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0.0

포토/동영상 (10)

리뷰 총점 종이책
셸리 숍앤센터
"셸리 숍앤센터" 내용보기
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제목부터 조금 낯설고, 설정은 더 낯선 소설이다.이 작품의 배경에는 혁신적인 교통수단 ‘웨일홀’이 있다. 웨일홀은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지만, 일정 확률로 사람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쌓여가자, 한 연구자는 그 기관들을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그 존
"셸리 숍앤센터" 내용보기

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제목부터 조금 낯설고, 설정은 더 낯선 소설이다.


이 작품의 배경에는 혁신적인 교통수단 ‘웨일홀’이 있다. 웨일홀은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지만, 일정 확률로 사람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쌓여가자, 한 연구자는 그 기관들을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그 존재가 바로 ‘프랑’이다.

프랑은 인간의 말을 배우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으며,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주문 제작된다. 하지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인간 사회에서 프랑은 사고팔 수 있는 ‘반려 생명체’에 가깝다.


필요할 때는 사랑받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에게 버려지거나 주인을 잃은 프랑들이 모이는 곳이 셸리 센터다.


이곳에는 인간 여자아이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인간과 똑같이 생긴 노엘과, 거대한 몸과 강한 공격성을 지닌 허슬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를 찾은 조해성이 노엘과 허슬을 함께 데려간다. 노엘에게는 센터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이지만, 조해성의 집에서 두 프랑은 자신들이 단순한 반려 존재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조해성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자 프랑의 능력과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노엘과 허슬을 있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노엘과 허슬은 그의 집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자신들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과 프랑 사이에 얼마나 큰 권력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 경험은 두 프랑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노엘은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프랑이고, 허슬은 인간과 전혀 다른 몸을 가졌지만 역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그들의 감정이나 의지보다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반려 생명체를 만든다는 설정은 꽤 독특하고 기괴하다. 그런데 막상 작품이 다루는 문제는 의외로 현실적이었다.

소유와 착취, 정상과 비정상,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 약자를 대하는 방식 같은 문제들이 ‘프랑’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프랑들이 사람의 취향에 맞춰 주문 제작된다는 설정이었다.

예쁘고 귀엽고 특별하다는 이유로 선택받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학습하며 감정까지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인간에게는 결국 ‘내가 돈을 주고 산 존재’로 취급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조해성이 노엘과 허슬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겉으로는 둘을 선택해 데려가지만, 그 선택이 꼭 애정이나 보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말이 때로는 그 존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소유하고 이용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소설 속 미래 이야기인데도 지금 우리의 모습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동물을 대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판단할 때가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쓸모가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프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받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소설 속 설정으로만 넘기기 어려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다움’이라는 말도 계속 생각하게 됐다.


소설 속 인간들은 오히려 프랑을 쉽게 사고팔고, 필요하면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린다.

반대로 인간이 아닌 프랑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상처받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다운 존재는 누구일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더 낮은 존재로 취급해도 되는지,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됐다.


버려진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 오히려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였다.


나무옆의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셸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l*****4 2026.08.2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셸리 숍앤센터
"셸리 숍앤센터 "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설재인 작가님의 작품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설재인표 호러, 스릴러, 공포 장르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고 일단 믿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셸리 숍앤센터』의 경우에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인체 조합 내지는 개조라고 해야 할 소재가 기괴하면
"셸리 숍앤센터 "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설재인 작가님의 작품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설재인표 호러, 스릴러, 공포 장르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고 일단 믿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셸리 숍앤센터』의 경우에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인체 조합 내지는 개조라고 해야 할 소재가 기괴하면서도 설재인표로 그려진 바디 호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더욱 궁금했던 것 같다. 


작품 배경은 대한민국, 순간 이동이 세계 최초로 가능해진 시대에 이 순간 이동을 하려면 웨일홀이라는 수단이 필요했고 1 퍼센트라는 작지만 절대 없지 않은 확률로 이동 중에 신체 일부가 탈락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이게 비록 1퍼센트지만 쌓이다보니 점점 처리 곤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 프랑이란 존재로 프랑은 탈락한 신체 일부를 활용해 일종의 반려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반려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탈락한 신체의 일부를 재활용한 경우라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 홍보가 되느냐, 또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라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사람들로부터 굉장한 인기를 끌게 되고 사람들은 유행처럼 프랑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반려동물의 인기가 급증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유기되는 반려동물에 대한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는데 프랑을 만드는 셸리 사에서 셸리 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이렇게 유기되는 프랑을 관리하는 위해서이다.



