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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재인 작가의 『셸리 숍앤센터』는 제목부터 조금 낯설고, 설정은 더 낯선 소설이다. 이 작품의 배경에는 혁신적인 교통수단 ‘웨일홀’이 있다. 웨일홀은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지만, 일정 확률로 사람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그렇게 버려진 인체 기관들이 쌓여가자, 한 연구자는 그 기관들을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그 존재가 바로 ‘프랑’이다. 프랑은 인간의 말을 배우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으며,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주문 제작된다. 하지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인간 사회에서 프랑은 사고팔 수 있는 ‘반려 생명체’에 가깝다. 필요할 때는 사랑받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에게 버려지거나 주인을 잃은 프랑들이 모이는 곳이 셸리 센터다. 이곳에는 인간 여자아이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인간과 똑같이 생긴 노엘과, 거대한 몸과 강한 공격성을 지닌 허슬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를 찾은 조해성이 노엘과 허슬을 함께 데려간다. 노엘에게는 센터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이지만, 조해성의 집에서 두 프랑은 자신들이 단순한 반려 존재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조해성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자 프랑의 능력과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노엘과 허슬을 있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노엘과 허슬은 그의 집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자신들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과 프랑 사이에 얼마나 큰 권력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 경험은 두 프랑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노엘은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프랑이고, 허슬은 인간과 전혀 다른 몸을 가졌지만 역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그들의 감정이나 의지보다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반려 생명체를 만든다는 설정은 꽤 독특하고 기괴하다. 그런데 막상 작품이 다루는 문제는 의외로 현실적이었다. 소유와 착취, 정상과 비정상,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 약자를 대하는 방식 같은 문제들이 ‘프랑’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프랑들이 사람의 취향에 맞춰 주문 제작된다는 설정이었다. 예쁘고 귀엽고 특별하다는 이유로 선택받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학습하며 감정까지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인간에게는 결국 ‘내가 돈을 주고 산 존재’로 취급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조해성이 노엘과 허슬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겉으로는 둘을 선택해 데려가지만, 그 선택이 꼭 애정이나 보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말이 때로는 그 존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소유하고 이용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소설 속 미래 이야기인데도 지금 우리의 모습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동물을 대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판단할 때가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쓸모가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프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받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소설 속 설정으로만 넘기기 어려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다움’이라는 말도 계속 생각하게 됐다. 소설 속 인간들은 오히려 프랑을 쉽게 사고팔고, 필요하면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린다. 반대로 인간이 아닌 프랑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상처받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다운 존재는 누구일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더 낮은 존재로 취급해도 되는지,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됐다. 버려진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 오히려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였다. 나무옆의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셸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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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셸리 숍앤센터》 저자, 설재인 👁 🫁 🧠 P.133 프랑임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은 프랑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소름끼쳐 할까 봐. 애당초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질적인 프랑이 아니었을 테다. 그저 팔다리가 두 개씩 달린 모양 그대로, 다른 많은 프랑들과 어울렸겠지. 👁 P.134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노엘은 속으로 물었다. 🫁 P.186 지금은 거의 멸종한 개와 고양이가 아직 넘치던 시절 유기된 그들을 인간이 입양하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문답이 필요했다고 노엘은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인간 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그런 것들을 증명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야 했었다고. 물론 그런 시험을 거치고 싶지 않은 이들도 동물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적잖은 돈을 주고 사면 됐다고. 