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7%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17%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내용보기
책 제목을 보고 무엇을 상상했는가?벽난로엔 따스하게 불꽃이 일렁이고 그 곁, 안락한 흔들의자에 돋보기를 쓴 채 무릎담요를 덮고 흔들흔들 책을 읽고 있는 노인?도서관의 하나가득 진열 된 책 속에서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는 이와 어느정도는 흡사했다.물론 저기에 열열한 사랑을 꿈꾸는 노인이라는 이미지가 추가 되었지만...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안토니오 호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내용보기
책 제목을 보고 무엇을 상상했는가?
벽난로엔 따스하게 불꽃이 일렁이고 그 곁, 안락한 흔들의자에 돋보기를 쓴 채 무릎담요를 덮고 흔들흔들 책을 읽고 있는 노인?

도서관의 하나가득 진열 된 책 속에서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는 이와 어느정도는 흡사했다.
물론 저기에 열열한 사랑을 꿈꾸는 노인이라는 이미지가 추가 되었지만...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프로아뇨는 아마존 밀림 속에 집을 짓고 살면서 배가 고프면 강에 나가 게를 잡아먹고 사는 노인이었다. 오옷... 제목도 심상찮더니 소재는 더 심상찮다.

안토니오 노인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는, 그러나 억장이 무너질 만큼 괴롭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젊어 정글에서 아내를 잃고 그곳 개발자들의 마을에서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일년에 두번 찾아오는 치과의사로부터 눈물나게 슬픈 연애소설을 빌려 읽는게 유일한 낙이며 삶의 즐거움이다.

그러던 어느날 백인 양키가 살쾡이에게 살해 되고...
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그 살쾡이를 추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애소설을 읽는 게 중점이 아니라
사냥이 중점인 이야기인게다.

따지고 보면 기대했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는 다른 이미지의 소설이라 대여섯장 넘어 갈 때까진...
얼라리... 이상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잖아....
라고 생각되었지만 다 읽고나서는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감동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이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다니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진... 읽어 본 것이 없다.-.-;)

덧붙여...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
YES마니아 : 로얄 e******o 2009.02.08.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데르수 우잘라가 떠올랐다.
"데르수 우잘라가 떠올랐다." 내용보기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처음 본 건 장정일의 독서일기1편에서였다. 동업자들에 대한 신랄한(에누리없는) 촌철살인의 평가가 쭉 이어지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거듭된 찬사로 이어진 몇 안 되는 소설이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짠 장정일조차 극찬을 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환경에 대한 소설이란 장정일의 소개가 있었지만 사무실 후배들은
"데르수 우잘라가 떠올랐다." 내용보기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처음 본 건 장정일의 독서일기1편에서였다.

동업자들에 대한 신랄한(에누리없는) 촌철살인의 평가가 쭉 이어지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거듭된 찬사로 이어진 몇 안 되는 소설이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짠 장정일조차 극찬을 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환경에 대한 소설이란 장정일의 소개가 있었지만 사무실 후배들은 이 책이 내 책상에 놓여있는 걸 보고 역시 선배가 읽는 책 제목답다고 떠든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독재자 피노체트 하의 칠레에서 청년기를 지내면서 반독재 싸움을 하다 고문 당하고 투옥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결국 칠레를 떠나 떠돌게 된다. 그가 수 년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서문에서 그는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치코 멘데스는 아마존을 지키는 싸움에서 무장괴한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책에서 연애소설 읽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아마존의 원주민인 수아르 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밀림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원주민과 동물들, 그리고 밀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연히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안 노인은 애절한 남녀의 연애소설을 읽는 것으로 혼자만의 생활의 무료함을 달랜다.

어느 날, 양키 밀렵꾼 때문에 새끼들과 수놈을 읽은 암살쾡이의 복수가 이어지면서 이주촌 엘 이딜리오의 평화는 깨진다. 권력과 탐욕의 상징인 뚱보 읍장과 대립하면서 날카로운 추리로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는 노인은 암살쾡이가 스스로 죽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물로 죽은 암살쾡이를 강물에 떠나 보내는 노인의 비통함이 가슴 절절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가 떠올랐다. 동물적인 감각과 자연과 분리되지 않는 감성, 자연 그 자체인 사람..데루스. 참 멋진 사람들이다.

