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여건들이 발목을 붙들고 있는데.. 책 한권으로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 그리고 그 곳의 많은 전설들을 경험함으로써 책을 읽기시작하면서부터 다 읽기까지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직접 여행을 하면 더 좋겠지만.. 집에서도 내가 느끼는 대로.. 상상력을 동원해 가면서 한 여행은 정말 소중했다... 책에서 나왔던 지역은 허상이였지만.. 분명 옛 소련의 잔재가 남아있었기에.. 옛 소련의 넓은 국토를 감을 잡지 못했고 다른 나라와 그 나라의 위치를 소련으로 포함시키기가 낯설었다..내가 훨씬 태어나기 전이였고.. 책으로 배웠다지만 러시아라는 강한 인식 때문에 옛 소련의 방대한 지리적,역사적,민족적 의식이 처음 책을 읽을때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런 복잡미묘한 것들은 잊어버렸고... 사막의 스텝지대에 있는 철로노무자인 그들의 삶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백년보다 긴 하루>는 오랜세월 철로노무자로 같이 일한 예지게이가 동료이자 그곳으로 인도한 까잔깝을 매장하기 위해 사막근처의 간이역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면서 과거로의 회상으로 인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해설에서 처럼 이런 마을문학은 분명 작은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얘기인데도 서사적으로 펼쳐지는 얘기는 우주보다 더 무한한 공간과.. 상상력.. 긴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특별한 얘기보단..(우리와 동떨어진 얘기... 그러나 보란리-부 란니 간이역에선 특별한 일이였다...) 이렇게 사람사는 얘기(사막의 스탭지대라서 분명 특별했음에도 불구하고....)가 더 마음에 와닿고... 친근하고 정감가고.. 마음 한 구석에 추억이 남는다... 어느 한구석도 지루한 곳이 없었다.. 책의 끝부분에서 까잔깝을 매장하러 가는 장소에 우주선 기지가 있어서 다른 곳에 묻게 되는데.. 책의 첫머리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선이 발사되어서 그 우주비행사들이 다른 별을 찾게 되고 그 사실을 지구에 알리지만.. 지구에서는 경고문과 함께 그 우주비행사들을 추방해 버리고 지구를 방어하는 로켓을 쏘아올린다.. 그 광경을 예지게이는 보게 되고.. 그 우주기지 때문에 까잔깝이 묻어 달라는 곳에 묻지 못한다.. 책의 내용과 우주의 새로운 별에 관한 얘기가 그렇게 깊은 연관을 보여주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작가는 그 우주 얘기를 은유적으로 이끌어 냈겠지만.. 예지게이나 나 나... 그런 먼나라 얘기는...순간 지구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라고.. 동료의 매장에 방해가 되었을 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충실한 삶을 살아왔던 예지게이기에... 그런 삶을 여행해서 너무나 좋았고.. 모든 상상력을 가능케.. 무한하게 펼쳐지게 만들어준 작가의 글 솜씨도 좋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온 듯..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듯... 아련한 추억이 마음에 남고.. 뿌듯함으로 힘이 솟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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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감동이었습니다. 아직도 예지게이(아저씨)가 어디선가 낙타를 타고 나타날듯.. 그 간이역에 가볼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들리고 싶어요. 러시아의 조정래라고나 할까. 정말 큰 작가의 큰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 안에 작은 사람들의 작은이야기.. 그들의 열정과 근면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출산을 앞두고 있는 저로서는 더 없는 지침이 되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완전 추천합니다. 근데.. 하드 커버는 책 넘기기가 힘들어서, 보급형으로 보셔도 좋을 듯 하네요. |
| 지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러시아 혹은 구 소련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 소설이라고 구분짓기에는 너무나도 아시아적인, 동양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예지게이의 머리속에서 그려지는 카자흐의 반세기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옛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사회적이거나 정신적인 유산을 이어받고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거나 함께 어울리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자신들의 자손에게 전해주려하는 모습은 지극히 동양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들이다. 동과 서로 이동하는 기차, 안과 밖으로 여행하는 우주선, 마을과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과 이 모든 사람들이 역사를 이루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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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이곳의 철길 양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광대한 불모지 – 중아 아시아의 노란 스텝 지대, 사리-오제끼가 놓여 있다. 여기서는 모든 거리가 철도로 재어진다.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경도가 정해지듯. 그리고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이 책은 예지게이가 보란리-부란니역에서 까잔갑의 운구를 끌고, 30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나-베이뜨로 향하는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과, 예지게이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난한 어부였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젊은 시절, 전쟁을 겪으면서 이 간이역에 정착했던 일, 까잔갑과 함께 한 추억들,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학교 선생에서 간이역 인부로 전락한 아부딸리쁘, 그리고 예지게이가 사랑했던 아부딸리쁘의 아내 자리빠까지, 예지게이는 하루 동안 전 생애를 돌아보게 된다.