🦴 P.187 왜 유기된 프랑들은 이렇게 죽고 '재활용'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다움'에 대한 문답은 더 이상 인간에지 주어지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인간답다'는 게 뭔가? 인간이 뭔가? 나는 책을 읽을 때 제목이나 주제가 되는 단어나 어휘에 집중해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이란 단어에 조금 집중해서 읽어보게 됐다. '프랑'이란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스위스의 1프랑은 한화로 약 1,687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 화폐 단위이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생명 창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공상 과학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도 이 책 속의 '프랑'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의 이름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서 명칭을 따왔을 것이다. 아무래도 신체를 얼기설기 이어 붙인,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의미의 '인조 생명체'의 이름으론 이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작중의 인간들이 '프랑'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치 1프랑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값싼 '물건'들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책 안에서의 '프랑'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태도는 귀한 것을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문이었던 것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인체'를 모아 만든 인조 생명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게 됐단 말인가? 현대인의 윤리 의식과 도덕성을 가진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도된 거부감과 불쾌감에 자연스럽게 섞인 감정선과 서사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또 '인간'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게 된다. 존재에 대한 철학, 생각 등을 깊게 고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실제로 이 책 속의 '인간'들보단, 인조인간인 '프랑'들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작가가 의도한 서술 묘사겠지만, 이 책 안에서의 인간은 오로지 '욕망'만 남은 빈 껍데기 같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프랑'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 '프랑'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마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 프랑이 되기로 선택한 책 속의 한 인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의 과정을 통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이해'란, 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해란, '나'라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는 자아가 탄탄하고,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으면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더욱 그 방향을 잃기 쉽다. 또한 난 '프랑'들이 여기서 더 인간적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별개로, '프랑'이란 인조인간이 마치 AI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 기관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간들에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프랑 중 일부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인공인 '노엘'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인조인간인 '프랑'과 실제 인간의 차이가 더욱 모호해지는 상황을 보며, 마치 우리 시대의 'AI'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기에 더욱 인문학과 철학이 발달하고 중요해지는 시기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참 시기적절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고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나무 옆 의자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서평 #도서협찬 #셜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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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버려진 인체 기관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는 독특한 설정에 관심이 갔다. 팔이 여러 개이거나 눈과 코가 일반적인 형태와 다른 프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기괴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프랑은 인간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반려가 되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에 따라 입양되고 버려지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노엘은 인간과 프랑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노엘이 인간다움의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호러 장르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어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넘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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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가 세 개 달린 모카, 팔이 여덟 개인 예니. 『셸리 숍앤센터』 속 세상에는 인간의 신체를 조합해 만든 생명체 '프랑'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프랑을 주문 제작하고, 동시에 버려진 프랑을 보호하는 곳, 셸리 숍앤센터다. 👾 이 기괴한 설정의 발단은 순간이동 수단 '웨일홀'. 편리하지만 이동 중 신체 일부가 탈락하는 부작용이 있고, 그렇게 쌓인 인체 조각으로 염 박사가 만들어낸 게 프랑이다. 