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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 듦에 대한 자각을 느끼게 되는 계기는 아마도 흰머리와 노안일 것이다. 이것은 인종을 초월해서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노안이 왔다는 것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반가운 현상은 아니지만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메시지로 느껴진다. 즉 가까이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가까이에 있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바라보자는 의미로 나는 생각한다.
또 흰머리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문화 인류학적 의미에서 볼 때 ‘흰색’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통 ‘지혜’, ‘청결’, ‘평화’ 등의 좋은 뜻을 나타내며, 21세기 우리의 현실을 살펴볼 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흰 머리에 노안을 가진 나이들은 사람이다. 즉 경험이나 명성 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 사회나 고릴라 사회 등 사회생활을 하는 대형 포유류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항상 무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개체이다. 육체적으로 볼 때 젊은 개체들보다 결코 우월하지 못한 늙은(나이 든)개체가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이유는 근육에서 나오는 에너지 보다 집단에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지식 혹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것,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만 달할 수 있는 경지, 그것이 삶의 지혜와 지식인 것이다. 집단이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알며, 분쟁을 해결할 권위를 가지는 등 나이들은 존재는 젊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근육에서 나오는 에너지보다 더 우월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집단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예전과 비교해서 나이든 사람들이 대접 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예전에는 평생 살아오면서 배운 지식으로 젊은이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자리할 수 있었지만, 빠른 세상의 변화는 이전에 배운 것들을 다시 써먹을 기회가 없어진 것이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초음속의 속도로 날아가는 패스트 라이프(Fast life) 속에서의 서드 에이저(Third Ager)들은 위기일 수밖에 없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는 한 세대 전보다 예상 수명이 20~30년은 증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20~30년을 더 산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예상 수명이 증가한 대표적인 원인은 영유아 사망률의 저하에 기인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우리 한 세대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만큼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70~80세를 산다는 것이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경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전보다 발달한 의학이나 식생활, 위생적인 생활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생존 연령이 올라갔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서드 에이지(Third age)’란 뜻은 무엇인가? 서드라는 말은 앞에 퍼스트, 세컨드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이다. ‘퍼스트 에이지’는 <배움>을 위한 단계로 태어나서 학창 시절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때는 학습을 통해 기본적인 1차 성장이 이루어 지는데, 주로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가 이에 해당한다고 정의한다. ‘세컨드 에이지’는 <일과 가정>을 위한 단계로 퍼스트 에이지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산성을 발휘하고 사회적으로 정착생활을 하는 시기로 규정한다. 2,30대의 시기가 이 연령대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서드 에이지’는 <생활>을 위한 단계로, 청년기인 퍼스트 에이지 때에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1차 성장과는 다른 2차 성장을 통한 일종의 자기실현을 추구해 나가는 시기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생의 덤으로 얻어진 40대 이후 30년 이라는 시간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시기로 활용하자고 외치고 있다. 즉 사오정이나 오륙도라는 말에는 전혀 구애 받지 말고, 삶을 풍요롭게 꾸미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독자들에게 말해 준다. 요즘 우리 곁에 흔히 회자되고 있는 금전적으로 풍족한 노후보다는 심리적인 삶의 측면에 치중한 도전에 힘쓰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6가지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중년이라는 나이에 달한 사람들에게 그 나이에 걸 맞는 정체성을 확립하라고 한다.
둘째는 돈을 벌기 위한 <일>과 삶에 즐거움을 가져올 <여가 활동>을 조화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조화롭게 하라고 한다.
넷째는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를 조화시키라고 한다.
다섯째는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을 조화시키라고 하며
여섯째는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조화시키라고 말한다.