딱 현실의 유기견 보호소와 비슷한 시스템 같다. 입양되거나 아니면 안락사되거나... 작품에선 셸리 센터에서 한 고위 군인에게 입양된 노엘과 허슬이라는 프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활용하지만 분명 인간은 아닌,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에서 탄생한 존재들이 유기되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이상으로 실험의 대상이 되고 결국은 파괴로 이어지는 절망적 상황을 바꿔보려는 프랑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바디 호러를 넘어 생존을 위한 유대로, 그리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조건을 묻는 기괴하고도 서늘한 이야기.
"인간의 조건을 묻는 기괴하고도 서늘한 이야기."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 (@kyobobook_vora )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_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몸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인가.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교통수단 웨일
"인간의 조건을 묻는 기괴하고도 서늘한 이야기."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 (@kyobobook_vora )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_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몸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인가.


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교통수단 웨일홀의 부작용으로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설정부터 파격적이다. 여기에 인간의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사랑받다가 버려지며, 심지어 죽은 뒤에도 재활용되는 프랑의 세계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기괴한 신체 묘사와 파격적인 세계관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불편함의 정체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프랑의 모습이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 사회가 더 섬뜩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몸이 조각나고 찢기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자신의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그 존재의 가치마저 없애버리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프랑은 인간이 버린 신체 기관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어떤 프랑은 팔이 여덟 개이고, 어떤 프랑은 코가 여러 개이며,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존재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의 모습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다. 인간이 원하는 모습이어야 하고, 인간의 말을 따라야 하며,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 설정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유욕에 대해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행동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물론 현실의 반려동물과 소설 속 프랑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를 독립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사랑은 얼마든지 통제와 소유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


특히 프랑을 설명하는 광고 문구인 '개보다 나은 프랑'은 이 세계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훈련하기 쉽다는 점이 프랑의 장점으로 내세워진다. 여기에는 생명체의 가치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지에 따라 평가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세계. 

쓸모가 없어진 순간 사랑받을 자격까지 사라지는 세계.


프랑의 비극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프랑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권리까지 정당하게 갖게 된 것일까.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소유하고, 이용하고, 폐기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은 소설 속 가상의 생명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쓸모없거나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프랑 노엘과 거대한 몸집에 거친 성격을 지닌 프랑 허슬이 있다. 노엘은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고, 허슬은 인간의 기준에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위협적인 존재처럼 취급된다. 두 존재는 외형부터 성격까지 대조적이지만, 인간이 정해놓은 질서 속에서 상처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노엘의 고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면 인간일까? 인간의 뇌를 가졌다면 인간일까? 생각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느낀다면, 그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노엘이 느끼는 혼란은 인간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견고한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프랑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외형이라면, 노엘은 그 기준을 흔드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노엘이 인간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닮음은 정체를 감춰야 하는 이유가 된다.


책 속에서 노엘은 이렇게 생각한다.

🔖“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자신이 누구인지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 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외로울까.


종종 차별받는 사람에게 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정작 돌아봐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배척하는 사회일 것이다.


다름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다름을 이유로 타인을 밀어내는 시선이 문제다.


허슬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을 드러낸다. 거대한 몸과 거친 말투,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쉽게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노엘을 괴롭히는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이들이 노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함께 고통을 겪은 존재로서 노엘과 연결된다.


이들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는 거칠고, 애정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모순적이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같은 세계의 폭력에 맞서게 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로 닮아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임에도 같은 고통을 알아보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


노엘과 허슬의 관계는 연대가 반드시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때로는 분노와 불신, 충돌을 거쳐서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노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인물의 태도는 겉으로는 이해와 허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엘은 속으로 되묻는다.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인간은 자신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도덕성, 공감 능력, 언어와 사회성 같은 특성을 인간다움의 근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과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은 다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한 것은 아니며,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악한 것도 아니다.


