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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이음 🔬 완성된 과학 이론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그 지식이 탄생한 역사를 살피는 일은 늘 흥미롭다. 교과서에 실린 공식과 객관적 사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권력과 사회적 분위기, 인간적인 욕망이 지식의 형성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은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엄밀한 논리와 실험의 영역인 과학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주의라니... 얼핏 물과 기름처럼 보이는 두 영역은 대체 어디서 만나고 있는 것일까? 🪺 책은 고대 자연철학에서 출발해 근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산업화와 세계대전, 그리고 식민주의와 젠더, 최신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과학사를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이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과학은 결코 사회 바깥에서 홀로 꽃피운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그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길어 올려졌다. 과학을 절대적으로 무결한 신전에서 끌어내려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 안으로 다시 위치시키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이나 돋보였다. 🔬 이 책이 과학을 바라보는 가장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은, 과학을 몇몇 고독한 천재들이 단번에 완성해 낸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치열한 논쟁과 뼈아픈 실패, 끝없는 수정이 누적된 협력의 결과로 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는 진짜 이유는 과학이 언제나 완벽하게 옳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직하게 열어두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거와 관측 결과가 나타나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던 기존의 가설이라도 과감하게 의심하고 다시 검증대에 올린다. 최우수 과학자, 국가 리더 과학자, 과학계에서 언젠가 신성처럼 나타날 한 명의 과학자에게만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정책 관련자들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막대한 국가 예산과 정책, 기업의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 기후위기와 AI가 인류의 존립을 뒤흔드는 오늘날, 연구실 안의 과학자들에게만 모든 결정을 맡겨둘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기술을 향해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 단계를 지나,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멈춰야 하는가를 시민들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지는 않았을까? 또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제목의 문장을 뒤집어 보게 된다. 과학에 민주주의가 절실한 만큼,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과학적 태도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책은 출판사 이음(@eum_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과학은민주주의가필요하다 #정인경 #이음 #북스타그램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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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가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이음] (2026)
최근에 혼자 생각하곤 하는 질문이 있다. ‘과학을 왜 공부해요?’라는 질문과 ‘인류는 지구에서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과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물어보았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섬주섬 어렵지 않은 용어로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자문해보곤 한다. 게다가 올 여름 뜨거운 열기로 실감하게 했던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 문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를 종종 상상해본다. 이건 진지한 환경활동가처럼 어떤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학저술가, 과학사연구자 정인경의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를 읽는 동안 나 혼자 자문해보던 이 두 주제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2022년도에 개정된 고등학교 과학사 <과학의 역사와 문화>를 집필했다. 이 책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저자가 과학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후기처럼 들려주는 성격의 책이라 느꼈다. 교과서의 정제된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이 책에서 보다 진지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저자는 과학 공부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 내 나름의 설득력 있고 세련된 표현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저자의 견해가 궁금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과학) 지식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11)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달리 말하면 과학을 공부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나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두드러진 ‘과학의 상업화’를 지적하며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지닌 위상과 역할이 달라진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과학의 공공성과 메타 학문으로서 과학의 역할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대가 지나며 과학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과학의 목표 또한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과학사는 메타 인식을 하도록 도와주는 채널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과학이란, 절대적 진리를 확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과 앎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검증 받아온 믿음 체계 혹은 방법론에 가까운 듯하다. “과학은 지난 400년 동안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살아남은 지식”(122)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여태껏 신뢰를 더 쌓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메타 인지적 절차, 끊임없는 비판과 토론의 과정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찾는 것이나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같았”다(73)는 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한편으로 나는 저자가 ‘인류의 문명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목에 관심이 갔다.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결국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인류가 겪게 될 ‘문명의 죽음’이 얼마나 가속화될 것인가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활동, 자원을 착취하는 행위로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최근 네팔의 산지에서 발생한 대홍수 사태를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환경의 변화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올 때 환경 변화에 취약한 계층이 더 많은 희생을 겪게 마련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함께 붙들고 해결할 마지막 타이밍을 놓쳤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러한 문제는 지식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는 과학 교과서를 통해서 인식하고 생각해보기에는 부족하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여긴듯하다. 조금 낯선 입장이긴 하지만, 저자는 과학사로부터 인류에게 필요한 윤리적 입장을 발견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에 대한 탐구 일변도의 관행과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 전에 과학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여 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과학은 가능하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은 ‘과학적 상상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부터 주목하는 철학과 윤리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 집단의 책임과 열린 자세, 과학 행위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고 우려하는 과학의 상업화 현실에 개개인이 거리를 두고 균형감을 갖게 해주는 도구가 아닐까. 이제는 ‘시민과학’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졌다. 