즉 서로 상대적인 가치를 갖는, 즉 양립하기 쉽지 않은 상반된 것들을 조화롭게 함께 수용하고 행하라는 것인데, 결코 쉽지 않은 제안이다. 하지만 곰곰히 읽어나가다 보면 이것이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꼭 40대 이후에 해야 할 것 들이 아니라 30대, 아니 20대에서도 시작하면 좋은 개념들이라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 주변에는 20대처럼 젊게 사는 50대, 60대처럼 늙게 사는 40대도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저자가 얘기한 6가지 원칙에 얼마만큼 적합하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몇 가지는 실천하고 있지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도 있다. 남아 있는 내 생애가 결코 빨리 시간이 흘러가지 않도록 나머지 부분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또 나이 든다는 것이 결코 슬퍼하거나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조용히 책 꽂이에 넣는다. [인상깊은구절] 젊은이 중심의 우리 사회는 매력가 가치는 나이와 반비례한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매력과 가치가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선택하는 상업적 이미지 역시 우리가 얼마나 젊은 세대를 우사화하는지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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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이나 고급포도주를 제외하고 '나이 듦'이란 단어는 절대 '부가가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젊은이 중심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이제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31쪽)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나이를 자랑스럽게 떠들지 않는다. 동안으로 보이는 메이크업과 동안패션, 동안을 위한 몸짬운동등 자연스럽게 우리는 젊게 보일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소외된다는 것, 그리고 뒤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Third Age' 즉, '제3의 연령기'이다. 인생에서 가장 긴 40여년을 의미하는 시기이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새들러는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임상실험을 통해 '중년의 삶'을 꾸준히 연구해 온 전문가이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남녀 200여 명을 인터뷰한 후 그 중 50여 명을 12년간 꾸준히 추적 연구하여, 마흔 이후에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통해 '마흔 이후 30년'의 삶을 '서드 에이지(third age)'라고 명명하며 조명하고 있다. 새들러의 글은 그저 이론이나 비유에 그치지 않는 종단적 연구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인생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6가지 원칙'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설득력을 제공한다.
'마흔 이후 2차성장은 창조적 에너지에 더하여 역설과 모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것을 요구한다'. (8쪽, 이대 함인희 교수)
들어가는 글/ 21세기 중년, 경계선 위에 서다 - 중년의 몸은 뇌로부터 희망의 신호를 필요로 한다
왜 긴 '차례'를 열거했을까? 이 소제목들만 보아도 저자가 말하고 싶은 메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대립되는 두가지 명제를 제시하며 독자에게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한다.
40이후의 인생을 내게 주어진 수명 보너스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미성숙한 젊은이로 돌아가려고 무모한 노력을 하지 말것이다. 자신이 관심 갖는것과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에 솔직할 것이며, 나와 타인사이의 균형적 배려를 갖는것은 제2차 성장을 의미한다. 도전을 통해서 자신의 젊음을 되찾고 다른 한 편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라는 충고도 매우 적절하다.
사랑과 우정의 질을 높여서 중년이후의 삶의 질을 높이라는 충고도 눈물난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마흔 이후...'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책들중 단연 최고였다. 책의 내용과 사례들 하나하나가 그저 어디선가 들은듯한 흔한 충고가 아니었고 실질적이어서 유용하다.
50여명의 인생을 12년이나 추적연구한 후 쓴 책이니 어떤 책보다도 설득력이 강하다. 마치 내 인생과 내 생각을 들여다보며 해주는 친절한 충고같다고나 할까. 중년이면 이제 내 인생은 접고 가족들을 위한 인생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중년들에게 당신의 소중한 제2성장기를 놓치지 말고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나이들어가는 과정에도 혁신이 필요하고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떠날때도 새로운 시작을 향한 도전을 잊지말아야 한다. '존재감(being)'을 위해서는 '행위(doing)'를 잠시 멈추고 자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자신의 감정고 사고의 더 깊은 차원을 열고자 노력해야 한다.
2006년 이 책이 발간된 후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어보아도 새들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롭고 흥미롭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저자의 힘. 그저 책상에 앉아서 아는 이론으로 책을 꾸미지 않고 12년간의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의 노력을 통한 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에게 진정성있는 메세지를 전달해준다.
