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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가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힘들기만 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들곤 한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안전지대. 무조건 내 편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의 의미는 단순히 ‘거주’라는 기능적인 것을 넘어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집은 불법 건축물로 규정되어 다른 이웃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이웃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편안함을 누리지도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으로, 누구도 부를 수도 없는 창피함을 느끼게 하는 집까지… 따스한 안식처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최전선이자 평범하고 멀쩡한 이들과는 다른 ‘계급’에 속해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서글픈 상징이기도 하다. 고은규 작가의 신간 《이것은 소설인가》은 책 제목처럼, 너무도 차가운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 허구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집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담았다. 집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결핍, 상처, 소외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삶의 모양을 조명한다. 각각의 사연과 등장인물의 삶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이웃들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개운하지 않았던 그 찜찜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엇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하루가 얼마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였는지 깨닫게 한다. 주거의 불안정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구성원, 해체된 가족과 깨진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고립시키는지 등 상처 입고 결핍된 여러 관계를 집이라는 테두리로 묶어 표현함으로써 삶의 끝까지 내몰린 이들의 결핍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학원 강사로 일하는 무명 소설가 관철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대학시절 친구를 통해 10년 넘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 나미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 나미는 그를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자, 그의 글을 인정해 주고 몰래 투고까지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블로그 글을 통해 대학 동기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블로그에는 나미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했던 선배, 그녀에게 성병을 옮긴 동기, 그리고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나미가 당한 불행을 떠벌리고 다녔던 동기를 고발한다. 그녀의 글을 보고 관철은 많은 생각에 빠진다. 자신 또한 그녀에게 저격당할 만한 찜찜한 마음의 빚이 남아있던 것. 관철은 대학 때 나미와 함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며 가까워졌고, 그녀의 자취방에 갔다가 수북이 쌓인 책장 속의 책들 중 최인훈의 『광장』초판을 발견하곤 빌려달라 요청한다. 나미는 자기의 책이 아니라며 거절했지만 관철은 그 책을 자기 가방에 챙겨와버렸고, 이후 여러 가정사로 인해 그 책은 읽지도 돌려주지도 않은 채 가지고 있다가 그만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뺏기다시피 빌려주었다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3일만 보고 돌려주겠다는 학생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이 나미에게 그러했듯, 그 학생 역시 관철의 뜻을 어기고 억지로 그를 뜻을 억압하고 제 뜻대로 행동하며 관철이 나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나미의 블로그를 보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던 찰나, 책을 돌려달라는 나미의 연락이 오고, “빌려 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나미의 블로그 글을 보고 나서야 여러 차례의 실랑이 끝에 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돌려받은 책은 처음에 빌려주었던 초판이 아닌 새 책이다. 가져갔던 것을 온전하게 되돌려 받지 못하는 부조리. 그 책을 받아든 관철은 오랜 시간 쓰지 못했던 소설을 비로소 쓸 수 있겠다는 의지와 욕망을 느낀다. 이처럼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당사자에게는 목숨이 걸릴 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마 집이 너무 좁고 지저분하고 초라해 남자친구조차 데리고 올 수 없을 정도라 집에 대한 집착을 갖게 한다거나, 불법 건축물에 산다는 이유로 집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계단 통로를 막는 이웃들 그리고 이를 오로지 조회수를 끌기 위해 드론을 날려 촬영하는 이들 사이에서 기본권조차 침해받는 등.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음거리이지만 타인을 자기의 이해타산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그들의 불안과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꼭 ‘불법’인지 아닌지를 넘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만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취업도 잘 하고, 이름을 떨치기도 하며,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성공을 누린다. 각 이야기들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타인을 향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꼬집고 추궁하며,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지금 모습보다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들여다볼 것을 이야기한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보편적인 사회에서의 밀려남, 타인의 시선과 규정 아래 상처받은 경험 등이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그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이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뒤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불법 건축물에 터를 잡았다는 이유로 합법 공간의 주민들에게 저것들이라 불리며 멸시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은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사치이고, 이들에게 집은 불안과 고립, 차별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혹한 현실이다. 그럴듯한 집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외곽의 신축 빌라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지만 텅 비어 유령도시 같은 건물 속에서 홀로 버티는 주인공에게 안전지대라 기대했던 집은 불안과 외로움, 이웃이나 사회와의 소통 없이 단절되며 더 큰 고립 속으로 밀어 넣는다. 취업이 되지 않아 부유층 가정의 베이비시터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자는 동안 수많은 감시 카메라 사이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 적선하듯 자신이 15년 전에 들던 가방을 선물로 받지만 그조차도 너무도 큰 것이라 자존심도 없이 이에 빠져드는 모습. 