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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모토 노바라는 이상한 작가다. 그의 줄거리는 아주 알기 쉽고 어찌 보면 통속적이다. 그런데도 그의 이야기는 무척 새롭고 생경하다. 낯선 것 속의 친숙함, 그리움.... 바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알지만 번번이 새로운.
이 책에 실려 있는 두 편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그런 지점을 꿰뚫고 있었다. 어느모로 보나 평범하고 오히려 초라하지만 비범한 무엇인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기회에 그 비범함을 추인해 주는 상대를 만나 확신 같은 사랑에 빠진다.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만나보기 어려운 ''영혼의 교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피폐한 시대다. 그들이 서로 느낀 교감은 결국 운명의 힘에 부숴지게 된다. 운명은 다른 말로 하면 성격이다. 고전적인 비극의 코드가 있다. [잡화점]에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사랑과 용기를 너무 늦은 뒤에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성격 탓이다. [미싱]에서 ''나''는 미싱을 목숨 바쳐 사랑하지만 미싱이 진짜 사랑한 사람은 ''내''가 저주하던 류노스케임을 알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오랫동안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참말 진실하다. 찌르르한 감동이 온몸을 달렸다. 작가의 글투도 굉장히 아름답다.... 롤리타 전문 소설가라고 해서 가볍게 흥미거리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랜만에 깊은 감동을 느끼며 읽은 소설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들은 닮은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인 겁니다. 물론 겉모습도 다르거니와 취미도 조금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에도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같은 색깔 같은 질량의 혼을 가진 겁니다. 예, 나는 혼이라는 것의 존재를 믿습니다. 마음이 착각하더라도 혼은 착각하지 않습니다. 나와 당신이 가진 혼은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도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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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 내용으로 나뉘는데 세상의끝이라는이름의잡화점과 미싱 이 두가지.. 내용의 공통점은 사랑을 다루고있고 끝은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약간은 허무하기도 한듯하지만 여운을 남기고있다고 표현하고 싶은.. 또.. 옷이야기를 빠질 수가 없다. 평범하지 않은 내용의 작품이다. 나에게 소장가치는 시모츠마이야기들 보단 떨어지지만 역시 노바라님의 독특함이 베어나오는 작품이다. 시모츠마랑은 왠지 다른 스토리와 내용이고.. 이로서 더욱 작가를 알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바라님의 작품은 어딜가나 옷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점도 있고.. 재밌다고는 말 못할 책.. 책 표지도 블루스카이색상으로 깔끔하고 두께도 얇은편이라 책읽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괜찮게 볼 수 있다. 일단 책을 한번 보는게 가장 궁금점을 풀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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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4 이 눈은 얼마나 쌓일까요. 세상에는 40일간 비가 내려서 방주에 탄 노아 식구들 이외의 모든 것을 멸망시켰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 눈은 40일간 계속 내리지는 않겠죠. 여기는, 세상의 끝이 아니니까요.
2016년도 들어서 처음으로, 지금 이 순간 눈이 내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일 당장 배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잡화점>의 그와 그녀처럼 아주 순수한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눈이 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허얼,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 건지..;;;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잡화점>도 <미싱>도 소녀들의 특정 브랜드 의류 집착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왜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말해주었다.
p.143 제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옷에 집착하는가 하면 의복, 패션이란 자신을 본래 이랬으면 하는 이상에 한없이 근접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나름의 이유에서, 실제로 이룰 수는 없지만 되고 싶은 자신, 미래에는 이랬으면 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은 살아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남들이 내리는 평가가 결국은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남들이 부여한 지금의 이미지를 긍정해도 되는 걸까요? 당신이라는 인간 존재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당신이 아닐까요. 마음에 드는 옷을 걸치고 있으면 잠시나마 정직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던가요?
.. 주인공들처럼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던지 밀크라던지 하는 특정한 그 옷! 하는 그런 게 없다. 하지만 나는 주로 캐주얼하게 입는 편이다. 맨트맨티라던가 후드티, 후드집업에 각종 청바지들을 같이 입는 걸 즐긴다. 가끔 어른스레 보이는 옷을 입기도 하지만 대개는 캐주얼이다. 어쩌면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게 보이는 비결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이 일하기에 활동하기에 편하다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내 무의식이 내 옷차림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하기도 한다. 확실히 서른여섯의 다른 여자 어른들에 비해서는 내 얼굴도 입고 다니는 스타일도 어려보이기는 하다. 흠.. 이런 것까지 깨닫게 하다니.. 이 작가, 좀 예리하게 무섭다. ㅡㅡ;;;
대체 얼마만큼 집착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여달라는 그 부탁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Yes할 수 있는 걸까. 20년 가까이 좋아하는 가수가 있기는 해도, 매년 그 가수의 생일을 나홀로 기념할 정도로 좋아하기는 해도.. 글쎄.. 그가 나에게 그런 무서운 부탁을 했을 때 나는 결코 Yes를 말하지 못할 것이다. 들어주지 못하는 마음이 무지 괴롭다 할지라도..ㅡ,ㅠ;;;