예지게이는 ‘시간의 수레바퀴’가 점점 더 빨라는 이 시대에, 개인의 특성은 무력화 되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가치가 추락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늘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는 기차 뿐이다.
보란리-부란니 간이역에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 그 오랜 기간에 걸쳤던 엄청난 노력들, 그가 겪었던 모든 고통과 어려움과 기쁨들, 그 모든 것들이 매장을 하는 단 몇 분 동안에 몇 마디 작별의 말로 표현되어야 했다.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러나 또 얼마나 적은 것들이 주어졌던가! –p379
<백년보다 긴 하루>에 등장하는 “만구르뜨” 전설은 충격적이다. 처음엔 인간의 기억을 빼앗는 잔인한 형벌에 경악했고, 예지게이가 아버지에 대한 예를 갖출줄 모르고, '아나-베이뜨'를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 지 모르는 까잔갑의 아들 사비찬에 대해 "네놈은 만구르뜨야! 진짜 만구르뜨야!"라고 생각하는 대목에선, 나 자신도 좀 뜨끔했다.
책을 덮고나도, 광활한 벌판에 있는 간이역과, 낙타의 모습이 떠오르고 매섭게 내리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오랜만에 접하는 "아름다운" 명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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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을 배경으로 아이뜨마또프가 풀어낸 이야기들은 다른 문화권의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다.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땅 넓이 만큼이나 상상력의 한계가 없는 이야기들,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뿐만 아니라 우리 태양계 밖의 또다른 태양계(레스나야 그루지)까지 오가는 사고의 광활함이란.
특히 츄안츄안 족의 만꾸르뜨 노예 전설이 압권이다. 강렬한 전설의 여운은 자연스럽게 우리 시대의 만꾸르뜨 노예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츄안츄안 족은 중앙아시아의 사로제끄를 정복하면서 포로가 된 전사들을 매우 끔찍하게 다룬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포로의 머리를 면도날로 철저하게 밀어버리고는 어미 낙타에서 도려낸 뜨고운 유방(시리)을 포로의 머리에 얹어버린다.
이 상태에서 포로들은 손발이 모두 묶인 채 태양이 작열하는 벌판으로 끌려가고, 음식과 물도 없이 사나흘을 홀로 버려진다.
이들은 굶주림으로도 죽지만, 머리에 씌워진 낙타의 생가죽이 머리를 조이는 압력때문에 죽기도 한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시리가 수축하면서 머리를 압박하는 동시에 밖으로 자라나가지 못하는 머리칼이 오히려 포로의 머릿속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태양 아래서 시리가 씌워진 노예들이 보내야 하는 이 하루는 말그대로 백년보다 더 길 것이다.
대여섯 명중에 하나가 살아남게되면 반드시 이 포로는 기억이 상실된 짐승과 같이 된다.
의심도, 감시도 필요없이 개처럼 주인만 알아보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배를 채운다는 욕구밖에 없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스텝에서 혼자 낙타를 돌봐도 무서운 줄을 모른다.
나이만 부족 족장의 아들인 졸라만 역시 만꾸르뜨 노예가 된다. 갖은 고생으로 노예가 된 아들을 찾아낸 어머니 나이만-아나는 기억을 돌려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아들을 되찾는데 실패할뿐만 아니라 아들이 쏜 화살에 죽음을 당한다.
<백년보다 긴 하루>의 주인공 예지게이는 근면 성실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물이다.