그는 이를 "환경을 위한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라 부른다. 👾 하지만 프랑은 단순한 상품일까.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졌고, 감정을 느끼고, 언어로 소통하는 존재. 그럼에도 프랑은 인간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 당신은 인간인가? 인간다운가? 인간답다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끝까지 인간답고 싶은가? - 186p 👾 프랑은 필요할 때 사랑받지만 필요가 사라지면 버려진다. 두 번 유기된 프랑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설정은, 이 세계가 프랑에게 존재의 이유조차 인간이 정해준다는 걸 보여준다. 👾 특히 인간의 대뇌를 그대로 이식받은 노엘과 허슬은 몸 전체가 프랑이면서도 사고와 감정은 인간의 것을 그대로 지녔다. 그래서 이 둘 앞에서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인간의 몸이면 인간인가, 생각하고 느끼면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다움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가. 🗒 노엘, 역사는 반복된단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보통 잘못을 한 사람들은 몇백 년을 살아도 자신이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대부분이야! - 298p 👾 읽다 보면 인간과 프랑을 구분하던 기준이 점점 흐려진다. 결국 이 소설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태어난 방식만으로 한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독자에게 돌려준다. 👾 인간 뇌를 이식받은 노엘, 허슬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몸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든 그게 인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다 읽고 나서도 "인간답다"는 말 자체가 헐거워진 느낌이다. 바디호러 좋아한다면 취향저격 예상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 나무옆의지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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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설재인 작가님이구나! 독특한 소재를 가져와 더한 기괴한 설정을 입히고 기발한 상상력 한 방울을 떨어뜨려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 남는 소설을 선물해 주는 설재인 작가님. 저는 개인적으로 설재인 작가님이 제일 기괴한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읽어보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꼬~옥 이요. 줄거리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웨일홀'. 이곳을 이용하면 부작용으로 신체기관이 탈락된다. 지금은 많이 발전해 탈락되는 기관이 적어졌지만, 한때 많은 신체가 탈락되었고, 그 기관들로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이지만 사람은 아닌.... 애완 인간 일명 '프랑'. 프랑 '노엘'은 거의 인간과 흡사한 지능과 외형을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엘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내 생각 더하기 읽다 보면 저절로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소설 '셸리 숍앤센터'. 등장인물들의 외형을 표현한 문장이라든가, 간혹가다 일어나는 노엘의 이상 증세를 나타낼 때의 문장 등등이 조금은 서늘하고 무서워 어깨가 자동으로 움직였어요. (흥 아님) 설정부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미친 생각이었고요. 인간이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현실을 자각한 순간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때부터 짜릿했어요. 어떻게 이야기가 끝이 날지 상상하느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습니다. 인간이 안일하게 생각한 생명의 소중함. 이 생각이 불러온 재앙 같은 현실을 또 다른 실험정신으로 수습할지, 아니면 프랑이란 존재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 책은 결국 인간이 벌인 일을 인간이 수습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스토리였어요.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숙제를 냅니다. '인간이 편하자고 계속해서 이기적인 행동을 취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끝으로 '작가의 말'에 등장한 책의 소재를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 뜨끔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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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namu_bench ) #셸리숍앤센터 #나무옆의자#서평단 처음에는 언와인드 책이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배경에서 등장인물 이름도 친근한 우리나라 이름. 그래서였을까 몰입이 더 빠르게 되어서 소설 속에서 설명하는 프랑들의 생김새, 공간과 행동에 대한 설명들이 머릿속에 너무 잘그려져서 중간쯤에는 정말...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비위약하신분들 조심조심) 덮을까...?하다 반전에 반전!!! 덮었으면 후회할뻔 했다. 프랑들을 보면서 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품종에 다양한 품종을 만들려고 좁은 철장에서 희생당하는 강아지들. 예쁘지 않거나 말썽을 피우거나 대소변못가리면 파양당하는 강아지들. 단지 너무 예뻐서 너무 귀여워서. 생명을 외향적으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요즘 뉴스를 보며 '인간이 제일 무섭네..' 했는데 이 소설을 보면서도 '그래 인간이 제일 무서워'하게 된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라는 돌멩이하나에 변화가 일어나는 세계 P.273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P.295 역사가 순환한다고 얘기했지? 인간들은 언제나 혐오할 군집을 찾아내곤 했어.신분제가 없어지면 인종을 따졌고,인종차별이 완화되면 성별을 따졌고,그마저도 사라지자 다시금 경제적 계급을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건 현재진행형이지 P.298 역사는 반복된단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보통 잘못을 한 사람들은 몇 백년을 살아도 자신이 잘못했는지 모르는게 대부분이야 작가의 말은 읽지 않고 넘어가는 나인데 이 책은 궁금했다. ★작가의 말에서 마지막 장이라도 꼭 읽어보세요 !!!!★ 바디호러... 글을 읽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속이 울렁거릴 수 있지?? 