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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민이 200명이 내외인 시절, 원시인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알아야했고 배운 것을 후대에 계승했다. 능력의 차이는 특별하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생존이 보장되었고 평화가 유지되었다. 아이들은 평등했다. 부모의 위치와 지위가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았다. 또한 공동육아를 통해 미래의 자원을 보호했다. 각자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갔다. 국가가 탄생했다. 공동체가 가족으로 분화되며 계층, 지위가 확산되었다. 수십만 년 인류 공동체가 단위로 해체되는 순간, 하층으로 구분된 아이들은 가장 큰 손실과 피해를 맞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누구도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류와 하류,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슷한 외모와 학벌, 직업이 다르지 않다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은 보는 순간 확연이 구분된다. 품성과 태도가 외적인 변수라면 부모의 위치와 지위는 내적변수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부모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하의 뚜렷한 구분을 증명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이 아니다. 상류와 하류층에서 바라본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상류층은 1%를 유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상상하지만 하류층은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틴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환경이 같지 않다. 그런데 세상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왜, 라는 논제는 상류층의 무지와 하류층의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둘은 같은 세상을 살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태어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된다. 덕분에 세상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반면에 사회는 가파르게 양극화되었다.
문제는 상류층이 일으키지만 피해는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한다. 우수한 대학교를 나와 공공기관과 정부요직에 앉는 이들은 대부분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부여한 당위적 생각이 국민에게 이롭다는 맹목적인 사고에 집착한다. 대부분의 정책이 성공보다 실패를 반복하며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소수자들의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하류층을 파고든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본인들은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스스로에게 지위를 부여하거나 부여받는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거친 말을 통해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면에 하류계급의 의견과 아이디어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로버트 킴 핸더슨, 한국인 어머니와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를 통해 태어났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통해 그가 느꼈던 위탁가정의 한계와 가족의 부재, 교육환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문제가 있다’는 설정을 만들고 대부분의 위탁아를 문제아로 취급하는 사회복지시스템과 장부정책의 미숙함을 토로한다.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상처를 감추고 내면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환경은 또 다른 변수다. 하층계급의 대부분은 마약에 노출되어 있으며 음주와 폭력을 통해 그들의 고통을 희석한다. 문제는 축적되고 결국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반복된다. 저자는 10대를 거치면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사라지는지,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각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세상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로버트를 변화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군대는 로버트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질서가 잡혔고 자신에 갇혔던 생각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로버트는 스스로의 인생을 바로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인간적 갈등과 삶의 조건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가 가야할 최선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다. 그에게 자수성가란 말이 어울릴까? 세간의 평가보다 세상을 직시하는 그만의 생각과 신념이 로버트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로버트는 사치신념을 꺼낸다. 대학캠퍼스는 낭만이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미래의 계급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대학과정을 통해 만난 부유한 젊은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부모가 존재했다. 부모는 보호막이자 지위를 유지해줄 든든한 디딤돌이었다. 부모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로버트의 시각은 기존의 생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20%가 80%의 이익을 차지하는 팔레토의 법칙은 1%가 99%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뛰어난 지식과 품성,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면 세상을 비관하고 자신에 가혹한 이들도 쉽게 변하기 어렵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공정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속내가 의심스럽다. 정부 또한 불공정한 시스템을 인정하고 활용하길 원한다. 결국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을 건질 수 있다. 로버트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상반된 생각에 젖는다. 자신이 힘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을까? 반면에 부모가 자신을 케어하고 최선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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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Troubled ❙ 롭 헨더슨 ❙ 김은지옮김 ❙ 푸른숲 (서평) 어른들이 아이를 실망시키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실망시키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은 저자의 회고록이다. 그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수많은 책 읽기’였다고 말한다. 첫 책이지만 엄청난 글맛과 빠져드는 스토리텔링은 고전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슬프지만 그의 삶이 비현실적인 현실이기도 해서.
