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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뒤주 밖으로 나온 사람이 쓰다 — 한민의 『왕의 심리학 : 영조·사도세자·정조 편』을 읽고 도서 정보 지은이: 한민 | 출판: 시크릿하우스 | 출간일: 2026년 8월 5일 역사와 심리학을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역사 예능의 단골 주제로 수없이 다루어져 온 임오화변.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 중 가장 참혹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세 사람, 영조·사도세자·정조를 역사적 관점이 아닌 심리학적 관점으로 파고든 책이다. 문화심리학자로 이미 잘 알려진 한민 교수가 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역사 덕후임을 단단히 증명해 보였다. 숙종부터 영조, 사도세자, 정조까지 조선 후기 가장 뜨거웠던 140여 년의 역사를 심리학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이 책은 왕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역사적 사건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이제껏 역사 해석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시각으로 탐구한다. 성격과 기질, 성장 환경, 결정적 시기의 경험, 부모의 양육 태도. 그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이유들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 간 것도 결국 사람이었고, 사람의 행동은 심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에 심리학적 시각을 더하면, 그 시대 그 사람들의 행적이 전혀 다른 의미로 떠오른다. 이 책에서 들여다본 영조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평생 콤플렉스와 편집증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의 무게를 아들에게 고스란히 얹었다.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사도세자를 생모와 떼어놓은 것도 그였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마저 정치적 도구로 삼은 아버지는, 사도세자가 자라는 내내 일관되지 않은 양육 태도로 자식의 피를 말렸다. 사도세자의 조현병, 공황 증상 등 심각한 정신적 문제들의 뿌리는 다름 아닌 애정 결핍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심리 분석이었다. 이 비극은 임오화변으로 이어지며 정점을 찍는다. 책은 그날의 참극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게 되었을 어린 정조의 심리를, 자신을 갈고닦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분석한다. 유년기의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회피와 의존, 그리고 강박이다. 회피란 불안의 원인을 피해버리는 것으로, 사도세자의 유년기에서 뚜렷이 보이는 특징이다. 불안한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환상 속에서 욕구를 채우려는 경향, 사도세자가 소설과 무예 등 잡기에 빠져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정조의 완벽주의는 강박으로 추정된다. 강박적 성격은 과도한 통제로 특징지어진다. 어린 정조는 자신의 불안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았고, 자신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 반대로 행동하였다. 공부에 매진함으로써 불안을 다스리려 한 것이다. 이외에도 숙종과 경종, 영빈 이씨와 혜경궁 홍씨까지, 영조·사도세자·정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역사 기반의 정신 분석이 책 전반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 가족의 역사가, 어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 이 시대에도 약물치료만으로 부족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청소년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20~30대의 자살률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뉴스 기사로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불안과 우울은, 가족이 기대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너무 멀다는 데서 온다. 부모 세대처럼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사회적 성취를 이뤄가는 것이 이미 자신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고 환상일 때, 그 사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인지. 그것을 말할 곳조차 없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의 교육과 가족 간의 소통 방식은 반드시 다시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숨을 얼마나 삼키고 얼마나 내뱉었는지, 글을 쓰는 방 안의 공기가 무겁고 쓰디쓰다. 예전부터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흥미가 아닌 아픔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사도세자처럼 뒤주에 갇혔던 적이 있었다. 완고하기만 한 아버지와의 극심한 갈등이 그 뒤주였다. 그러나 나는 그 뒤주를 깨고 나와, 아버지와 분리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만약 사도세자가 여염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는 인생의 풍류를 즐기며 여유롭게 천수를 누리며 살지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은 같다.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초등 의대반도 모자라 네 살짜리 의대 고시반이 생겼다는 말이 들린다.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말들이 '사도세자 양성반'으로 들린다. 이 책은 누구라도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어렵다. 좋은 부모가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책이라고 믿으며 산다. 감히 여염집 아낙이 들여다본 조선왕조 심리 실록, 『왕의 심리학』. 할 수만 있다면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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