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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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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들을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의 중국 영토"안에 있는 55개의 민족이며 중국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게 소수라는 단어이다. 8.5%라고 하니 정말 소수민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곳이 어디인가 중국이다. 13억이라는 거대한 숫자와 비교하는 상대적 비율이 아닌 단순 인구로 보면 그들은 소수민족이 아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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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들을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의 중국 영토"안에 있는 55개의 민족이며 중국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게 소수라는 단어이다. 8.5%라고 하니 정말 소수민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곳이 어디인가 중국이다. 13억이라는 거대한 숫자와 비교하는 상대적 비율이 아닌 단순 인구로 보면 그들은 소수민족이 아니다. 만주족과 후이족은 각기 인구 천 만명이 넘고, 좡족은 18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웬만한 유럽국가 보다 인구도 영토도 크다. 한 국가를 유지할만한 인구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렇게 중국 영토의 60%를 차지하는 그들은 결코 소수민족이 아니고 자신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현대에 오면서 중국 한족 중심주의에 덮혀있을 뿐이지 사라진 민족이 아니다.


책은 18개의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란, 말갈,몽골 뿐만 아니라 저 대륙 너머 누란 등 익숙치 않은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왕조사 같은 웅대함이나 치밀함은 없지만 잔잔한 이야기로 채워진 책이다. 책 한 권에 다양한 소수민족을 담아 두었다는 것이 이 책의 의의다.


" 지금까지의 중국사는 반쪽짜리 역사였다. "


* 저자의 장점이자 단점은 역사를 무협지처럼 쓴다는 것이다. 불필요할 만큼 과장되어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표현들이 자주 나온다. 왕년에 무협지에 빠져 있는 독자라면 옛 생각 나겠다.


- 천조제는 바람에 날아다니는 휴지조각처럼 서쪽을 향해 도망쳤다.

- 뜨거운 해가 불덩어리처럼 빛나던 어느 여름날 ~~~

- 뭇별이 달을 받들듯, 주변 민족들은 ~~~~

- 호경이라니, 호경은 황금이 가득하고 미녀가 구름처럼 많은 곳이 아니던가

- 뜨거운 쉿물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 중국 중심적 사고와 남성위주의 시각은 굳건하다.


* 그래도 이렇게 다양한 지도를 넣을 만큼 친절하기도 하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7.05.31. 신고 공감 1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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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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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는 그저 역사라는 강물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갔던 변방 민족에 관한 이야기다. 모호했던 각 민족의 기원이 조금 더 명확히 하고, 자료 정리를 통해 사라졌던 민족 기억의 계통을 찾고, 분석적 사유를 통해 단조롭고 재미없던 역사적 사건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모두 18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 흉노/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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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는 그저 역사라는 강물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갔던 변방 민족에 관한 이야기다. 모호했던 각 민족의 기원이 조금 더 명확히 하고, 자료 정리를 통해 사라졌던 민족 기억의 계통을 찾고, 분석적 사유를 통해 단조롭고 재미없던 역사적 사건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모두 18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 흉노/ 2장 오환과 선비/ 3장 유연/ 4장 백흉노/ 5장 돌궐/ 6장 회골/ 7장 거란/ 8장 말갈/ 9장 강/ 10장 토번/ 11장 저/ 12장 월지/ 13장 몽골/ 14장 오손/ 15장 월/ 16장 서남이/ 17장 복/ 18장 누란

 

오늘날 내몽골 오르도스와 다칭산 일대에서 일어난 흉노는 전형적인 유목민족이었다. 흉노 군단은 전리품을 국고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전쟁이 나기만 하면 전쟁 포로는 잡아온 자의 노예가 되었고, 약탈해온 재물은 빼앗아온 자의 소유가 되었다. 게다가 적의 머리 하나를 베면 술 한 동이가 상으로 내려왔다.(p.27)” 이러한 풍습으로 그들은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그들이 살던 비계절풍 지역은 대륙성온대기후에 속해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유목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가 건조하고 목초가 말라가는 계절에 비계절풍 지역에 사는 말 위의 약탈자들이, 반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을 쌓아놓은 계절풍 지역의 농경민을 습격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 들의 후예가 중국의 세력에 밀려 유럽으로 흘러가 유럽을 휘저은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중국의 역사 자체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k******4 2018.04.30.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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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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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가오홍레이/김선자메디치미디어/2017.4.30.sanbaram   넓은 국토와 수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단일 국가 중국의 역사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변방의 소수민족을 탄압하면서 그들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통 역사는 황하와 양자강의 사이의 중원을 차지했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방의 이민족에 의해 여러 차례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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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가오홍레이/김선자