읽을수록 미국 드라마 <쉐임리스>의 둘째 아들 ‘립’과 저자 ‘롭’이 겹쳐 보였다. <쉐임리스>의 립은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립은 알콜과 마약 중독자 아버지와 조울증 엄마 밑에서 버려지듯 자랐다. 립과 롭이 겹쳐 보인 이유는 둘 다 환경에 비해 엄청나게 똑똑하다는 것이다. 립은 우여곡절 끝에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자주 자기 파괴적 행동을 보인다. 단지 '술'에 그치지 않는다. 물건을 다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고, 극단적인 위험에 몸을 던진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의 롭은 갓난아기 때 엄마와 차에서 살았다. 임신했다는 것을 안 친아빠는 엄마를 버리고 떠났다. 마약 하는 엄마는 방해받지 않으려고 아기를 목욕 가운 허리띠로 의자에 묶어 놓았다. 아기는 계속 울었다. 이웃이 신고했고, 엄마는 아동 학대로 한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롭은 일곱 번의 위탁, 아홉 개의 가정, 두 번의 파양을 거쳐 예일대와 케임브리지대에 간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의 저자 롭 헨더슨의 생애는 드라마 속 립의 삶을 실사판으로 옮겨놓은 듯 닮아있다. 이들이 그토록 과도한 자극을 좇았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내면의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다. 감당하기 힘든 불안과 무기력,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에, 뇌에 강렬한 아드레날린을 주입해 그 고통을 잠시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위험한 게임이나 폭력, 알코올은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비극적인 회피의 수단이다.
"태어나서 첫 기억이요? 세 살 무렵에 경찰들이 엄마를 데려갔어요." 세 살 때 마약 중독자인 한국인 생모에게 방치되다 엄마가 한국으로 추방된 후, 롭은 아홉 살 때까지 7곳 이상의 위탁가정을 전전했다. 위탁가정에서 그는 방임은 기본이고 보호받을 아동이 아니었다. 한 위탁가정에서 그는 일곱 살 청소부였다. 수영장에 빠져도 보호받지 못했고, 38도가 넘는 트랙에서 "심장이 터질 때까지 뛰라"라는 학대도 받았다.
롭이 마침내 한 가정에 입양되었을 때, 비로소 삶의 온기를 느낀다. "새롭게 생긴 내 방, 내 침대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더는 떠나지 않아도 돼." (65p) "안정감은 성적에도 곧장 반영됐다." (71p) 그러나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입양 1년 만에 양부모는 이혼했고, 의지했던 양아버지는 그를 버렸다.
어른들의 끊임없는 배신 속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자기 파괴와 감정의 마비였다. 동네 아이들과 "이건 목 조르기 게임이야. 다음은 누가 할래?"라며 위험천만한 일탈에 몰두하고, 술과 담배, 마약에 빠져들었다. "너는 좋겠다. 엄마가 집에 아무 남자나 들이지 않아서"라는 잔인한 위로가 일상이던 동네, 아이들은 스물한 살이 되어도 여전히 열다섯 살로 살아갔다.
살아남기 위해서 절망의 늪에서 그를 건져 올린 것은 역사 선생님과 복싱장에서 만난 상담 교사 조의 말 한마디와 군 복무였다. "그건 운명 같은 게 아냐, 네가 선택하는 거야." “롭, 난 네가 뭘 하든 잘할 거라는 감이 와.”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롭의 내면에 강렬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미 공군에 입대하고 비로소 규칙과 질서라는 가드레일을 얻었지만, 어린 시절의 상흔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삶을 마비시켰다. 군 병원 치료 과정에서 의사가 술을 마시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술 왜 마셨냐고요? 감정 차단하려고요. 살려고요." "제가 어릴 때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어릴 적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는 생존을 위해 모든 감정 스위치를 꺼버리는 법을 배운다.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법을 습득한 롭은, 예일대에 입학한 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충격과 맞닥뜨린다.
'사치 신념(Luxury Beliefs)'이라는 폭력 모든 고통을 뚫고 들어간 예일대, 그리고 케임브리지대. 그러나 그곳은 교묘하고 우아한 위선이 가득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매간 근친상간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부모의 교육 수준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예일대의 상류층 학생들은 전통적 가족 해체, 마약 비범죄화, 경찰 예산 삭감, 국경 개방 등 진보적이고 도덕적인 슬로건을 외치며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했다. 저자는 이를 '사치 신념'이라 정의한다. 사치 신념이란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이다.
