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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고르거나 영화를 볼 때 내용에 대한 파악 없이 제목이나 표지(또는 포스터)만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다. 조금은 ‘즉흥적인’ 선택이라 할 수도 있지만 몇몇 배신감을 느꼈던(배신감이라 해도 절대적인 나만의 주관적 감정이라, 책을 쓴 저자나 영화를 만든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테지만)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택에 만족했던 기억이다.
‘Raymie Nightingale’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우연찮게 인터넷 책방을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온 책 제목 ‘이상하게 파란 여름’ 그리고 파란색 표지.
미국에 머물던 터라 영어책 읽기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공공 도서관에 접속해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검색창에 책 제목을 적으려니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파란 여름’이라니...‘Extraordinary Blue Summer’ 정도 되려나? 아니 그것보다 우리나라 번역서가 제목을 바꾸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번의 검색을 거쳐 내 예상대로 책 제목이 바뀌어 번역된 것을 알았다. 원제는 ‘Raymie Nightingale’,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꼬마숙녀의 이름이다. 이로써 제목에서 느낀 호감은 일부 반감되었으나 다행히도 파란색 표지는 원작과 번역본이 동일했다. 이마저 달랐다면 책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이야기는 1975년 어느 여름날 Raymie라는 10살 꼬마 숙녀가 Louisiana와 Beverley 라는 친구들을 바톤 돌리기 수업(twirling a baton)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어린 숙녀들의 목표는 “Little Miss Central Florida Tire 1975(타이틀이 참 길기도 하다)”에 참가하는 것으로, 저마다 제 각각의 이유가 있다. 주인공 Raymie는 이틀 전 다른 여자(정확히는 치위생사, dental hygienist)와 집을 나간 아빠를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Louisiana는 animal center에 맡긴 고양이 Archie를 되찾아 오기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Beverley는 콘테스트 마다 참가시키는 엄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콘테스트를 방해(sabotage)하겠다는 생각으로. 막상 알고보면 10살 여자 아이들의 참가동기로 내세우기에는 하나같이 마땅치 않아 보이지만 이 셋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셋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Raymie의 아빠가 집을 나간 것, Louisiana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어렵게 살고 있는 것, Beverley 역시 집을 떠난 아빠를 찾기 위해 New York으로 가려 한다는 것 등), 다소 엉뚱한 사건들을 만들고 부딪치면서(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요양원 병실에 떨어뜨리고 도망쳐 나온다거나, 새장 속에 있는 노란 새를 놓아주고 도망친다거나, 또는 동물보호소에서 구출한 강아지를 데리고 카트를 타고 도망치거나 하는 : 적고 보니 모두 도망치는 사건들인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얻으려 노력한다.
연못에 빠진 Louisiana를 구하는 용감한 행동으로 자신이 원하던 대로 신문에 사진이 실리고, 그것을 본 아빠의 연락을 받지만, Raymie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Raymie는 막연하게나마 아빠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며칠간의 소란스럽고, 엉뚱한 시간들을 보낸 후 Louisiana는 물에 빠져 입원하게 된 병원에서 Archie로 추정되는(그녀는 Archie라 확신하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고, Beverley는 동물보호소에서 구출한 강아지 Buddy(당초 Louisiana가 Bunny라 이름 붙인)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세 소녀는 Belknap Tower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무서워하는 Loisiana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히 그 순간 손을 잡고 섰다는 것 이상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Don’t worry,” said Beverly. “I’m holding on to you.” Raymie took hold of Loisiana’s hand. She said, “I’ve got you, too.”
이 소설은 어떤 극적인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성장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나면 그렇구나, 이 아이들은 그렇게 한 뼘만큼은 세상을 알고, 세상에 다가섰겠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을 혹자는 철들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꼬마 소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만들어 가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감탄했던 것은 다소 일관성 없이 소개되는 듯 보이던 Raymie 주변의 인물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서 제각각 역할을 하고, Raymie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Sometimes, in the afternoon, the sun shone directly on the jar and lit it up so that it looked like a lamp.
“Beware of the brokenhearted,” said the grandmother, “for they will lead you astray.” “That’s all of us, though, Granny, is it?” said Louisiana over the noise of the rain. “Aren’t we all brokenhearted?”
Suddenly, Raymie was happy. It was the strangest thing, how happiness came out of nowhere and inflated your soul.
The blue sweater smelled like roses and something deeper and sweeter even than roses. It was so warm. Raymie started to c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