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조정래는《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분단의 역사 속에 놓인 백성들의 삶을 들려주었다. 이 외에도《정글만리》《천년의 질문》《황금 종이》등의 장편소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치와 문화적 충돌 문제를 다뤄왔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은 왜 쓰지 않느냐’는 독자의 질문과 요청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한 독자들 질문에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서리꽃》은 그가 인생 말년에 응답한 셈이다. 작가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서, 한 편의 시와 그림으로 시작된 사랑을 소설에 담기 위해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프랑스 파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오테를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 등을 실제 답사하고 4권 분량의 수첩에 메모와 그림을 남겼고. 이 같은 취재 과정은 소설 속에서 재이와 소인의 여행을 통에 자세히 묘사 된다. 작가는 이제는 자신에게 여유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복부대동맥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겼다고 한다. 아무튼 재이는 소인과 함께 공기가 좋은 ‘어머니 품 장흥’으로 향한다. 별이 있고 바다가 있고 숲이 있는 곳이다. 잔잔한 바다에는 현란한 황금빛 빛줄기가 길게 뻗어 있었다. 잔물결들은 정오의 햇빛을 반짝반짝 반사하며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너무해요……, 너무 기막혀요.” 윤소인이 중얼거렸고, 이재이가 그녀를 돌아 보았고, 자연은 너무 잔인하게 완벽해요, 라며 그녀는 먼 빛줄기를 응시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장흥이 첫 번째 준 선물로, 대한불교조계종 가지산 보림사의 휴양 생활로 소인은 나날이 회복되어 간다. 3월은 하루가 다르게 봄을 실어 오고, 남도의 서러움이 맺힌 꽃을 만난다. 새빨간 꽃에 샛노란 꽃술이 달린 요염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한 한 송이 동백꽃을. 그리고 시를 읊기도 한다. 별 하나가 떨어질 때/ 소원을 말하지 않고/ 이유를 물어본다 왜 태어났고/ 왜 사랑했고/ 왜 아직 놓지 못하는지 산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인가…… 여름 그믐밤 자정 하늘에 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완쾌되었다는, 전이가 전혀 없다는 의사가 이틀에 걸친 정밀검사 결과를 알려주었고, 재이는 미국에서 썼던 그 사랑 고백 수첩 4권을 소인에게 선물 하고는, 윤소인의 지하 생활 5년 허송세월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서둘러대 화실을 얻었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몰두와 집념과 치열과 고독이 무엇인지 이재이는 난생처음으로 겪으면서, ‘저것이 몸을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구나……, 병이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그림 그리기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일요일마다 윤소인을 만날 때 그녀 몰래 음모의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어서 임신을 하게 해주소서…….’ 그녀를 이 고통스러운 길에서 구해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 그것을 빙자해서 그림 그리기를 중단시킴과 동시에 결혼도 하는 일거양득의 횡재를 할 수 있을 거였다. 두 달 반쯤 되어가는 어느 날 아침, 재이는 소인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이틀에 걸친 정밀검사가 진행되고 재발했다는 진단을 들었다. 사랑을 이어준 한 편의 시와 그림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꿈꾸었지만, 소인은 마지막 소원을 말해야 했다. “반 고흐 그림들을 다 보고 싶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까지요.”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예술의 본고장, 특히 서양미술의 뿌리인 파리로 가는 길이다.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미래를 향한 열망과 영원의 이야기를 따라서다. 등단 56년 만에 처음 쓴 사랑 소설이라며, 작가는 슬픈 사랑 쓰고 싶었다며, 마지막 장편 될 것 같다며 조정래는 말한다. “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 슬픔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서. 그런데 그걸 작가가 설명하려 들면 독자 모독이 된다. 소설에서 주제 찾기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독자들께서 슬픈 사랑 이야기《서리꽃》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찾아주신다면, 수술로 기력이 떨어져 후반으로 갈수록 사흘거리 몸살을 앓아 예정보다 두 달이나 늦게 소설을 끝낸 작가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