40대 이후 남녀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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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 전경일, 남자 마흔 이후, 21세기 북스, 2006.5 책 2: 김종헌, 남자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정신세계원, 2005.10 책 3: 윌리엄 새들러, 서드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사이, 2006.3 남자 나이 마흔을 화두로 한 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전후 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보통 베이비붐세대라고도 하고 386세대라고도 하는 그 연령층이 40대를 점령하면서 일어난 변화라고 한다. 마침 평균수명은 80세 가까이 늘어나, 인생을 한 번 더 살아도 됨직한 시간을 얻었는데, 종전의 재테크 개념에 한정되어 있던 2막인생에 대한 논의가 성숙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yes24에서 집계된 바로는 작년에 가장 높은 책 구매량을 보인 연령층은 1인당 6.6권의 40대였다고 한다. 우리 동네 서점에서 세 권의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책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어서 모든 면에서 참고가 되었다. 먼저 책1은 “브라보! 대한민국 40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라는 부제를 단 에세이집이다. 중년의 징후, 미리 연습하는 노년, 노년을 준비하는 66가지 지혜 등 비교적 평이한 내용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차분하고 조용한 문체가 더해져, 상식을 확인하는 효과밖에는 얻을 것이 없었다. 저자의 나이가 43세에 불과한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제가 민망할 정도로 낮은 에너지와 기존의 연령개념에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에 비하면, 책 2는 훨씬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성공사례인 셈이다. 억대 연봉을 받던 남영산업의 CEO가 20년에 걸친 ‘꿈의 탐구’ 끝에 강원도 홍천에 북카페&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이야기이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탐구적인 부부, 오랜 준비기간, 분명한 철학으로 무장하여 성공할수밖에 없었던 전원생활의 좋은 본보기이다. 재테크보다 꿈이 먼저인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아내에 대한 투자가 최고의 투자인 것을 안다는 점에서, 고서화 등을 수집하며 꾸준히 자기 영역을 준비해 온 점에서 저자는 멋쟁이이고 선구자이다. 부인 역시 제빵 부분에서 만학도로 시작해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의지의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 사직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남편에게, “이제까지 가족 먹여 살리느라 수고많았어요.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책임질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전문성과 자신감이 돋보인다. 말하기 쉽고, 읽기야 쉽지만 이만한 성취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근면하고 얼마나 열정적이어야 할까. 허영이나 자기과시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다음 책을 준비하며 일상생활에 올인하는 저자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최근에는 책이나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오는 많은 40대에게 카운슬러 노릇까지 하고 있단다. peaceofmind.co.kr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서운한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안전위주 상식위주의 상투성이라고 해야할까. 보기드물게 모든 것을 갖춘 책이요 사례임에도 상투성을 뛰어넘는 도전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서운함을 말끔하게 씻어주고, 죽죽 밑줄을 긋느라 책장을 못 넘기게 만든 것은 세 번째 책,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다. 이 책은 현재 캘리포니아 호리네임스 대학 사회학 교수인 윌리엄 새들러의 임상 연구의 결과물이다. 200여 명의 4,50대 성인들을 인터뷰하여 삶의 패턴을 살펴본 후, 그 중 50명을 12년간 추적하여 2차 성장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6가지 삶의 원칙에 대한 연구이다. ‘배움’을 위한 퍼스트 에이지, ‘일과 가정’을 위해 정착하는 세컨드 에이지에 이어, ‘생활’을 위한 40세 이후 노화까지를 서드 에이지라고 한다. 신체발육과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1차 성장과는 다른 <2차 성장>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해 나가는 시기다. 2차 성장을 해나가는 사람들은 우선 문화와 매스컴이 우리에게 주입시킨 ‘나이역할놀이’를 거부한다.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올라갈 정상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이들어간다는 구식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지레 삶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어린아이를 일깨우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 ~~경험에서 나오는 원숙함과 자신감, 낙관주의와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중년은 20대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만족스러운 시기라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게 규정된 사회적 역할이나 대중매체의 메시지의 경계 너머로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나이듦의 신화를 깨뜨리고, 성공을 재정의하여 그것을 측정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거의 통쾌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임상적으로 실험한 학자가 있었던 것이다. 20대의 젊음만을 추앙하는 대중매체의 실상을 보라. 젊다못해 유치하기까지 한 10대가 점령한 TV라니! 하지만 20대의 젊음은 뿌리내리지 못한 모색과 방황의 시기였다. 30대에 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분주했던 시기를 돌이켜 보라. 지금 서드에이지야 말로 온유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볼만한 최적의 시기인 것이다. 나는 기꺼이 나이듦의 신화를 깨뜨리고 성공을 재정의하는 일에 앞장 설 생각이다. 서드 에이지의 기수가 될 것이다. 그 작업에 이 책은 실로 든든한 지원병이 아닐 수 없다. 마흔 이후 인생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6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중년의 정체성 확립하기 2. 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3.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4.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5.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6.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상식적인 좋은 말로 점철되어 있는 것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연구에 임한 저자의 태도 , 그의 연구에 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생동감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온전한 삶을 살 뿐, 그 나머지 기간은 죽어가는 과정을 지나치게 길게 늘려 잡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다. 2차 성장의 창조적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은 물론, 그들이 자양분을 공급한 사람들의 삶까지 비옥하게 만드는, 나이가 들수록 쓸만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분좋다. “앞으로의 시대는 꿈을 꾸는 행위와 자기 극복을 조화시키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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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떻게, 책을 이렇게 쓸 수 있는가. 