40년 이상을 스텝의 철로에서 일한 까잔갑 노인을 묻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만 노인의 후레자식인 사비찬은 입만 놀릴뿐 장례에서 하등의 도움도 못될 뿐만 아니라 고인에 대한 존경심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부모도 몰라보고 그저 주워들은 것만 젠체 나열하며 주변인을 무시하는 사비찬은 오늘날의 만꾸르뜨 노예다.
아이뜨마또프는 현재 키르키즈스탄의 국회의원이자 NATO, EU, 베네룩스 3국 특사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다른 책들 - 자밀랴, 하얀 배, 해변을 따라 달리는 얼룩개 등 - 은 아직 한국에 번역이 안된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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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 황량한 스텝에서 역무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극히 작고 더 작은 예지게이라는 한사나이의 살아온 작은 인생의 한 특별하지만 결코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통해 중아시아 스텝에서 살아가는 민족의 문화, 역사, 사회상 그리고 지구와 전 우주와 시공간을 통틀어 백년에 걸친 아름다운 서사시를 그려넣은 장편이다. 이제껏 읽어온 책과는 사뭇 다른 소설 전개 부터가 이 책의 매력이다. 주로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소설이 전개되는데, 이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뿌리>에 등장하는 주푸레 마을의 그리오와 같이, 개인에게 있어 역사는 살아숨쉬고 전승되는 것임을 개인자체가 역사의 산실이라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역사가 개인과 민족, 국가를 넘어서서 전 우주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이런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적인 역사의식은 SF적 요소까지 더불어 살짝 곁들여지게 하여, 마치 거친 사막처럼 자칫하면 퍽퍽했을지도 모르는 이 장편소설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이 책에서 '그리오'의 역할을 하며, 광활하고 황량항 스텝을 거니는 한마리 강인한 낙타와 같이 살아가는 주인공 예지게이 역시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 어떤 소설에서 보다 더욱 남성적이고 강인한 내면을 지니고, 또한 그 내면에 아름다운 역사의식을 품고있는 이 등장인물은 여느 소설의 캐릭터에 비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여태껏 흔히 접하지 못했던 중앙아시아 문화를 알게 하는데도 꽤 한몫을 했다. 건조한 스텝의 기후와 지리적상황 그리고 그곳에 살아가는 민족들의 전통과 문화생활, 사회주의 문화권의 생활과 문제상등 여지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권을 경험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아랄해의 축소와 같은 국제적 환경문제, 또한 외계인의 등장과같은 맛깔스런 SF 적 요소, 까자흐족의 신비로운 전설과 같은 이야기의 혼합.. 이 모든것은 역사라는 한 맥락으로 정리되어 예지게이를 통해, 까진갑의 무덤으로 이어진다.개인적으로, 츄안츄안족과 마꾸르뜨, 나이만-아나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충격적이기 까지 했다. 한상의 맛깔스런 중앙아시아식 퓨전요리 코스를 맛본 기분이다. 이책을 읽은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지 못했을지도 못한 리뷰일지 모르나, 아무튼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
![]() "여기서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철길 양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광대한 불모지 - 중앙 아시아의 노란 스텝지대, 사리 - 오제끼가 놓여있다. 여기서는 모든 거리가 철도로 재어진다.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경도가 정해지듯... 그리고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이 구절이 나타내듯 이 소설의 배경은 중앙 아시아 사막지대의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금의 터키와 까자흐스탄 사이 사막지대의 작은 간이역에서 일어나는 철도원인 예지게이의 삶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 그리고 격변하 소련의 정치변화 그 변화속에서의 주인공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런 소설인데, 가볍게 보기엔 너무도 많은 그당시 사회상을 포괄하고 있다.. 이 글을쓴 친기즈는 고르바쵸프의 고문으로도 활약을 하고, 일본에서도 문학상을 수상할만큼 러시아 문학의 대부인데, 소련해체후에는 끼르기즈공화국의 프랑스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그의 조국인 끼르기즈공화국의 전통 고수자이기도 했다.. 1. 죽 음 사막의 날씨가 그렇듯, 가을이 성큼 다가선 그때쯤은 저녁이면, 벌써 추웠고, 새벽녁이면 밤사이에 내려앉은 소금결정과도 같은 서리가 덮여있다. 