시민과학의 관점에서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과학과 기술이 수행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이제 인류 공동체의 삶을 결정 짓는 문화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로 우리의 삶 속에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개선의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위기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의 가능성과 일련의 수행 과정이 열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과학적 상상력’이 인류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당장 임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상해 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10년 가까운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트로이 왕국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 가운데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가져올 비극을 예언했던 인물인 카산드라가 있다. 트로이가 맞이한 비극은 트로이 왕국의 운명을 카산드라가 예언했지만, 그 누구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왕국의 멸망에 대비할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인류의 운명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과학적 상상력이 예측하는 인류의 위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은 트로이 왕국처럼 되지 않을까. 지구 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학 활동에서의 민주적 절차임은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과학 활동으로 축적된 지식과 판단 체계가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곧바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곧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탐구한 책이라 볼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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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교과서 저자가 설명하는 좌충우돌 과학의 역사! 이 책의 서평단에 지원하게 된 까닭은 내가 평소에 과학 공부를 하며 배우는 이유는 모르고 무작정 공식을 외웠기 때문이고, 과학을 민주주의, 즉 사회와 어떻게 연결지어 설명하려는지 궁금했기에 신청했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이 사람과 세대를 거쳐 오랜기간동안 이루어져 왔음을 소크라테스, 플라톤, 뉴턴처럼 유명한 인물과 파라켈수스, 시몬 스테빈 같은 학문적 기술자들을 통해 설명한다. 저자는 저자답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에 묻힌 인물들을 드러내며 신에 대한 믿음이 주를 이룬 종교적 사회에서 신을 부정하며 원자론을 내세운 브루노가 십자가형을 받는 생생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목숨을 바쳐 진실을 알린 철학, 과학자들의 생애를 담았다. 나는 그 중 '기술 진보의 피해자' 장에서 젠더 불평등의 역사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는데, 과학도 결국 인간의 산물로 발전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받은 여성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현재에 와서는 과학이 무기로, 그리고 자본의 도구로 변한 실태를 시사하며 공익과학과 과학의 진정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내가 인상 깊었던 질문으로 마무리 하려한다. 미국에서 안면인식 알고리즘의 오류로 죄 없는 사람이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책임은 인공지능에 있을까, 안면인식 시스템을 개발한 과학 기술자에게 있을까? 아니면 시스템을 사용해 무고한 이를 체포한 경찰에게 있는 것일까? 다른 독자들의 의견은 어떤지 듣고 싶다.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과학과 사회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고 과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지적인 책이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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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를 읽기 전까지는 과학이 이렇게까지 사람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았다. 저자 정인경은 과학을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인간의 활동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과학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한 시대의 사회가 과학이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질문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하며 태양력을 만들어낸 이야기나 마야인들이 20진법을 활용해 시간을 구성한 사례처럼, 과학은 처음부터 특별한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과정 속에서도 과학은 만들어져 왔다. '과학', '과학적'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것을 의심하기보다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과학은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지 질문하고, 새로운 근거가 나타났을 때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메타인지와 자기 인식의 문제와도 연결하며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생각과 행동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를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요즘은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 않는가. 짧은 영상이나 SNS 게시물, 뉴스 기사, 다른 사람의 경험담까지 너무 많은 정보가 빠르게 지나간다. 문제는 정보를 많이 접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내가 믿고 싶은 정보라면 더 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쉽게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적 태도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일상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였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실제로는 쉽지 않다.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생각을 의심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때로는 내가 틀렸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며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내가 가진 생각을 언제든 다시 살펴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책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라 함은 하나의 목소리만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고,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기존의 판단을 검토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태도인 것 같다. 과학 역시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과 검증, 수정과 협력 속에서 완성되어가는 활동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사용하는 지식도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관찰하고 고민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을 조금 더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정작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과학 지식보다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아마 이 책이 말하는 과학의 의미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외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각도 바꿀 수 있는 사람.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과학을 그런 태도로 다시 바라보게 해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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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은 학생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배움이 무엇인지, 학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어렵지 않은 언어로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학습을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일이 아니라, 메타인지를 통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일로 바라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고 있는가? 여전히 많은 수업과 시험은 실수하지 않고 얼마나 정확하게 외웠는지를 평가하는 데 치우쳐 있다. 그러나 배움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첫 장은 학생뿐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과학을 믿는 이유는 과학이 언제나 확실한 해답을 주기 때문은 아니다. 과학은 지금까지 관찰된 증거와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도달한 가장 나은 설명이다. 그 설명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검증과 논쟁, 비판과 합의를 거쳐 받아들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등장하면 기존의 과학 지식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과학이 변한다는 사실은 과학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더 나은 설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과학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과학의 태도는 배움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정말 그럴까?”