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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C. 그랑제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어안이 벙벙해지곤 합니다. 그랑제만의 분위기 - 음습하고 둔중한 세계에 갇힌 듯한...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 에 휩쓸려 있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온 느낌. 그 것이 절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프리 디버가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예측을 불허하는 반전’이라면, 퍼트리샤 콘웰이 ‘주인공의 소탈하고 진솔한 감정 표현’이라면, 그랑제는 디버와 콘웰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을 감히 해보고 싶네요.
전작인 ‘늑대의 제국’은 다른 작품에 비해 가벼우면서 서둘러 끝낸 느낌을 주었다면, 크림슨 리버는 돌의 집회를 접해보고 느꼈던 짜릿함, 만족감, 뿌듯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 더 없이 만족했습니다.
크림슨 리버...선홍빛 강. 이제 곧 책장에 꽂힐 책이지만, 훗날 이 책을 볼 때마다 전 짜릿한 즐거움과 둔중한 습기를 동시에 생각할 것 같네요. [인상깊은구절] - 수사에서는 사실 하나하나, 증언 하나하나가 거울이죠. 그 거울 속에 범죄의 진실들이 하나씩 하나씩 비치는 거구요" - 뭐라구? - 경찰학교에 있을 때 팀장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 그래서? - 그래서 그 거울의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팀장님과 저의 수사 결과가 이렇게 두 개의 거울이 되는거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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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떨림"이나 "기대"같은 것이 아닌 "난감함"이었다. 몇 년전 장 르노와 뱅상 카셀 주연의 프랑스 영화의 원작이자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추리와 스릴러, 혹은 서스펜스 문학에서의 최고 정점은 대부분 미국쪽이 차지하고 있다. 백년전 고전 추리 소설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화한뒤 대서양을 건너간 추리 소설은 미국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활짝 피어났다.
퍼트리샤 콘웰이나 제프리 디버, 미키 스필레인, 반다인같은 작가들은 오직 미국이라는 무대장치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작가들이었다.
반면 유럽, 특히 프랑스의 소설들은 지식의 일천함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나 포만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짧게 얘기하자면 "표현의 과잉"같이 독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주입시키려는 과도한 욕심이 좋은 작품들을 망쳐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생각들은 차츰 깨뜨릴 수 없는 선입견으로 굳어져갔고, 최근 「나이트 워치」를 읽으면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난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물론 단 한 작가의 한 편의 소설을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받았던 느낌은 -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 였다.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헐리우드 따라잡기식의 어설픈 액션대신 치밀하다못해 정교한 플롯과 더불어 추적자들의 개인적인 고뇌와 과거까지 차분히 나열해놓고 있다.
처음부터 범인과의 머릿싸움을 시작하는 고전적인 추리 소설과는 달리 현대의 추리 소설 - 서스펜스나 스릴러, 하드보일드같이 미분화된 - 은 상당히 불친절하다. 특히 콘웰이나 디버같은 작가의 작품의 경우 맨 마지막에나 겨우 범인을 보여준다. 그건 아마 독자들의 취향이 작가의 함정을 뛰어넘고 싶다는 머릿싸움에서 진행과정을 편안히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현대 추리 소설의 진로를 가장 잘 따라가면서도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프랑스 작가라는 사전정보와 니에망과 카림이라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아니었다면 프랑스 산 이라는 느낌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선행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프랑스 작품과의 차별성과 미국식 스릴러의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스릴러다운 미스테리하면서도 공포감이 깃든 아이의 죽음과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후의 살인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선 당위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니에망이라는 엘리트 경찰과 카림이라는 무슬림 범죄자 출신 경찰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글은 점점 무서워지고, 공포스러워지며, 안 풀릴 것 같던 모든 문제들을 벗겨낸다. 글의 결말은 "충격"이나 "반전"이라는 말을 뛰어넘은 지독한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사람의 숨통을 바짝 조여준다.
지금도 책꽂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이 책을 보면 책을 읽었던 이틀동안의 즐거움이 기억난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어렵게 책을 쓴 사람의 글에 평점을 매긴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믿는다. 하지만 굳이 평점을 매겨야한다면 이 책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최고점을 주겠다. [인상깊은구절] 선홍색 강...지배받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제목처럼 강렬하게 와닿는 대목...아마 작가는 이 부분을 쓰고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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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빛 강'이란 글로 연쇄살인범을 잡기란 어려울텐데 니에망과 카림은 탁월한 능력과 감각 그리고 머릿속에서 떠오른 본능으로 살인범 가까이 다가간다. 니에망 혼자서 사건을 풀어나갔다면 퍼즐을 완전하게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카림 혼자 무덤을 파헤친 범인을 추적하다 다다르게 된 것이 게르농이었고 이곳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니에망을 만나게 되며 살인사건은 완전하게 해결되게 된다. 완전하게? 이것을 완전하게 해결했다고 볼 수 있을까. 너무나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려 완전하게 라는 단어를 쓰기가 저어된다. 연쇄살인범의 살해 동기가 '복수'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런 식으로 결말을 맺는 것은 독자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될 정도다.