YES마니아 : 골드 p******e 2009.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내용보기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라... 정말이지 매력적인 제목이다.. 눈을 감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지만 정작내용은 그런 달콤한 나의 상상과는 다른 뜨거움을 느끼게 했다.   지구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아마존 정글 그 안에서의 평화로운 자연의 조화는 개발과 부에 눈이 어두운 소위 문명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파괴당하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부족들과 야생동물 그들안에서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내용보기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라...

정말이지 매력적인 제목이다..

눈을 감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지만

정작내용은 그런 달콤한 나의 상상과는 다른 뜨거움을 느끼게 했다.

 

지구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아마존 정글

그 안에서의 평화로운 자연의 조화는

개발과 부에 눈이 어두운 소위 문명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파괴당하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부족들과 야생동물

그들안에서 살아가는 백인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주를 해왔지만

열악한 상황은 그를

원주민의 삶에 동화되는 자연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부터는

어려운 기하학 책보다는

뜨거운 사랑과 행복한 결말이 있는 연애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음절을 음미하고 그것을 모아 단어을 읽고

또 그것을 모아 문장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읽어나간다.

 

고요한 오두막에서 창가의 다리가 긴 탁자에서서 그렇게 책을 읽어나간다.

 

우기에 접어드는 아마존의 한 도시에서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한 암 살쾡이에 의한 살인이라고 밝혀지면서

위험한 야생동물을 잡기위한 사냥이 시작된다.

 

그 사냥을 나가면서 노인은

원주민들과 문명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는 밀림을 바라보며

또 야생동물들을 바라보며 괴로워 한다.

그 노인에게 낙이란...

바로 연애소설을 읽는 것,,,

 

마지막 장면

결국 살쾡이를 총으로 쏴 죽이지만

그 영리한 자식들을 죽이고 남편을 죽인 사람에 대해 복수를 한 그 살쾡이를

결코 미워만 할 수 없는 노인의 심정이

절절하고 뜨거웠으며

점점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을 살아가는 문명인으로서

고개 숙이게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사냥을 마친 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리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디리오를 행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09.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에서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에서" 내용보기
문명과 자연은 적일까?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책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궁금했다. 책 표지는 정글의 동물들로 디자인 되어 있고 제목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고...   남미 작가의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2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에 이 책을 일독했다.   환경에 의해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과 같이 원주민화 되어 생활하는 한 노인! 그러나 가끔 오는 치과의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에서" 내용보기

문명과 자연은 적일까?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책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궁금했다.

책 표지는 정글의 동물들로 디자인 되어 있고 제목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고...

 

남미 작가의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2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에 이 책을 일독했다.

 

환경에 의해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과 같이 원주민화 되어 생활하는 한 노인!

그러나 가끔 오는 치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간!

우연하게 책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진지한 사랑 내용의 소설을 읽게 되는 문명인!

 

이 책에서 원주민은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취하는 선한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고, 남미의 헤게모니를 늘 차지하려는 미국인들은 야만인으로 '양키'라는 호칭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노인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에 더 가까워진 문명과 자연의 경계인으로 보여진다.

 

금을 찾아 아마존에 들어온 문명인들의 야만적인 동물 사냥(목적 없이 그냥...)으로 시작된 맹수(삵괭이)의 보복과 비록 원주민화 되었지만 문명의 대표로서 삵괭이와 싸우는 노인의 내용이 주된 줄거리이다.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인 친구를 위해 이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의 서문이 책 앞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풍자는 기본일 것이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한 문장을 음미하는 노인의 모습이 흥미롭다. 연애소설 중 한 책의 첫 문장이 '폴은 모험에 따라 나선 친구이자 공모자인 사공이 다른 곳을 보는 척하는 동안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그사이에 부드러운 방석이 깔린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인데, 이 한문장을 가지고 긴 시간의 사유가 이어진다. 문명에서 태어났지만 10대 중반에 원주민 지역에서 원주민화 되어 살았던 이 노인으로서는 겨우 읽기는 해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친구 몰래 여자와 키스한 것으로 보아 폴은 나쁜 놈이며 곤돌라는 배의 일종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베네치아가 물의 도시로 물위에 집들이 지어졌다는 한 읍장의 말에 집이 물위에 지어질 수 있다면 분명 물에 뜨는 돌 위에 지어졌을 것이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사람들을 해치는 삵괭이는 자식들을 재미로 총질하여 죽인 인간에 대한 복수를 계속하게 되고 노인은 해결을 위해 고용되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 삵괭이와 노인은 서로 교감을 하면서 결국 그들의 마지막 승부를 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의 장면이 스쳐지나가는 작품이다.