하지만 그 단지 한편에서는 고양이가 차 지붕을 긁었다는 이유로 훨씬 어린 입주민에게 굽실거리며 사과를 해야 하는 경비원의 울부짖음과 뒤엉키며 누군가의 그저 열심히, 잘 살겠다는 일상이 어던 면에서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내고 윤리를 자연스레 무너뜨리는 것임을 꼬집으며 씁쓸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주거의 불안정이 사람을 어떻게 흔드는지, 결핍이 사람을 어디까지 내모는지를 느끼게 하는 이 이야기들이 책의 제목처럼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삶의 막바지까지 내몰린 이들에게는 상처 입은 마음을 헤아리고 회복할 새도 없이 또 하루가 시작되고 매일이 반복된다. 이들의 결핍과 상처를 헤아리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우리가 되찾아야 할 윤리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책의 메시지를 통해 삶을 새로 일으키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별생각 없이 타인에게 꽂힌 시선에도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를 따지기에 앞서 왜 그런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리는 마음. 상처를 헤아리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 독서였다. ‘현실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애정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책의 추천사처럼, 삶을 과장하지 않고 진실하게 이를 직시하고 공감하는 작가의 자세가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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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아보느라 무엇도 쓰기 어려워지는 책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달수는 독방에 갇힌다. 그는 15년 동안 방 안에서 자신이 왜 갇혔는지, 누가 자신을 가뒀는지 알아내기 위해 짐작되는 과거를 적어내린다.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 '이것은 소설인가'는 오달수를 가두었던 독방이라는 공간과 그가 적어내렸던 악행의 기록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올라 7.5층의 작은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듯 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앞에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종이가-앞으로 내가 채워 넣어야 할 빈 공간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표제작인 첫 단편 <이것은 소설인가>부터 이어지는 <묻는 남자>까지 연달아 읽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이었다. "되찾아야 할 '윤리적 관계'"를 넘어 법으로도 걸릴만한 내용들 아닌가.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마음에 맺힌 것은 빌려온 책에 대한 것이었다.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이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내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동희가 자바를 데려와 몇 년을 키웠어도, 자바를 내가 데려온 윤오의 고양이라고 여기고 있듯이. 관철이 나미의 연락을 받은 것처럼, 동희가 윤오에게 연락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떤 이야기는 십년만에 연락한 과거의 지인이 다짜고짜 책을 돌려주겠다며 일상에 끼어드는 내용으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소설이 아니겠지만. 고은규의 글들은 대체로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 블로그에 올렸다던 폭로글이 마치 동의없이 지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삼은 소설들을 꼬집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소설에서처럼 너는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이 멈추게 된다. 이미 쌓아온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서부터 되살아 올 사람을 남겨두고 싶지도 않고 떠오를 잘못을 쌓으며 살고 싶지도 않아 한동안 많은 것을 줄이고 지내왔는데도 그렇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잘했느냐며 되묻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은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이어지는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대의 주거활동은 왜 이토록 많은 잡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집을 위해 치러지는 비용이 커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의 내밀함 때문에? 거주 불능의 상태가 주는 위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떨어진 가치와 고립, 타인이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 소음와 불편을 마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일이 많다. 초반 단편들처럼 나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게 만드는 강렬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집'과 얽힌 불편함들도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내 집이라는 공간마저 내가 짊어지고 통제해야 하는 달팽이(만약 집이 크다면 거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껍질을 지고있는 동안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지는 불편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 그가 새 연인에게 묻는다. "나 너희 집에 가도 돼?" 새 연인이 답한다. "뭐가 어렵다고. 가자." 93 <너의 집이 좋아>" 그 중 이 사소한 대화가 지난 달 읽은 김개미의 시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왜 집으로 온다는 거니>라는 제목인데 시집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중에 하나여서, 다른 시들과 함께 이 시를 알리고 싶어 시집을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과 타인과 나 사이에서 흐르는 여러 감각들을 깨우는 내용인데다 속으로만 담고 있던 것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었다. 집과 나 사이에 타인이 끼어드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이 달라진다. 불편하고 어색한 외부가 된다. 이것은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익명으로 머물다가는 카페같은 곳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편한 태도와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게 된다. 저기는 원래 손을 대지 않는 곳인데 구경해도 괜찮아, 거기는 외출복차림으론 앉지 않지만 괜찮아, 여기는 정리를 안했지만 열어봐도 괜찮아, 우리집은 나 한 사람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하지만 네가 놀러 오겠다면 괜찮아, 하지만 사실은 모두 괜찮으면서 괜찮지 않다. 이 괜찮지않음을 예사롭게 넘기려는 사람들에게 책은 시선을 맞추고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이게 괜찮으신가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런 책이어서 어려웠고, 힘든 지점이 있었다. 타인의 상처 앞에서 누가, 왜, 어떻게, 어떤 상처인지를 궁금해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을 소홀히했기 때문에. 소설의 경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는, '이것은 소설인가'. * 올드보이 2003 *단편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자바 *단편 <묻는 남자> 45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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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07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한, 『트렁커』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고은규 작가의 《이것은 소설인가》를 만나보았다. 7편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허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늘 이야기로 다가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곱 편의 이야기에 보이는 우리의 현실은 소설처럼 극적이다. 