소설 속 인간들은 프랑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프랑을 학대하고, 사랑을 말하면서 필요에 따라 버리며, 생명을 만들어내면서 그 생명이 겪는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프랑을 사랑스러운 반려라고 부르지만, 불편해지는 순간에는 통제하고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인간이라는 신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인간다움이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돌려주지 못하는 존재,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윤리적 태도가 드러난다.


물론 인간다움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자신의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려는 태도는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노엘의 질문은 프랑에게 인간의 자격을 부여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독점해온 그 자격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 반문에 가깝다.


인간이 프랑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우월함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면, 인간다움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버려진 프랑의 입양 절차와 과거의 동물 입양에 관한 이야기가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당신은 인간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과거에는 유기된 개와 고양이를 입양할 때도 복잡한 문답을 거쳐야 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어느 순간 인간에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묵직하다.

🔖“왜 유기된 프랑들은 이렇게 죽고 '재활용'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다움에 대한 문답은 더 이상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인간답다'는 게 뭔가? 인간이 뭔가?”


이 대목을 읽으며 기준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람 사이의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는 규칙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규칙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누군가는 판단하는 자리에 서고, 누군가는 판단받는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기준이 불공정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쪽이 그것을 정상적인 질서라고 주장하면, 차별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작품 속 프랑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권리는 갖지 못한다. 인간은 프랑을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면서도 프랑에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편견을 넘어선다. 한쪽은 다른 쪽의 존재 가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다른 쪽은 그 판단에 저항할 수단마저 제한당한다.


차별이 무서운 이유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만 있지 않다. 차별이 제도와 관습, 경제적 이해관계와 결합하면 폭력은 개인의 악의가 없어도 반복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잔인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세계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은 프랑을 괴롭히는 행위를 악행으로 여기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허용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프랑의 쓰임을 정하는 것도 인간이며, 프랑이 버려진 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프랑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주인이 나타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주인의 선의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노엘과 허슬이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세계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들의 저항은 복수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을 다른 존재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 안에 자리한다.


노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확신을 얻으려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증을 얻고 싶어.”


이 말은 노엘이 인간과 프랑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압축한다. 인간과 같은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노엘은 인간이 인간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는 말과, 프랑을 손쉽게 죽이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노엘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억압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일 수 있지만, 저항의 과정에서 폭력이 반복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 것인가.


작품은 이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흔히 비극이 되풀이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더 생각해볼 것은 반복되는 것이 사건 자체인지, 아니면 사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인지에 관한 문제다.


지배하는 존재와 지배받는 존재가 바뀌어도 누군가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불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과거의 비극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은 권력을 빼앗아오는 일로 끝나서는 안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전의 질서에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새롭게 얻은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도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장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후에 어떤 세계가 가능할지 질문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억압받던 존재가 권력을 얻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어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더 많은 권리를 원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얻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의 자유를 제한하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해방은 지배자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흔히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가진 존재를 마주하면 누구나 낯섦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낯섦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낯섦을 이유로 상대의 권리를 빼앗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존중은 무엇일까.


상대가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까. 

상대가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존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에 가까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를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차이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존중은 반드시 호감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다.


프랑의 세계는 이 사실을 불편할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프랑을 사랑하지 않을 때조차 그들의 존재와 삶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셸리 숍앤센터》를 읽고 남는 것은 인간다움이라는 말의 무게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것은 아니다.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질문받아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물론 타인을 존중한다고 해서 언제나 선한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로 시작한 행동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정의를 위한 저항도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한 번 획득하면 영원히 유지되는 자격증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 

옳다고 믿는 기준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가 다른 존재의 고통 위에 세워져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일까, 

아니면 인간답게 행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_


#셸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교보문고 #VORA #보라서평단 #책추천 

#장르소설 #스릴러소설 #공포소설 #한국소설 

#소설 #소설추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t********0 2026.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 🧠 《셸리 숍앤센터》 저자, 설재인 👁 🫁🧠 P.133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애당초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질적인 프랑이 아니었을 테다. 그저 팔다리가 두 개씩 달린 모양 그대로, 다른 많은 프랑들과 어울렸겠지.👁 P.134"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 🧠 《셸리 숍앤센터》 저자, 설재인 👁 🫁



🧠 P.133

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애당초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질적인 프랑이 아니었을 테다. 그저 팔다리가 두 개씩 달린 모양 그대로, 다른 많은 프랑들과 어울렸겠지.