메디치미디어/2017.4.30.

sanbaram

 

넓은 국토와 수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단일 국가 중국의 역사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변방의 소수민족을 탄압하면서 그들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통 역사는 황하와 양자강의 사이의 중원을 차지했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방의 이민족에 의해 여러 차례 중원이 장악 되었으며, 원래 한족이라는 종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중원을 차지한 여러 종족이 섞여 살면서 그들을 한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도 변방의 종족을 한족화 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반의 중국사는 중원이 아닌 변방에서 일어나 세력을 떨쳤던 종족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족(夷族)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964년 산둥성(山東省) 신타이(新泰)에서 태어났다. 중국 작가협회 회원, 중국 인류학민족학연구회 회원, 중국 민족사학회 회원, 중국 국토자원작가협회 부주석으로 있다. 1990년대부터 산문, 수필, 전문저작 등을 펴냈다. 저서로는 서역을 쓰다(大寫西域), 또 다른 문명(一種文明), 누란이여! 누란(樓蘭 樓蘭), 풍골중국(風骨中國)등이 있다. 대표작인 절반의 중국사(一半中國史)는 위구르어, 몽골어, 키르기스어, 시보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절반의 중국사는 그저 역사라는 강물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갔던 변방 민족에 관한 이야기다. 모호했던 각 민족의 기원이 조금 더 명확히 하고, 자료 정리를 통해 사라졌던 민족 기억의 계통을 찾고, 분석적 사유를 통해 단조롭고 재미없던 역사적 사건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모두 18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 흉노/ 2장 오환과 선비/ 3장 유연/ 4장 백흉노/ 5장 돌궐/ 6장 회골/ 7장 거란/ 8장 말갈/ 9장 강/ 10장 토번/ 11장 저/ 12장 월지/ 13장 몽골/ 14장 오손/ 15장 월/ 16장 서남이/ 17장 복/ 18장 누란

 

오늘날 내몽골 오르도스와 다칭산 일대에서 일어난 흉노는 전형적인 유목민족이었다. 흉노 군단은 전리품을 국고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전쟁이 나기만 하면 전쟁 포로는 잡아온 자의 노예가 되었고, 약탈해온 재물은 빼앗아온 자의 소유가 되었다. 게다가 적의 머리 하나를 베면 술 한 동이가 상으로 내려왔다.(p.27)” 이러한 풍습으로 그들은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그들이 살던 비계절풍 지역은 대륙성온대기후에 속해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유목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가 건조하고 목초가 말라가는 계절에 비계절풍 지역에 사는 말 위의 약탈자들이, 반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을 쌓아놓은 계절풍 지역의 농경민을 습격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 들의 후예가 중국의 세력에 밀려 유럽으로 흘러가 유럽을 휘저은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중국의 역사 자체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화교라고 불리는 천교(祆敎)는 중국에서 조로아스터교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천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세계이인들이 탄생했던 기원전 6세기에 살았다. 중국의 공자, 인도의 붓다 역시 같은 시대 인물이다. 그는 오아시스 농업 지역에서 태어났기에 끊임없이 침입해오는 유목민족에 태생적으로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선()을 지키고 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졌다. 깊은 사색을 거친 후 그는 선악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인 천교, 즉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했다.(p.231)” 조로아스터교는 불교처럼 불상을 모시지는 않았으나 사제와 사원, 성스러운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제단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신의 뜻에 따라 그 시신을 하늘 가까운 곳에 두어 독수리로 하여금 천천히 쪼아 먹게 했다.

 