자기계발서의 부정적 기능으로의 마취효과가 무엇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제목이 표현하는 주제의 넓은 범위와 평균수명이 연장된 사회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이나 통찰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자기계발서라는 것에 일반적으로 기대할만한 어떤 실속 있는 대안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장기간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이 책 분량의 주를 이루는데, 연구 대상자들은 참으로 귀감이 될만한 중년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슬며시 의문이 고개를 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수많은 예시는 어떤 논리로 설명할 건지 30년의 보너스로 추가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여섯 가지 원칙으로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이 원칙은 중년의 정체성 확립하기라는 상당히 추상적인 내용을 시작으로, 상반되어 보이는 주제들을 조화시키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일과 여가활동,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다. 일과 여가활동에 대한 것부터 보자. 저자의 현상황에 대한 인식에 대한 부분을 인용해보면, “기업 구조조정과 리엔지니어링의 결과, 직업 안정성이 감소하고 모든 위치에서 경쟁이 강화되고 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감행할 때 흔히 실직의 위기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적어도 나이가 4,50대가 된 직원들이다.” (108~109p_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그렇다. 우리 세대의 중년은 한국 아니더라도 회사에서의 안정성이 불안하다. 그렇다면 어떤 대처가 가능한가? 저자는 말한다. “일의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을 권한다. 일의 포트폴리오에는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외에도 자원봉사, 집안일, 취미로 하는 활동, 무언가를 배우는 것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될 수 있다.” (113p_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뭔가를 배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일과 여가의 분류가 맞는지도 상당히 의문이 들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일과 여가활동을 조화시켜야 중년의 문제의 핵심은 그 문제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곳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대안 제시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구조조정에 대해 자원봉사와 집안일로 대처하라는 것이 무슨 논리인가 일부만 발췌해서 책 전체의 내용을 오도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몇 가지 다시 인용해본다. “중년에 새로운 경력을 쌓아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일이라 해도 처음부터 포기하고 한탄만 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 경력이 꼭 세속적 개념의 성공일 필요도 없다.” (144p_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물론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이 책의 저자에게 내 상황에 딱 맞는 대안을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과 여가활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한탄만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현상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안된다. 아니면 마흔 이후 30년에 대해 서드 에이지라는 상당히 거시적인 호칭을 하지 말던지. 여섯 가지 원칙의 구분 자체가 구조적으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저자의 서술 방식이 상당부분 개인의 사례와 인터뷰 위주로 전개되기 때문에 원칙들 하나하나가 어떤지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바로 위에서 지적한 대로, 질문은 사회적이고 해결책은 개인적이라는 모순이 책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회적 혼란은 모든 이들의 개인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폭력, 수십억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희망 없어 보이는 곤경,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예기치 못한 변화들, 현대 문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 초래한 재난 등은 신중한 모든 사람들의 예측을 어둡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177p_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오, 사회적 혼란과 수십억의 곤경이 나왔다. 답변은 “내 연구 대상이 되어 준 사람들은 낙관주의에 속하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두 가지는 <희망과 믿음>이다. 희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긍정하는 힘을 말한다. …… 낙관주의자들은 자신이 도전에 성공적으로 맞설 수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182p_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희망과 믿음을 가지면 된단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물론 이런 책을 집어들어 읽게 될 중년의 누군가가 이 책으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전혀 없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 듦에 대한 위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 하다면, 그래서 중년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 제목이 좀 소박해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중년과 마흔 이후 새로운 성장과 발달이라는 주제로 장기 임상 연구를 하는 현직 사회학과 교수다. 책 제목이야 내 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그렇게 치면 이런 글을 끄적거리는 것도 내 맘이니까), 그건 21세기에 달라진 중년의 미래에 대해 부모세대를 참고할 수 없어 길을 찾다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될 중년에게 ‘사회적인’ 매너가 아니다. 마취성 위로의 글이 필요한 사람은 다른 글을 읽거나 산책이라도 가면 될 일이다. 21세기라는 시간의 지점에서, 중년과 노년이 연장된 새로운 세대에게 ‘서드 에이지’라고 명명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지침을 주기에는 너무 허접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서평은 문서편집 프로그램의 한 장을 넘기지 않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200자 원고지 7매정도의 분량을 넘어가는 글을 읽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피곤한 일이다. 개인적인 기준을 훨씬 넘는 글을 쓴 이유는, 이 책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당신의 만이천원이 너무 아까워서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는 당신께 진심 어린 부탁을 드리고 싶다. 인사이트도 허접하고 적용점도 없는 이런 자기계발서는 제발 읽지 말아달라고. 이 책은 보통의 자기계발서에 존재하는 작지만 선명하고 강력한 적용점 하나 조차도 찾기 어려운 그런 책이다. “남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나이 듦의 과정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중년기에 접어드는 우리에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고 삶을 쇄신할 수 있다. 주사위는 이제 던져야 하는 것이다.” (250p_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주사위는 당신이 던져라, 난 모르는 일이니. 라고 들리는 건 나만의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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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 에이지 third age>란 <제3의 연령기>, 마흔 이후의 30년간의 시기를 말한다. 2-30대를 거쳐오면서 실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고 주변과의 조화나 균형에도 큰 역할을 보이지 못한 채 40대가 되었다. 현 시점의 나와 같은 나이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을거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기대감은 주관적인 관점이 되고 나의 과거와 현재 생활에 포커스를 맞추어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성향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생애 주기를 유럽에서는 네 단계로 구분짓고 있다.