👁 P.134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노엘은 속으로 물었다.


🫁 P.186

지금은 거의 멸종한 개와 고양이가 아직 넘치던 시절 유기된 그들을 인간이 입양하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문답이 필요했다고 노엘은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인간 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그런 것들을 증명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야 했었다고. 물론 그런 시험을 거치고 싶지 않은 이들도 동물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적잖은 돈을 주고 사면 됐다고.


🦴 P.187

왜 유기된 프랑들은 이렇게 죽고 '재활용'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다움'에 대한 문답은 더 이상 인간에지 주어지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인간답다'는 게 뭔가? 인간이 뭔가?



나는 책을 읽을 때 제목이나 주제가 되는 단어나 어휘에 집중해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이란 단어에 조금 집중해서 읽어보게 됐다.


'프랑'이란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스위스의 1프랑은 한화로 약 1,687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 화폐 단위이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생명 창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공상 과학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도 이 책 속의 '프랑'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의 이름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서 명칭을 따왔을 것이다. 아무래도 신체를 얼기설기 이어 붙인,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의미의 '인조 생명체'의 이름으론 이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작중의 인간들이 '프랑'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치 1프랑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값싼 '물건'들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책 안에서의 '프랑'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태도는 귀한 것을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문이었던 것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인체'를 모아 만든 인조 생명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게 됐단 말인가? 현대인의 윤리 의식과 도덕성을 가진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도된 거부감과 불쾌감에 자연스럽게 섞인 감정선과 서사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또 '인간'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게 된다. 존재에 대한 철학, 생각 등을 깊게 고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실제로 이 책 속의 '인간'들보단, 인조인간인 '프랑'들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작가가 의도한 서술 묘사겠지만, 이 책 안에서의 인간은 오로지 '욕망'만 남은 빈 껍데기 같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프랑'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 '프랑'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마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 프랑이 되기로 선택한 책 속의 한 인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의 과정을 통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이해'란, 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해란, '나'라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는 자아가 탄탄하고,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으면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더욱 그 방향을 잃기 쉽다.


또한 난 '프랑'들이 여기서 더 인간적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별개로, '프랑'이란 인조인간이 마치 AI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 기관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간들에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프랑 중 일부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인공인 '노엘'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인조인간인 '프랑'과 실제 인간의 차이가 더욱 모호해지는 상황을 보며, 마치 우리 시대의 'AI'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기에 더욱 인문학과 철학이 발달하고 중요해지는 시기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참 시기적절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고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나무 옆 의자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서평 #도서협찬 #셜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h********4 2026.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호러 소설 추천 셸리 숍앤센터
"호러 소설 추천 셸리 숍앤센터" 내용보기
처음에는 버려진 인체 기관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는 독특한 설정에 관심이 갔다. 팔이 여러 개이거나 눈과 코가 일반적인 형태와 다른 프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기괴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프랑은 인간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반려가 되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에 따라 입양되고 버려지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어떻게
"호러 소설 추천 셸리 숍앤센터" 내용보기

처음에는 버려진 인체 기관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는 독특한 설정에 관심이 갔다. 팔이 여러 개이거나 눈과 코가 일반적인 형태와 다른 프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기괴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프랑은 인간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반려가 되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에 따라 입양되고 버려지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노엘은 인간과 프랑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노엘이 인간다움의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호러 장르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어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넘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a******1 2026.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셸리 숍앤센터 / 설재인
"셸리 숍앤센터 / 설재인" 내용보기
👾 코가 세 개 달린 모카, 팔이 여덟 개인 예니. 『셸리 숍앤센터』 속 세상에는 인간의 신체를 조합해 만든 생명체 '프랑'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 제작하고, 동시에 버려진 프랑을 보호하는 곳, 셸리 숍앤센터다.👾 이 기괴한 설정의 발단은 순간이동 수단 '웨일홀'. 편리하지만 이동 중 신체 일부가 탈락하는 부작용이 있고, 그렇게 쌓인 인체 조각으로 염
"셸리 숍앤센터 / 설재인" 내용보기

👾 코가 세 개 달린 모카, 팔이 여덟 개인 예니. 『셸리 숍앤센터』 속 세상에는 인간의 신체를 조합해 만든 생명체 '프랑'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 제작하고, 동시에 버려진 프랑을 보호하는 곳, 셸리 숍앤센터다.