사막의 동물에게는 우울한 겨울이 오고 있는것이다..방목하는 낙타들은 겨울엔 어디론가를 가서 봄이되면 다시 스텝으로 돌아온다.. 예지게이는 밤 근무를 서고 있는데, 멀리서 아내가 왔다,... 예지게이와 같이 오랫동안 이 낯선 곳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까잔갑의 죽음소식을 가지고... 사십년을 같이 이 황무지 같은 사막에서 철도원으로 일해온 동지인 까잔갑이 아무도 없이 혼자서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다... 예지게이 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비록 자식이 있긴해도 예지게이만큼 까잔갑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할 사람이 없다.. 까잔갑의 아들 사비찬은 도회지의 물을 먹은 아주 과장된 인물로 모든것에 지나치게 박식해서 보란니- 부란니역에 사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경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 아버지 장례식에 왔다.. 예지게이는 까잔갑을 회교전통에 따라 장례식을 치르고자 했으나, 사비찬과 여러 사람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곳의 전통을 가진 공동묘지인 아나 - 베이뜨는 그곳에서 삼십킬로미터 이상을 떨어져 있었고, 한낮의 더위는 모든이들을 벌써부터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예지게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통장례식을 고집하고 회교도의 기도문을 까잔갑에게 마지막 가는길에 꼭 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까잔갑이 생전에 묻히길 원했던 어머니의 안식처라는 아나 - 베이뜨 묘지에 꼭 그를 묻어 주고 싶었다.. 2 아나 - 베이뜨 공동묘지의 전 설 사로제끄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는 묘지인데, 옛날 아나라는 어머니가 아들이 츄안츄안족과의 전투에 가서 살아돌아오지 못하자, 아들을 찾아 나선다.. 고곳의 전투에서 잡힌 포로는 전부가 "만꾸르뜨"라는 노예가 되는데, 처음에 츄안츄안족은 포로를 잡아 노예를 팔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일꾼을 충당하기 위해서 포로의 기억을 상실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포로들은 황량한 사막에 전신을 묶고, 한올의 머리카락도 없이 밀어버리고, 거기다 "시리"(낙타유방 하나에서 5-6개를 잘라 만든모자) 를 씌운다. 그러곤 음식이나 물한모금없는 사막에 넘어뜨려 놓는다..그러면 뜨거운 햇볕에 시리가 머리에 말라서 붙게되고 삼사일이되면 시리는 오그라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머리통을 쇠테처럼 죄어들어간다.. 며칠뒤엔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이 머리카락이 질긴 낙타의 시리를 뚫지 못하고 다시 머리안으로 파고자라 들어오면 포로들의 엄청난 고통으로 신을 저주하고 그를 낳은 부모까지 저주를 하게된다...굶어죽고, 햇볕에 타서 죽는것이 아니라, 낙타의 생가죽으로 만든 시리가 머리를 죄어 그 고통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살아난자는 그저 멍청하게 되고 주인이 와서 가르치는 예, 아니오, 밖에 모르게된다.. 아나라는 이 여인도 아들이 만꾸르뜨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찾아나서지만, 그의 아들은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노예였다.. 어머니의 노력도 고사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버지이름과 아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가르치나, 오히려 주인의 명을 받아 어머니를 화살로 쏘아 죽이게된다.. 그때 그녀의 입에서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하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그곳 아나 - 베이뜨 묘지에는 밤이면 도넨바이라는 새가 나와서 "도넨바이,..도넨바이"하면 운다는 아주 안타까운 전설이 내려오는 그런 묘지였다.. 3. 장 례 행 렬 장례식은 예정대로 예지게이의 고집으로 아나 - 베이뜨의 공동묘지로 가서 치르기로 했다..트레일러를 매단 트랙터와 예지게이의 사랑하는 까라나르라는 낙타, 그리고 굴착기,아들 딸, 사위..등과 사막의 길을 나섰다..예상한대로 찌는듯한 폭염은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이런길을 가면서 예지게이는 1950년에 이 간이역을 찾아 들었던, 아부딸리쁘를 생각하고 있었다.. 교사를 지냈던 아부딸리쁘는 전쟁에 징집되어 전선으로 갔는데, 독일군의 포로가 된적이 있었다..그가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빨치산이 되어 활약한 사실을 지리시간에 충실히 가르치기 위해 수업한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파면을 당하고, 사로제끄로 아이셋과 예쁜 부인 자리빠와 함께왔다.. 그곳에선 둘이 힘껏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와 자리빠는 함께 나가 일을 했는데, 세 아이는 예지게이의 아내 우꾸발라가 돌봐주었다..