상류층은 사회적 진보성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일처제나 가족 제도가 구시대의 유물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은 부유한 친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자신 역시 안정된 일부일처제 결혼을 택한다. 그들은 재정과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여 자유로운 관계가 실패하더라도 즉시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념은 울타리가 없는 하층 계급에 퍼지면 가정이 산산조각이 난다.
"사치 신념 계급" "선호하는 브랜드는 구찌, 샤넬? 아니고요. MIT, 옥스퍼드, 스탠퍼드에요. 사치재는 최고 대학 교수나 행정가고요." 그들은 과시적 소비 대신 과시적 신념을 소비한다.
"미국엔 두 나라가 존재해. 부유한 아이들의 나라, 가난한 아이들의 나라.“ 부유한 이들은 자신의 성공에 대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을 떠는 사치를 부리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피나는 노력과 규율을 강요한다.
교육이 다라고요?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요.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바로 "교육만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가?"라는 점이다. 엘리트들은 교육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사치 신념이다. "불안정한 환경과 신뢰할 수 없는 보호자가 아이에게 나쁜 이유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 가능성을 낮추고 자립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 고통을 겪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성공한 어른이 된 롭 헨더슨은 이렇게 단언한다. 만약 선택권이 있다면, 자신이 이룬 상위 1퍼센트의 성취(예일대, 케임브리지대 학위, 뉴욕타임스 기고, 명성)를 모두 포기하더라도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보통의 어린 시절과 맞바꾸겠다고.
성공은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결코 없애 주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뛰어난 교육 자본이나 명문대 진학권이 아니라, 매일 학교에 잘 다녀왔는지 진심으로 물어봐 주는 안정적인 부모와 따뜻한 가정환경이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사치 신념'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사회 비평서다.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던진 상류층의 말 한마디, 정책 하나가 밑바닥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산산조각 내는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빼앗고 있는지를 뼈아프게 성찰하게 만든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층의 사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준 롭 K 헤더슨에게 감사를 전한다. 당신의 목소리가 제2, 제3의 <쉐임리스>의 립, 롭, 《힐빌리의 노래》를 쓴 현재 미국 부대통령 ‘J.D. 밴스’와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이 책은 ‘사치 신념’이라는 것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일부 비판받기도 했다. 가장 많이 비판받은 부분은 원인의 단편화다. 가족의 해체가 가난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실제로는 빈곤과 불평등, 노동 환경 악화가 가족을 해체하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라는 복잡한 경제적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 롭의 용기 있는 회고록으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모두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쓴 글입니다. #산산조각난아이는어떻게자라는가 #롭헨더슨 #푸른숲 #Troubled #산산조각난아이는 #사회비평 #사치신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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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롭헨더슨 #산산조각난아이는어떻게자라는가 #푸른숲 p.s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셨습니다. 1. 산산조각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상처와 결핍을 겪은 아이의 성장 과정을 차분하고 담백하게 따라가는 에세이다. 분위기는 무겁지만 절망적이지 않고,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회복의 가능성을 조용히 비춘다. 그 아이가 성장하여, 예일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책을 읽다보면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2. 이 책의 장점은 아이의 내면을 단순히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는 저자 자신이기도 하다. 다른 성장 서사가 극적인 극복이나 성공을 강조한다면, 이 책은 조각난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사람은 자랄 수 있으며, 그 성장의 방식이 각자 다르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3. 이 장점을 통해 배운 점은 교육과 양육에서 완벽함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상처를 고치려 애쓰기보다,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본질적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타인의 아픔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큰 지지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4. 전체적인 소감은 초반에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군대를 입대하고, 그리고 전역 후엔 오히려 위로를 받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상처를 가진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의 나 자신도 조각난 채로 자라왔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서 인정 속에서 비로소 회복의 시작이 가능하다는 조용한 메시지를 전한다.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이라는 표지의 한 글귀가 교육학 전공자로서 잊혀지지 않는다. 5. 종합하면 산산조각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상처와 결핍을 겪은 아이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조명한 에세이다. 