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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의 작품 <변신>과 오비디우스의 추방이라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시대를 넘나들고 인간 세계와 신화 세계가 뒤섞이고 심지어 시공을 초월하는 그의 글들은 절대 읽기가 만만하지 않다. 평소 신화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조차도 3종류의 '변신' 즉,오비디우스의 작품 <변신> 속의 인물들과 코타라는 인물이 오비디우스의 행적을 쫓아 찾아온 토미라는 마을에서 발견하게 되는 변신을 이루는 마을 주민들과, 또 마을에서 상영되는 영웅들을 다룬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변신은 풀려고 애쓸수록 점점 더 얽히는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구성은 작품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현대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한 비판이다. 전쟁에서 말굽에 가슴팍을 채여 흉곽이 부서지면서 갈빗대가 부러진 화살처럼 살 밖으로 비어져 나온 이래로 보호되지 않은 심장을 안고 평생을 살게 되는 티스라는 인물이 꾸는 악몽은 독일 나치군들이 행했던 유대인을 향한 살육을 생각나게 하고 모호한 이유로 로마에서 추방당하는 오비디우스 역시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는 국가 체계에 대한 고발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외부의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예술이 국가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는 체제에 대한 반발 역시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최후의 세계는 과연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오비디우스가 모든 불합리함을 피해 피신했던 트라킬라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의 장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부조리도, 권력의 거대한 힘의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순수 예술의 세계를 트라킬라가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복원하여 출세해보려고 했던 코타에게 절대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트라킬라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코타를 마지막에 품어준 곳도 바로 트라킬라이다. 죽음이 아닌 변신을 통해 최후의 세계가 새로운 세계가 되기를 작가는 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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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변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서양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책들은 언제나 읽을때 난해 하다
이윤기님의 꽃아 꽃아 문열어라를 서양에서 읽는 다면 어떨까 (단군과 웅녀, 주몽과 유리태자, 박혁거세와 알영,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등 문헌과 구비전설, 무가에 살아남은 우리 신화의 한바탕 본풀이. 이윤기가 풀어 쓴 “내 어머니의 품 안 같은 우리 신화” 이야기-본문 중에서) 그만큼 문화적 정서적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이런 글이 생각난다 도대체 본래 인간이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본래 나비가 꿈속에서 인간이 되어 이렇게 있는 것인지 구별이 안되었던 것입니다.(호접몽에서)
하여간 초반 정말 이해하기 힘든 내용임을 나만 느끼는 건가 이윤기님의 변신이야기를 꼭 읽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