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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일을 세밀히 묘사하여, 전형적 인물과 사건에 생명을 부여했다. 인물과 사건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충분히 그린다. 형태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도 다방면으로 추론하고 해석한다. 상세한 묘사는 시간을 지체시키고 공간을 늘려 몽환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인적이 드문 공간이 많은 말을 하고, 늘어진 시간에 조그마한 움직임도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화석 같은 현실이 생명을 가지고 꿈틀거리고, 공간이 가지는 통일성이 드러난다. 사람은 물론 오래된 성이나 함포도 어떤 의미를 가지며, 황량한 저녁 노을 같은 자연현상도 어떤 의미를 가진다. 마치 달리의 그림같이 비현실적인 모사가 생생한 현실처럼 보인다. 환상인 듯 사실이고 사실인 듯 환상이다. 꿈같이 잡기 어려운 미세한 일을 잘 포착하여 현실의 줄기를 어렴풋이 드러낸다.
책 속 이미지의 대부분은 특이하지만 낯설지 않다. 젊은 귀족의 閑地 지원, 외딴 섬의 신비, 농부가 된 군인, 쇠락한 군영, 화석 같은 진짜 군인, 미라가 된 성채, 이치를 아는 노인, 자유와 일탈을 가져오는 아름다운 여인, 유동적인 도시, 의도하지 않은 분쟁, 노회한 지도자 등이다. 하지만 저자의 묘사 속에서 각각은 개성을 가지고 살아난다. 잊혀진 기지는 과거의 삶이 묻어있는 동시에 유배된 자들의 삶이 녹아 있다. 황량한 들판과 바닷가는 흘러간 과거를 표상하지만, 그것들이 품고 있는 궁전과 물길 등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미래를 담지한다. 아름다운 여인과 버려진 성은 풍부한 지적 상상은 일으키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군인과 노인의 죽음은 새로운 미래을 암시하며, 세계의 변화 속에 그들을 자리매김한다. 해도실, 배의 선실, 지도자의 방 등 공간들은 각자의 표상을 가지고 꿈틀거린다. 풍경에 대한 다의적인 묘사는 공간에 대한 시선을 지체시키며, 찰칵찰칵 찍는 듯한 묘사와 해석은 찰나가 가지는 의미를 살려낸다. 이리하여 풍경은 우리의 영혼에 각인된 수많은 영상들과 교차한다.
삶의 모습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마무리는 뜻밖이었다. 전편을 통해 젊은 군인의 눈으로 풍경과 사건을 묘사하고 해석하면서, 분쟁으로 가는 줄기를 흐릿하게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에 타자인 지도자의 선명한 전쟁 예언이 등장한다. 서서히 변화를 끌어올려 군사분계선의 침범까지 차근차근 나아갔던 이야기가 뜻밖의 단언으로 매듭지어진다. 이미 전쟁은 충분히 예견되었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젊은 군인이 자신도 알 수 없는 공간의 힘에 끌려 도발을 했듯이 전쟁 또한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여지를 남겨두지도 전쟁으로 폭발시키지도 않으면서, 한 사람의 단언으로 마무리한 것은 쭉 그려온 이야기의 흐름과 다르게 느껴졌다. 섬세한 이야기에 뭉텅한 무엇인가 들어오는 듯하여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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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소래포구의 아침은 아직 밝지 않았다. 여름이면 소래포구의 새벽은 늘 짙은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짙은 안개 속 어딘가에서 우렁찬 선박의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웅...웅..... 국민학교로 등교하는 소년은 일찍 일어나서 서두른다. 학교가 있는 호구포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호구포-동인천 구간을 운행하는 19번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버스시간에 맞추어 도보로 늦지 않기 위해서 서두른다. 세수를 마치자 밖에서 기적소리가 울린다. 안개속 어딘가에서 덜커덩 덜커덩 기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6시 20분이다. 송도발 수원행 열차가 소래역에 도착하는 시간.. 