에프탈은 사라졌으나 그 백성은 그들이 점령했던 인도에서 여전히 강한 생명을 이어갔다. 그중 가장 걸출했던 사람들은 백흉노의 순수한 후예라고 여겨졌던 라지푸트족이다. 인도 서북부의 라지푸타나 지역이 이들의 이름으로 명명한 곳이다. 라지푸트족은 태생적으로 전쟁을 좋아했던, 명실상부한 군사 귀족이었다.(p.234)” 그래서 인도 주류 사회에서 크샤트리아(무사계층)로 흡수되어 인도 36개 귀족 가문으로 들어가 힌두교의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 이들의 후예는 대부분 사막 지방인 라자스탄에 거주한다. 이 기록에서도 중국변방에서 일어난 종족이 인도까지 흘러가 귀족 계급이 된 것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을 스스로 높이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돌궐한국(칸국汗國)에 문자가 있었다. 돌궐 문자는 중국 유목민족이 만든 최초의 문자다. 문자가 인간관계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당시 돌궐 특권 계층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하여 문자 창제는 민족 독립과 확장 과정에 거대하고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p.243)” 돌궐문자가 생김으로써 돌궐이 통치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각 민족 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졌으며, 돌궐어를 말하는 많은 다른 민족(특히 회홀인)도 스스로 돌궐사람(튀르크인)’이라고 칭했다. 이처럼 자신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후 돌궐인이 다른 곳으로 유랑을 떠나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p.244) 이런 기록을 상술한 것 또한 지금의 터키지방까지 옛날 중국의 영향권에 들었음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할 수 있다.

 

말갈은 선진 시대에는 숙신(肅愼 동부 사람이라는 뜻)’, 위 시대엔 읍루(挹婁 깊은 산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다. 6세기 무렵에 물길은 이미 소말, 백돌, 안거골, 불열, 호실, 흑수, 백산 등 7대 부()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수, 당 시대에 와서 말갈이라고 이름을 바꿨다.(p.382) 속말갈의 지도자 대조영은 군대를 이끌고 영주에서 쑹화강 상류로 왔다. 대조영이 오늘날 지린성 둔화현 부근의 오동성에 진국(振國)’의 깃발을 내걸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무조 성력 원년이었다.(p.384)” 대조영은 당에 사신을 보내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했으며, 둘째 아들인 대무예를 인질로 보냈다. 당 개원 원년(713), 당 현종은 조서를 내려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 당 왕조가 내린 새로운 호칭에 따라 발해라고 불리는 국가가 백산과 흑수 사이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어두운 동북아시아를 무려 200년 동안이나 비춰주었다.(P.384)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설명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또한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할만하다. 그것이 그들의 사마천의 사기를 쓰던 때부터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이다. 발해란 명칭은 당에서 부르는 이름이었을 뿐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세운 나라이름을 진국(振國) 이었다.

 

발해가 거란에 복속된 후, 발해 왕실의 일부 구성원과 많은 거주민이 한반도로 이주해 신라와 고려 주민의 일부가 되었다. 과거에 발해는 고려를 줄곧 동족이락도 여겨왔고, 고려 역시 난을 피해 오는 발해인을 동족으로 여겨 환영했다. 발해는 여전히 존재했고 하려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국가로서의 발해의 생명은 끝났다. 이미 다른 국가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p.388)” 이런 기술 역시 우리민족인 고구려인의 후예를 말갈인으로 둔갑시키다 보니 앞에서 기술한 내용에 반하는 사실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술하는 것은 바로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의 역사를 자기네의 변방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식민사관에 찌든 국사학계가 통일 신라를 운운하는 동안 중국에선 역사 왜곡으로 발해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에서 떼어 내 자기들 변방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 화산활동으로 소멸한 진국을 마치 거란에 의해 망한 것처럼 기술하는 것도 또한 밝은 눈으로 역사를 봐야 하는 까닭을 일깨우고 있다.

 

청왕조의 중국 통치 방식은 후진 민족이 후진 문화로, 후진 사회 이데올로기와 생산방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선진 민족을 통치했던 기형적 형태의 것이었다. 변발령의 목적은 한인을 인격적으로 낮은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 있었다. 또한 관습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취지도 있었다. 루쉰은 유맹의 변천에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만주인이 산해관으로 들어온 이후 중국은 점차 억압당하기 시작했다. ‘협의기질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다시는 훔치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p.433)’” 이때부터 한족의 복식은 중국 땅에서 사라져버렸고, 결국 한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통 복식이 없는 민족이 되었다고 만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을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청왕조는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강한 힘으로 89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국토를 개척했는데, 그것은 명의 영토 350만 제곱킬로미터의 세배가 넘는다. 당시 청의 중국 강역은 무려 1,24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렀다며 자랑스러운 면을 내세우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청 조정의 다음 같은 오류로 몰락의 도화선이 되었다. 첫째, 서학동점에 대한 제재였다. 둘째, 과학기술을 멸시했다. 셋째, 사상에 대한 억압이다. 넷째, 상업을 경시했다. 다섯째, 기치가 선명한 쇄국정책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여섯째, 죽을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노인정치가 문제였다.” 이와 같이 중국이 서양의 세력에 굴복하게 된 것을 청 조정의 잘못으로만 결론지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미 청 왕조의 세력 또한 중국인으로 화한 것을 굳이 별개의 세력으로 가르려는 것은 제대로 된 사관은 아니라 생각된다.