혹시 이 칠레 태생의 작가가 모티프를 '노인과 바다'에서 일정 취했을 지도 모르겠다.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이 흥미를 끄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생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정도의 작품(괜찮은 작품이지만)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상이 주어지고 칭송을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작품 중에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많은가 하며 작은 분을 품게한다.

 

'개발'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문명과 문명인은 분명 야만과 야만인이 될 수 밖에 없고, 소설의 주인공인 이 노인처럼 경계선에서 양측과 싸울 수 밖에 없는 경계인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멋진 남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s*******8 2009.08.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내용보기
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0. 제목부터 인상적인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독자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일으키게 한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이 연애 소설을 읽는다는 설정부터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닌 데다 연애 소설이란 단어에서 풍겨 나오는 낭만적이고 꿈결같은 느낌이 그것을 읽는 노인에게 필시 어떤 사
"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내용보기

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0.
제목부터 인상적인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독자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일으키게 한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이 연애 소설을 읽는다는 설정부터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닌 데다 연애 소설이란 단어에서 풍겨 나오는 낭만적이고 꿈결같은 느낌이 그것을 읽는 노인에게 필시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란 암시를 강하게 남기기 때문이다. 노인은 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일까.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못다 이룬 사랑의 추억 때문에? 사랑 이야기일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이 책은 분류하자면 환경 소설이다. 저자인 루이스 세풀베다도 아마존 강의 수호자인 친구 ‘미겔 트센게’와 개발론자들에게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서두에서 적고 있다.
세풀베다의 필력은 대단해서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읽는 이를 축축한 우기의 아마존 정글 속으로 데려간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정글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응축되는 구성의 단단함과 영화처럼 선명히 그려지는 장면과 장면, 속도감 있는 빠른 전개 방식, 캐릭터의 생생함 등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흡인력 있게 독자를 빨아들인다. 게다가 기존 소설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환경 문제에 관한 고민까지.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매력있다.

 

 

1.
노인은 어떻게 해서 연애 소설을 읽게 된 것일까. 그는 대통령 선거를 강제로 하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쓸 수는 없었다. 아니, 쓸 줄 안다고 해도 쓸 일이 없었기에 그 방법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만다. 결국 노인은 주어진 텍스트를 읽을 수는 있으나 창출해 낼 수는 없는, 글로써는 자기표현을 할 수 없는 중남미인이었던 것이다. 문자란 것이 무엇인가. 인간 문명의 최고 결정체가 아니던가. 문자를 통해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전수할 수 있었고 마침내 모든 것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문자란 것의 속성은 무척 배타적이어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로 필연적 구분을 하게 되고 이는 곧 문맹자를 배척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노인이 연애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연애 소설에 등장하는 베네치아, 곤돌라 등의 단어는 밀림 속에서만 살았던 노인에게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노인은 연애 소설 읽기에 잠시 가담하게 된 수색대원들과 함께 그 단어들에 대해 2시간 가량 토론하기까지 하나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바로 그 때 뚱보 읍장이 끼어든다. 철저한 백인 우월론자에다 서구 문명주의자, 권위주의자인 읍장은 서구식 교육을 통해 습득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며 노인과 수색대원들을 가르치는 척 한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노인을 비롯한 제3세계 중남미인들은 문명화 시스템에서 원천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이다. 그들은 책을 읽고자 하지만 그 책들(단순한 연애 소설일 뿐인데도)은 문명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뚱보 읍장으로부터 멸시를 당하면서 본의 아니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그들을 바깥 세계와 이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등장하는 '글'이란 것은 실상은 백인들에 의해 기록된 철저히 서구화된 장치로 그려진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적인 생각을, 서구만이 문명이라는 생각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애 소설의 의미가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180쪽) 순수한 것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노인은 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일까. 그는 수아르 족과 함께 지낼 때에는 연애 소설을 찾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수아르 족은 대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곧 밀림임을 아는 슬기로운 부족이었다. 노인에게 수아르 족과 함께 하던 시기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순환 속에서 대자유인으로 숨쉬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자초한 불미스런 사건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면서 그는 밀림 밖의 문명 세계 속으로 홀로 내던져지게 된다. 자신이 고독이라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짐승에 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은 그것의 해독제로서 '읽기'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달콤한 행복감을 안겨 줄 수 있는 연애 소설을 읽게 된다. 이에는 노인의 일생을 뿌리 깊게 짓눌러 온 사랑에 대한 상실감, 자신도 모를 열렬한 갈망 또한 작용했다. 20살 즈음에 잃어버린 부인을 평생 기리며 초상화를 고이 간직하는 노인에게 사랑은 언제나 설레고 그리운 그 무엇이었다. '이래 뵈도 새 장가나 한번 더 들었으면 하니까요'(43쪽),'그가 기대하는 미덕이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106쪽)이라는 노인의 말처럼 그는 사랑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수아르 족 여성과 있었던 딱 한번의 잠자리를 통해 노인은 '순수한 사랑, 오로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영원한 사랑, 소유도 질투도 없는 사랑'(64쪽)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러한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가 연애 소설을 들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연애 소설은 노인에게 자연을 파괴하는 야만적 백인들과 그들의 문명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이기도 했다. 문명에 의해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문명화된 텍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애 소설'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치유한다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노인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소설 중반까지 노인은 끝내 자연과 하나 될 수는 없는, 하나의 문명인일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연과 공존했던 수아르 족과의 삶 속에서도 그는 수아르 족임에도 불구 혈통 때문에 끝내 완전한 수아르 족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수아르 족의 모든 방식에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한다. 특히 자연과 혼연일체 되는 죽음 의식을.......