학습과 배움의 단계인 10대와 20대의 시기를 퍼스트 에이지, first age 일과 가정과 직장에 정착하는 단계인 30대를 세컨드 에이지, second age 보다 업그레이드된 생활과 자기 실현을 추구하는 단계인 서드 에이지, third age 성공적인 나이들어감의 시기인 포스 에이지, fourth age
생물학적인 노화는 20대중반부터 온다고들 한다. 물론 대중매체가 만들어놓은 "사실"이기도 하고 "허구"이기도 하다. 은닉된 주름들이 20대후반이 되면 본체를 드러내기도 해서 사회적 활동에 지나치게 예민해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혹은 나이드신 친척에게라도 이런 소리 들으면 기분이 어떻든가?
"어머! 눈밑에 주름이 생겼네..."
' ......헉'
"나이가 드는가 보구나."
'오메나.. 벌써 ..나이 타령이야'
"수분 에센스는 바르고 있니? 피부가 그게 뭐니? "
'너나 신경써라.. '
2-30대엔 이런 말들이 참 신경쓰인다.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속을 뒤집어주는 이들이 꼭 있으니 말이다.
40대를 넘어서 50대, 60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노화를 10대나 20대의 짱짱한 톤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서 거짓으로 인식되는 나이듦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40대를 <인생의 2차 성장시기>로 보는 시각이 고무적이지만 무척 신선하기도 하다. TV드라마속이나 보도성 프로그램속에 등장하는 <중년의 위기>가 종종 어둡고 음지성이 강한 이야기를 들춰내 보이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편견을 키우는 데 일조를 한다. 물론 크게 본다면 그게 다는 아니지만 말이다.
20대때 40대가 되면 나는 뭐가 되어 있을까 ... 지레 겁먹고 걱정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40대가 된 지금은 나의 노후는 어떠할까...하고 또 상상한다. 결론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누군가 적어 놓은 문장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황금보다... 현금보다...더 소중한 건... "지금"이라고..
인생은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내가 걸어 온 길이 좌절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하더라도 현재 적극적인 계획과 배움의 자세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나이듦의 시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없이 포기하고 편하게 안주하고 안정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도 큰 학습의 장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쓸 만해지고 있어요."
성공적인 인생이 무엇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쓸 만해진다는 건, 괜찮은 거다. 내게도 건질 만한 정열과 독창성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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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며 막연히 두려움을 느껴왔다.
도대체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늦기 전에 재테크라도 열심히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신문 서평을 보고 구입을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해주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밑줄을 치며 읽게 되는 구절들도 많다. 중년들의 심정을 아주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들면 안전밸트를 매고 착륙을 해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마흔에, 저자는 다시 이륙을 시도해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중년의 삶에 적용시켜야 할 6가지 원칙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중에 특히 와닿는 것은 <중년의 정체성 확립하기>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해 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 성공만을 향해 나아가느라 사회와 자아 사이에서 타협을 해왔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점점 잃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마흔 이후에는 자신의 내면 안에 숨어 있는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손을 내밀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내 안의 어린아이?... 즉 호기심, 웃음, 장난기, 쾌활함, 상상력, 자발성.. 등을 다시 부활시키라고 말한다.
그동안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억누르며 살아왔던가...
또 내 부모님은 어떻고... 서글프고 씁쓸하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저자 말대로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나이 들어갈 순 없다.
노후대책을 강조하는 책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재테크에 대한 것들인데, 이 책은 그와는 차별된다. 돈만 있다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 후반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중년에 대한 마음의 준비, 인식의 전환이 먼저 필요하다.
그러기에 이 책은 재테크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할 마음테크에 관한 책이다.