글의 힘이 정말 대단한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작가님이 고민하신부분이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였고 그 자문에 대한 하나의 답과 나의 반응은 일치했다. 바디호러지만 요즘 시대의 문제점이 반영되어서 반성도 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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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탈규범과 이질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기대 밖이라면 밖이나 퍽 실망스럽지 않은 형태의 밖이다. 그래. 버릴 수 없다면 휘두르는 것도 방법이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부수고 뒤엎어 끄집어내는 것 또한 방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질이란 바이오동력 오물통 내지는 비용 많이 드는 온열가죽주머니 정도 아닌가. p.18 어차피 대중의 미감은 주입된 대로 형성된다고 염 박사는 결론 내렸다. 만약 웨일홀에 널브러진 인체 기관들로 새 종족을 만들고서는, 아주 귀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라며 오랫동안 세뇌한다면 다음 세대쯤에는 그것들이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되지 않을까? p.235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누군가의 악의가 만들어낸 일이 아니니까. 허튼 짓, 모난 짓, 튀는 짓만 안 하면 편하게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렇게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인지 모르는 채로 편히 희희낙락했다. 권력은, 거칠게 말해, 규정하는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무엇일지를 규정하는 힘이다. 말을 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의 선이 본래부터 그어져있지 않으니, 선을 긋고 지우는 것 또한 권력을 쥔 자의 권한이자 생리이다. '그'의 언어로 '나'를 변호하는 데에는 불가항의 한계가 있다. 착한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주는 밥을 신나게 처먹은 가축의 끝은 도살이다. 누군가를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다 못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비교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이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코앞에서 나자빠지는 '동류'들로 증명해주는 것. 결코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노력에 달렸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 p.10 센터의 프랑들은 세 평짜리 방에 두셋씩 살았다. 각각의 방은 흙바닥과 철창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옆이나 저 너머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봉사자가 자신의 방을 지나쳐 다른 프랑의 방으로 향할 때마다 프랑들은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두 손을 턱 밑에 댄 채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p.162 "존재는 취급에서 나와. 우리가 취급받는 대로 우리는 존재해. 너도 나도 다 쓰고 태워버릴 것으로 취급받지. 그러니까… 우린 마치 플라스틱 같은 거야. 쓸 땐 신나게 사용해놓고 나중에는 악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 작중 풍경이 꼭 그렇다. 이 얼마나 여상하고 평화로운지. 흉한 것은 처박아 치우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냅다 쭉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없는 것들이야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못 산다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실로 인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계는. 오래 전부터, 느리게 반복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작가는 '있는 힘껏 크게 뜬 눈과 턱 밑에 괸 손'으로 호소하는 대신 묻는다. 아랫도리며 배때지 싹 까놓고 보면 대체 무엇이 인간이냐고. 그는 아름다운, 오래된 순리를 박살낼 작정이다. 독자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끝장나게 으깨 부수고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라도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었을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머리가 왕왕 울리고 밑이 쑤시는(298)" 감각을 뇌리 깊숙이 때려박을 참이라고. p.133 "네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솎아내기만 해도 충분해. 혹시 인간을 공경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p.276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왕 받은 거 실컷 써주리라 다짐했다. 이게 정의라고 애써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세상이 망한다고 울부짖는 자는 그 세상에서 안주하는 자 뿐이다. 얻어맞는 자는 안다. 나를 짓밟는 저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또한 나, 무수한 '나'들이라는 사실을. 큰 불은 불씨를 삼킨다. 화근이 세상을 불살라버리는 꼴을 보여주겠다. 읽는 이가 불길의 어느 편에 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신 말은 누구의 혀인가? 누가, 무엇이 '나'이겠는가? 마지막에 도달한 독자는 분명 살자고, 살아야겠다고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럽혀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온한 존재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인지가 문제겠지만… p.164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 p. 273 프랑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서평도서제공: 나무옆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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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의 욕망에 맞춰 형태가 결정되며,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유할 수 있는 상품이며,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버려질 수도 있는 생명이다. 