극한에 내몰린 이들과 내모는 이들이 우리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소설인가〉 소설집과 동명의 제목이 시작을 알린다. 기계공학과의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나미가 저격 글을 쓴다는 소식을 접한 주인공 관철은 그녀의 저격 글을 찾아본다. 글을 올리는 블로그명이 '이것은 소설인가'였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나미의 글은 자신이 학창 시절 겪은 일에 대한 '저격'이었다. 관철은 그녀와의 에피소드가 별로 없었다. 그에 생각이었다. 그녀와의 통화에서 관철은 잊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야기는 갑자기 촘촘해진다. 관철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도덕적인 압박은 심해진다. 과거가 오늘이 되는 순간 심연에 있던 깊은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과 〈묻는 남자〉는 만남보다는 이별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부모의 이혼이 준 상처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이의 이별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짧은 이야기 속에도 강한 반전을 숨겨놓은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놀랐다.〈묻는 남자〉는 유출된 불법 영상으로 고통받는 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된 이야기이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옆집 남자의 계속되는 질문'미림 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에 조금씩 무너져가는 모습이 너무나 힘겨워 보였다.
《이것은 소설인가》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모두 '이것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소설집에 담은 오늘의 아픔과 슬픔이 모두 허구였으면 좋겠다. 성범죄 피해자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고,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어른이 아니길 바라고, 타인의 것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7편 모두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다. 제목에서 던진 '소설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지적 탐구가 7개 이야기와의 만남을 더욱더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것은소설인가 #고은규 #교유서가 #단편소설집 #단편소설 #소설추천 #도서추천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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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작가의 『이것은 소설인가』는 저마다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을 포함해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독특하고 기묘한 설정 속에서도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표제작 「이것은 소설인가」는 대학 시절 자신을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을 저격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나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나미의 책을 빌려 간 뒤 돌려주지 않았던 관철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관철은 나미의 의사와 관계없이 책을 가져갔고, 결국 돌려주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훗날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면서 나미가 느꼈을 감정과 책이 지닌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태도에 대한 생각이었다. 피해자는 오랜 시간 고통받지만, 가해자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현실. 정작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기 전까지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특히 나미가 블로그에 남긴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그 당연한 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에서 관철이 나미에게 했던 행동이 도지한을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장면은 단순한 인과응보를 넘어,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소설집 뒤에 수록된 해설에서 나미가 가지고 있던 『광장』은 다른 무엇으로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책이라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타인의 고유한 가치와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감각함이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점에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표제작 외에도 「묻는 남자」에서는 반복적으로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라고 묻는 옆집 남자로 인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 등장하고, 「긁지 마, 제인」에서는 심각한 피부병으로 집 안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제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긁지 마, 제인」에서 가까웠던 관계가 남긴 상처와 그로 인해 무너지는 일상은 결코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처럼 작품마다 독특한 설정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등장하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결핍, 그리고 그것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는 걸까 싶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부조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묘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소설 속 인물들이 마냥 고통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인이 실외기를 밀어 떨어뜨리는 과감한 선택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에 맞서고 상처를 견뎌내는 모습도 등장한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라고 욕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 소설집은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기묘하고 독특한 설정과 현실적인 공감이 공존하는 소설집.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안타까우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나와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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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포터즈 리뷰>
