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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닮은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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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점자로 만들어졌다면 눈을 감고 천천히 더듬어 읽고 싶을 만큼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가끔 슬픈 마음이 들어 눈물도 났지만 노란 은행잎을 닮은 이번 작품집도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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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점자로 만들어졌다면 눈을 감고 천천히 더듬어 읽고 싶을 만큼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가끔 슬픈 마음이 들어 눈물도 났지만 노란 은행잎을 닮은 이번 작품집도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p****a 2026.08.2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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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을 읽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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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을 읽는 마음누군가 좋아하는 시인을 대라고 하면, 윤동주, 이상, 이육사, 정지용, 백석, 소월을 대겠다. 이후 시대의 시를 접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금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겠다고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 시집을 붙잡고 매달려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박준' 외에는 저 목록에 다른 시인을 추가하지 못한다.나는 마음대로 박준을 한국 서정시의 적장자라 여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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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을 읽는 마음





누군가 좋아하는 시인을 대라고 하면, 윤동주, 이상, 이육사, 정지용, 백석, 소월을 대겠다. 이후 시대의 시를 접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금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겠다고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 시집을 붙잡고 매달려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박준' 외에는 저 목록에 다른 시인을 추가하지 못한다.


나는 마음대로 박준을 한국 서정시의 적장자라 여긴다. 누군가 이를 치명적인 오독과 무지라 비난해도 아랑곳않는다. 나는 그래미어워즈나 아카데미 시상식의 심사위원이 아니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기분 좋은 울림을 주는 시인들만 편애하기 때문이다.






박준을 왜 편애하느냐는 질문에는 그의 시를 읽어보라고, 또는 그가 출연한 방송을 보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위에 인용한 글처럼 사랑에 대한 그의 표현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출연한 방송이다. 나는 언제나 작가들이 쓰는 글과 그들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하는데, 박준은 평소의 말투나 목소리가 어쩐지 그의 시를 닮아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시가 그의 목소리를 닮아있는 것이겠지만, 내가 먼저 접한 것은 박준의 시이니, 내게는 시를 닮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이번 신작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를 사고 나서 나는 또 한번 박준이라는 시인에 대해서 괜히 혼자 애틋해졌다. 게으름으로 다 읽지도 못할 것이고, 몇 년후에나 이런 책이 있었지, 하고 들춰보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애호하는 문인들의 신간을 꾸역꾸역 사는 경우가 있다. 초판 한정으로 사인본이 증정되는 경우다. 대체로 신간 초기 판촉을 위해 초판본은 양장이거나, 엽서가 들어 있거나, 사인이 들어있다. 어릴 적에는 양장이 멋들어져 좋아했지만 요즘 나는 양장본의 각진 폼에 자꾸만 밀려난다. 엽서는 애당초 수집하거나 써보내는 취미 없어 그다지 흥미도 없다. (아, 내가 엽서를 적어 보내는 재미를 알았다면 달랐을까?)


나의 소장용을 자극하는 건 언제나 사인본이었다. 직접 대면해서 받은 사인본보다도 그렇게 수중에 넣은 사인본이 더 많다. 하지만 서명은 고된 노동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작가가 심혈을 기율여 멋들어지게 서명을 하면 그걸 인쇄해 삽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 서명 역시 귀하겠지만서도 나는 영 그런 사인'인쇄'본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는 신간 출간 알림이 오자마자 구매했는데, 사실 사인본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게 박준이라는 작가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꼭 사서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책을 받아 첫 페이지를 열어보자 나는 좀 놀랐다. 박준의 서명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인쇄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반대편을 보자, 덜 마른 서명에서 묻어나온 하얀 잉크가 묻어 있었다. 한 번만 서명하면 수 천개로 복사할 수 있는 이런 편한 시대에 박준은 직접 서명해서 보낸다. 낭만은 불편의 다른 이름이라던데, 나는 여전히 낭만에 젖은 이 시인을 좋아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의 인상적인 지점은 '시'와 '그 뒤에 달아놓은 박준의 글' 사이에 도약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책은 그 시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나 시에 얽혀 있는 시인의 개인적인 일화 같은 게 담겨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글들도 수록되어 있지만, 어떤 시와 글들은 서로 거리감이 있다고 느낀 글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정지용의 <호수> 같은 시 뒤에는 연인(박준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미인)에 대한 글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점점 흐려지는 그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 그림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부족한 식견으로는 <호수>가 독자에게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인상을 자아내니 여기서 착안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시와 흐려진 그림은 감상하는 이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준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쓰인 게 아닐까 한다.


첫 시집 제목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 지을 만큼, 박준은 이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흔히 어떤 사람의 이름까지도 앓게 되는 게 사랑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종종 참 쓰는 시에 꼭 맞게 어떻게 이름도 박준일까, 생각해온 적이 있는데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에 수록된 이름에 담긴 내력은 그런 낭만과는 전연 달라 퍽 재밌다.






작중 유영국 화가의 전시회에 다녀온 일화도 있는데, 요즘 같이 읽는 책인 『살롱 드 경성』에도 이 화가에 대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또한 근래 예술가는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내는 프리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에 대해 다룬 부분이 있어서 오래 곱씹게 되었다.


예술이 규범과 불온함을 동시에 내포한다고 정의할 때 누구나 한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규범과 달리 불온함을 감지할 수 있는 눈은 저마다 다릅니다. 불온은 한 예술가가 대상을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담지되는 것이며 감각을 물질화하는 방법에 따라 분화되기 마련이니까요.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62쪽


당연하지만 한번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박준뿐만 아니라 시인의 글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번 책에선 꿀에 대한 문장이 내게 그랬다.


꿀. 식물에서 왔지만 더이상 식물은 아니고 동물의 몸에 속해 있었지만 결코 동물은 아닌.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39쪽


또한 위안을 받기도 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몇몇 예외적인 시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시를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인이자 시집을 편찬하는 일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온 박준마저도 시가 어렵다고 하니, 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여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더는 박준의 시를 사랑하지 못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그렇게 된다면, 미워할 것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더는 사랑할 것을 찾지 못했다는 소리일 테니까.



j*******8 2026.09.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