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은 딱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일본의 압제에 맞서 가열찬 독립 운동을 벌였던 독립투사,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이 독립투사들을 탄압하는 친일파, 그리고 일본의 수탈에 괴로워하던 힘없는 민중들,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식민지 시대 조선인’을 생각해 내기란 쉽지 않다. 이는 다양한 시대적 측면을 외면하게 한다.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식민지 시대의 일상에 대한 연구는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벗어나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해 보고자 하는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은 이 시도의 일환이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일상생활을 근대성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책은 먼저 식민지 연구와 ‘일상생활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식민지 연구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식민지 상황’과 ‘근대화’ 간의 배타적 혹은 협력적 관계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은 반민족적 인식으로 규정하지만 ‘근대성’이 반드시 추구해야 했던 ‘옳은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해왔다. 하지만 책에서는 ‘근대성’이라는 것 자체가 제국주의적 시도와 함께 발생한 것이고 근대성과 식민성이 다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상생활론’에서는 일본이 이 일상을 장악함으로써 식민지 통치를 공고히 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일상’이 탄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제2부 「신체의 식민화와 생활세계」는 일상을 통제하기 위한 일본의 정책과 조선인들이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순응했는지, 혹은 거부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의복 통제에 관한 부분이었다. 일본이 조선의 전통적인 의상인 백의를 ‘색의’로 바꾸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과 ‘국민복’과 ‘몸빼’가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은 일본이 ‘근대성’의 가장 큰 요소인 ‘국민성’을 의복이라는 일상적인 매개를 통해 전파하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 3부는 공간 정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물생활의 변화’를 주목해 볼만 하다. 경성에 수도가 설치되면서, 물의 이용이 우물이나 개천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와 달리 각자의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루지게 된다. 시대적 변화는 공간의 변화를 수반한다. 물생활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대의 변화가 어떻게 공간의 변화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제 4부에서는 영어교육, 서양영화 관람, 신여성, 일본어 글쓰기 등 다양한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서양영화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대중문화로 널리 보급되었다는 사실은 ‘수탈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민중’이라는 식민지 시대의 민중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상생활’이라는 광범위하면서도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대상을 다루다보니 각각의 내용들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각 부를 구성하고 있지는 못하다. 제 1부가 일상생활에 대한 일본의 정책과 통제가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흡수, 또는 거부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임을 생각할 때 ‘아지노도모’에 관한 내용은 일관성이 떨어진다. 또 제 4부는 ‘소비’와 ‘언어’를 큰 테마로 잡고 있지만 ‘소비’와 ‘언어’ 간의 연관성이 떨어지고 그 내부 항목도 정확이 그 테마에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식민지 일상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식민지의 일상 속에서 근대성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연구는 식민지 지배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일상’이라는 공간에 대한 연구이고, 그 공간 안의 조선인들이 단순히 세 가지의 부류로만 구분되지는 않았으며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의의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