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구매하여 읽은 도서입니다]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믿고 있던 친구관계는 멀어져있었고 열심히 한 일에서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돌아온 평판은 부정적이었고 다이어트는 늘 제자리다. 어느 순간 , 나는 포기하듯 놓아버리고 물 위에 떠도는 나무 조각마냥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기대해봤자 상처뿐이었으니까. 이미 마음의 병을 인정하고 요양중이었던 내게 이 연습은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을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신기한 알고리즘의 힘이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유튜브 <뇌부자들>의 커뮤니티에 저자가 직접 적은 책의 소개글. 그 글을 읽자마자 구매할 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 했던 것일까? 시대와 환경일까? 물론 시대는 늘 변화했고, 환경은 고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가요의 변화를 통해 엿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외로워졌다'.
얼마 전 넷플릭스 시리즈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고 주연 황동만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보여 많이 울었다. 뜬금없이 황동민이 부럽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래도 그는 타인을 대놓고 비난할 수는 있었으니까. 설사 그것이 타인을 깎고 나를 올리는 나르시시즘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외로웠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이해받으려면 이해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할거라 믿었는데 나는 그동안 ADHD로 인해 그렇게 행동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노력을 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타인이 보기에 아주아주 시덥지 않은 결과물이었을테니까. 바보같이 나는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나 자신에 대한 평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의 내면에 부족하고 미숙한 조그만 깃대를 세웠다. '이렇게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어' 라고. 나의 모남과 부족한 마음을 혼자서 달래본답시고 나는 여러 도서와 유튜브로 심리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이다. 덕분에 ADHD인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 곧장 갈 수는 있었지만 반대로 끝까지 부정하고 싶은 심리 상태도 있었다. 책에서 '내현적 자기애'라는 단어를 마주 했을 때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른인 척 굴었지만 성장하지 못한 자아가 내 내면에 남아있다는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인정해야했다. 통제하지 못하는 세상을 마주하기엔 정말 미숙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을 통제하지 못할 바에는 기대하지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어쩌면 가시달린 방패 뒤에 나약하디 나약한 자신의 자아를 숨겨두고 나는 당신들에게 맞출 수 없어! 라며 소리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자아에게 다가올 수 없게 해 두었으니 결국 자아는 늘 외롭고 우울할 밖에.
그렇다면 어떻게 이 우울함과 불쌍하고 어린 자아를 키워낼 수 있을까.
나는 위 글이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동안 나의 부족함을 타인을 돕는 행위로 채웠던 것 같다. 내 딴에는 돕는 것이었지만 상대에게는 그것이 속박과 통제였을 수도 있겠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것이 있어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나의 모습은 제 3자에겐 착하고 의리 있는 모습일 수 있었겠지만 상대방의 마음와 의도를 물어보지 않은 채로 나의 도움을 강요하며 내 자아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의 미숙한 자아는 타인이 내 도움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먹이 공급이 끊겼다고 느끼며 불안해했다. 불안함과 조급함을 버티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과 기대에 맞추느라정작 자신이 정말 해야 할 '진짜 내 모습'을 키우지는 못했었다. 현실감을 잃은 열등감은 "나는 어차피 못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괴로워할 이유도 없어"라는 왜곡된 신념으로 변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두텁게 보호하며 타인과 거리를 두는 자기애를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늘 '왜 이렇지' 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었다. 못할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못하는게 당연했을지도 모르는데. 못해도 아무 문제 없고 괜찮은거였는데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이 책을 완독하자마자 나는 고집을 내려놓고 심리상담가를 찾아갔다. 풀배터리 검사지를 읽어 보신 상담가께서 내게 그러셨다. " 정말 힘드셨을텐데. 열심히 살아가셨네요. " 라고.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말은 정말 타인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adhd가 있었던 나는 마무리가 서툴렀고 가족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것을 대신해주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모자란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은 피했다. 선생님은 '너에게 기대한 게 잘못이지' 라고 했고 어떤 애는 '너가 공부를 되게 잘하는 줄 알았어' 라고 했다. 일을 여러 번 옮겨야했고 마무리가 역시 늘 좋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로 배우기도 전에 부정적인 경험만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정작 도움이 필요한 것은 내 눈에 비친 타인이 아닌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내 내면이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너무 두꺼워진 열등감과 자기애 때문에 오히려 나의 고유한 성격과 매력을 보지 못하고 부족한 점을 감추기에 급급해왔다. 그것은 비난 받았었던 기억이 너무나 아파서지 부족한 점을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의 글처럼 스스로에게 칭찬을 좀 해줘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아픈데도, 잘 버텨왔다. 이겨내왔다. 라고.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 기대하지 않게 된 것은 결코 당신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제의 해결은 당신에게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타인을 향한 기대와 나를 향한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봐 주려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은 부족한 점까지도. 저자는 말한다.
부족한 점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고통은 감각이라 의도와는 상관없이 찾아오지만 행동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것은 인정하지만, 스스로가 만든 허물인 '기대'를 건강하게 놓아버린다면 앞으로 남은 일은 행복밖에 더 있을까 싶다. 2026.09.09 |
|
만만치 않은 세상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기대할수 있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시종일관 느껴진다. 타인과의 연결, 이타심 공동체 감각을 그 변화와 기대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점에 깊이 동감하고 그방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수있는 기운을 글을 통해 얻는다. 진료실 현장, 대중문화, 전문분야 이론들을 두루 넘나들며 친근하면서도 깊이있는 접근방식도 인상적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싶은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