 

저자는 아주 많은 자료를 취합하여 중국 변방민족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유럽이나 러시아, 터키와 인도까지 중국 변방민족이 활약하며 이룩했던 역사적 성과를 마치 지금의 중화민국의 다민족이 이룬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은 힘에 의한 일시적 지배로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활약상을 자기들의 조상이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현재 중국의 의식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밝히려 하는 의도를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대조영이 세웠던 진국(중국에서는 발해라 불렀다)을 자기네 변방의 역사로 편입하여 기술하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식민사관에 찌든 우리역사학계 학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을 넘어 세력을 뻗어가려는 그들의 야욕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읽으면 여러 가지로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가 많은 책이다.

 

 

k******4 2017.06.23.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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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절반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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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는 이른바 소수민족에 관한 것이다.하지만 소수민족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고 한족 중심에서 쓴 것이다.1.  저자 고홍뢰는 헝가리를 흉노[Hun] 사람[gary]라고 했지만(108면) 헝가리의 뿌리인 운그리는 고대 그리스어 운그로이  라틴화된 이름이다. 이는  10개 오구르[부족]라는 뜻이지 흉노사람은 아니다. 역자가 이에 관한 역주를 달았으면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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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는 이른바 소수민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소수민족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고 한족 중심에서 쓴 것이다.


1.  저자 고홍뢰는 헝가리를 흉노[Hun] 사람[gary]라고 했지만(108면) 헝가리의 뿌리인 운그리는 고대 그리스어 운그로이  라틴화된 이름이다. 이는  10개 오구르[부족]라는 뜻이지 흉노사람은 아니다. 역자가 이에 관한 역주를 달았으면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침묵한다.


2. 저자는 "헝가리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식 호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마자르오르사그 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109면)고 했지만, 머저로르싹(번역자는 마자르오르사그)인민공화국은 1949-1989년 사이 공식국명이었을 뿐, 이후 머저르공화국을 거쳐 2012년부터는 그냥 머저로르싹이다. 머저르[족]의 나라(오르싹)란 뜻이다.


3. 역자 김선자 선생은 저자 이상으로 연구를 해서 역주를 달았다. 엄청난 작업이다. 다만 사소한 실수가 눈에 보인다. 수(水)의 한어이름은 수이가 아니라 쉐이(sui)가 옳다. 한어병음방안을 온전히 이해한 이후에 학술활동을 해야 한다. 병음방안은 고작 A4 두 쪽 분량이다.


4. "그러므로 위구르와 투크르메니스탄은 진정한 의미에서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돌궐과 조금도 관련이 없다."(300면)고 했지만, 역자 김선자 선생은 중국 신강의 여러 튀르크계 민족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저자 고홍뢰가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고 주를 달았다. 민족계통과 언어계통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위구르는 동우즈백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위구르는 분명 튀륵계열이다. 투르크멘은 정확히 튀륵멘으로 진정한 튀륵[족]이라는 뜻이므로 위구르 투르크멘 모두 돌궐이다!

c**********1 2020.04.2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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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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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어려서 단일민족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우리도 ‘다문화 가정’이라는 개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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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어려서 단일민족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우리도 ‘다문화 가정’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지금은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많이 약해진 것같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뀐 것 만 해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열거한 민족들(그 안에서 또 세부적으로 갈라지지만)은 현재의 55개 소수민족에 속한 경우도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민족도 있다. 또한 한족과 융화된 민족도 있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현재의 55개 소수민족의 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이들이 한족과 더불어 중국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힘있고 강성한 민족도 있었으며, 유랑과 이주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 약소민족도 있었다. 그러나 이책의 시각이 중국의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 교양서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책은 모든 민족들과 한족들의 얽힘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중국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흉노, 거란, 말갈, 몽골 등 큰 민족에 대해서는 그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냉정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청나라의 몰락원인에 대한 비판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열거한 이민족들 중에 크게 융성한 민족은 모두 다 ‘걸출한 영웅’이 있엇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걸출했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것인지, 그가 크게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란이겠지만 기본적으로 남다른 사람됨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고, 처음 접하는 소수민족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서 내용상으로는 좋았으나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 등 번역상의 허술함이 좀 보여서 아쉽다.

YES마니아 : 로얄 s***7 2017.07.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