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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무엇을 상상했는가? 벽난로엔 따스하게 불꽃이 일렁이고 그 곁, 안락한 흔들의자에 돋보기를 쓴 채 무릎담요를 덮고 흔들흔들 책을 읽고 있는 노인? 도서관의 하나가득 진열 된 책 속에서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는 이와 어느정도는 흡사했다. 물론 저기에 열열한 사랑을 꿈꾸는 노인이라는 이미지가 추가 되었지만...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프로아뇨는 아마존 밀림 속에 집을 짓고 살면서 배가 고프면 강에 나가 게를 잡아먹고 사는 노인이었다. 오옷... 제목도 심상찮더니 소재는 더 심상찮다. 안토니오 노인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는, 그러나 억장이 무너질 만큼 괴롭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젊어 정글에서 아내를 잃고 그곳 개발자들의 마을에서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일년에 두번 찾아오는 치과의사로부터 눈물나게 슬픈 연애소설을 빌려 읽는게 유일한 낙이며 삶의 즐거움이다. 그러던 어느날 백인 양키가 살쾡이에게 살해 되고... 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그 살쾡이를 추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애소설을 읽는 게 중점이 아니라 사냥이 중점인 이야기인게다. 따지고 보면 기대했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는 다른 이미지의 소설이라 대여섯장 넘어 갈 때까진... 얼라리... 이상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잖아.... 라고 생각되었지만 다 읽고나서는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감동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이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다니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진... 읽어 본 것이 없다.-.-;) 덧붙여...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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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내용을 처음 본 건 장정일의 독서일기1편에서였다. 동업자들에 대한 신랄한(에누리없는) 촌철살인의 평가가 쭉 이어지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거듭된 찬사로 이어진 몇 안 되는 소설이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짠 장정일조차 극찬을 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환경에 대한 소설이란 장정일의 소개가 있었지만 사무실 후배들은 이 책이 내 책상에 놓여있는 걸 보고 역시 선배가 읽는 책 제목답다고 떠든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독재자 피노체트 하의 칠레에서 청년기를 지내면서 반독재 싸움을 하다 고문 당하고 투옥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결국 칠레를 떠나 떠돌게 된다. 그가 수 년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서문에서 그는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치코 멘데스는 아마존을 지키는 싸움에서 무장괴한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책에서 연애소설 읽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아마존의 원주민인 수아르 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밀림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원주민과 동물들, 그리고 밀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연히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안 노인은 애절한 남녀의 연애소설을 읽는 것으로 혼자만의 생활의 무료함을 달랜다. 어느 날, 양키 밀렵꾼 때문에 새끼들과 수놈을 읽은 암살쾡이의 복수가 이어지면서 이주촌 엘 이딜리오의 평화는 깨진다. 권력과 탐욕의 상징인 뚱보 읍장과 대립하면서 날카로운 추리로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는 노인은 암살쾡이가 스스로 죽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물로 죽은 암살쾡이를 강물에 떠나 보내는 노인의 비통함이 가슴 절절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가 떠올랐다. 동물적인 감각과 자연과 분리되지 않는 감성, 자연 그 자체인 사람..데루스. 참 멋진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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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라... 정말이지 매력적인 제목이다.. 눈을 감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지만 정작내용은 그런 달콤한 나의 상상과는 다른 뜨거움을 느끼게 했다.
지구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아마존 정글 그 안에서의 평화로운 자연의 조화는 개발과 부에 눈이 어두운 소위 문명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파괴당하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부족들과 야생동물 그들안에서 살아가는 백인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주를 해왔지만 열악한 상황은 그를 원주민의 삶에 동화되는 자연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부터는 어려운 기하학 책보다는 뜨거운 사랑과 행복한 결말이 있는 연애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음절을 음미하고 그것을 모아 단어을 읽고 또 그것을 모아 문장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읽어나간다.
고요한 오두막에서 창가의 다리가 긴 탁자에서서 그렇게 책을 읽어나간다.
우기에 접어드는 아마존의 한 도시에서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한 암 살쾡이에 의한 살인이라고 밝혀지면서 위험한 야생동물을 잡기위한 사냥이 시작된다.
그 사냥을 나가면서 노인은 원주민들과 문명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는 밀림을 바라보며 또 야생동물들을 바라보며 괴로워 한다. 그 노인에게 낙이란... 바로 연애소설을 읽는 것,,,
마지막 장면 결국 살쾡이를 총으로 쏴 죽이지만 그 영리한 자식들을 죽이고 남편을 죽인 사람에 대해 복수를 한 그 살쾡이를 결코 미워만 할 수 없는 노인의 심정이 절절하고 뜨거웠으며 점점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을 살아가는 문명인으로서 고개 숙이게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사냥을 마친 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리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디리오를 행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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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자연은 적일까?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책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궁금했다. 책 표지는 정글의 동물들로 디자인 되어 있고 제목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고...
남미 작가의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2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에 이 책을 일독했다.
환경에 의해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과 같이 원주민화 되어 생활하는 한 노인! 그러나 가끔 오는 치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간! 우연하게 책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진지한 사랑 내용의 소설을 읽게 되는 문명인!
이 책에서 원주민은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취하는 선한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고, 남미의 헤게모니를 늘 차지하려는 미국인들은 야만인으로 '양키'라는 호칭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노인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에 더 가까워진 문명과 자연의 경계인으로 보여진다.