이 아무딸리브의 이야기는 우리 현대사에도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없는 빨갱이를 만들어 또 다른 빨갱이를 양산하는 그런 모습들이 이당시 스탈린 체제하에도 무한히 반복된다... 결국 예의바르고 똑똑한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리고, 예지게이가 연정을 품었던 자리빠도 세아이를 데리고 모스크바의 오빠네 집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그는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그때 그를 붙들어 준 사람이 까잔갑이었다.. 1956년 유고슬라비아와 우방 국가가 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빨치산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가버린 아부딸리쁘의 명예를 회복시켜준다..까잔갑이 예지게이의 자리빠에 대한 사랑을 경계하며 들려준 라이말 - 아가라는 소리꾼이야기는 장례식내내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스텝지방 음유시인 라이말리는 현에 손을 대기만 해도, 노래가 즉흥적으로 나오는 그런 천재적인 가수였다.. 그런데, 그의 전부는 그의 말과 손에 든 돔브라라는 악기가 전부였다.. 잔칫집에서 베기마이라는 흑발미녀를 만나 음탕한 노래를 주고 받았다는 이유로 그의 부족들과 동생 압질리한에게 나무에 묶인채 죽어가면서 이노래를 불렀다,.. "검은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때, 내손을 풀어주렴, 내동생, 압질리한. 푸른 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 때, 나를 자유롭게 해주렵, 내동생, 압질리한. 네가 나를 묶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지. 손과발을. 검은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때, 푸른 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 때, 내손을 풀어주렴, 내동생, 압질리한. 자유롭게 되어 나는 하늘로 올라가리... 검은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때, 나는 장터로 가지 못하오, 베기마이, 푸른 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 때, 장터에서 나를 기다리지 마오, 베기마이. 그대와 나는 장터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내 말이 나를 데려다 주지 못하니 나는 거기에 가지 못하리.... 검은 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 때, 푸른 산에서 목동들이 내려올 때, 장터에서 나를 기다리지 마오, 베기마이.. 자유롭게 되어 나는 하늘로 올라가리... 3...공 동 묘 지 힘든여정끝에 도착한 묘지입구엔 가시철망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있었고,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예지게이는 전쟁당시 받았던 훈장을 들먹이면서도 사정을 해 보았지만, 상사의 명령이라면서 보초는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몇시간을 실갱이를 벌였지만, 결국에는 책임자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사비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근의 낭떠라지 꼭대기에 까잔갑을 묻기로 한다... 그리고 회교도의 장례형식에 따라 기도문과 모든 절차를 거쳐 그 지루한 장례식을 무사히 마친다... 그리고, 그 옆에 예지게이 자신도 꼭 묻어 달라고, 동료들에게 부탁을하면서 그래도 도회지에서 배웠다는 사비찬에게 아나 - 베이뜨 묘지를 지켜주기를 원하지만,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비행장으로 쓰는 정부의 방침은 어쩔 수 없다는 실망스런 답변을 들으며, 이 현대를 사는 현대인이야 말로 진정 노예인 "만꾸르뜨"라고 생각한다.. 5. 마 치 면 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예지게이는 현대인이야말로 "만꾸르뜨"라는 말이 내내 가슴을 울렸던 기억이 새롭다..우리의 모습이야 말로 물질문명의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장례식 며칠동안의 이야기가 책 한권이 되도록 만든 지루한 일상부터 끊임없는 회상 ..그리고, 그의 전투 이야기 등은 빠져 있지만,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제목 답게 장례가 끝나는 그날 하루의 일이 서사시 처럼 펼쳐진다.. 중앙아시아 사막을 가보고 싶은 충동과 지도를 바라보며, 그곳이 여기쯤일 곳이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 이정도의 내용으로 충분하지가 않겠지만, 관심이 있는분은 한번 보세요.. 까자흐 사람 예지게이의 삶에서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보기도 한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근면하면서도 의리 있고, 착한 그런 아버지들.. 전통과 개화된 현대물과 그리고, 군사시설속에 파괴되는 끼르끼즈 공화국의 전설들을 안타깝게 고수해 보려는 작자의 노력이 숨어있는 책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무엇보다 이글을 번역하신 황보석님의 매끄러운 번역이 책 읽는데 일조를 합니다..