👾 이 기괴한 설정의 발단은 순간이동 수단 '웨일홀'. 편리하지만 이동 중 신체 일부가 탈락하는 부작용이 있고, 그렇게 쌓인 인체 조각으로 염 박사가 만들어낸 게 프랑이다. 그는 이를 "환경을 위한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라 부른다.


👾 하지만 프랑은 단순한 상품일까.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졌고, 감정을 느끼고, 언어로 소통하는 존재. 그럼에도 프랑은 인간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 당신은 인간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 186p


👾 프랑은 필요할 때 사랑받지만 필요가 사라지면 버려진다. 두 번 유기된 프랑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설정은, 이 세계가 프랑에게 존재의 이유조차 인간이 정해준다는 걸 보여준다.


👾 특히 인간의 대뇌를 그대로 이식받은 노엘과 허슬은 몸 전체가 프랑이면서도 사고와 감정은 인간의 것을 그대로 지녔다. 그래서 이 둘 앞에서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인간의 몸이면 인간인가, 생각하고 느끼면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다움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가.


🗒 노엘, 역사는 반복된단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보통 잘못을 한 사람들은 몇백 년을 살아도 자신이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대부분이야! - 298p


👾 읽다 보면 인간과 프랑을 구분하던 기준이 점점 흐려진다. 결국 이 소설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태어난 방식만으로 한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독자에게 돌려준다.


👾 인간 뇌를 이식받은 노엘, 허슬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몸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든 그게 인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다 읽고 나서도 "인간답다"는 말 자체가 헐거워진 느낌이다. 바디호러 좋아한다면 취향저격 예상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 나무옆의지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y*******4 2026.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대박!!!!
"대박!!!! " 내용보기
역시 설재인 작가님이구나!독특한 소재를 가져와 더한 기괴한 설정을 입히고 기발한 상상력 한 방울을 떨어뜨려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 남는 소설을 선물해 주는 설재인 작가님. 저는 개인적으로 설재인 작가님이 제일 기괴한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읽어보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꼬~옥 이요.   줄거리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
"대박!!!! " 내용보기

역시 설재인 작가님이구나!



독특한 소재를 가져와 더한 기괴한 설정을 입히고 기발한 상상력 한 방울을 떨어뜨려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 남는 소설을 선물해 주는 설재인 작가님. 


저는 개인적으로 설재인 작가님이 제일 기괴한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읽어보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꼬~옥 이요.   



줄거리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웨일홀'. 이곳을 이용하면 부작용으로 신체기관이 탈락된다. 지금은 많이 발전해 탈락되는 기관이 적어졌지만, 한때 많은 신체가 탈락되었고, 그 기관들로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이지만 사람은 아닌.... 애완 인간 일명 '프랑'. 


프랑 '노엘'은 거의 인간과 흡사한 지능과 외형을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엘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내 생각 더하기



읽다 보면 저절로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소설 '셸리 숍앤센터'. 등장인물들의 외형을 표현한 문장이라든가, 간혹가다 일어나는 노엘의 이상 증세를 나타낼 때의 문장 등등이 조금은 서늘하고 무서워 어깨가 자동으로 움직였어요. (흥 아님)  



설정부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미친 생각이었고요. 인간이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현실을 자각한 순간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때부터 짜릿했어요. 어떻게 이야기가 끝이 날지 상상하느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습니다.    



인간이 안일하게 생각한 생명의 소중함. 이 생각이 불러온 재앙 같은 현실을 또 다른 실험정신으로 수습할지, 아니면 프랑이란 존재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 책은 결국 인간이 벌인 일을 인간이 수습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스토리였어요.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숙제를 냅니다. '인간이 편하자고 계속해서 이기적인 행동을 취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끝으로 '작가의 말'에 등장한 책의 소재를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 뜨끔했어요. 