책 속에 소개된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가 맘에 든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나니..." [인상깊은구절] 마흔이 넘으면 그동안 억압해 왔던 자아를 풀어줘야 한다. 우리는 나이를 부정해서도, <나이 역할 놀이>에 빠져서도 안 된다. 내 인생이 리모컨에 의해 작동되는 것처럼 살아선 안 된다. 중년의 과제 중 하나는 <나 자신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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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는 10대에서 20대까지 첫 배움의 단계,
저자가 제시하는 6가지 지혜는
저자는 12년간이나 서드에이지를
무엇보다 정체성확립이 우선되어야 나머지 다섯가지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업무를 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몇년전부터 이런 생각들이 나 자신의 내면에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어왔음을 느낀다.
다섯가지의 조화는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에 대한 배려>쪽을 좀더 비중을 두어야 겠다.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는
<진지한 자기 성찰>과 <과감한 실행>을 위해선
마지막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조화는
<서드에이지>라는 시기는
배움과 가정을 이루고 정착하는 단계를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뭐 지금까지도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해지면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던 차에 이 책은 내게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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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을 넘기면서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가속페달을 밝고 있었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는 ‘사오정, 오륙도’ 라는 말을 유행시키면서 이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40대 조기 퇴직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만들었다. 한창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부장님들이 ‘부진 사업부 정리’라는 명목으로 갑작스럽게 짐을 꾸리는 일이 잦아졌다. 내 순서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운 좋게 남아있는 부장님, 이사님들을 쳐다봐도 한숨이 나오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질기게 살아남아서 얻을 삶 역시 그다지 행복한 미래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 남은 인생에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일까? 나의 정년은 어디까지일까? 직업을 잃은 나는 무엇으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며 살 것인가? 하루하루는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 한편으로는 진작부터 ‘직업이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란 게 없어진’ 시부모님과 새아버지의 무기력하고 무심한 일상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루 종일 TV앞 소파에 붙박이가구처럼 앉아 ‘졸다 깨다’ 만을 반복하시는 것을 뵐 때면, 머릿속에는 누가 엿볼까 두려운 불손한 문장마저 떠올랐다. ‘이것이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일까? 준비되지 않은 채 맞는, 길어진 노년의 삶은 축복이라기보다 재앙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그런 칙칙한 미래를 허락하기 실었다. ‘나는 저렇게 살기 싫다. 누구에게도 내 등을 떠미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테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내게 허락된 생의 즐거움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즐기리라.’ 그때부터 내 인생 후반전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마흔 이후, 제 2의 인생, 인생 이모작, 강점과 기질, 소명의 발견, 천직 찾기,…..’ 등을 키워드로 독서와 강연, 모임 등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5년이 흐른 시점에서 만난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은 그 동안의 파편적인 탐색과 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공감했던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까지의 여정이 상승과 하강을 오가며 방향을 잃은 채 혼돈스러운 듯 보였으나 한 발 물러서 조감해 보니,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2차 성장궤도로 막 들어섰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12년간 45~80세 사이, 수십 명 남녀의 삶을 추적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대다수 사람들이 중년 이후를 ‘속력을 줄이고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은퇴라는 육지에 안전하게 착륙하라’는 낡은 대본에 묶여 살아갈 때, 몇몇의 생기발랄한 돌연변이들이 만들어 낸 놀라운 반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젊은이보다 더 큰 호기심과 열정으로 마흔 이후의 삶을 누구보다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에선 ‘장/노년기’하면 흔히 떠올리는 ‘쇠퇴, 질병, 의존, 우울, 노망’과 같은 비관적인 단어는 찾아볼 수 없고, ‘갱신, 갱생, 쇄신, 원기회복, 회춘’과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저자는 무엇이 그들을 평범한 노땅들과 다른 삶과 살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하면 누구나 그들처럼 활기찬 삶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12년의 연구를 6가지의 비법으로 정리하여 우리들 앞에 펼쳐놓았다. 중년에는, 젊은 시절 사회와 타협했던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 (63) 제 1법칙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역할 기대, 주변의 시선, 경제/환경적 요인들에 발 묶여 이제까지 외면하고 잊어왔던 나의 진정한 욕망과 호기심, 내면의 목소리에 주목하라고 한다. 인생 이모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외적인 성취가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다양성과 그 질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억눌러왔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다시 깨워내라고 한다. 쾌활한 장난기, 배움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실패를 용서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자세와 같이 이미 오래 전 까맣게 잊었던 것들이다. 더불어 이전 삶에서 얻은 성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당부한다. 