삶은 동화나 만화책과 다르다는 말이 저자의 삶을 증명해준다. 또한, 마지막의 문장은 더욱 인상깊다. 애한테 책을 더 많이 읽어 줘야 할까? 라는 질문에 네. 하지만 단어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분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 주기 위해 책을 읽어주세요. 라는 말이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의 마지막 조언이 아닐까 싶다. 극복 서사보다 지속과 공존의 관점에서 성장을 바라보게 하여, 독자에게 아픔과 회복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선사한다. ★생각나는 구절 나는 어릴 때 감정을 회피했다. 당신도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면 이를 곱씹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중략) 인식이나 행동을 새롭게 구성할 때 우리는 이전에 겪었던 해로운 사건들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내면에 기억이라는 삶의 지도를 만든다. ★질문 한 가지 내 안에 아직 회복되지 않은 조각은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가. ★독서 기간 2026. 09. 13. ~ 09. 17.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폴콘티 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마크월린 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추천도 지극히 주관적인 ★★★★ 교육자, 양육자,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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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이유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우리는 어릴 적 성장 과정이 불우한 아이들이 어떤 환경일지? 어떤 경험을 할지는 알 수 있다. 부모를 여의거나, 입양, 한부모 가정, 납치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가난하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이 책의 저자도 위에 나열한 것들을 경험하였다. 그런데 그 환경에서 자신이 어떻게 성장하고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말해주고. 담담하게 말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어머니는 마약 중독으로 헤어지게 되고, 수많은 위탁 가정에 유년기를 보내고 예일대학교 심리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재학 중에는 게이츠 케임브리지 장색으로 선발되고,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인물로 명명할 만큼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입지전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심리학에 관심이 많기에, 전공이 심리학이고, 단순한 자신의 성장과정을 불우했지만 난 이것을 이겨내고 이만큼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읽었다.
저자는 제대로 된 가족을 갖지 못했던 자신이 가족의 중요성을 옹호하기에는 가장 부적합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하지만. 가장 적합할지도 모른다. 가족이 주배를 몸소 느꼈기에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부와 학력은 어린 시절 학대가 남긴 영향에 대한 해독제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이룬 상위 1퍼센터의 성취와 맞바꿀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통해서 가정의 소중함을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가정을 만들어 줄지 어떤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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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 가사예요. 연약한 아기의 몸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만약 자신의 삶이 이토록 불행할 줄 알았다면 나오고 싶었을까요. 아기는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고,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아기들이 있네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나왔네요.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롭 헨더슨의 회고록이자 사회비평서네요. 저자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상류층 엘리트들이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소비하는 위선적인 사치 신념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네요. 우선 저자의 이름은 로버트 킴 헨더슨, 로버트는 친모를 버린 생물학적 아버지에게서, 킴이라는 성은 마약 중독자인 생모에게서, 헨더슨은 양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살면서 힘든 어린 시절과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피했던 저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게 된 이유는 상류층 엘리트들의 위선적인 '사치 신념'이 취약 계층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고발하고 안정적인 가정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네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위탁 가정, 극심한 불안정, 이혼, 별거, 새로운 부모와의 만남, 그들과의 이별, 새 형제자매와의 만남, 또다시 이별, 그 모든 고통, 무감각함, 스릴 추구, 폭력, 약물 등으로 산산조각 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군대에 가서야 중산층을 만났고 예일대에 진학한 뒤에야 안락한 삶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네요. 빈곤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미국의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사다리 꼭대기 혹은 그 근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고, 그들의 특권의식을 '사치 신념'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네요. 과거 사람들은 물질적인 재화를 통해 자신이 상층 계급임을 과시했다면 오늘날은 사회적 지위를 상품과 분리하고 신념과 연결시키는 영리한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사치 신념을 가진 상류층은 경찰 공권력 축소나 마약 비범죄화, 백인 특권 담론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기에 이를 옹호하는데, 정작 그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은 사회적 약자의 몫이네요. 