YES마니아 : 로얄 t******9 2026.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작가의말 꼭 읽어주세요
"작가의말 꼭 읽어주세요" 내용보기
도서제공(@namu_bench )#셸리숍앤센터 #나무옆의자#서평단처음에는 언와인드 책이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배경에서 등장인물 이름도 친근한 우리나라 이름.그래서였을까 몰입이 더 빠르게 되어서 소설 속에서 설명하는 프랑들의 생김새, 공간과 행동에 대한 설명들이 머릿속에 너무 잘그려져서 중간쯤에는 정말...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비위약하신분들 조심조심)덮을까...?하다 반전에
"작가의말 꼭 읽어주세요" 내용보기

도서제공(@namu_bench )


#셸리숍앤센터 #나무옆의자#서평단


처음에는 언와인드 책이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배경에서 등장인물 이름도 친근한 우리나라 이름.

그래서였을까 몰입이 더 빠르게 되어서 소설 속에서 설명하는 프랑들의 생김새, 공간과 행동에 대한 설명들이 머릿속에 너무 잘그려져서 중간쯤에는 

정말...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비위약하신분들 조심조심)


덮을까...?하다 반전에 반전!!! 덮었으면 후회할뻔 했다. 


프랑들을 보면서 


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품종에 

다양한 품종을 만들려고 좁은 철장에서 희생당하는 강아지들.

예쁘지 않거나 말썽을 피우거나 대소변못가리면 파양당하는 강아지들. 


단지 너무 예뻐서 너무 귀여워서. 

생명을 외향적으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요즘 뉴스를 보며 '인간이 제일 무섭네..' 했는데 

이 소설을 보면서도 '그래 인간이 제일 무서워'하게 된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라는 돌멩이하나에 변화가 일어나는 세계


P.273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P.295

역사가 순환한다고 얘기했지? 인간들은 언제나 혐오할 군집을 찾아내곤 했어.신분제가 없어지면 인종을 따졌고,인종차별이 완화되면 성별을 따졌고,그마저도 사라지자 다시금 경제적 계급을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건 현재진행형이지

P.298

역사는 반복된단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보통 잘못을 한 사람들은 몇 백년을 살아도 자신이 잘못했는지 모르는게 대부분이야


작가의 말은 읽지 않고 넘어가는 나인데 이 책은 궁금했다. 

★작가의 말에서 마지막 장이라도 꼭 읽어보세요 !!!!★


바디호러... 글을 읽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속이 울렁거릴 수 있지??

글의 힘이 정말 대단한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작가님이 고민하신부분이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였고 그 자문에 대한 하나의 답과 나의 반응은 일치했다. 


바디호러지만 요즘 시대의 문제점이 반영되어서 반성도 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였다.


j****6 2026.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들이 나를 일러 괴물아 하니 이편이 답하더라. 누가 무엇이 될지 똑똑히 보여주마고.
"그들이 나를 일러 괴물아 하니 이편이 답하더라. 누가 무엇이 될지 똑똑히 보여주마고." 내용보기
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그들이 나를 일러 괴물아 하니 이편이 답하더라. 누가 무엇이 될지 똑똑히 보여주마고." 내용보기

 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탈규범과 이질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기대 밖이라면 밖이나 퍽 실망스럽지 않은 형태의 밖이다. 그래. 버릴 수 없다면 휘두르는 것도 방법이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부수고 뒤엎어 끄집어내는 것 또한 방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질이란 바이오동력 오물통 내지는 비용 많이 드는 온열가죽주머니 정도 아닌가.


 p.18 어차피 대중의 미감은 주입된 대로 형성된다고 염 박사는 결론 내렸다. 만약 웨일홀에 널브러진 인체 기관들로 새 종족을 만들고서는, 아주 귀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라며 오랫동안 세뇌한다면 다음 세대쯤에는 그것들이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되지 않을까?


 p.235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누군가의 악의가 만들어낸 일이 아니니까. 허튼 짓, 모난 짓, 튀는 짓만 안 하면 편하게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렇게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인지 모르는 채로 편히 희희낙락했다.