얄궂게도 많은 경우 정체성의 새로운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은 우리가 중년 이전에 정체성을 구축하면서 거두었던 <성공>,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이끌어 준 정신적 모델, 습관, 역할들 속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사회화 과정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 새로운 가능성을 소홀히 하게 된다. (65)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이 두 가지는 짧은 시간 안에, 적은 노력으로 금새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게 이것이었나 하면 금새 다시 이게 아닌가 싶어 방황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보잘것없는 과거의 유물들을 양손에 쥐고 놓지 못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 기회를 놓치기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나의 방황과 망설임의 순간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란 단 몇 년의 고민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그것은 평생을 두고 계속될 흥미진진한 모험에 다름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제 아직 탄탄하게 보장되지 않은 나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보다, 무엇이 될지 어디로 갈지 정해지지 않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가슴 두근거림을 택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가 말한 대로, 어린아이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과거의 성취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결코 놓아서는 안 된다. 중년의 2차 성장은 청춘의 1차 성장과는 다르다. 역설의 개념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것이 중년기 성장의 기본이다. (45) 나머지 다섯 가지 비법은 서로 통합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역설의 조화이다. 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일과 여가생활의 조화에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일의 현대적인 의미 (일을 오로지 돈을 벌고 사회적 명성을 얻게 하는 것에 국한하는)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한다. 일의 개념을 직업에 국한하는 것이 바로 2차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의 포트폴리오에 돈을 버는 직업 외에도, 취미,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과 도전, 집안 일, 자원 봉사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일의 목표를 자신의 가치, 재능, 흥미라는 관점에서 재정의하라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일의 포트폴리오는 중년의 피로감,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상의 열쇠란다. 결국, 중년 이후의 일이란 나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나를 표현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사회의 의미 있는 기여를 하면서, 나의 생계를 꾸려가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저자는 또한 중년기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연구대상 대부분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이 깊어지면서 삶의 의미가 더욱 심오해지고, 삶의 대한 만족도가 향상하더란 연구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배려와 연민을 통해 쌓여진 친밀한 관계는 2차 성장기간 동안 만날 수 있는 일시적인 내리막길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까지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때문에 여행이 어려워질 때, 자신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어 늦어지는 시간과 실망감을 견뎌내야 한다. (191) 2차 성장의 특징은 일직선상의 성장이 아니라 상승과 하강을 오가는 장기적인 성장이므로, 중간에 찾아오는 시련과 정체기를 잘 견뎌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연구대상자들의 삶에서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일의 포트폴리오, 배려와 연민으로 다져진 동료들, 현실적 낙관주의는 이 시기를 견디고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제껏 모두 앞의 것 (일, 자신에 대한 배려, 현실주의, 진지한 성찰, 개인의 자유)에만 집중된 삶을 살아왔다. 오로지 학교와 직장 하나에만 집중했고, 개인주의를 넘는 이기적인 생활태도를 가졌고, 현실보존을 위해 불투명한 미래는 늘 회피해왔고, 늘 생각만 하다가 실행기회를 번번히 놓쳐왔다. 무엇보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 나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마흔 이후의 삶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후자들의 가치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른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불안감과 우울함이 균형을 잃은 삶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한 쪽으로 치우쳤던 전반기의 삶은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부추긴 편협한 경쟁과 생존 논리에서 살아남겠다고 허우적거리다 점점 더 깊게 빠져버린 늪과 같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이란 시소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조금씩 엉덩이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쓸 만해지고 있어요. (293) 그들처럼 점점 성장 하고 있는 내가 참말로 좋다. 언제부터인가 내 삶 속에도 균형과 중용의 미덕이, 느리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이를 먹는 일이 서럽기만 한 줄 알았더니, 늘어나는 나이 따라 삶의 지혜도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탱탱한 젊음으로 콧대 높았던 여자 나이 스물에는 마흔 이후의 삶의 비밀을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땐 마흔이 넘으면 죽어야 하는 줄 알았더랬다. 서른 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재야의 밤. 이제 더 이상 축 늘어진 어깨로 늙어감에 대한 아쉬움을 늘어놓을 일이 아니다. “야호! 나도 이제 마흔이다. 마흔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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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지낸 4박 5일의 독서캠프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행복의 절정은 지금까지 읽은 책을 가지고 조별로 연극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티브이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은 짧은 순간에 개그 콘서트 이상으로 웃기고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배꼽을 잡은 것은 50대의 여선생님께서 한 연극에 참여하셨는데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야! 우리 오늘 카바레에 가서 놀까?” 그런데 젊은 선생님들이 하는 말 “요즘 누가 카바레에 가요, 클럽에 가지” 흔히 우리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그런데 이 말이 슬프게 들리는 것은 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핑계에 불과한 말을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몇 가지 특징이 생기는데 스스로 “난 건망증 때문에 못 살겠어” “사진 찍는 것이 두려워”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다고.” 등등 자신도 모르게 자조적인 말들을 습관처럼 털어 놓습니다. 