학교로 향하는 길.. 좁은 소래와 논현4거리로 이어진 편도 일차선의 중앙선도 안 그려진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또다시 들려오는 기적소리.. 그리고 어렴풋이 안개사이로 노란 불빛의 행렬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침 7시05분.. 소래역을 출발한 두 칸의 송도행 협궤열차가 산 뒤 마을 앞 곡선 길을 돌아 남동역을 향해 달린다. 소래포구의 늘 되풀이 되던 아침의 일상이다. 좋든 싫든 그곳에 살아가는 이상 협궤열차와는 항상 가까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 술 취한 듯 좌우로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달리던 낡고 볼품없던 이상한 기차.. 당시 아이들은 그 열차를 가리키며 똥차라고 불렀다. 낭만과 동경의 대상이던 기차였건만 이곳에서의 기차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낭만과 멋을 가져다주지 못하던 놀림감밖에 되지 못했던 처량한 신세의 협궤열차이기도 했었다. 흔들흔들 움직이던 침목사이는 아찔하리 만큼 저 아래 검은 바닷물이 흐르고 있다. 밀물이 되는 시간.. 바닷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빠르게 떠났던 소래포구로 밀려들고 있다. 철교 밑에는 순식간에 바닷물이 가득차 오른다. 그 위로 사람들이 곡예 하듯이 낡은 침목들에 생명을 맡긴 채 철교를 건넌다. 아이들은 어른 손에 이끌려 징징 울며.. 아가씨들은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눈물 반 비명 반에 엉거주춤 거리며 철교를 건너간다. 그때 포구에서 바라보던 소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 위험한 철길을 목숨 내놓고 목적지도 없는데 건너다닐까? 94년까지 소래철교에도 나무침목 위에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널빤지를 깔아서 철교왕래가 이루어지다가 94년 이후 갑작스레 널빤지가 철거되어 버리며 말 그대로 침목과 침목사이 바다를 건너는 위험한 철교가 되어버렸다. 널빤지가 있던 시절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끌고 소래철교를 왕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젠 정말 인도교가 되어버린 소래철교..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돌려 1987년으로 돌아간다면 저 자리에는 아파트는 깨끗이 사라져버리고 나지막한 산 아래 갯뻘과 염전지대 사이로 철길은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도 없다. 월곶 신도시도 없다. 월곶 오이도로 이어진 소래대교도 없다. 소래에서 경기도 시흥 군으로 넘어가는 길은 오직 이곳 소래철교 수인선이 유일했다. 철교가 끝나는 지점 옆에는 해안초소가 있었고, 그곳에 총을 든 군인이 지키면서 달월방향으로 철길 통과를 하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통제했다. 소래철교에서 달월역 까지 철길은 오직 기차만이 다닐 수 있었고, 사람들은 철길아래 염전으로 이어진 둑방길을 따라 달월로 가야했다. 간간히 그것을 어기고 철길을 도보하는 사람들과 군인 들 간의 실랑이와 서슬퍼런 고함소리가 일순간 긴장감으로 몰아넣기도 했었던 소래철교.. 많은 사람들이 소래 철교 위를 오고가고 있던 시간.. 갑자기 초소를 지키던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소리친다. “빨리 건너가요!! 기차와요!! 기차와요!! 빨리 건너가요!!” 사람들은 후다닥 놀란 듯 민첩하게 철교를 건너가기 시작한다. 기적소리가 울리며 두 칸의 협궤열차가 달월역을 출발해 소래철교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위에는 소래포구 방향으로 거의 다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다. 기적을 울리며 협궤열차는 잠시 다리위로 진입하자 속력을 줄인다. 또다시 기적이 울린다. 그것은 사람들을 향해 빨리 건너가라는 신호 인 듯했다. 이어 사람들이 다 건너가고 철교 위는 텅 비었다. 그제 서야 협궤열차는 속력을 올리며 뒤뚱뒤뚱 소래 철교 위를 건너간다. 두 칸의 객차는 모두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출입문은 모두 활짝 열려있고, 열차안 사람들도 철교입구 초소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서로 신기하게 바라본다. 