카림은 한 소년의 얼굴이 찍힌 사진들이 모두 사라진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소년의 엄마를 찾는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카림의 본능에 의해 사건이 하나씩 수면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니에망조차 자신의 본능대로 사건을 파헤치니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연쇄살인범에 의해 복수가 끝난 후에도 해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게르농에서 일어난 일을 이곳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이 이상했다. 어느 누구든 발견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면에서 보면 작가 장 크리스토프에 의해 탄생한 '크림슨 리버'의 소재는 참신하나 그리 현실성 있는 소재는 아니다. '크림슨 리버'는 단 한 가족만이 이 일을 눈치챘으며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다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카림과 니에망이 사건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두 사건의 접전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죽은 사람중 한 명이 카림이 근무하는 마을을 방문해 한 소년을 무덤을 파헤친 것을 계기로 두 경찰이 사건을 파헤치고 그 끝을 향해 치닫게 되지만 모든 것을 알고 보면 의외로 사건은 단순하다. 연쇄살인범의 동기인 '복수'조차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결말은 더 단순하게 끝을 맺는다.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삶의 끝을 어떻게 끝맺으려 했던 것일까. 카림의 앞에 선 범인의 행동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끝을 맺은 것처럼 보며 차라리 복수를 하지 않고 숨어서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끝이 억울하게 느껴진다. 물론 범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니 삶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너무나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그 어떤 동정심도 느낄 수 없다. 니에망과 카림이 보여주는대로 따라가면 자신의 삶을 알게 된 사람들의 슬픔이,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가엾게 느껴진다. 선홍빛 강의 노예이며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고, 그들이 정해 놓은 삶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복수를 하게 될까. 그냥 그대로 덮어두게 될까. 어떤 결정을 하든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복수는 끝이 났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르농에서 뒤바뀐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뤘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결말의 허무함과 함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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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미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별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건 감독이 영화를 잘못 만든 탓이다. 지금까지 읽어본 작가의 작품 가운데 끝까지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될 테니 말이다. 한 형사가 있다. 베테랑 형사로 나이가 들었지만 전적은 화려하고 폭력성은 주체할 수 없이 야만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안다. 제어할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그는 훌리건 제압에서 사고를 내는 바람에 작은 마을에서의 살인사건을 맡으라는 식으로 쫓겨난다. 그는 연쇄 살인의 냄새가 나는 기이한 살인을 접한다. 그런 오지 마을에서 있음직하지 않은. 그래서 곧 추적에 들어간다. 또 한 형사가 있다. 아프리카계로 지하세계를 섭렵한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로 모습은 전형적인 아프리카인의 머리에 알록달록 모자를 쓰고 있다. 그도 불복종에 의해 좌천되어 시골에 발령을 받은, 하지만 아직은 젊은 형사다. 자신의 작은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학적부 도난사건이라든가, 무덤에 들어가는 일 같은 것... 이력이 남달랐던 만큼 그는 이런 일련의 사건에 뭔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사건 조사에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두 형사가 각기 다른 사건을 파헤치는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이 만났을 때 사건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The Crimson Rivers... 영어 제목이다. 여기에서의 크림슨, 즉 이 책의 제목이 된 단어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역시 진홍색이라는 뜻이다. 진홍색이나 선홍색이나 마찬가지겠지 싶다. 이 책에는 선홍색 강을 올라가...라고 나오니 말이다. 의미심장한 단어다. 한 단어가 이렇게 축약적일 수도 있다는 거, 놀랍지 않은가. 이 작품을 영화로 보고 책을 보기를 포기하신 분이 혹 있다면 실수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원래 원작보다 나은 영화는 흔치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주인이요 노예다. 우리는 도처에 존재하는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측량사다. 우리는 선홍빛 강을 지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책을 덮으며 이 말이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걸 느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자 노예이며, 우리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는 우리 삶을 측량하려 애를 쓰며, 우리가 만든 어떤 색으로 든 존재하는 삶이라는 강을 지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어떤 색의 삶의 강을 건너려 하시는지... |
| 크림슨 리버는 영화로 먼저 접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스릴러’영화라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 후 ‘크림슨 리버’는 내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다. 그런데 우연히 서평을 보다가 ‘크림슨 리버’라는 책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미리 접한 독자들에 의해 씌여진 서평에는 ‘영화와는 다른 스토리’라는 것과 함께 별점이 전부 다섯 개였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영화 크림슨 리버의 기억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별점 다섯 개짜리 책을 읽어도 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책을 읽기시작하면서부터 순식간에 ‘선홍색 강의 비밀’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문체는 결코 무겁지 않았으며, 두 형사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추리하는 과정 역시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잠시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과연 인간이 의도적으로 인간을 통제하고 작위적인 운명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그러한 시도는 있었지만 결국은 미친짓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가 싶다. 소설 속의 범인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범인이 단죄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악마같은 인간의 더욱 끔찍한 범죄인 것이다. 인간의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초래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범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부터 읽어보고 되도록이면 영화를 보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졸작인 영화 때문에 원작의 빛이 바래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장크리스토프 그랑제의 ‘크림슨 리버’는 당연히 빛나야만 하는 작품이며,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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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니에망이라는 형사와 카림 압두프라는 두 형사가 별도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보여주다가 서로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나중에는 둘이 같이 수사를 한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여 현장감이 넘친다. 아쉬운 것은 두 형사가 따로 수사를 하는 과정은 좋은데 둘이 만나서 같이 수사를 하는 부분부터는 힘이 좀 빠진다. 다음에 전개될 내용이 좀 예상되기도 하고...그래서 2권은 1권에 못 미쳤다. 종합해서 별 세 개 반을 주고 싶은데 그렇게는 할 수 없고...
하지만 그래도 보는 동안은 재미있게 볼 수 있어서 소설보다 못하다는 영화도 한번 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