📘 「이것은 소설인가」 : 일곱 편의 소설에서 인생의 흐름을 확인하다 🔖일곱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전의 자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지만 과거의 시간은 어느 순간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뜻은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개인의 처지는 이기심으로 비춰집니다. 어려움을 공유하고 마음을 모았지만 믿음의 시간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여정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소설인가>와 <묻는 남자>의 서사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현재에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20대가 되면 내 인생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빠져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모자랐고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순간의 사건이나 섣부른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아 숨통을 조였습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받았고, 내가 모르는 상처를 누군가에게 안겨 주었을 겁니다. 타인에게 던져준 아픔에 용서를 구하는 행운이 찾아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아파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과거의 불쾌함쯤은 쿨하게 뱉어 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더불어 현재의 나로 인해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를 소망합니다. 🔖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와 <너의 집이 좋아>에서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계획으로 글을 쓰자 다짐했고, 초긍정 마인드로 나의 집을 마련하는 안도감을 누렸지만 세상만사는 내 뜻 따위는 보란 듯이 대차게 깔아뭉개 버립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힘이 빠진 상태로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풍선 인형이 되어 버립니다. 🔖 <긁지 마, 제인>과 <어느 로프공>은 ’관계‘란 두 글자에 깊은 생각을 던져 줍니다. 극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어 온습도를 적절히 유지해야 하는 제인의 집에서 돌아가는 에어컨은 이웃 사람들에게 이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제인의 가족이 외딴곳에서 살고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요. 대한민국 사람들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인의 가족은 누구도 될 수 있는 겁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 <어느 로프공>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힘을 모았던 사람들이 다시 인권을 찾은 사람과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경계선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표현했던 시간들은 새로운 경계선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사랑으로 쌓아온 시간조차 한순간에 끊어지는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장면을 통해 나의 오랜 인연의 소중함을 재차 확인해 봅니다. 🔖 「이것은 소설인가」의 제목 때문이었을까요? 소설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에는 왜 이리도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이 많은지, 과연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저자의 메시지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흐름을 공유하고 싶은 거라고, 그래서 위로를 건네주는 거라고 감히 판단해 봅니다. 🔖며칠 전에 재생한 유튜브 영상이 떠오릅니다. <응팔에 등장한 먹방 모음>이라는 타이틀로 기억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애정했기에 먹방 영상 편집본이라도 반가웠습니다. 단순 먹방을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내레이션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발전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지만 그 시절도 참 박복한 시대였다고, 하지만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고 위로할 수 있었다고. 지금처럼 SNS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거나 절망할 일은 없었다고, 그래서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어느 유튜브 영상 내레이션 중 (기억을 떠올리며 작성했습니다)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개인주의가 극에 달하는 시기에 인생의 흐름은 대체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소설인가」의 일곱 편의 이야기 덕분에 그 해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 뻥 뚫린 공간을 메워 주고 있다고. 주인공들이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나는 힘을 내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저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마르고 닳도록 눈에 담았던 문구가 이제는 몸으로 와닿아 있다고. 🔖독자에게 일곱 편 이야기의 장르를 묻는 건지, 그저 주인공 나미의 블로그명을 의미하는 건지 「이것은 소설인가」 소설집의 제목이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매고 있지만 리뷰를 마무리하며 소심한 독자는 조심스럽게 외쳐 봅니다. 소설은 인생이고 인생은 소설이라고. 모두가 매일매일 소설을 쓰고 있다고. 오늘도 나만의 소설 한 편을 멋지게 써 보겠다고. #이것은소설인가 #고은규 #교유서가 #단편소설 #교유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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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을 때가 있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상대의 행동만 보고 판단했던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것은 소설인가>>를 읽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그 행동 뒤에 있는 시간을 자꾸 생각하게 됐다. 고은규 작가의 <<이것은 소설인가>>는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을 시작으로 서로 다른 인물들의 삶이 이어지는데, 어느 이야기 하나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다. 특별히 대단한 사건을 겪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법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작품은 역시 "이것은 소설인가"였다. 10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던 대학 친구 나미와 관철의 관계를 따라가면서 과거의 일이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특히 두 사람이 기억하는 같은 사건의 무게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관철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나미에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읽으면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했던 행동 중 내가 잊어버린 것이 상대에게는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입장에서 편집된 기억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다른 작품에서는 ‘집’이라는 공간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집이라고 하면 보통 편안하고 안전한 곳을 떠올리지만, 이 책 속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불안과 외로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렵게 마련한 집이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어 외롭게 살아가는 경우가 있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주거 공간에서 밀려난 사람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더 선명하게 느끼는 사람도 나온다. 같은 집에 살아도 누군가는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게 씁쓸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불편함인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루를 버티기 어려울 만큼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도 오래 남았다. 