'수아르 족과 생활했지만 그들처럼 스스로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고 환각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거나 그들처럼 자신의 육신을 개미들에게 갉아 먹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고, 설사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65-66쪽)

라며 문명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이던 그는 그러나 훗날 암살쾡이와의 싸움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는 꿈을 통하여 신비하게 형상화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중남미 문학 고유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흠뻑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드디어 자연과 혼연일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그가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게 될 연애 소설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복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k

 

 

 

2.
엘 이딜리오는 문명과 야만,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영역이다. 뚱보를 통해 보여지는 서구와 문명이라는 권력은 그 곳 원주민을 비롯한 선량한 다수 주민들까지 억압한다. 그들에게 아마존의 정글은 '돈'이 될만한 자원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밀림은 권력과 권위를 압제적으로 내세운 이주민, 노다지꾼,양키들로 인해 심하게 황폐화 되어가게 되고, 짐승들은 그들의 생명과 거처를 위협받게 되면서 나날이 사나워지게 된다. 어느날 무차별적으로 밀림을 파괴하던 백인들에 의해 새끼들을 모두 잃게 된 암살쾡이의 인간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뚱보 읍장은 암살쾡이를 사살하기 위해 수색대를 만들어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상황이 급박해지자 뚱보는 수색대에 끌려온 노인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철수한다. 노인은 홀로 암살쾡이와의 싸움을 기다리며 깨닫는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153쪽)

여기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짐승은 인간에 대한 복수, 그것만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다. 암살쾡이는 인간에게 심한 상처를 당해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컷을 노인이 깨끗하게 처리해 주길 바랐던 것이었고, 자신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수아르 족의 죽음관과 비슷하게 보인다. 수아르 족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결정하며 밀림의 생물들에 의해 가루가 되어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즉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은 채로, 자연과 하나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짐승을 죽일 때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오로지 성장한 동물만을,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잡으며, 잡더라도 짐승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얼굴에 서려있는 짐승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인들은 다르다. 백인들은 짐승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용기, 즉 존엄성이 남아있는 모습이 아닌-죽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영원한 고통에 휩싸이도록 짓이겨 놓는다. 노인 또한 여타 백인들의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수아르 족 친구인 누시뇨를 죽인 백인 노다지꾼에게 복수할 때, 노인은 그만 '총'을 사용하여 백인을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죽게 하고 만다. 수아르 족과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친구를 영원한 불행에 빠뜨리게 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수아르 족의 부락에서 추방되다시피 하게 되고 엘 이딜리오로 나와 자연이 아닌, 연애 소설로 밖에 자신의 고독을 달랠 길이 없게 된다. 노인은 결코 수아르 족이 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문명인이었던 것이다.

 

 

훗날 노인은 암살쾡이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그는 뒤집어진 카누 아래서 암살쾡이에게 '엽총'을 사용하여 쏜다.