p.18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합니다. "20세기는 야만적인 시대야."라고. "옛날 사람들이 훨씬 더 오만해. 지적이고 세련된 스노비즘이라는 점에서 말이야. 지금 시대는 조금도 문명적이지 못하고 취향도 나빠. 조작된 정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19세기 후반의 프랑스가 좋겠어. 그때가 서양 문명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니까."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잡화점에서 잡동사니며 완구를 취급하면서, 내가 무슨 옷을 디자인해 만들겠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20세기는 야만스러운 시대"라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우아하지 못한 이 시대에 나는 질릴 대로 질려 있었습니다. p. 23 이대로 가면 파산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거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있어서 그런 건 빈티 나는 짓이었기 때문입니다. 빈곤한 건 나에게는 조금도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빈티가 나는 건 모든 악의 근원이었습니다. 빈곤과 빈티가 어떻게 다른가. 예를 들면 나의 맨션에는 가네코 구니요시의 리토그라프라 몇 점 있습니다. 사실은 구니요시의 유채화가 갖고 싶지만 내게는 유화를 살 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리토그라프로 참는 겁니다. 이 빈곤을 나는 조금도 슬프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리토그라프를 사서 그것을 싸구려 플라스틱 액자에 넣는 것은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빈티 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리토그라프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아주 비싼 건 아니나마 어느 정도 돈을 들인 마음에 드는 액자에 그림을 넣지 않으면, 빈곤은 슬픈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나는 수입이 없어도 매일 음악 다방에서 차와 샌드위치를 주문했으며 두 달에 한 번은 꼭 요지 야마모토나 꼼므드갸르송에서 옷을 샀습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생활 습관을 제한하는 것은 아주 빈티 나는 짓입니다. 생활 습관을 제한하고 저금을 해서 통장 잔고를 착실하게 늘린다고 해서 그게 뭐가 된단 말인가요. p.78 당신과 저 사이에는 그런 위화감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또 당신이 저를 이해해주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해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다가서서 타협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에게도 저는 진짜 저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분명 그런 자신을 보이지 않겠죠. 서로 그런 걸 보여 주지 않더라도 우리 두 사람은 사이가 좋으니까요. p.97 "펑크는 록을 끝낸 음악이니까 좋아하는 것뿐이야. 펑크는 록을 패러디했어. 록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음악이야. 그 궁지에 몰린 듯한 감각이 그냥 좋아. 펑크에 미래를 원해서는 안 돼. 펑크는 끝난 음악이니까. 펑크 이후의 음악에는 흥미 없고 펑크를 시작으로 음악적 확장을 추구할 생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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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혼을 가졌다 하더라도 구원할 수 없을 당신의 고독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았던걸까요?
" 비비안은 너에게 있어서 뭔데? " " 아마도, 긍지. "
당신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저라는 존재가 충족됩니다.
말이 없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진실된 사랑, 그렇지 않다면 물거품 같은 사랑, 마녀는 사랑을 확인하게 하려고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살아갑니다. 잊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하면서도 당신을 천천히 과거의 사건으로서 받아들이며, 앞으로도 꼴사납게, 수치스럽게, 특별히 의미도 없는 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살아가는 겁니다. 당신의 용기를 짓밟으면서.
어째서 당신은 저를 끌어당긴건가요. 어째서, 제게 다정한건가요.
키티가 그려진 기타로 당신을 때려죽입니다.. 당신은 제 손에 의해, 영원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잡화점 -미싱
문체가 참 화려하다 싶었다. 1인칭 시점에 '당신'이라는 주어, 경어의 표현이 조금 낯설었다. 화려해서인지 쉽게 읽히기보다, 조금 천천히 _ 이 처음보는 작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브랜드 명은 으레 소설 속에 스쳐지나가는 한낱 소재일뿐인데, 이 소설에선 다르다.
아.. 이런것도 등장인물의 긍지"가 될 수 있구나 싶어 조금 놀랐다. 이렇게 옷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인 것도 신선했고, 1인칭 시점의 그 심리묘사의 지독함이 완전 내 스타일!! 어쩌면 너무 일본스러워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싶지만, 만화책 <NANA> 생각도 나고, 조금 다른 문화이긴하지만, 그 속에 전해지는 메세지는 공감이 갔다.
읽고나면, 좀 뒤로 갈수록 무뎌지지만 다케모토 노바라가 던져 놓은 소재의 지뢰밭은 정말이지 [시도]에 놀라고, 그 매끄러운 문장연결 속에 또한번 놀라게 된다. '미싱'에서는 밀크, 시드비셔스, 펑크음악, S라는 관계 모두 정말 새롭고 신선하고 충격이다. 어쩌면 일본 소설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렇게 까지 다양했을까, 싶기도 하고 하나의 문화라고 봐도 그렇겠다 싶다. 하지만 이런 자극성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인 생각히지만,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그것만의 독특함, 혹은 보편적 지향점이 피로처럼 몰려와 결국, 어떤 자극에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미싱>이 아주 이른 작품이었다면, 혹은 내가 맨 처음 접한 일본 소설이었다면 그 독특함에 놀라 미련없이 별 다섯개를 선뜻 주었지도 모르겠다.
소녀와 로맨티시즘. 소녀가 추구하는 로맨티시즘은 바로 긍지라는 것으로 표현되며, 그 표현의 수단은 바로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옷이며 미싱이라는 사람에 대한 집착적인 플라토닉 사랑. 옷이 바로 이런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신선한 소재의 밀착력.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남은 것은 이런 소재에 끌리는 잠깐의 매니아적인 두근거림뿐이다. 인상깊지만, 그 깊은 인상이 오히려 작품성에 해를 입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장점이 단점이 되버린셈.
그러나 작가의 '소녀의 긍지'를 지키고자하는 마음은 전해진다는 것. 매니아적이고 하드한 소설이라도 이제는 무덤덤히 읽힌다는 것, 아 사실 조금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