가족에게 반복해서 거절당하고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는 모습이 씁쓸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밀어내는 동희의 모습이 답답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그 행동을 만든 과거가 보였다. 작품을 다 읽고 나니, 내가 너무 빨리 판단한 건 아닌가 싶었다.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제목도 책을 덮고 나서야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소설이라고 읽었지만 등장인물들이 겪는 불안과 관계의 문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허구의 이야기라고 마음 편히 읽기 힘든 현실 같은 소설이었다. 특히 좋았던 건 작가가 인물들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일곱 편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역시 표제작이었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그건 정말 소설이었을까’라는 제목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한동안 멈춰 있게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 이 서평은 고유서가(@gyoyu_books)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것은소설인가 #고은규 #고유서가#고은규소설 #소설집 #한국소설 #단편소설 #현대소설 #문학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독서기록 #독서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책리뷰 #주거불안 #관계의상처 #타인의시선 #현실적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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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것은 소설인가 by고은규 🌱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이것은 소설인가, 현실인가! 결핍과 상처, 소외와 현실적 어려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 🌱 ~ 책 표지가 무척 신비롭고 아름답다.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에 작가님이 써준 메시지가 너무 아름다웠다. "허구를 빌려 진심을 전한다" 우리가 소설을 사랑하고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현실과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일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에 동화되고 그들의 감정에 몰입되어 간접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시간만큼 우리는 성장하게 되어있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표제작인 '이것은 소설인가' 부터 '묻는 남자',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 이다.
이 책의 제목이 '이것은 소설인가' 이고, 이 작품 자체가 소설이며, 작가가 소설가이다 보니 내게는 첫번째 작품 '이것은 소설인가' 에서 가장 많은 진심이 느껴졌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 등등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이 책의 프롤로그 이다. 어느 날, 인섭이 관철에게 전화한다. 나미가 블로그에 저격글을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선배 M과 동기 E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곧 관철에 대한 이야기도 올린다고 했다고 한다. 관철은 과거 나미와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때 관철은 나미에게 '광장' 책을 빌렸었다. 관철은 글쓰기로 나미에게 도움도 받았고 그 덕에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의 길에도 들어선다. 나미는 관철에게 은인이기도 했다. 관철은 허구의 사건을 구상하고 그걸 문장으로 완성하는 것은 흥미로윘다. 독촉만 받지 않는다면. 관철은 나미에게 빌려온 광장 초판본을 자신이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 지한에게 빌려주게 된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았다. 나미가 광장 책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꼭 그책으로. 관철은 아주아주 힘들게 책을 돌려받기로 한다. 과연 진짜 그 책이 돌아왔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때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그래서 일상에서 드라마틱한 경험이라도 할라치면 거기에 뼈와 살을 덧 붙히고 화장까지 곱게 시켜서 소설로 재탄생시키고 싶은 것이 소설가의 본능이다. 광장 책을 나미에게 먼저 돌려주지 않은 것은 관철이지만 그는 고대로 더 나쁘게 당하고 만다. 이런 것이 소설이었나 보다. 나미가 쓴 저격글도 소설과 진실 사이 그 경계선에 있었다. 세상에 완전한 창작은 없다. 허구의 바탕에는 사실이 깔려있다. 뒤이어 나오는 소설들도 작가의 경험이 재구성되고 의미가 덧대어진 이야기들일 것이다. 허구인 이야기지만 우리는 오늘도 거기서 진짜 세상을 찾아본다. 그 안에 우리의 진심도 있고 진실도 있다. 우리가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gyoyu_books @catbookstar 🔅<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이것은소설인가 #고은규 #교유서가 #단편소설 #소설집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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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고은규 작가님의 《이것은 소설인가》의 제목에서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책에 담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질문은 훨씬 더 불편하고 현실적인 곳을 향한다.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야기 속에 혹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누군가는 타인의 집에서 잠을 대신 지키며 돈을 벌고, 누군가는 불법으로 증축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보다 어느 순간 ‘나도 저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타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지금 내 옆집에, 같은 지하철 안에, 같은 회사에, 혹은 내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쉽게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왜 저렇게 됐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저 사람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동희가 관계를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긁지 마, 제인]의 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는 상황에 놓이는 과정도 그렇다. 사람의 상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남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반복되고, 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밀려나고,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관계를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만 떼어놓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뒤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전부 되돌릴 수는 없다. 상처받지 않았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과거의 선택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모든 것까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과 아직 되돌릴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 회복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소설인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안전과 휴식, 가족과 안정을 먼저 떠올린다. 하루를 버티고 돌아와 몸을 눕힐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집이 오히려 인물들의 불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너의 집이 좋아]에서 주인공은 어렵게 집을 마련하지만 그 주변은 입주하지 않은 빌라들로 가득하다. 