폴 오스터 "달의 궁전"외의 여러책들도 많이 번역하신 분이라
이분의 번역물이면 한번 다 사보고 싶은 생각도 있을 정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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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가지고 이날을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그 누그러뜨릴 수 없는 아픔은 긴긴 기다림의 시간들로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던가! p76
나중에 예지게이는 고요한 사로제끄를 마주 보고 설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사막의 광대함에 대항하여 자기 영혼의 강도를 진정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p84
또 아부딸리쁘가 자기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안다는 것이, 그리고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미묘한 문젯거리들을 끄집어내서 쓸데없는 말로 그런 것들을 집적거리지 않고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p172
그는 신에게 한 가지만 허락해 달라고-자비를 베푸시어 재치 없는 말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속인 자기를 벌하기 전에 용서해 달라고-기도했다. 당연히, 그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묻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그리고 슬플 때 가장 안 좋은 것은 혼자 있는 거예요. p238
그런데 세상에는 누군가에게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당장에 알아차리는 이해심 많고 예민한 사람이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p239
<삶이란 게 그렇기 마련인가 봐요. 너무도 무섭고 너무도 빈틈없고 모두가 서로 매여 있는……. 끝이 있고 시작이 있고 연속이 있고…….> p246
오늘(어제) 꼭 다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100페이지 분량을 남겨놓고 잠을 이기지 못해 목표한 날을 다음날로 미뤄야겠다.
이 책 또한 김연수가 소개한 책이라 그런지 기대 이상의 흥미를 느꼈다. 시작은 제목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대체 어떤 하루기에 백년보다 길다고 할까. 정답은 간단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사로제끄 사막에서 예지게이가 그의 운명적 친구 까잔갑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를 묻기 위해 30킬로미터 떨어진 나이만 부족의 아나-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 묘지까지 찾아가는 하루 동안이 그에게 백년보다 긴 하루였던 것이다. 그렇다. 시간은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우리가 미처 설명할 수 없는 상대성을 갖고 있어서, 단 하루 동안 백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욱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삶의 모진 슬픔에 있다. 포로로 잡혀 기억을 박탈당한 만꾸르뜨 이야기. 머리칼을 뽑고 머리뿌리마저 칼로 도려내고 동물의 가죽을 그 머리에 집어씌우는, 잔인한 형벌이 가해지면 인간은 파고드는 가죽의 힘을 견디지 못해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아니, 그 이전에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더 많다. 간혹 고통을 견뎌낸 사람은 만꾸르뜨가 된다. 그들은 그 어떤 노예보다 탁월한 노예가 되어, 평생의 기억을 박탈당한 채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들 중 한 만꾸르뜨 어머니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 부분을 읽는 동안, 어쩌면 이렇게 잘 묘사했을까 하고 작가의 필력에 감탄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인간의 잔혹함과 어머니의 애닳은 사랑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치의 포로였다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아부딸리쁘가 잡혀가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겪는 슬픔의 시간이 내 마음을 샅샅이 흐트려놓았다. 아, 기댈 곳 없이, 오롯이 가족 하나만을 믿고 사랑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부재가 그런 것이구나.
어서 빨리 끝까지 읽고 싶다.
또 한번 느낀 거지만 김연수가 추천한 소설에는 정말이지... 삶-슬픔, 그러나 희망이 있고 인내와 고통 그리고 작가의 아름답고 고귀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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