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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고은규 작가님의 《이것은 소설인가》의 제목에서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책에 담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질문은 훨씬 더 불편하고 현실적인 곳을 향한다.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야기 속에 혹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누군가는 타인의 집에서 잠을 대신 지키며 돈을 벌고, 누군가는 불법으로 증축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보다 어느 순간 ‘나도 저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타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지금 내 옆집에, 같은 지하철 안에, 같은 회사에, 혹은 내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쉽게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왜 저렇게 됐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저 사람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동희가 관계를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긁지 마, 제인]의 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는 상황에 놓이는 과정도 그렇다. 사람의 상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남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반복되고, 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밀려나고,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관계를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만 떼어놓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뒤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전부 되돌릴 수는 없다. 상처받지 않았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과거의 선택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모든 것까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과 아직 되돌릴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 회복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소설인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안전과 휴식, 가족과 안정을 먼저 떠올린다. 하루를 버티고 돌아와 몸을 눕힐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집이 오히려 인물들의 불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너의 집이 좋아]에서 주인공은 어렵게 집을 마련하지만 그 주변은 입주하지 않은 빌라들로 가득하다. 🔖“검은 마을이라 불리면 딱 좋은 곳.”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고, 밤이 되면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안정과 성공의 상징처럼 사용되어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바라보면 집은 동시에 빚과 불안, 고립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어느 로프공]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증축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열악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집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는 순간, 주거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책은 지금 사회의 현실과 맞닿는다.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누구에게는 집이 휴식처이고, 누구에게는 투자 자산이며, 또 누구에게는 평생 벗어나기 힘든 부채가 된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안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얻고 싶은 권리가 된다. 그 차이를 소설은 사회적 비판의 언어가 아닌 인물들의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묻는 남자]에서 특히 섬뜩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질문 하나였다.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 질문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공포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된다. 여기서 나는 ‘말에는 의도가 없어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개 상대방의 의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한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는데. 그냥 물어본 건데.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자신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구나 트라우마는 현재의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순간에 겹쳐지면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묻는 남자]를 읽으며 ‘사람의 기억은 끝난 사건을 끝난 상태로만 보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책 전체를 의미하는 가장 큰 정서는 ‘생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 불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사람을 믿어보는 것. 끊어버리고 싶었던 관계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묶여 있으면서도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수면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엘렌 최 부부에게 수면을 팔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맞았다.” ‘수면을 판다’는 표현. 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휴식인데, 누군가는 자신의 휴식마저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돈이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잠까지 내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주 조용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면서도 인물들을 절망 속에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느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 영원히 상처 입은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뒤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이해하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에서 동희가 자신의 관계 방식을 돌아보는 부분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왔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나자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때 사람은 때때로 이상한 선택을 한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내가 먼저 떠난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마음을 닫는다. 거절당할까 봐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겉으로 보면 냉정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쪽에는 오랫동안 쌓인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사람이 관계에서 반복하는 행동에는 그 사람만의 과거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표제작 [이것은 소설인가]에서는 특히 ‘책임’이라는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빌려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의외로 이 당연한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변명하고, 사과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작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순간에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윤리는 아주 작은 생활의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사소한 책임들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특정 사건의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삶 안에는 남들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균열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문제와 결핍을 안고 있으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이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표정 뒤에는 오랫동안 견뎌온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이해와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소설인가》가 내게 남긴 질문은 ‘이 이야기가 실제냐 허구냐’에 머물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주변의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오늘도 어디선가 조용히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 아무에게도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그래도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 내게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다. _ #이것은소설인가 #교유서가 #고은규 #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책소개 #책리뷰 #도서리뷰 #책추천 #신간 #신간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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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아니, 고양이와 나비가 아련하게 노니는 바닷가의 환상 같은 표지와는 정반대의 이야기. 판타지는 1도 틈입할 수 없게 짜여진 공간 안에 장착된 불통과 소외, 상처와 PTSD, 돌이킬 수 없는 오해와 편견의 사슬들이 단단히 묶여 있는 이야기. 작금의 나를 우리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만 같아서 조금은 슬프고 창피하고 무섭기도 한 이야기. 그럼에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장 넘기길 서두르게 되는 이야기. 단편집을 이렇게 페이지터너처럼 쓰는 작가도 있구나 하며 빠져들었고, 결말마다 조금씩 섬뜩한 것이 다음엔 기묘한 이야기처럼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소설 맞다. 모처럼 한달음에 읽었던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