'노인은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짐승의 발에서 튀는 피를 본 것과 동시에 자신의 오른발에서 전해 오는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짐승의 앞발을 향해 발사된 총탄이 빗나가면서 그 중에 한 발이 자신의 발등을 스쳤던 것이다. 이런, 비긴 거나 다름없잖아.'(177-178쪽)

 그렇다. 노인은 문명의 이기(利器)인, 죽임 당하는 자를 영원한 고통 속에 빠지게 하는 '엽총'을 사용하여 짐승을 죽이려 했지만 자신 또한 심하게 다치고 만다. 이는 곧 문명(엽총)이라는 이름 하에 멋대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자연과 인간(암살쾡이와 노인) 모두가 다치고 고통 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섬뜩한 경고이다. 노인은 너무나 아름다운 짐승의 시체 앞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는 명예롭지 못한 싸움에 대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노인은 느닷없이 화가 난 사람처럼 손에 들고 있던 엽총을 강물에 던져 버렸고,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금속성의 짐승이 물 속에 가라앉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179-180쪽)

노인은 문명 세계에 대한 실망감과 적개심으로 총을 던져 버리고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180쪽) 자신의 오두막을 향해 떠난다. 그는 밀림 황폐화를, 백인들의 무차별적인 짐승 사냥을 막고자 부단히 애를 써왔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음을 원했던 아름다운 짐승을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내주며 문명 세계에 대해 분노하는 것, 그 뿐이었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3.
야만이란 무엇인가. 뚱보 읍장이 야만적이라며 무시하고 짓밟았던 사람들은 실은 자연과 어울리며 순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문명인은 우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은 큰 오류에 빠져있다. 그들은 결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세상 모든 것들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사람이란 거대한 자연의 경이롭고 조화로운 순환 과정의 극히 일부일 뿐인 것이다. 자연은 절대로 사람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지배 대상이 될 수 없다. 오만한 사람들이 자연을 다스린다며 파괴할 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도 이길 수 없었던 암살쾡이와의 싸움에서 노인 또한 다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자연을 향한 맹목적인 싸움은 인간과 자연 모두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눈물을 훔치며 쓸쓸히 돌아가는 노인의 발걸음이 무겁다. 노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자연을 지킬 수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혼자가 모여서 우리가 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위대함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짓밟아왔던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대자연에게도 사랑의 언어를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을 향해서 진실하고도 절실한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연애 소설 한 편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와 가치를 존중하며 다같이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부터 절대로 끝나지 않을, 대자연을 향한 연애 소설 한 편을 같이 써내려 갈 것이다.

 

 

f



y***2 2008.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내용보기
여행 가기 전에 읽을만한 중남미 문학이 없을까 해서 찾다가 책이 얇아서;; 들고 간 책 중 하나다. 남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틈틈이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찬사는 쏟아지는데 사실 내게는 그런걸 비교할 밑천이 없다. 중남미 문학 중에 읽은 거라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였던 보르헤스 소설 몇 편과, 이젠 줄거리도 기억 나지 않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다였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내용보기

여행 가기 전에 읽을만한 중남미 문학이 없을까 해서 찾다가 책이 얇아서;; 들고 간 책 중 하나다.


남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틈틈이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찬사는 쏟아지는데 사실 내게는 그런걸 비교할 밑천이 없다. 중남미 문학 중에 읽은 거라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였던 보르헤스 소설 몇 편과, 이젠 줄거리도 기억 나지 않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다였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배경은, 아마존 어딘가에 있는 오지다. 난 이 아마존이란 데에 미련이 많다. 페루와 볼리비아까지 가서 아마존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존은 밤새 버스 한번 탄다고 쉽게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깊은 곳에 있다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아마존과 관광지로서 아마존은 꽤 달랐다. 다녀온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입만 열면 모기들이 떼로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마존에서 나 같은 사람이 느끼는 최대 공포다! 아나콘다? 어디서 잡아다가 잡은 척 보여준다고 했다. 진짜 아마존의 속살에 우린 가보지 못할 것이다.
….. 그래도 아마존 손톱 끝이라도 가보고 싶긴 했다.

이 소설은 그 어딘가 아마존의 속살을 보여준다. 끈적끈적하고 습기차고 뜨거운 열대 우림 속, 그곳에서 흐르는 뻘건 피를 말이다.
그 곳에선 인간과 동물이 동격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가 아닌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가 문제다. 서구인으로 보여지는 악의 무리들은 아마존을 터전으로 사는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적이다. 아마존은 파헤쳐지고 연약한 곳들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곳에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이 있다. 원주민 출신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원주민으로 살아오고 원주민이 된 그 노인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사냥꾼으로서 자질보다, 난 이 노인이 가지는 절대적인 평화의 시간, 연애소설을 해면 위에 누워 읽는 그 시간이 가장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난 아마존엔 가보지 못했지만, 아마 갔어도 보지 못했을 진짜 아마존의 모습을 아마존과 같은 대륙 어딘가에서 이렇게 ‘체험’했다. 

m*******a 2009.09.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