유기된 프랑들이 입양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셸리 센터’라는 공간은 이 세계의 질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생명을 소비하는 욕망이 아무런 충돌 없이 한자리에 놓여 있는 곳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소유가 되고, 사랑받을 가치와 버려질 가치까지 인간의 판단에 따라 나뉜다. 프랑의 기괴한 몸은 단순한 장르적 장치로만 머물지 않고, 그 몸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만든다. 바디 호러의 공포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몸이다.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신체가 낯선 방식으로 해체되고 재조합되면서, 하나의 온전한 몸이라는 믿음은 무너진다. 팔과 다리, 장기와 감각기관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고유한 일부라는 생각도 흔들린다. 서로 다른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이 한 존재 안에 결합한다면 그 존재는 누구의 몸을 가진 것일까. 몸이 인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어왔다면, 프랑은 그 믿음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인간이 아니며, 인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간다. 여기에서 바디 호러의 낯섦은 신체의 변형 자체보다 우리가 몸을 통해 존재를 판단해온 방식으로 옮겨간다. 그 질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노엘이다. 프랑이면서 인간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노엘에게 외형은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인간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는 소속을 보장하지 않고, 프랑이라는 사실 역시 다른 프랑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결국 노엘에게 남는 것은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보다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몸의 모양, 기억과 감정, 자기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의식. 인간을 구성한다고 믿어온 조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 인간이라는 분류가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이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고, 그 생명의 형태와 쓰임을 정하며,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 이름까지 붙인다. 프랑의 삶에는 처음부터 인간의 필요와 욕망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누구에게 사랑받을지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 역시 이 세계에서는 단순한 애정의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애정은 소유의 방식으로 나타나며, 버림받은 생명은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로 보내진다.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힘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는 언제나 함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과 생명을 소유하는 권리를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프랑을 둘러싼 문제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만든다. 정상과 비정상, 우리와 타인, 보호해야 할 생명과 이용할 수 있는 생명을 구분하면서 세계를 정리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익숙해지는 순간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판단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정상인지 결정하는 순간 정상의 바깥에 놓이는 존재가 생기고, 누군가를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하는 순간 보호받지 못해도 되는 존재 역시 만들어진다. 노엘이 프랑들 사이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모습은 이러한 질서가 인간과 프랑 사이의 경계에서만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인간 행세를 한다는 비난을 받는 노엘에게도 ‘프랑다운 모습’이라는 또 다른 기준이 요구된다. 타자는 언제나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집단 안에서도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에게는 새로운 경계가 그어진다. 프랑의 몸을 기괴하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그 질서 안에 놓인다. 낯선 몸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보다, 그 불편함을 근거로 상대의 가치와 자격까지 판단해버리는 태도가 더 깊은 폭력을 품는다. 이 소설에서 ‘인간다움’은 생물학적인 분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인간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이 인간다움의 충분조건이라면, 인간이 다른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고, 다른 존재의 삶을 하나의 독립된 삶으로 인정하는 능력을 인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그다음의 문제가 된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소유하는 존재와, 자신과 다른 존재의 고통을 알아보는 존재를 같은 기준으로 인간답다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인간다움은 몸 안에 고정된 어떤 본질이라기보다 타자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관점에서 프랑의 존재는 인간에게 하나의 거울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을 이용해 프랑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용도를 부여했다. 인간이 프랑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바라보는 일은 곧 인간이 자신보다 약하고 낯선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생명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다른 생명에게 이름을 붙여왔다. 그 이름에는 때로 사랑이 있었고, 동시에 소유와 지배도 함께 들어 있었다. 『셸리 숍앤센터』의 기괴함은 프랑의 외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사랑하고, 소유하고, 버리는 일. 너무도 익숙하게 반복되어 온 인간의 행동들이 프랑이라는 존재를 사이에 두고 다시 바라보일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이 드러난다. 인간에게 버려진 몸의 조각들이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정작 낯설어진 것은 프랑의 몸이 아닌 인간의 태도다. 