 권력은, 거칠게 말해, 규정하는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무엇일지를 규정하는 힘이다. 말을 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의 선이 본래부터 그어져있지 않으니, 선을 긋고 지우는 것 또한 권력을 쥔 자의 권한이자 생리이다. '그'의 언어로 '나'를 변호하는 데에는 불가항의 한계가 있다. 착한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주는 밥을 신나게 처먹은 가축의 끝은 도살이다.


 누군가를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다 못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비교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이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코앞에서 나자빠지는 '동류'들로 증명해주는 것. 결코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노력에 달렸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


 p.10 센터의 프랑들은 세 평짜리 방에 두셋씩 살았다. 각각의 방은 흙바닥과 철창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옆이나 저 너머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봉사자가 자신의 방을 지나쳐 다른 프랑의 방으로 향할 때마다 프랑들은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두 손을 턱 밑에 댄 채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p.162 "존재는 취급에서 나와. 우리가 취급받는 대로 우리는 존재해. 너도 나도 다 쓰고 태워버릴 것으로 취급받지. 그러니까… 우린 마치 플라스틱 같은 거야. 쓸 땐 신나게 사용해놓고 나중에는 악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



 작중 풍경이 꼭 그렇다. 이 얼마나 여상하고 평화로운지. 흉한 것은 처박아 치우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냅다 쭉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없는 것들이야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못 산다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실로 인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계는. 오래 전부터, 느리게 반복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작가는 '있는 힘껏 크게 뜬 눈과 턱 밑에 괸 손'으로 호소하는 대신 묻는다. 아랫도리며 배때지 싹 까놓고 보면 대체 무엇이 인간이냐고. 그는 아름다운, 오래된 순리를 박살낼 작정이다. 독자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끝장나게 으깨 부수고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라도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었을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머리가 왕왕 울리고 밑이 쑤시는(298)" 감각을 뇌리 깊숙이 때려박을 참이라고.


 p.133 "네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솎아내기만 해도 충분해. 혹시 인간을 공경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p.276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왕 받은 거 실컷 써주리라 다짐했다. 이게 정의라고 애써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세상이 망한다고 울부짖는 자는 그 세상에서 안주하는 자 뿐이다. 얻어맞는 자는 안다. 나를 짓밟는 저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또한 나, 무수한 '나'들이라는 사실을. 큰 불은 불씨를 삼킨다. 화근이 세상을 불살라버리는 꼴을 보여주겠다. 읽는 이가 불길의 어느 편에 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신 말은 누구의 혀인가? 누가, 무엇이 '나'이겠는가?


 마지막에 도달한 독자는 분명 살자고, 살아야겠다고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럽혀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온한 존재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인지가 문제겠지만… 


 p.164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


 p. 273 프랑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서평도서제공: 나무옆의자

s*****7 2026.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랑
"프랑" 내용보기
인간의 몸에서 버려진 기관들을 모아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면, 그 존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인간의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 여덟 개의 팔과 네 개의 코, 겹눈처럼 인간의 신체 질서에서는 벗어난 형상을 지녔고 머릿속에는 뇌 대신 칩이 들어 있다. 인간의 몸에서 비롯되었으나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존재다. 설재인의 『셸리 숍앤센터』
"프랑" 내용보기

인간의 몸에서 버려진 기관들을 모아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면, 그 존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인간의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을 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 ‘프랑’. 여덟 개의 팔과 네 개의 코, 겹눈처럼 인간의 신체 질서에서는 벗어난 형상을 지녔고 머릿속에는 뇌 대신 칩이 들어 있다. 인간의 몸에서 비롯되었으나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존재다. 설재인의 『셸리 숍앤센터』는 이 낯선 생명체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준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의 욕망에 맞춰 형태가 결정되며,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유할 수 있는 상품이며,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버려질 수도 있는 생명이다. 유기된 프랑들이 입양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셸리 센터’라는 공간은 이 세계의 질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생명을 소비하는 욕망이 아무런 충돌 없이 한자리에 놓여 있는 곳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소유가 되고, 사랑받을 가치와 버려질 가치까지 인간의 판단에 따라 나뉜다. 프랑의 기괴한 몸은 단순한 장르적 장치로만 머물지 않고, 그 몸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만든다.