금을 찾아 아마존에 들어온 문명인들의 야만적인 동물 사냥(목적 없이 그냥...)으로 시작된 맹수(삵괭이)의 보복과 비록 원주민화 되었지만 문명의 대표로서 삵괭이와 싸우는 노인의 내용이 주된 줄거리이다.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인 친구를 위해 이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의 서문이 책 앞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풍자는 기본일 것이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한 문장을 음미하는 노인의 모습이 흥미롭다. 연애소설 중 한 책의 첫 문장이 '폴은 모험에 따라 나선 친구이자 공모자인 사공이 다른 곳을 보는 척하는 동안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그사이에 부드러운 방석이 깔린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인데, 이 한문장을 가지고 긴 시간의 사유가 이어진다. 문명에서 태어났지만 10대 중반에 원주민 지역에서 원주민화 되어 살았던 이 노인으로서는 겨우 읽기는 해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친구 몰래 여자와 키스한 것으로 보아 폴은 나쁜 놈이며 곤돌라는 배의 일종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베네치아가 물의 도시로 물위에 집들이 지어졌다는 한 읍장의 말에 집이 물위에 지어질 수 있다면 분명 물에 뜨는 돌 위에 지어졌을 것이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사람들을 해치는 삵괭이는 자식들을 재미로 총질하여 죽인 인간에 대한 복수를 계속하게 되고 노인은 해결을 위해 고용되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 삵괭이와 노인은 서로 교감을 하면서 결국 그들의 마지막 승부를 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의 장면이 스쳐지나가는 작품이다. 혹시 이 칠레 태생의 작가가 모티프를 '노인과 바다'에서 일정 취했을 지도 모르겠다.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이 흥미를 끄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생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정도의 작품(괜찮은 작품이지만)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상이 주어지고 칭송을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작품 중에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많은가 하며 작은 분을 품게한다.
'개발'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문명과 문명인은 분명 야만과 야만인이 될 수 밖에 없고, 소설의 주인공인 이 노인처럼 경계선에서 양측과 싸울 수 밖에 없는 경계인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멋진 남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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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한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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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일까. 그는 수아르 족과 함께 지낼 때에는 연애 소설을 찾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수아르 족은 대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곧 밀림임을 아는 슬기로운 부족이었다. 노인에게 수아르 족과 함께 하던 시기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순환 속에서 대자유인으로 숨쉬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자초한 불미스런 사건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면서 그는 밀림 밖의 문명 세계 속으로 홀로 내던져지게 된다. 자신이 고독이라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짐승에 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은 그것의 해독제로서 '읽기'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달콤한 행복감을 안겨 줄 수 있는 연애 소설을 읽게 된다. 이에는 노인의 일생을 뿌리 깊게 짓눌러 온 사랑에 대한 상실감, 자신도 모를 열렬한 갈망 또한 작용했다. 20살 즈음에 잃어버린 부인을 평생 기리며 초상화를 고이 간직하는 노인에게 사랑은 언제나 설레고 그리운 그 무엇이었다. '이래 뵈도 새 장가나 한번 더 들었으면 하니까요'(43쪽),'그가 기대하는 미덕이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106쪽)이라는 노인의 말처럼 그는 사랑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수아르 족 여성과 있었던 딱 한번의 잠자리를 통해 노인은 '순수한 사랑, 오로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영원한 사랑, 소유도 질투도 없는 사랑'(64쪽)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러한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가 연애 소설을 들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라며 문명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이던 그는 그러나 훗날 암살쾡이와의 싸움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는 꿈을 통하여 신비하게 형상화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중남미 문학 고유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흠뻑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드디어 자연과 혼연일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그가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게 될 연애 소설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복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2.
여기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짐승은 인간에 대한 복수, 그것만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다. 암살쾡이는 인간에게 심한 상처를 당해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컷을 노인이 깨끗하게 처리해 주길 바랐던 것이었고, 자신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수아르 족의 죽음관과 비슷하게 보인다. 수아르 족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결정하며 밀림의 생물들에 의해 가루가 되어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즉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은 채로, 자연과 하나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짐승을 죽일 때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오로지 성장한 동물만을,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잡으며, 잡더라도 짐승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얼굴에 서려있는 짐승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인들은 다르다. 백인들은 짐승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용기, 즉 존엄성이 남아있는 모습이 아닌-죽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영원한 고통에 휩싸이도록 짓이겨 놓는다. 노인 또한 여타 백인들의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수아르 족 친구인 누시뇨를 죽인 백인 노다지꾼에게 복수할 때, 노인은 그만 '총'을 사용하여 백인을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죽게 하고 만다. 수아르 족과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친구를 영원한 불행에 빠뜨리게 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수아르 족의 부락에서 추방되다시피 하게 되고 엘 이딜리오로 나와 자연이 아닌, 연애 소설로 밖에 자신의 고독을 달랠 길이 없게 된다. 노인은 결코 수아르 족이 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문명인이었던 것이다.
훗날 노인은 암살쾡이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그는 뒤집어진 카누 아래서 암살쾡이에게 '엽총'을 사용하여 쏜다.
그렇다. 노인은 문명의 이기(利器)인, 죽임 당하는 자를 영원한 고통 속에 빠지게 하는 '엽총'을 사용하여 짐승을 죽이려 했지만 자신 또한 심하게 다치고 만다. 이는 곧 문명(엽총)이라는 이름 하에 멋대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자연과 인간(암살쾡이와 노인) 모두가 다치고 고통 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섬뜩한 경고이다. 노인은 너무나 아름다운 짐승의 시체 앞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는 명예롭지 못한 싸움에 대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노인은 문명 세계에 대한 실망감과 적개심으로 총을 던져 버리고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180쪽) 자신의 오두막을 향해 떠난다. 그는 밀림 황폐화를, 백인들의 무차별적인 짐승 사냥을 막고자 부단히 애를 써왔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음을 원했던 아름다운 짐승을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내주며 문명 세계에 대해 분노하는 것, 그 뿐이었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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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 전에 읽을만한 중남미 문학이 없을까 해서 찾다가 책이 얇아서;; 들고 간 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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