불균형적이고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상류층의 사치 신념들과 관행들, 정책들 때문에 운이 덜 좋은 계층,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되는 거예요. 동료 학생들이나 엘리트 대학 졸업생들에게 이런 점들을 비판하면 그들은 너도 이 집단의 일부인데 왜 그러냐는 반응이라고, 즉 내부자가 되어 그들을 비난하면 위선자 취급을 받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자가 일개 사병이거나 전처럼 최저 시급을 받으며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을 거라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내네요. 상류층 사람들이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떠들어대는 무책임한 담론들 때문에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취향 계층을 위한 실질적인 보호 체계가 필요하네요.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닌 안정적인 보살핌과 가정의 형태라는 것, 결국 따뜻한 사랑 없이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네요. 저자의 말처럼 안정적인 부모의 존재는 아이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며, 여기에 손쉬운 지름길은 없네요. "학교에 가는 것보다 당신이 매일 학교에 가는지 관심을 갖는 부모가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위탁 아동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흥미롭게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더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아이는 자라서 불행할 확률이 높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유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사랑받는 편이 낫다. 물론 가난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게 가장 좋지 않다. 건강 측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발견된다. 빈곤 문제를 제외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은 청소년기의 신체, 정신 건강 악화와 관련된다. 간단히 말해,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만큼이나 사랑을 주는 가족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겪는 트라우마가 나쁜 이유는 단순히 자라서 대학을 가지 못하거나 적은 소득을 벌게 돼서가 아니다. 술, 마약에 중독되거나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도 아니다. 그것이 나쁜 이유는,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쁜 경험은 그 자체로 나쁘다. 솔직히 말해, 아이들에게 안정적이 편안한 가정이 미래의 교육적 성취와 직업적인 성공, 범죄율, 중독 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화목한 가정은 여전히 장려할 가치가 있다. 안전하고 사랑받는 어린 시절은 그 자체로 좋다." (353-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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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헨더슨의 작품《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유년기 결핍과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성인의 내면세계를 세심하게 다룬 책이에요. 저자는 아동기 경험이 개인의 정서와 사고방식,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지에 대해서 탐구합니다. 어릴 적 겪은 불안정과 방임, 혹은 드러나지 않은 과도한 기대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심리적 균형을 흔드는 핵심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합니다. 책은 상처를 지닌 채 성장한 이들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타인의 반응에 대한 민감성을 꼽습니다. 어릴 때 형성된 방어기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불쑥 작동하여 타인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곤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반응이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아 조절 기능이 자연스럽게 취했던 생존 방식이었음을 상쇄하여 설명합니다.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만드는 첫걸음은 바로 이 구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개념 중 하나는 내면 아이의 재부모화입니다. 성인이 된 자신이 스스로의 보호자이자 이해자가 되어 무너졌던 정서적 기반을 다시 세워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감정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오는 실질적인 심리적 도구들과 구체적 사고 전환 연습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직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마음의 파편을 하나씩 주워 모아 원래의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내부 신호에 집중할 때, 스스로를 옥죄던 과도한 책임감과 자책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립니다.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솔직하고 안정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유년기의 기억이 성인기의 행동 양식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수많은 사례연구와 분석은 스스로의 내면을 다각도로 비춰보게 돕습니다. 상처를 부정하거나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대신, 그 흉터조차 자신의 일부로 수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상처받았던 유년의 조각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알아가고 조금 더 그들을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산산조각난아이는어떻게자라는가 #푸른숲 #롭헨더슨 #북유럽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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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50대 중반, 우리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의 꼬리를 잡고 태어난 세대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 밤낮없이 일하면 삶이 한 단계씩 위로 격상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숨 가쁘게 달려온 지금 우리 사회를 마주하면 서글픈 현기증이 인다. 