라고 묻는 데서 시작되었다. 권위보다 증거를 중시하고, 자신의 생각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며, 새로운 증거 앞에서 생각을 바꾸는 태도가 민주주의와 많이 닮아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토론하며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이 언제나 정의로운 방향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전쟁과 식민주의, 차별의 논리가 때로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후위기 문제 역시 과학기술만으로 답을 결정할 수 없다. 어떤 기술을 선택할 것인지,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결국 우리 사회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과학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과학자를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갈 사회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그 방향을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시민을 키우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과 과학적 사고력이 필요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과학사와 과학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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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이 공식은 대체 왜 배워요?” 사실 나 역시 학생 때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뉴턴의 운동 법칙을 외우고,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고,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 공부의 전부라면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를 읽으며 과학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은 과학을 완성된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며 발전시켜 온 사회적 활동으로 바라본다. 과학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여러 이론들이 어느 날 천재적인 과학자 한 사람에 의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와 문화, 정치적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논쟁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과학의 탄생을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연결해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의 철학자들은 벼락이나 지진을 신의 분노가 아니라 자연적인 원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등장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광장에 모여 서로의 주장을 듣고 질문하고 반박하며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던 민주적 토론 문화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권위가 말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서로 검증하는 태도가 과학과 민주주의를 연결하고 있었다. 과학혁명이 가져온 이러한 합리적 사고방식은 이후 계몽사상과도 연결된다. 절대적인 권위를 의심하고 이성과 증거를 중시하는 태도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인민주권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은 과학기술이 언제나 선한 방향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과학을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학이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면,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 그 기술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사회의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역사적으로 과학적 지식이 인종주의나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 사례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인공지능의 편향이나 환경 문제처럼 과학기술이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AI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문제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인공지능이 어떤 사람을 위험 인물로 판단했다고 해서 그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고, 어떤 데이터를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AI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혜택과 위험을 누가 감당하는가?”를 함께 질문해야 한다. 여기서 과학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선명해진다.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려줄 수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까지 과학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고, 유전자 편집 기술이 가능하다는 것과 인간에게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 역시 다른 문제다. 전자는 과학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책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물론 복잡한 과학적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가가 사실과 가능성을 설명하는 것과 사회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기술결정론 역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가 그 방향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하나의 필연적인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기술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개발하고, 사회가 선택하고, 제도와 정책을 통해 활용되는 것이다. 19세기 말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자유와 사회적 활동의 상징이 되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같은 기술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과학을 가르치는 나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물리 법칙과 공식을 가르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확한 과학 지식 없이 과학적 사고를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과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질문하는 법, 근거를 확인하는 법,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법,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는 법까지 가르쳐야 한다. 과학적 사고는 과학자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AI가 수많은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과학적 사실을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적 사실과 전문성을 존중하되, 그 지식과 기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민 모두가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역시 과학을 필요로 한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검증 가능한 근거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37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고, 별의 탄생을 추적하고, 원자의 구조를 탐구하고, 이제는 인공지능을 만들어 인간의 지능 자체를 다시 질문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과학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식을 많이 외우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에 대해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다시 “이걸 왜 배워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조금 다른 답을 해주고 싶다. 과학을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의심하고 이해하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과학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그 지식을 이용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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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과학기술 발전의 이기보다 적당한 자연에의 순응이 오히려 더 편리하다 생각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곱지 않은 시선을 품은 나에게도 이 책은 감동적이다. 결국은 올바른 방향설정과 가치판단의 부여가 과학의 뼈대가 되어야 함을 과학이 곧 철학이었던 고대의 시간부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곳곳에서 친절하고 재미있게 풀어놓으며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으로 닫을 수 있게 한다. 저자의 전작인 내 생애 중력에 맞서, 뉴턴의 무정한 세계 까지 저자의 올곧은 가치관을 잇는 감동적인 과학문화역사서의 수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