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살아가다 보면 사소하게는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떤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찬반 토론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그게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확신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담론은 나의 물리적인 환경을 벗어나 인터넷으로 나아가 더 확대되면서 토론의 규모가 커지며, 의견의 극단이 더 벌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담론은 보통 갈등과 싸움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진화의 가속도를 읽고 이러한 담론에 대한 특성 두 가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하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담론과 다른 하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적 담론이다. 우선 예측에 대해서 살펴보면 예측이라는 것이 왜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인가에 대한 동의한 결론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피질의 생물학적 구조상 선형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기 때문에 산술급수적인 사고는 본능적으로 가능하지만 기하급수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라는 것이다. 여러 분야들이 정보기술 분야로 넘어가면서 선형적으로 성장하던 것들이 기하급수적인 성장 곡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 것들이 점점 더 가속화되며 빨라지면서 결국 제시간 안에 달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수도 없이 많다. 직관적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현실이 그렇고 과거가 증명했던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이해할 순 없어도 나의 신피질에 특정 패턴인식기에 저장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도덕적 담론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그래서 누가 잘못한 거야’라는 질문으로 치환해버리면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너무나 쉬운 담론이 된다. 하지만 세상은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 대부분의 것들은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 도덕적 담론은 우월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면, 그 우월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라는 유기적 생명체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와도 같은 것이다. 즉,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흑백논리 사고와 도덕적 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정확히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AI라는 것이 뇌의 기본 메커니즘인 ‘패턴인식기’라는 것과 ‘인공신피질’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뒤에 나오는 철학적 담론인 ‘의식’과 ‘자유의지’를 다루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만이 그렇게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어느정도 AI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와 같은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것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여전히 우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우월성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것들의 동의 없이 그저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은 가치중립적이다. 책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세상에 속하는 인간 역시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반박할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세상에는 본질적인 선과 악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산술급수적인 사고방식이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인간 혹은 유기체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라는 고정관념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 AI까지 우리 인류에게 찾아온 지금, 세상이 원래 복잡다단했지만 이제 인간이 노력해도 안 되는 수준으로 더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인공신피질과 AI를 설계할 때 뇌의 가장 기저의 본질인 ‘패턴인식기’라는 사실로 접근하면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뇌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방향을 찾았고 AI는 인간의 뇌에 거의 근접했다. 인간의 직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인류는 하고 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버린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에 속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책을 통해 AI와 인간의 뇌를 동일한 공간에 두고 이해를 하고 의식과 자유의지로 생각을 확장해보는 시도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세상의 여러 담론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