 못한 채 회전은 점점 빨라집니다. 그 원은 어느 순간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둥근 모습과 겹쳐집니다.기후위기, 전쟁, 극우화, 거짓이 범람하는 미디어와 빅테크. 우리는 서로의 손과 발에 상처를 내면서도 자신이 만든 거대한
"희망 없이, 그래서 절망 없이!" 내용보기

책을 읽는 동안 기묘한 강강술래를 떠올렸습니다. 
보름달 아래 서로의 손을 맞잡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는 사람들. 누구도 손을 놓지 못하고 발을 멈추지도 못한 채 회전은 점점 빨라집니다. 그 원은 어느 순간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둥근 모습과 겹쳐집니다.

기후위기, 전쟁, 극우화, 거짓이 범람하는 미디어와 빅테크. 
우리는 서로의 손과 발에 상처를 내면서도 자신이 만든 거대한 원 안에서 계속 돌고 있습니다. 진물이 흐르고 죽음의 냄새가 짙어져도 멈추지 못하는 군무. 우리가 사는,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살아버리고 있는’ 지구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기대하던 종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걱정하는 종으로 급속히 변했다. 미래를 상속받을 자손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루라는 섬에 갇힌 존재로.”
- p.72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이듯 희망찬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자는 이야기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도 함께 사라지고, 그제야 결과와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암울한 현실을 숫자와 철학만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문학은 이렇게 삶의 작은 장면 하나까지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p.17) 결국 거대한 세계의 위기 역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해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처럼 읽힙니다.

우리의 끔찍한 강강술래를 멈출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책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원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도, 끝내 실패할지라도 내가 잡은 손만큼은 놓지 않는 것. 
희망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도 행동하는 것. 

이 책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절망적인 시대를 낙관하는 책이 아니라 절망할 권리마저 내려놓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묻는 책이다 싶습니다.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작지만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당신을 강인하게 만들고 앞으로 닥칠 실망들에 면역되게 해준다. 그것은 저항과 전복의 원동력이다.”
- p.137

#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YES마니아 : 로얄 f********5 2026.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막연한 긍정 대신 실천 철학
"막연한 긍정 대신 실천 철학" 내용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 기후위기를 해결할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 사회가 결국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까지. 우리는 수많은 희망을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 기대를 계속 배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토미 비링하가 이 까다
"막연한 긍정 대신 실천 철학" 내용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 기후위기를 해결할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 사회가 결국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까지. 우리는 수많은 희망을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 기대를 계속 배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토미 비링하가 이 까다로운 질문을 붙잡았습니다. 막연한 긍정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오늘을 바로 세우는 단단한 실천의 철학 『희망 없는 낙관주의』. 네덜란드 철학의 달 기념 재단이 선정한 2025 올해의 철학 에세이입니다.


“희망이 있습니까?” 대신 “왜 희망을 묻습니까?”라며 질문을 뒤집습니다. 우리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야 오늘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보장이 사라졌을 때도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가깝지만, 낙관은 현재를 움직이게 하는 행동이라는 분석입니다. 희망을 품는 순간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세상이 좋아지겠지?'라는 보상 심리에 사로잡히고, 그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깊은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희망을 없애자는 말은 결국,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하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제방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결과를 바라는 근시안적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타인의 몰상식함에 분노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충실한 플라스틱을 줍는 기계처럼 담담하게 옮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래의 보상에 연연하지 않는 자율적 정신이야말로, 거창한 구원론 없이도 우리가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지탱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해결될 것 같으니 한다”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한다”는 태도입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는 현실의 비극입니다.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어떻게 기괴하게 비틀어졌는지 조명합니다. 아체 부족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불 피우는 기술을 단 한 세대 만에 잃어버렸습니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불을 만들 수 있었으나 그들 자신은 어떻게 불을 피우는지 잊어버린 겁니다. 다시 배우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그들은 이제 숲 가장자리의 농부들에게 “불 좀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기술을 잃어버리고, 잊힌다는 걸 짚어줍니다. 기술의 발전이 거대해질수록 정작 생존에 필요한 본질적인 감각과 유산은 손쉽게 마모됩니다.


상실은 한 세대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원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 자원의 희소성을 잊습니다. 민주주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지키는 능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습관도 누군가가 대신 검증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약해집니다.


잊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금씩 하지 않다가, 조금씩 의존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진실의 종말에 관한 논의도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기에, 거짓말이 자라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걸 짚어줍니다. 나는 내 알고리즘에서 본 세상을 믿고, 다른 사람은 다른 알고리즘에서 본 세상을 믿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공동의 사실이 무너지면 대화도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대화가 어려워지면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합의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결국 진실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생활의 조건이 됩니다.



이 책을 단지 위기 진단서로 읽는다면 절반만 읽은 셈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니체, 에른스트 블로흐, W. G. 제발트뿐 아니라 미하엘 엔데 등 문학적 세계까지 연결하면서 하나의 질문을 여러 각도에서 비춥니다.


철학자 톤 르메르를 인용한 '정오'의 이미지는 이 책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입니다. "태양이 가장 무자비할 때 아무것도 숨을 수 없다. 그것은 진리와 죽음의 순간이며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순간이자 고통스러운 명료성의 시간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희망을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빛은 조금 다르게 등장합니다. 너무 밝은 빛은 오히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여줍니다.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는 그늘에 숨기 어렵습니다. 정오의 빛은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본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볼수록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도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유명한 구절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를 끌어옵니다. 희망하기를 행동하기로 바꾸라는 뜻입니다. 그가 자신의 딸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견디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기후위기처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희망은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셈입니다. 희망이라는 미끼에 낚여 실망하기를 반복하기보다, 구원에 대한 맹목적 기대를 버리고 당장 땅에 묘목을 심는 일. 생명 점화 공간을 만드는 실천이자, 묵묵히 흙을 만지는 행동입니다.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먼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펴봅니다.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에 기대는지 들여다봅니다. 왜 권위주의가 불안한 사회에서 힘을 얻는지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희망과 낙관을 분리해 사고하는 지점부터 독특한 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희망이 있어야 행동하는 사람은 결과가 나빠졌을 때 행동을 멈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희망이 없어도 행동하는 사람은 결과와 자신의 행동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기대는 결과를 바라봅니다. 행동은 과정에 참여합니다.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도 내가 옳다고 판단한 행동을 하겠다는 단단한 태도를 일깨웁니다. 섣부른 위로나 희망 고문 대신, 기대를 내려놓고도 무너지지 않는 실천적 태도를 제시하는 『희망 없는 낙관주의』. 위로를 건네지 않으면서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 책입니다.


#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OptimismeZonderHoop #2025올해의철학에세이 #철학에세이 #기후위기 #탈진실 #한나아렌트 #볼테르 #캉디드 #실천철학 #인디캣


l****5 2026.08.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