제 자신도 이런 고민을 하다가 작년 가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중년이후의 삶을 바르게 살까” “내 스스로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YES24에서 중년이라는 단어로 책을 검색했더니 50여권이 검색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열일곱권을 구입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서드에이지 마흔이후 30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누가 뭐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내 앞에는 개척되지 않는 30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어” 이것은 흥분이었고 도전이었습니다. 정말 1950년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겨우 50살을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여자의 경우 80살이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는 30년 정도를 보너스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권씩 서드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나의 친구들도 한결같이 “그래 우리 나이가 가장 좋은 때야, 좋은 책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이 책의 지은이 윌리엄 새들러는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심층취재방식으로 <중년>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해온 저자는 <마흔 이후의 새로운 성장과정과 발달>이라는 주제로 장기 임상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홀리네임스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Personality Religion"등이 있습니다. 윌리엄 새들러는 우리 인생의 한복판에 위치한 미지의 광활한 시간 마흔 이후 30년을 서드 에이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멋진 말로 우리는 격려합니다. “중년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이 아니다. 지금 그곳에서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주사위를 던져야 합니까? 새들러는 던지는 방법을 6가지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윌리엄 새들러는 우리들에게 서드에이지를 정의하고 있는데 마흔 이후 30년의 시기를 서드 에이지(third age). 제3 연령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새들러는 우리의 인생을 4연령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제1연령기는 청년기로 1차성장으로 배움을 위한 단계라고 합니다. 태어나서 학창 시절까지의 시기이며 학습을 통해 기본적인 1차 성장을 이루는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를 말합니다. 제2연령기는, 일과 가정을 위한 단계로 직업을 갖게 되고 경제활동을 하는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 정착 생활(결혼, 조직체, 지역사회) 등 하는 시기로 2,30대의 시기를 말합니다. 제3연령기, 가장 긴 기간을 차지하는 서드 에이지, 1차 성장과는 다른 2차 성장을 통한 일종의 자기실련을 추구해 나가는 시기다. 즉 40대에서 70대 중후반의 시기를 말합니다. 제4연령기, 노화의 단계로, 성공적인 노화를 의미하는 또 하나의 곡선이다. 이때의 목표는 나이 들수록 젊게 사는 것, 최대한 오래 살다가 젊게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윌리엄 새들러는 우리가 서드에이지에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6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첫째, 중년의 정체성 확립하기 둘째, 일과 여가 활동의 조화 셋째,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넷째, 용감한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다섯째,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여섯째,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긴밀한 관계의 조화 마흔 이후 중년기 쇄신과 성장에 관한 여섯 가지 원칙은 각각 별개의 활동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 것처럼 한 가지에 관심을 집중해서 그것을 해결하고 그 다음 행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한눈에 들어오게 펼쳐져 있는 모자이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조화를 이루며 모든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드에이지의 삶은 무엇보다 나의 성숙된 인격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인격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 가족, 직업, 그리고 공동체를 생각하며 내 인생계획을 세우고 묵묵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를 기억했습니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자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나니“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하나의 글귀가 잠언처럼 마음에 새겨지는 이유는 이제 인생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자신에게 암시를 주고 새로운 각오를 피력하는 이유는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200여명의 4,50대 성인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의 패턴을 살펴본 후 그중 50 여명을 12년간 추적하여 마흔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통계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픽션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나와 함께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동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별된 50명의 삶을 추적한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도전받는 것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라고 하면 “나하고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는 절망감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삼팔선, 사오정하는 시대 누구보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걷고 있는, 중년들에게 이 책은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다시 이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고, 이제 광활한 미지의 세계인 서드에이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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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40대 중반이 되면서 주부로만 살아온 내 삶이 불만이었다. 그 동안 주어진 기회들 조차 곽 움켜지지 못하고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방관(?)으로 인해 정말 슬프고 할 일이 없다는 망연자실함을 느꼈다. 이제 다 살은것 같은 허망함이 엄습했다.
그런 중에 읽은 서드에이지는 그래서 나에겐 조금의 위로와 희망이 되어준 책인다. 아직도 구체적이고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지만 더 큰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 내 삶의 여분에 어떤 기대를 걸어보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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