🔖“검은 마을이라 불리면 딱 좋은 곳.”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고, 밤이 되면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안정과 성공의 상징처럼 사용되어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바라보면 집은 동시에 빚과 불안, 고립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어느 로프공]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증축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열악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집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는 순간, 주거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책은 지금 사회의 현실과 맞닿는다.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누구에게는 집이 휴식처이고, 누구에게는 투자 자산이며, 또 누구에게는 평생 벗어나기 힘든 부채가 된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안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얻고 싶은 권리가 된다. 그 차이를 소설은 사회적 비판의 언어가 아닌 인물들의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묻는 남자]에서 특히 섬뜩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질문 하나였다.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 질문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공포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된다. 여기서 나는 ‘말에는 의도가 없어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개 상대방의 의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한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는데. 그냥 물어본 건데.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자신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구나 트라우마는 현재의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순간에 겹쳐지면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묻는 남자]를 읽으며 ‘사람의 기억은 끝난 사건을 끝난 상태로만 보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책 전체를 의미하는 가장 큰 정서는 ‘생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 불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사람을 믿어보는 것. 끊어버리고 싶었던 관계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묶여 있으면서도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수면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엘렌 최 부부에게 수면을 팔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맞았다.” ‘수면을 판다’는 표현. 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휴식인데, 누군가는 자신의 휴식마저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돈이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잠까지 내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주 조용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면서도 인물들을 절망 속에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느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 영원히 상처 입은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뒤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이해하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에서 동희가 자신의 관계 방식을 돌아보는 부분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왔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나자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때 사람은 때때로 이상한 선택을 한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내가 먼저 떠난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마음을 닫는다. 거절당할까 봐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겉으로 보면 냉정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쪽에는 오랫동안 쌓인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사람이 관계에서 반복하는 행동에는 그 사람만의 과거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표제작 [이것은 소설인가]에서는 특히 ‘책임’이라는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빌려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의외로 이 당연한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변명하고, 사과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작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순간에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윤리는 아주 작은 생활의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사소한 책임들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특정 사건의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삶 안에는 남들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균열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문제와 결핍을 안고 있으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이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표정 뒤에는 오랫동안 견뎌온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이해와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소설인가》가 내게 남긴 질문은 ‘이 이야기가 실제냐 허구냐’에 머물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주변의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오늘도 어디선가 조용히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 아무에게도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그래도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 내게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다. _ #이것은소설인가 #교유서가 #고은규 #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책소개 #책리뷰 #도서리뷰 #책추천 #신간 #신간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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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아니, 고양이와 나비가 아련하게 노니는 바닷가의 환상 같은 표지와는 정반대의 이야기. 판타지는 1도 틈입할 수 없게 짜여진 공간 안에 장착된 불통과 소외, 상처와 PTSD, 돌이킬 수 없는 오해와 편견의 사슬들이 단단히 묶여 있는 이야기. 작금의 나를 우리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만 같아서 조금은 슬프고 창피하고 무섭기도 한 이야기. 그럼에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장 넘기길 서두르게 되는 이야기. 단편집을 이렇게 페이지터너처럼 쓰는 작가도 있구나 하며 빠져들었고, 결말마다 조금씩 섬뜩한 것이 다음엔 기묘한 이야기처럼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소설 맞다. 모처럼 한달음에 읽었던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