자산의 격차는 이미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견고한 성벽이 되었고,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롭 헨더슨의 회고록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강렬하게 각성시켰다. 한 개천용의 성공담을 넘어, 세습 자본주의의 민 낯을 마주한 우리에게 가슴 시린 이야기를 건넨다. 내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아무리 높은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도 유년기에 겪은 관계의 트라우마는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저자의 고백이었다. 자녀에게 더 좋은 학원과 스펙만을 쥐어주려 했던 나의 얕은 시야를 흔들듯, 저자는 ‘안정적인 보살핌과 평온한 가정환경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기 어렵다’는 냉혹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빈곤의 진짜 모습은 물질적 결핍을 넘어 정서적 관계의 상실이라는 성찰이 내 안의 안일한 생각을 따끔하게 꾸짖는다. 경종을 울린 것은 상류층의 기만을 폭로하는 한 문장이었다. 저자는 ‘과거의 상류층이 물질로 부를 과시했다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하류층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유행시키며 지위를 과시한다’며 이를 ‘사치 신념’이라 명명한다. 정작 ‘부유층들은 철저하게 안정된 전통적 가정을 꾸리고 자녀에게 엄격한 교육과 훈육을 제공해 부와 학력을 대물림한다’는 모순 앞에서는 분노마저 일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이들의 삶을 사지로 내모는 엘리트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위선 그 자체다. 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50대의 아비로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부모의 부와 정보력이 자녀의 인생을 결정짓는 룰 속에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대에서 간신히 중산층의 턱걸이에 도달하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는 무력감이 밀려온다. 내 아이들은 저 높은 상류층의 반열에 올라 당당하고 여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이 견고한 시스템 앞에서 부모가 부릴 수 있는 가장 간절하고도 애달픈 욕심 섞인 희망일 것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말들은 내가 나아가야 할 길 위에 빛을 밝혀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상류층의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단순히 더 많은 자산을 쥐고, 기만적인 신념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엘리트가 되는 것이 종착지일까. 나는 여전히 내 아이들이 상류층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을 밟고 올라선 오만한 군림이 아니기를 바란다. 부조리한 벽의 존재를 알면서도 묵묵히 땀 흘려 중산층의 기반을 다진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무너진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시선과 책임감을 지닌 ‘진정한 엘리트’로 자라나길 소망한다. 부모의 노력은 단순히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정서적 안전망이어야 함을 가슴에 새긴다. 자녀의 성공적인 계층 이동을 위해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마땅히 읽고 가슴에 새겨야 할 지침서다. 우리는 물질적 성취보다 단단한 가정환경이라는 정서적 안전망이 왜 더 중요한지, 그리고 진정한 사회적 리더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배울 수 있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산산조각난아이는어떻게자라는가#롭핸더슨_김은지#푸른숲#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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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원을 만들어 서던 장면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첫 주, 게이츠 장학생 아흔 명이 둘러앉아 아이스브레이커 게임을 합니다. 사회자가 쪽지를 읽고 해당되는 사람이 가운데로 나가는 방식이었고, 뒤쪽 질문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가, 로드 트립을 해본 적 있는가 같은 것들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첫 질문이 어렸을 때 반에서 장난꾸러기였느냐였습니다. 저자는 반사적으로 걸어 나갔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흔 명 가운데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뿐이었습니다. 사다리 꼭대기에 닿은 사람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소속감이 아니라 거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의 표지는 형광 연둣빛 바탕에 보라색 글자를 세로로 세워 놓고, 그 글자들을 일부러 잘라 흩어 놓았습니다. 제목이 말하는 상태를 조판이 먼저 보여 주는 셈이죠. 아래쪽 검정 띠에는 "계층의 사다리에 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두께도 있고 다루는 무게도 상당해서,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짐작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읽는 편이 맞았습니다. 책의 문을 여는 장은 2018년 예일대 졸업식 날에서 출발합니다. 인생의 정점을 먼저 세워 둔 다음, 곧바로 세 살 무렵의 첫 기억으로 내려갑니다. 어둠 속에서 엄마 무릎을 붙잡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던 경찰관 두 사람, 그리고 흰 복도에서 초콜릿 우유를 흘리고 도와달라고 엄마를 쳐다보는 장면이요. 엄마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수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문단 끝에 한 문장으로 툭 놓아둡니다. 감정을 크게 쓰지 않는데 읽는 쪽에서 감정이 올라오는 서술 방식이 이 책 전체를 지탱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는 위탁 보호 통계가 줄줄이 나옵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소 다섯 곳 이상의 가정에 배정되고, 시스템을 떠나는 연령의 중앙값은 일곱 살이라는 숫자들이요. 