버려진 것은 신체의 일부다. 그러나 그 조각들로 만들어진 생명체를 바라보다 보면 인간이 함께 버려온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명을 필요와 가치의 기준으로 나누는 습관, 자신에게 쓸모없는 존재를 쉽게 외면하는 태도, 세계의 중심에 자신을 놓아두는 오만까지.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관들이 모여 프랑이라는 존재를 이루었다면, 인간이라는 이름을 이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재인은 기괴한 신체를 빌려 이 오래된 물음을 낯선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인간처럼 생긴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오히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에게 그 이름의 자격을 묻게 된다. 『셸리 숍앤센터』는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로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그 생명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인간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프랑이 인간인가를 묻는 동안, 인간은 자신이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도서출판 나무옆의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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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셸리 숍앤센터』는 아주 기괴한 설정의 바디 호러 소설이다. 버려진 인체 기관을 조합해 만든 생명체 ‘프랑’은 팔이 여덟 개이거나 코가 네 개이거나 겹눈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진짜 무서운 건 프랑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고 사고팔고 버리는 인간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교통수단 웨일홀의 부작용으로 떨어져 나온 신체 일부가 프랑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고, 인간들은 그들을 ‘반려’라는 이름으로 소비한다. “개보다 나은 프랑”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인간에게 충성하고,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며, 원하는 모습으로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프랑이다. 결국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버려지는 존재라는 점이 묘하게 서늘한 지점이다. 특히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가진 프랑인 '노엘'과, 또다른 거구의 프랑인 '허슬'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서로를 괴롭히고 경계하던 두 존재가 끔찍한 학대를 겪은 뒤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생겼다고 했지? … 딱 세 명만 나랑 겹친다면 함께 나가지.”라며 함끼 손을 잡는 장면에서는 그만 짜릿한 해방감까지 느껴버리게 된다. 폭력으로 시작된 관계가 어느 순간 서로를 지키는 연대가 되어가는 과정이 왠지 좋았다. 노엘은 끊임없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인간이 아니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노엘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대체 어디에서 결정되는 걸까? 읽는 내내 불편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책의 힘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름’을 흉측함으로 규정하는 건 정말 누구일까.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존재를 괴물이라 부르는 순간, 과연 괴물이 되는 건 누구일까 물어보고 싶어진다.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흉물들이 결코 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런 세상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설재인 작가의 의도다. 그래서 『셸리 숍앤센터』는 기괴한 몸을 빌려 인간 사회의 차별과 착취, 혐오와 계급을 아주 집요하게 살핀다. 읽고 나면 프랑의 모습보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어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셸리숍앤센터 #설재인 #나무옆의자 #바디호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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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설재인 작가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다. 관계를 예쁘게 봉합하거나 인간을 쉽게 구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익숙했지만, 《셸리 숍앤센터》는 소재부터 강렬하다! ⠀ ⠀ 버려진 인체 기관으로 만든 생명체 ‘프랑’. 처음엔 독특한 설정에 눈이 갔다. 개도 고양이도 멸종해버린 미래. 인간은 기괴한 모습의 반려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음을 어지럽힌 건 프랑이 아니라 역시 인간 쪽이었다. ⠀ ⠀ 프랑을 가엾게 여기고, 봉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의 희생을 늘어놓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더 약한 존재를 괴롭힌다. ⠀ 착한 얼굴과 선한 말이 동등한 시선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동정과 선의 뒤에는 우월감이 숨어 있다. ⠀ ⠀ 인간은 프랑을 취향대로 만들고 가격을 붙여 소유하고 버리면서,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낸 그 다름을 특별하다며 탐낸다. ⠀ 싫어해도 인간 기준, 좋아해도 인간 기준이다. ⠀ ⠀ “인간들은 서로를 하나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며, 스스로 행복해하지도 않는다.....” (P.144) ⠀ ⠀ 그럼에도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시선을 주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참 쓸쓸하고도 이기적인 존재다. ⠀ ⠀ 살과 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디 호러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건 프랑의 찢긴 몸보다 비교하고 소유하며 자신을 확인하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 ⠀ #셸리숍앤센터 #설재인 #바디호러 #나무옆의자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한국소설 #장르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