바디 호러의 공포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몸이다.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신체가 낯선 방식으로 해체되고 재조합되면서, 하나의 온전한 몸이라는 믿음은 무너진다. 팔과 다리, 장기와 감각기관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고유한 일부라는 생각도 흔들린다. 서로 다른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이 한 존재 안에 결합한다면 그 존재는 누구의 몸을 가진 것일까. 몸이 인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어왔다면, 프랑은 그 믿음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인간이 아니며, 인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간다. 여기에서 바디 호러의 낯섦은 신체의 변형 자체보다 우리가 몸을 통해 존재를 판단해온 방식으로 옮겨간다.


그 질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노엘이다. 프랑이면서 인간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노엘에게 외형은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인간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는 소속을 보장하지 않고, 프랑이라는 사실 역시 다른 프랑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결국 노엘에게 남는 것은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보다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몸의 모양, 기억과 감정, 자기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의식. 인간을 구성한다고 믿어온 조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 인간이라는 분류가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이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고, 그 생명의 형태와 쓰임을 정하며,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 이름까지 붙인다. 프랑의 삶에는 처음부터 인간의 필요와 욕망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누구에게 사랑받을지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 역시 이 세계에서는 단순한 애정의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애정은 소유의 방식으로 나타나며, 버림받은 생명은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로 보내진다.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힘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는 언제나 함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과 생명을 소유하는 권리를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프랑을 둘러싼 문제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만든다. 정상과 비정상, 우리와 타인, 보호해야 할 생명과 이용할 수 있는 생명을 구분하면서 세계를 정리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익숙해지는 순간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판단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정상인지 결정하는 순간 정상의 바깥에 놓이는 존재가 생기고, 누군가를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하는 순간 보호받지 못해도 되는 존재 역시 만들어진다. 노엘이 프랑들 사이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모습은 이러한 질서가 인간과 프랑 사이의 경계에서만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인간 행세를 한다는 비난을 받는 노엘에게도 ‘프랑다운 모습’이라는 또 다른 기준이 요구된다. 타자는 언제나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집단 안에서도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에게는 새로운 경계가 그어진다. 프랑의 몸을 기괴하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그 질서 안에 놓인다. 낯선 몸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보다, 그 불편함을 근거로 상대의 가치와 자격까지 판단해버리는 태도가 더 깊은 폭력을 품는다.


이 소설에서 ‘인간다움’은 생물학적인 분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인간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이 인간다움의 충분조건이라면, 인간이 다른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고, 다른 존재의 삶을 하나의 독립된 삶으로 인정하는 능력을 인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그다음의 문제가 된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소유하는 존재와, 자신과 다른 존재의 고통을 알아보는 존재를 같은 기준으로 인간답다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인간다움은 몸 안에 고정된 어떤 본질이라기보다 타자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관점에서 프랑의 존재는 인간에게 하나의 거울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을 이용해 프랑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용도를 부여했다. 인간이 프랑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바라보는 일은 곧 인간이 자신보다 약하고 낯선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생명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다른 생명에게 이름을 붙여왔다. 그 이름에는 때로 사랑이 있었고, 동시에 소유와 지배도 함께 들어 있었다.


『셸리 숍앤센터』의 기괴함은 프랑의 외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사랑하고, 소유하고, 버리는 일. 너무도 익숙하게 반복되어 온 인간의 행동들이 프랑이라는 존재를 사이에 두고 다시 바라보일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이 드러난다. 인간에게 버려진 몸의 조각들이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정작 낯설어진 것은 프랑의 몸이 아닌 인간의 태도다.


버려진 것은 신체의 일부다. 그러나 그 조각들로 만들어진 생명체를 바라보다 보면 인간이 함께 버려온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명을 필요와 가치의 기준으로 나누는 습관, 자신에게 쓸모없는 존재를 쉽게 외면하는 태도, 세계의 중심에 자신을 놓아두는 오만까지.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이 모여 프랑이라는 존재를 이루었다면, 인간이라는 이름을 이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재인은 기괴한 신체를 빌려 이 오래된 물음을 낯선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인간처럼 생긴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오히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에게 그 이름의 자격을 묻게 된다. 『셸리 숍앤센터』는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로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그 생명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인간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프랑이 인간인가를 묻는 동안, 인간은 자신이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도서출판 나무옆의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6.08.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