그 뒤에 저자는 자신이 그 통계들을 뒷받침하는 개별 사례라고 적습니다. 아이를 특정 가정에 정들지 않게 하려고 미리 이 집 저 집 돌리는 관행에 대해서는 이렇게 씁니다. "이 전략은 아이들로부터 불필요하게 안정감을 박탈할 뿐이다." 선의로 설계된 제도가 개별 아이에게는 손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급식 줄입니다. 등교 첫날 식사 카드를 요구받았는데 그런 게 없었고, 받아 온 신청서를 위탁 어머니에게 가져갔더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그걸 돈을 내라는 서류로 오해해 서명해 주지 않습니다. 무료 급식 등록 신청서였는데도요. 아이는 오해의 내용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점심을 먹지 못할 거라는 사실만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매일 줄에 섰다고 해요. "마법처럼 시스템에 내가 등록돼 있기를 바라며." 서류를 읽고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자본이라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다섯 살 아이의 점심시간으로 먼저 보여 줍니다. 나중에 급식 아주머니가 카드를 건네준 뒤에 적어 둔 문장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수 있어 기뻤고, 조금 덜 외로웠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 수업에도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는 순서요. 설명을 붙이지 않고 결과만 나열하는데 그 안에 급식의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책의 중심 개념인 '사치 신념'은 뒤쪽에서 완성됩니다.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이라는 정의입니다. 저자는 여기에 부르디외를 끌어와 상류층에 받아들여지려면 교육과 언어와 취향이 필요하고, 그 세 가지에 능숙한 감각을 "편안함"이라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학위증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단어로 압축한 대목이죠. 예일에서 캐나다 구스 파카가 여기저기 보였다는 관찰, 900달러라는 옷값이 당시 미국인의 평균 주급에 맞먹었다는 계산도 함께 나옵니다. 값이 높아야 표지가 된다는 논리는 우리 쪽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동안 중고등학생 사이에 특정 브랜드 패딩이 교복처럼 번지고 가격대별로 서열을 매기는 '계급도'라는 말까지 돌았고, 부모 등골이 휜다는 뜻의 신조어가 붙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옷 한 벌이 소속의 증명서로 작동하는 경험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부분은 그다음입니다.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한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자신을 악영향에서 보호한다." 같은 선택의 결과가 계층에 따라 갈린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유복한 가정의 학생은 경험 삼아 한 번 해보고도 대개 괜찮을 것이지만, 부모가 부재하는 집의 아이는 같은 시도 한 번으로 자멸할 수 있다는 대비요. 1960년에는 생물학적 부모와 사는 아이의 비율이 부유층과 노동자 계층 모두 95퍼센트로 같았는데 2005년에는 각각 85퍼센트와 30퍼센트로 갈라졌다는 수치도 제시됩니다. 런웨이의 유행이 몇 해 뒤 동네 백화점으로 흘러들듯 상류층의 신념도 불행까지 함께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비유가 이 논의를 닫습니다.
다만 이 구간을 읽으면서 한 번씩 속도를 줄여야 했습니다. 저자가 드는 사례가 마약 합법화와 경찰 예산, 특정 담론처럼 미국 정치의 쟁점에 바짝 붙어 있어서, 한국의 계층 지형에 그대로 옮겨 놓기에는 한 겹 걸러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주장이 가장 뜨거워지는 자리에서 상관관계를 인과처럼 밀고 나가는 대목도 눈에 띕니다. 예산 삭감 이후 살인율이 치솟았다는 서술이 그런 예인데, 이 시기 범죄 증가의 원인을 두고는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과 학교 폐쇄를 더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는 분석도 있어서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입니다. 책의 진단을 저자의 해석으로 받아 두고, 우리 사정은 우리 자료로 다시 따져 보는 편이 정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명문대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아 두니, 그 신중함을 독자 쪽에서도 이어받으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장은 다시 안쪽으로 돌아옵니다. 저자는 원가족을 한쪽 끝이 고정된 고무줄에 비유합니다. 거리를 둘 수는 있지만 멀어질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길 뿐이라는 것이죠. 어른들의 응원이 아무리 쌓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애정이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고백, 가족이 자기를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이 데려가도록 두지 않을 거라고 믿는 아이의 논리를 성인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정신의학자의 문장이 앞부분의 한 장면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가족과 위탁 가정 중 후자를 택하는 열 살 미만 아동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요. 책의 앞머리에서 식탁 다리를 붙잡고 버티던 아이의 마음이 왜 그랬는지, 수백 쪽을 건너 뒤늦게 답이 옵니다. 그리고 허구 속 고아들을 열거한 뒤 저자는 짧게 못을 박습니다. "삶은 동화나 만화책과 다르다." 무엇을 떠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를 떠나지는 않는다는 문장 앞에서는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독자로 떠올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밝혀 두는데, 상류층이 이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하면 속이 울렁거렸고, 대신 어릴 적 학교 도서관에서 그랬듯 이 책을 집어 들고 희망을 얻을 자기 같은 아이를 계속 떠올렸다고 합니다. 자기 처지를 비춰 볼 실화를 찾지 못했던 아이가 자라서 그 실화를 직접 써냈다는 뜻이 됩니다. 독자에게 동정심을 느꼤다면 그 마음을 지금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려 달라는 요청도 함께 적어 두었어요. 회고록과 사회 비평이 왜 한 권에 묶여 있는지에 대한 답은 결국 그 문장인 듯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편하게 읽고 편하게 접는 책이 있고, 읽는 속도가 자꾸 느려지는 책이 있습니다. 이 한 권은 후자였고,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더 데리고 있게 됐어요. 