소래역에 14시48분에 도착하는 송도행 열차가 지나고 다시 소래철교는 사람들의 왕래로 평온을 되찾는다. 널빤지로 이어진 길.. 저 길이 바로 송도로 가던 수인선이다. 열차는 소래역을 향해 달린다. 소래 횟집들이 늘어서있던 길목으로 기차가 달린다. 철길 옆에는 횟집에서 내놓은 말리는 망둥어 들이 햇볕을 받으며 흰 뱃살을 드러낸채 일광욕을 즐기듯 누워있다.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열린 창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열차 안에서 빤히 보인다. 아이들은 종종 이곳에서 횟집에서 말리는 망둥어 등등 고기를 서리하기도 했다. 철길 좌우로 말리는 고기들로 비릿한 내 음이 열차 안을 휘감는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배꼼히 문밖으로 내다보며 기차를 구경하던 모습들.. 이젠 그 횟집들은 모두 허물어져 버리고 흔적만 남았다. 그 앞을 달리던 철길도 녹슨 채 버려져 흔적만 남기고.. 다시 시계를 돌려 2005년으로 돌아오니 모두 폐허가 되어버렸다. 소래포구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배경은 남았고 주인공과 조연배우들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드디어 기차는 14시48분 소래역 정거장에 진입한다. 우측 편으로 대한염업 소금창고 두개와 하역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로 5~6월...9~10월에 소래,서청,월곶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싣고 온 염전기차가 이곳 소래역 하역장 창고에 도착한다. 선로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완목신호기가 보인다. 1992년 소래역이 종착 역이되며 완목신호기와 역구내 주박선로가 생겨났다. 송도역이 종착역이던 시절 소래역 에는 완목신호기도 구내 주박선로도 없었다. 레일도 모두 걷혀나간 정거장.. 92년 종착역이 되며 소래역 정거장도 시멘트로 포장된 개선된 정거장을 사용했었다. 그 이전에는 흙으로 다져진 정거장에 나무 폴 사인이 두개가 서있던 정거장이었다. 역 목 은 그 자리를 지키며 이곳이 기차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왼쪽에서 기차가 오고가며 정차했던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저곳에 소래역 선로 보선 반 건물도 있었는데.. 감회가 새롭다. 하나하나 추억이 없는 곳이 없던 소래역.. 아직 눈앞에 아른거리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눈앞에 겹치며 추억을 생각한다. 기차가 들어오지만 열차도착에 대한 안내방송은 없다. 그런다고 정거장에 역무원이 나가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없다. 협궤열차 안에도 방송시설이 없다. 알아서 역에 내리고 알아서 역에서 기차를 타야했던 수인선.. 88년 2월.. 친구와 처음으로 이곳에서 당시 80원에 송도까지 승차권을 끊고 14시48분 송도행 세 칸의 협궤열차를 타고 떠났던 기억.. 당시 원곡역(현 안산역)에서 6칸의 청량리행 파란색 전철을 타고 종로3가로에 내렸던 기억.. 소래역에서는 야목역 발매 인쇄가 찍힌 에드몬슨표를 재활용해서 팔았다. 그때 여름방학시즌이어서 그런지 송도행 열차도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볐다. 남동역을 지나 승기천 철교를 건너는데 철교아래는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인천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연수지구 택지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연수동 청학동은 논현동 못지않은 한적한 시골풍경이 남아있던 그러한 곳이었다. 협궤열차는 소래에서 이동하기에 번거로운 구간을 한번에 기동성 있게 연결해주던 고마운 교통수단이었다. 소래에서 송도까지 열차로는 15분이면 갈 수 있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수인선 협궤열차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교통수단이었다. 저렴한 요금에 빠른 기동성까지 가졌으니 작다고 업신여길 수 없는 소중한 열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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