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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그 질문의 특성상 본질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이냐'의 대답으로 주어지는 내용이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그것이 예술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서게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예술작품의 근원은 예술가 자신이라는 대답을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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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그 질문의 특성상 본질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이냐'의 대답으로 주어지는 내용이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그것이 예술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서게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예술작품의 근원은 예술가 자신이라는 대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 무엇으로부터 예술가라는 가치를 부여받은 것인가. 오히려 그는 예술 작품으로부터, 그것을 창조한 자를 예술가로 서게 하는 무엇을 부여받은 것은 아닌가. 하이데거는 이 책에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해명하기 위하여 예술 작품으로 다가간다. 그 예술 작품 속에서 하이데거가 처음 만난 것은 모든 예술 작품들이 사물적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물이 무엇인가를 검토한 후에야 우리는 예술 작품 가운데 존재하는 예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서구의 사물 개념은 모든 존재자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였기 때문에 검토 대상이 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도구까지도 제외해 버린 단순 사물, 즉 순수 사물만을 본래적 사물로서 인정하고 그것을 검토한다. 전통적으로 사물의 사물성에 대한 규정은 사물을 각각 '특징들의 담지자', '감각적 다양성의 통합체', '형식화된 질료'로 파악해 왔다. 첫 번째 것은 사물을 특징들의 담지자, 즉 '우유성을 갖는 기체'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이데거가 검토 대상으로 삼고 있는 순수 사물에는 적합하지 않은 규정이다. 왜냐하면 특징들의 담지자라는 규정은 순수 사물 뿐 아니라 모든 존재자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규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규정은 존재자의 존재 상황에 대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관념 체계의 개념들을 다시 사물에 억지로 뒤집어 씌워 놓은 것에 불과하다. 즉, 위의 규정은 사물에 행해진 인간의 조직적 폭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사물다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간의 그러한 사유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전이를 통해 파악된 사물 규정이 바로 '감관에 주어진 다양성의 통합'이다. 즉 인간의 사유에 의한 폭력을 제거하고, 모든 관념적 체계에 의한 사유의 기습을 제거하고 오로지 감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사물의 특징들만을 그 사물의 진정한 사물다움으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각에 의해 주어지는 그 어떤 정보들을 가지고도 사물의 사물다움과 만날 수 없다. 지각된 감각의 내용이 결코 사물 자체와 치환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물개념은 인간의 관념체계를 사물에 뒤집어씌움으로써, 둘째는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된 정보를 사물의 사물다움으로 착각하게 함으로써 공히 본래적인 사물의 사물다움에서 우리를 떼어놓고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그래서 사물이 그 자체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것의 고유한 항구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사물 규정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듯 보이는 것이 사물에 대한 세 번째 규정, 즉 사물을 '형식화된 질료'로서 파악하는 규정이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쉽게 그것의 외관이 어떤 특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그 형식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질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은 그 적용 범위가 실로 너무나도 광범위한 개념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학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까지 확장되어, 실로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처럼 포괄적인 규정을 통해서 단순 사물이라는 특정한 존재자를 여타의 다른 존재자들로부터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하이데거는 오래 전부터 이 규정이 미학에서 전반적으로 쓰여졌음에 착안하여 그것이 예술 작품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유래한 규정이며 그것이 오히려 사물에도 적용된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하여 하이데거는 예술작품과 단순사물의 양면성을 지닌 도구를 상정하고, 그 도구에 대해 살핌으로써 단순 사물의 사물성을 찾고자 한다. 이곳이 바로 하이데거의 뛰어난 전략이 돋보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도구의 도구다움을 파악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본질'과 '사물의 사물다움'을 한꺼번에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구란 무엇인가? 도구의 도구다움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도구인 신발을 끌어들인다. 게다가 그는 신발을 살피기 위해 우리에게 고흐의 구두 그림을 제시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고흐의 구두 그림은 그 구두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으며, 어떠한 상황들과 관계했었는지, 요컨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관람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즉 구두의 '존재'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포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 구두는 그것을 신고 있는 농부가 딛고 있는 대지와 그 농부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묻히고 있다. 고흐의 예술 작품이 그것 안에 포착해 내고 있는 세계, 이를테면 구두가 실제의 현실 속에서 어떤 곳에 존재하는지, 그것이 농부의 발에서 닳고 헤지는 동안 그것이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대지와의 접촉, 농부의 노동 속에서 그의 발을 대지의 다른 해로운 존재자들로부터 보호하고 그의 발냄새를 고스란히 담으면서, 농부가 생활하는 모든 삶의 폭을 함께 공유하면서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세계, 도구의 매 순간마다의 생생한 있음, 그것을 하이데거는 도구의 도구다움, 도구의 '존재'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이란 존재자의 매 순간 순간의 생생한 있음, 즉 존재를 그것 안에 포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글의 처음에서 제기했던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다름 아닌 바로 그것으로 서게 하는 동일한 원천, 예술의 본질은 다름 아닌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m****s 1999.08.10.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