성공담으로 소비하기 쉬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담의 자리를 내주고 대신 통계와 자기 결함을 함께 내놓았다는 점이 오래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면 좋은 학군과 좋은 성적 이야기를 잠깐 접어 두고 이 책의 앞부분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사회 구조와 계층 이동에 관심이 있는 분께는 뒷부분의 개념 정리가 유용할 거예요. 자기 힘으로 어딘가에 올라섰다고 생각해 온 사람에게는 책 후반부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 불편함이 이 도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빠지고 창문을 열어 두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시기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건 나쁘지 않은 순서였던 것 같아요. 이 가을에 누군가의 안정감을 조금 보태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려 합니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 사다리의 구조를 해부한 기록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는 한 권입니다. #산산조각난아이는어떻게자라는가 #롭헨더슨 #푸른숲 #사치신념 #계층이동 #교육불평등 #사회계층 #회고록추천 #에세이추천 #논픽션추천 #북유럽카페 #서평단 #독서기록 #책추천 #가을독서 #심리학책 #위탁가정 #부모프리미엄 #베블런 #부르디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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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한 사회의 구성원을 키우는 일이다. 올바른 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킴 헨더슨은 한국인 어머니와 이별, 위탁가정에서 전전하다가 입양이 된다. 입양된 가정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다.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동성 결혼과 또 이별... 주인공은 일생은 헤어짐에 늘 불안함 삶이었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술로 마약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로버트 킴 헨더슨은 군대를 가고, 명문 대학을 가는 등 삶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그를 응원하고 싶다. 안정적인 양육을 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 화가 난다. 책임감이 없는 그들은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어른의 무책임이 어린 로버트 킴 헨더슨이 외로움과 불안감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피해를 준 가해자(부모)는 자신이 잘못하였더라도 부모로서 대접받고자 한다. 나는 그런 부모라면 자신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경계 설정이 필요하며 키워준 것에 대한 부채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사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원한다면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므로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있지만, 부모는 외면한다. 자식과 부모 사이 간에 한쪽에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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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이를 키우며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해주는 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를 읽으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제자 롭 헨더슨은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은 뒤 여러 위탁가정을 거쳐 성장했다. 책에는 아홉 곳의 가정과 일곱 번의 위탁을 경험했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 불안정한 환경을 지나 예일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한 저자의 삶을 따라가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에서 계속 생각하게 하는 문장은 '나쁜 경험은 그 자체로 나쁘다'였다. 아이의 힘든 어린 시절을 나중에 성공하기 위한 좋은 경험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힘든 환경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결국 성공했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 만으로 아이의 삶에 있는 모든 불평등과 상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치 신념'은 어떤 생각이나 가치관이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꼭 대단한 교육이나 좋은 대학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불안전한 환경과 신뢰할 수 없는 보호자가 아이에게 나쁜 이유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특히 오래 남았다. 나도 초등 1학년 아들을 키우며 공부 습관이나 독서, 문해력 등을 많이 신경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이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 줄까를 고민하는 것만큼 아이가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지,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완벽할 수 없고 나 역시 아이가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으면 소리도 지르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만큼 아이에게 안정적인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에게 던진 질문은 '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어른으로 기억될까?'였다. 성공한 어른이 된 저자에게도 어린 시절의 상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가 특별하게 성공하길 바라기보다 지금 이 어린 시절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는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통해 가족과 교육, 계층의 차이까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라 읽고 난 뒤에도 마음에 많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